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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사회에서는 자칫 누구라도 소송에 휘말릴 여지가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사법 시스템은 일반인에게 아직 어렵고 불편하기만 하다. 경인일보는 지난 2020년부터 이러한 사법 행정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 취재기를 통해 우리 법원이 나아갈 길을 함께 생각해보자. 편집자 주
수습 떼자마자 수원법원·검찰을 출입처로 받았습니다. 서울 기자들은 법원과 검찰 출입을 따로 하면서 서로 출입 기관의 논리를 가지고 이런저런 토론을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우리 경기도 기자들은 보통 법원, 검찰과 지역 변호사회를 묶어 출입합니다.
기자 생활 6년 차에 햇수로 4년을 법조계에 있었습니다. 한 출입처에 오래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편집국장과 데스크 선배들의 배려 덕분이었습니다. 4년 새 수원법원검찰은 옛 원천동 청사를 떠나 광교신도시 호수공원이 보이는 ‘뷰 맛집’으로 이사했고, 고등법원과 고등검찰청도 문을 열었습니다. 개원·개청 원년인 2019년의 봄날 법원 12층에서 형사 판결문을 공람하다 본 쌍무지개를 잊지 못합니다. 하늘도 감격해 경기도민에게 주어진 고등법원과 고등검찰청을 환영하는 쌍무지개를 걸었다고 홀로 의미 부여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통 큰 기획-불친절한 법원은 무죄일까>라는 제목은 편집부 선배들의 작품입니다. 우리끼리 쓰는 말로는 ‘컷’이라고 합니다. 컷은 취재기자가 정하기도 하지만, ‘불법무’처럼 당돌하면서도 직관적이고 섹시한 녀석은 대개 위대한 경인일보 편집부 선배들에게서 나옵니다.
통 큰 기획을 소개합니다. 통 큰 기획은 경인일보 기획취재팀이 2020~2021년부터 24개월간 매월 1개 주제를 정해 이틀 혹은 사흘 동안 지면에 전진 배치해 독자들에게 전한 기획 시리즈입니다. 편집국과 디지털미디어센터 기자 28명이 매달 2~3명씩 TF로 기획취재팀을 꾸려 제작했습니다. 2021년엔 신설된 기획콘텐츠팀에서 배재흥 기자와 제가 통 큰 기획을 전담했습니다. 종이신문 편집의 미학을 21세기에 남긴 역작이라고 감히 자평해봅니다. 현재는 통 큰 기사로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통 큰 기획과 통 큰 기사는 ‘대한민국 축소판’ 경기도와 인천의 이야기를 깊고 넓게 들여다보고 친절하게 풀어쓰는 경인일보의 ‘시그니처’입니다.
당돌하게 무죄냐고 물었다
지난해 11월 이틀 동안 경인일보 기획콘텐츠팀은 1~3면에 국민을 ‘경원시’하는 법원의 권위주의를 경기도민의 경험을 제시하며 비판했습니다. 경원시는 요즘 판사들은 쓰지 않는 표현이라곤 하나 연식이 좀 된 판사들께서는 익히 아는 단어였습니다. 공경의 의미를 담아 가까이하기보다 멀리한다는 뜻인데, 쉬운 말로 하면 ‘왕따’입니다.
4년 동안 법원 때문에 억울하다는 사람들을 수두룩빽빽하게 만났습니다. 민사소액 재판에 나가지 못해 1심에서 무변론 패소한 피트니스클럽 사장, 영구임대주택 입주자 대표로 끊임없이 민·형사 소송을 당해 대응하지 못하다 손해배상 500만 원 확정 판결을 받아 에어컨, TV 등 가전제품을 압류당한 60대 어르신, 1억 원짜리 수표를 잃어버려 분실 공시를 신청했는데 법원 직원 누락으로 반년 가까이 금융 비용을 물어야 했던 금융업계 회사원 등 개인의 부주의로 치부하기엔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았습니다.
