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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현장] 언론인의 정치 참여, 어떻게 볼 것인가
미디어현장 | 등록일 : 2022-04-29

대통령 선거에 이어 지방선거가 잇달아 치러지는 선거의 계절, 적잖은 언론인이 주요 정당과 후보들의 캠프에 몸을 담았다. 선거 때면 논란이 벌어지곤 했던 언론인의 정치 참여, 이른바 ‘폴리널리스트(Polinalist)’ 문제도 다시금 제기되고 있다. 민주사회 모든 국민의 기본적 권리인 참정권 및 직업 선택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언론인의 정치 참여를 원천적으로 금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언론이라는 기능의 특성상 특별한 제한이 필요한 직업군에 언론인이 포함돼야 한다는 데는 거의 이론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권리와 제약, 이 양면성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이는 오랫동안 간단히 해결책을 찾기 힘든 사안이었다. 언론과 정치와의 관계가 더욱 복잡해져 가는 양상에서 사안의 복잡성만큼이나 그에 대한 논의도 다원적, 심층적이어야 한다는 과제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먼저 구분할 것이 있다. 언론인의 정치 참여라 할 때 ‘참여’는 과연 무엇을 말하는가 하는 것이다. 단순화해보자면 정당이나 정부 등 정치권에 진출하는 것이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 참여라고 한다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정도는 낮은 수준의 정치 참여라 할 수 있다. 직업으로서 정치권 진출과 시민으로서의 정치 활동은 구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언론인의 정치 참여에 대해 포괄적인 접근과 함께 세분된 규율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규율을 정하는 중요한 기준의 하나는 참여의 폭과 강도에 따른 비례의 원칙이어야 할 것이다.

 

포괄적 의미에서 언론인의 정치 참여는 법적으로 크게 제한이 없다. 일단 언론인의 정치 활동 자체를 금지하는 법률적 조항은 없다. 정당에 가입해 정당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다룬 정당법 제6조는 언론인의 정당 가입을 막지 않고 있다. 다만 공직선거법에 규정된 조항이 강제력을 갖고 있는데 제53조(공무원 등의 입후보)에는 ‘선거일 전 90일까지 그 직을 그만둬야 출마가 가능한 직업군’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언론인’도 들어가 있다. 2016년 6월 30일 헌법재판소가 언론인의 선거 운동을 포괄적으로 금지한 공직선거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판결한 뒤로는 현직 언론인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를 위한 선거 운동에 직접 참여하는 것도 가능하게 됐다. 그러나 이 판결에 대해 정치적 자유가 확대됐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언론의 공정성이 저해될 우려가 있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엇갈린 것처럼 언론인의 선거운동과 선거 보도의 공정성은 양립하기 어려운 관계에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위의 헌재 판결은 ‘개인적’ 선거운동에 한해 허용되는 것이고, 매체를 활용한 선거운동은 금지된다고 한 것이었지만 그 경계는 모호할 수밖에 없다. 가령 발행인이나 편집인, 중견 간부 등 보도와 편집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위에 있는 사람이 특정 후보 선거운동에 나선다면, 그 매체 보도의 공정성을 과연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길 법하다.

 

 실정법 규정을 넘어서는 문제

 

결국 언론인의 정치 참여는 실정법의 규정을 넘어서는 차원의 문제다. 우리가 그것을 권력과 언론 간의 유착이라고 부르든, 권력에 대한 언론의 예속이라고 부르든, 언론의 정치 참여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대체로 양자 간의 특수한 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 특수성은 정치라는 권력과 그 정치를 감시하는 것을 하나의 본령으로 삼는 다른 권력이 만났을 때, 그것이 불건강한 만남, 위험한 조합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경계를 내포하고 있다.

 

정치 활동의 자유와 언론 공정성 훼손의 방지. 이 양자 간의 균형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경계와 제한은 필요하되 그것이 과잉으로 흐르지 않는 숙고가 동시에 요청된다. 일정한 원칙이 필요하나 한편으로 획일적인 규제나 과잉 금지가 되지 않는, 현실적이면서 합리적인 규율이 필요한 것이다. 또 그렇다면 그 규율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정할 것인가. 규율의 내용과 주체에 대한 더욱 정밀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 같은 논의가 한국의 언론에 특히 많이 요청되는 이유가 있다. 언론인의 정치 참여 문제는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미국도 언론인의 정치 활동은 원칙적으로 제한을 받지 않는다. 언론인도 정당에 가입할 수 있고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내는 언론인도 많다. 무엇보다 유력 신문들이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 입장을 사설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표명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언론사별로 사규를 통해 언론인의 정당 또는 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있는 곳이 상당수다. 특히 정치부 기자들의 정치 활동은 엄격히 제한된다. 일부 언론사는 정치 헌금 기부 액수의 상한선을 정해 놓기도 한다.

