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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종영한 SBS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같은 제목의 르포논픽션을 원작으로 제작됐다. 권일용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와 함께 기자 출신으로 이 책의 공저자로 참여했던 필자에게 르포 작가의 취재와 스토리텔링 방식에 대해 들어본다. 편집자 주

“처음으로 내가 잘한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
“전 단지 범인의 입장이 되어보려고 했던 것뿐이에요”
“똑같이 흉기 휘둘러봐야 아는 마음이라면 모르는 게 나아”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제7화 국영수와 송하영의 대사 중)
2004년 4월부터 살인 사건 또는 폭행 사건이 잇달아 벌어졌다. 서울시 서남부 구로구, 영등포구 근처였다. 어느 순간 언론은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이라 이름 붙였다. ‘한국 1호 프로파일러’가 임명된 지 불과 4년 된 해. 무차별 범죄라는 지극히 미국적인 범죄 현상을 이해하고 있는 사회부 기자는 거의 없었다.
미국의 프로파일러는 데이터를 활용했고 한국의 1호 프로파일러는 없는 데이터를 직접 만들고 발굴해야 했다. 연쇄성(linkage)에 대한 판단 자체가 무척 중요했다. 1호 프로파일러는 서울 서남부 지역 대축척 지도를 출력했다. 그 위에 비닐을 씌웠다. 그리고 최근 살인 사건이 벌어진 지역을 마커로 표시했다. 그 골목을 걷고 또 걸었다.
프로파일러에게는 범죄자에 빙의하는 ‘그화 되기’가 일이고, 르포 작가에게는 ‘권일용 되기’가 일이었다. 2018년 초 나는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의 1번 현장부터 6번 현장까지, 1호 프로파일러였던 권일용 동국대 교수가 범죄자의 마음을 읽기 위해 걸었던 길을, 권일용 교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짐작하기 위해 따라 걸었다.
프로파일러는 심리학자 같은 경찰
미국 내러티브 논픽션·탐사 보도 작법 책에 몰입형 취재(immersion reporting)라는 용어가 있다. 오랜 기간 취재원과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를 깊은 곳까지 파악하는 취재 태도를 말한다. 몰입형 취재를 하는 르포 작가는 비유컨대 ‘스토리텔러의 심장을 가진 탐사 보도 기자’쯤 될까? 이렇게 권 교수와 내가 2018년 공저한 르포논픽션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드라마로 제작됐고 지난 3월 종영했다.
권 교수와 처음 만난 2016년 1월 겨울날부터 우리 두 공저자가 고민한 주제의식은 범죄 피해자에 대한 배려였다.
“나를 그 자리에 있도록 지켜주고 힘을 준 것은 가족과 동료들이었다. 그리고 또 내게 힘을 준 것은 억울하게 죽어간 피해자들과의 약속이었다. 잔인하게 훼손되고 삶이 파괴되어 억울하게 생을 마쳐야 했던 피해자들과의 약속이 내 삶의 배수진이었다.”
권 교수가 쓴 후기다. 드라마 초반부 4세 여아 납치 살해 사건을 기억하는가. 범인의 주거지에서 훼손된 여아의 신체 일부를 찾기 위해 하수구를 헤집던 기억을 말하던 권 교수의 눈빛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기억을 르포논픽션에 기록했고, 드라마 장면이 됐다.
우연의 일치처럼 2016년 당시 범죄 전문 기자·작가인 나에게도 범죄 피해자 트라우마가 화두였다. 나는 당시 미국의 프로파일러를 다룬 논픽션 《마인드헌터》를 여러 번 읽은 상태였다. 2013년에 한겨레 기자로 지존파 납치 생존자 여성 시리즈 기사를 취재하면서 범죄 트라우마 문제를 작가·기자로서 고민하고 있었다.
아울러 권 교수와 나는 둘 다 이 르포논픽션 원작이 어떤 개인의 영웅담이 아니라 초창기 한국 경찰 프로파일링을 만들고 구축한 여러 사람을 모두 다루는 이야기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가 서문에 ‘이 책은 프로파일링팀 전체가 주인공인 전기’라고 표현한 이유다. 윤외출 경무관의 팀 창설 노력은 이 책 이전에 기성 언론 보도에는 거의 등장한 바 없다.