법원이 당사자 변론도 듣지 않고 선고를 해서 난감하다는 제보는 잊을 만하면 왔습니다. 법관도 아닌데 법관의 시선에서 제보자를 무지하다며 무시하고 넘어가기엔 빈도가 잦았습니다.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국민비서 구삐가 예방접종을 맞으라고 ‘카톡 카톡’ 거리는 21세기 IT강국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우체국 집배원에 의존해 “3,000만 원(민사 소액사건 최고액)을 내놓으라”는 소장을 보내고, 법률 대리인을 선임하지 않거나 재판에 출석하지 않아도 변론기일지정통지서를 인편으로 보내는 법원행정이 불친절하고 무책임하지 않느냐는 의문에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기자들에겐 관대하고 친절한 법원이 소송 당사자에겐 불친절했습니다. 벼랑에 선 사람들을 회생파산 제도로 구제해주면서 분쟁을 겪는 사람들에겐 누구의 욕구도 채워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식자층이 아닐 때, 법원은 더 냉담했습니다. 억울하다고 호소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외면당하고 변론을 하지 못한 채 패소 판결문을 손에 쥐었습니다. 부주의를 탓할 일만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법률에 따라 재판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27조를 법원은 스스로 부정하는 위헌 행위를 심심찮게 자행해왔습니다. 사회적 약자의 재판 받을 권리를 제한하고 우리글과 말을 모르는 외국인을 위한 대법원 예규 역시 선택적으로 적용했습니다. 법이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사회적 약자를 법원이 경원시하는 역설이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싱가포르는 국민 모두에게 전자우편 주소를 부여하고 행정·사법 공문서를 발송합니다. 인구 10만 명의 도시국가라서 가능한 일이라고 하기에 대한민국의 IT 기술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온갖 행정 정보가 제공되는 시대에 법원만 전서구(비둘기 편지 배달)로 법원 문서를 국민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문서를 받지 못한 소송 당사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대한민국 사법부의 이름으로 패소하고 재산을 압류당했습니다. 수취인 불명, 폐문부재, 경락, 가사 등 어려운 한자어로 길게 늘어뜨려 이해하기 어렵게 쓴 판결문은 법조인이 아니면 뜻풀이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만의 언어에 빠진 법원입니다.
형사 사건에서는 구속 사건이면 붙잡혀 있으니 재판에 불출석할 겨를이 없고, 불구속 사건은 나올 때까지 구인장을 보내니 안 나오고 버틸 재간이 없습니다. 민사 사건은 다릅니다. 법원은 재판 당사자를 절대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불리하면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소송의 대원칙이 민사소송에선 전혀 기능하지 않았습니다. ‘응답하지 않으면 자백으로 간주한다’는 법원의 불친절한 민낯을 봤습니다.
법은 어렵고 불편하다
사법부는 인권 최후의 보루를 자임합니다. 과거 원천동 법원 시절, 수원지방법원 형사2부는 경기 남부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 이춘재 대신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잡혀 온 청년 윤성여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20년이 흐른 뒤 광교 수원지방법원 신청사 재심 법정에서 선고 당일 재판장은 그의 20년 옥살이에 반성하며 사죄의 의미로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배석 판사들도 부장판사와 함께 허리를 굽혔습니다.
법원은 그들이 자임하는 대로 우리 사회 최후의 보루지만, 법관 모두가 ‘지혜의 왕’ 솔로몬이 아니기 때문에 저마다 하나둘의 과오가 있습니다. 그들의 과오는 오판입니다. 법대 위의 법관 역시 사람이라 실수를 합니다. 틀릴 수 있습니다. 그걸 판사들은 ‘오판 가능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법 체계는 단 한 번의 판단으로 소송을 끝내지 않고 3심제로 유지되는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법대 위 법관에게는 막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재판장은 검찰과 피고인 또는 원고와 피고 등 당사자들이 작성해 온 시나리오(사건 기록)를 읽고 0 대 100 혹은 51 대 49의 판결을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걸고 판단하는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선고하다 우는 법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수원지방법원을 거쳐 간 수백 명의 법관 중에 단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울고 웃는 이들은 법관이 아니라 지역민들이었습니다.