 

일본의 선거법도 언론인의 선거운동 금지 규정을 별도로 두고 있지 않다. 언론인도 선거법에서 금지하는 것만 아니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법관이나 경찰관 등 특정 공무원에 대해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것에 비해 자유롭다.

 

유럽 신문의 경우는 정치 활동의 자유의 폭이 더 넓다. 이는 대중지 성격이 강한 미국에 비해 유럽의 신문은 ‘정론지’ 성격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기자들이 특정 정당의 정책과 이념을 갖고 활동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풍토에서 비롯된 것이랄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인이 정치권에 진출하는 것은 외국보다 한국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한국 언론적 현상’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다. 고(故) 김세은 강원대 교수는 2017년 한국언론학보에 발표한 <한국 ‘폴리널리스트’의 특성과 변화>라는 논문에서 한국 저널리즘의 특징 중 하나를 언론인의 정계 진출로 규정했다. 그는 언론과 정치의 독특한 접합으로서 폴리널리스트를 상정하고 이를 ‘사회적 자본의 이동과 공유를 통해 언론과 특정 정당 간 유착 관계가 형성됨을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라고 봤다. 그는 “정치권에서 언론인 출신을 원하는 건 그 ‘개인’이 아니라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하며 쌓은 네트워크나 사회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언론인의 정치권 진출에 대해 좀 더 엄정한 규율이 필요한 것일까. 그러나 사실은 더욱 엄격한 규율이 요청된다기보다는 이미 마련돼 있는 규율을 제대로 지키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많은 언론사에서 이미 정치권으로 이동 시 최소한의 유예기간을 가질 것을 권고하고 있다. 조선일보와 KBS는 정
치 취재 담당자가 해당 직무가 끝난 후 6개월 이내에 정치 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규정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는 강제 사항이 아니며 정치부가 아니면 해당되지 않아 이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박근혜 정권 때의 민경욱 전 의원이었다. KBS 보도국 문화부장이었던 그는 청와대 대변인 임명 당일 오전 방송국 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2월 6일 청와대 대변인에 임명된 민경욱 전 KBS 앵커가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시민으로서 언론인의 ‘참정’

 

그러나 한국 언론에 더욱 필요한 것은 직업으로서의 정치인으로 이동하는 것에 대한 논의보다 시민으로서의 언론인의 ‘참정’에 대한 것이다. 이에 대한 우리 언론의 태도를 보여주는 과거와 현재, 두 개의 장면이 있다. 2002년 대선 당시 한겨레 기획위원이었던 홍세화 씨가 정당에 가입하고 특정 정당을 위해 정치적 활동에 나서면서 언론계 안팎에선 언론인의 정당 가입과 정치 활동 문제를 둘러싸고 뜨거운 공방이 벌어졌다. 홍 위원이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 출연해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히자 이튿날 한겨레 편집위원장은 홍 위원이 언론인으로서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며 직무 정지를 통보했다. 이 통보는 회사 안팎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불렀고 한겨레 윤리위원회는 홍 위원에게 내려진 직무 정지 처분을 해제했지만 이는 정치 활동 표명 자체가 아닌 절차상의 흠결을 문제 삼은 것이었다. 한겨레 구성원들은 ‘우리는 정당에 가입하지 않으며 특정 정당이나 특정 종교 및 종파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윤리강령 조항을 놓고 공청회를 연 뒤 이 조항의 개정 여부를 묻는 투표를 실시했지만 결국 이 조항은 그대로 유지됐다.

 

대선을 눈앞에 둔 올해 3월 1일 특정 후보에 대한 ‘10만 애국 지식인 지지 선언’ 행사에 현직 기자가 참여하고 이름을 올렸다. 이 기자에 대해 해당 언론사는 징계위원회를 열고 감봉 결정을 내렸다. 사규와 윤리헌장 중 ‘정치 중립성 의무 위반 및 회사 명예 실추’ 조항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20년간의 시차를 넘어 재연된 유사한 사건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기자는 중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인이지만 동시에 일정한 정치적 견해를 가질 수 있는 한 사람이다. 그를 국민으로 본다면 지면을 이용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편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경로를 통해 자신이 가진 정치적 색채를 드러내고 지지를 호소하는 것도 문제로 삼아야 할까.