또 다른 메시지는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의 본질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기존 프로파일러 소재 드라마나 소설 속의 프로파일러 이미지를 수정하고 싶었다. ‘프로파일러는 경찰 같은 심리학자가 아니라, 심리학자 같은 경찰’이라는 르포논픽션 속의 문장은 그렇게 나왔고, 드라마 각본에도 인용됐다.

실화를 드라마틱하게 다루는 취재 방식
르포의 스타일에 대한 고민은 작가인 내가 주로 했다. 이를 ‘기성 데일리 저널리즘의 6하 취재와 달리 실화를 드라마틱하게 다루는 취재 방식은 무엇인가’에 관한 고민으로 바꿔 이해해도 좋다. 그건 캐릭터·행동·장면 취재다.
창작 작가는 캐릭터·행동·장면을 상상하고, 르포 작가는 캐릭터·행동·장면을 취재한다. 캐릭터 취재는 가족관계, 취미, 종교, 말투, 인간관계 등 삶의 디테일을 파악하는 것을 뜻한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걸린다. 몇 주 몇 달이 기본이다. 권 교수와의 정식 인터뷰는 약 5회였지만, 1년 반 동안 여러 상황과 술자리를 포함한 여러 장소에서 권 교수와 숱하게 만났다. 인간관계는 사람을 비추는 다중거울이다. 인터뷰 시도를 32명에게 했고 15명 이상을 만났다. 권 교수가 적지 않은 분들의 연락처를 제공했으나, 나머지 분들은 직접 파악하고 접촉을 시도했다. 책을 읽을 때도 그냥 프로파일링 교과서가 아니라, ‘그 시점에 권 교수가 읽은 프로파일링 교과서’를 일부러 확인하고 따라 읽었다.
장면 취재의 경우 드라마 작가는 신(scene)을 창조하고, 르포 작가·기자는 신을 취재한다. 살인범 면담 당시 입었던 옷은 왜 검은 양복으로 바뀌는지, 첫마디는 존댓말인지, 장소는 경찰서 몇 층인지 등이 모두 취재 대상이다. 보통 일간지 기자들이 인터뷰 때 묻지 않는 질문이다. 윤태호 웹툰 작가의 방식을 빌어, 권 교수가 참여한 사건과 관련해 언론의 보도 사진 연감을 뒤졌다. 영상도 확인했다. 유영철의 CCTV 뒷모습을 수배 전단에 활용하자는 논쟁 장면이 르포논픽션에 담겼고, 역시 드라마 장면이 됐다.
드라마틱한 실화 취재는 6하(5W 1H) 중 단연 왜(Why)에 집중한다. 왜는 결코 몇 개의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검찰 공소장이나 데일리 기사에서 가장 빈약한 서술이 왜이며, 바로 거기서 스토리가 시작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르포논픽션을 2018년 여름 출간했고, 출간 직후 스튜디오S로부터 드라마화 계약 제안을 받았다. 감사한 일이다. 범죄 피해자에 대한 배려와 위로라는 원작의 메시지를 송하영(김남길 분)이 꽃을 헌화하는 장면으로 드라마적으로 구현해주신 박보람 감독과 설이나 작가, 이슬기 PD 등 드라마 제작진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모든 스토리텔러는 자기 주변인의 삶을 이야기에 활용하려는 본능을 갖고 있다. 범죄 실화에 대해서도 이런 유혹에 빠진다. 그러나 범죄 사건은 예술이 아니며, 범죄 피해자가 겪은 사건은 스토리 작가가 이야기에 함부로 막 써도 되는 레고블록이 아니다. 굳이 비유하면, 그건 피와 눈물로 적셔진 레고블록이다.
“피해자들과의 약속이 내 삶의 배수진이었다.”
좋은 메시지가 좋은 대중적 드라마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다시 한번 대중성과 공익성의 접점을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