법정에서 재판장은 한 마디로 형사 피고인의 자유를 박탈합니다. 심지어 목숨을 거둬가기도 합니다. 원천동 법원과 광교 법원 법정에서 황망하게 법정구속이 되는 형사 피고인들을 봤습니다. 민사 사건에서 패소해 울분을 감추지 못하고 한숨과 함께 눈물을 흘리거나 주저앉아 자기 가슴을 패는 당사자들도 봤습니다.
우리는 법원을 이용하는 국민의 정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과 서울·비서울 지역 간 불균형한 사법 서비스를 화두로 삼았습니다. 국민은 누구나 공공기관이 만든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대부분 공공기관은 각 기관의 정보를 투명하게 관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원이 국민에게 먼저 제공하는 정보는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민이 어려운 절차를 따라서 정보 공개를 요청함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사유로 정보에 접근할 권리를 상당 부분 제한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미확정 판결문은 오직 고양시 일산동구에 위치한 법원도서관에서만 열람할 수 있고, 소송 당사자 혹은 관계인의 요구에도 정보 공개를 거부하는 법원의 행태를 지적했습니다.
사법부의 ‘지역 홀대’에도 주목했습니다. 서울에 집중한 법원 조직의 불합리성을 서울과 경기·인천 지역의 인구와 사건 수 등을 비교하며 부각했습니다. 이는 중앙과 지방의 행정 권력이 새로 배분되는 지방분권 기조에 역행하는 것으로, 사법부가 여전히 서울 중심의 권력 구조를 고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명했습니다. 사법 권력의 쏠림 현상은 비서울 사법 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졌습니다. 전국에서 민사 장기 미제 사건이 가장 많은 법원은 서울중앙지법을 제외하면 수원지법 본원이었고, 인천지법 본원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민사소송의 기본은 ‘신속성’임에도 법원 조직과 법관 인력 등의 차이 등으로 경기·인천 지역민들은 신속한 소송을 받을 권리를 침해받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법원이라는 조직이 ‘누구의 편익’을 위해 존재하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국고로 귀속되는 공탁금이 매년 1,000억 원에 달하는데도 국민의 돈을 찾아주고자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거나 소액사건은 크지 않은 사건이라는 이유로 판결서에 판결 이유를 기재하지 않는 재판부의 행태, 녹음·녹화가 당연시되는 현대에 법정 녹음 장비를 갖추고 있는데도 재판부의 재량으로 이를 적극 활용하지 않는 태도 등을 조명하며 법원 중심 대국민 사법 서비스의 향상을 촉구했습니다.
<불친절한 법원은 무죄일까>를 작성하는 도중에 ‘사법 농단’ 혹은 ‘재판 거래’로 불린 사건의 두 번째 무죄 확정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로써 연루된 4명의 법관이 완전히 혐의를 벗었습니다. 아직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주요 피고인에 대한 판단이 남아 있지만, 법원은 제 식구들에게도 여타 국민처럼 낙인을 찍거나 오명을 벗을 기회를 줍니다.
그런데 배우지 못하고 사법 시스템을 잘 이해하지 못한 제보자들에게는 구시대적 인편 송달과 언어 사용으로 자기 자신을 지켜낼 기회조차 주지 않고 제대로 판단을 해주지도 않았습니다. 법관의 시선이 아니라 곤경에 처한 국민의 시선에서 사법 행정을 돌아보고 기사를 썼습니다.
법무부에 전화를 걸면 나오는 컬러링이 있었습니다. ‘지킬수록 기분 좋은 기본’이라는 노래입니다. ‘법은 어렵지 않다. 법은 불편하지도 않다. 법은 우릴 도와준다. 법은 우리를 지켜준다’는 노랫말이 반복됩니다. 역설적이게도 법은 어렵고 불편하고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노래가 나온 것 아닐까요? 쉬운 말로 먼저 손 내밀어 주는, 진정 국민과 함께하는 대한민국 법원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