 

사실 우리 언론과 정치와의 관계에서 진짜 문제는 정치적 입장을 밝히는 것에서 비롯된다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감추는 데 있는 것이 아닌가. 이번 대선 때 특히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상당수 언론의 행태가 보여주는 것은 불공정이나 왜곡을 넘어선 수준의 정치적 편향이었다. 편향을 넘어 정치 세력과의 일체화라고 해야 할 정도였다. 기사 형식을 빌어 특정 후보를 위한 광고를 내보내며 사실상의 준캠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적잖은 언론의 실상이었다. 언론인 일부가 아닌 언론사 전체가 선거 캠프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정치적 중립을 가장해 특정 후보를 비방하거나 편드느니 차라리 드러내놓고 밝혀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어느 언론사가 어떤 정치적 색채를 갖고 있다고 밝히면 오히려 독자들도 이런 사실을 가감해서 그 언론을 대할 것이다”는 성토와 지적이 나올 만하다. 선거보도심의위원회라는 곳에서 이뤄지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문제 중심의 대응 수준에 그치는 불공정 보도 심의로는 잡아내지 못할 수준의 구조적 불공정이다. 드러난 폴리널리스트보다 드러나지 않은 채 특정 당과 특정 후보를 돕는 언론사 언론인과 언론사의 폐해야말로 문제인 것이다. 

 

 언론의 제 역할 찾기가 핵심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조사 결과가 있다. 한국 언론에 왜 ‘기레기’라는 모욕적 별칭이 굳어져 있는지를 압축해주는 조사다. 매년 조사되는 세계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언론 자유가 높은 나라로 꼽힌다. 체감 자유가 무제한적인 한국 언론의 한 면이다. 그에 대비되는 조사가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몇 년째 내놓고 있는 <디지털뉴스리포트>에 담겨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자국 언론에 대한 신뢰도는 조사가 이뤄지는 40여 개국 중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언론에 대한 상반되는 이 두 개의 조사 결과가 가리키는 바는 무엇인가. 많은 자유를 누리지만 그 자유만큼의 책임을 못 따라가는 것이 한국 언론의 실상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의 낮은 신뢰도는 역설적으로 정반대의 진실이 담겨 있다. 극도로 낮은 신뢰도에는 우리 국민의 언론에 대한 그만큼의 높은 기대가 전제된 것이다. 바로 여기에 언론인 정치 참여에 대한 중요한 길잡이가 있다. 김세은 교수가 위의 논문에서 분석했듯 “건국 초기에는 독립운동과 정치적, 사회적 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언론이 활용되면서 언론인의 역할이 정치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았으며 그래서 언론인의 정치권 유입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언론의 정치 참여가 정치를 선도하고 견인하느냐 아니면 퇴행과 영합으로 이끄느냐에 있는 것이다. 언론인의 정치 참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언론이라는 감시자가 또 다른 감시자, 문제 해결자인 정치를 어느 수준에서 만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결국 진짜 문제는 어떤 언론, 어떤 언론인으로서 정치에 참여하느냐는 것

이어야 할 것이다.

 

 ‘정치적 교양인’으로서의 언론인

 

한국 사회의 정치적 성숙을 위해서는 참정의 권리가 양적으로 더욱 확대되고 질적으로 높아져야 한다. 언론도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 언론에 맡겨진 기능, 국민이 기대하는 역할을 생각할 때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참정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우리가 진짜 경계해야 할 것은 언론인의 정치 참여 자체가 아니라 정치적 교양과 시민적 양식을 갖추지 못한 언론인의 정치 진출이다. 우리가 피해야 할 것은 정치적 미성숙에 머물러 있는 언론인에 의한 언론 활동이며 정치 참여다. 그것은 언론 자신과 정치의 동반 타락이다. 언론의 정치적 중립성은 정치적 무관심과 수동성, 정치로부터의 분리와 배제라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라 초당파적, 균형적 시각의 ‘포괄과 종합’이라는 적극적 의미(교육의 보이텔스바흐(Beutelsbach) 합의1))로 해석돼야 한다. 우리 사회의 문제가 정치라고 한다면, 그래서 언론인의 정치 참여가 요청된다면 같은 이유로 문제는 언론인 것이다. 

 

 

 

 

 

 

 

 

1) 1976년 독일에서 정치 교육 방법을 두고 다양한 학자들이 토론 끝에 이룬 합의. 주입식 교육을 금하고, 논쟁적 주제는 논쟁적으로 제시해야 하며, 학생의 개인적인 의사를 존중하고 합의를 종용하지 말 것 등 세 가지 원칙으로 이뤄져 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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