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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폐지 줍는 노인을 흔히 볼 수 있지만, 지금껏 그 노동 실태에 대한 관심은 전무했다. KBS 대구방송총국은 노인의 폐지 수집 노동을 집중 보도했다. 최저임금 10분의 1 수준으로 근근이 삶을 이어가는 노인들. 폐지 수집의 사회적 기여도 뒤에 가려진 그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확인했다. 편집자 주

3년 전, 겨울이었다. 퇴근길에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한 할아버지가 얇은 바람막이만 걸친 채 거리에 서 있었다. 당연히 추웠던지라, 그는 연신 발을 동동 굴렀다. ‘왜 저렇게 입으셨지’ 생각하던 찰나, 옆에 세워진 리어카를 발견했다. 폐지가 2m 이상 높이 쌓여, 보는 사람을 기이하게 압도했다. 한겨울밤, 이 노인이 왜 폐지를 줍는지, 도대체 이 일은 얼마나 힘든지 취재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단순히 가난한 노인의 힘듦을 소개하는 데 그칠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보도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렇다고 마땅히 좋은 기획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지난 3년 동안, 거리에서 폐지 줍는 노인을 볼 때마다 부채 의식을 느꼈다. 차라리 외면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대구 북구청에서 한 통의 보도 자료를 받았다. 대형 봉사단체가 리어카 넉 대를 제작해 구청에 기탁했는데, 이를 폐지 줍는 어르신에게 전달했다는 내용이었다. 구청은 ‘추운 겨울, 건강하게 폐지 주우시라’고 했다. 공무원과 봉사단체 회원은 리어카 앞에 나란히 서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화가 났다. 폐지 수집 노동은 노인 복지에 사각지대가 있다는 방증인데, 복지 주무기관인 구청은 이를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구청에 물어보니, 이들은 관내에 폐지 줍는 노인이 몇 명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폐지 줍는 일을 당연한 일상으로 여기고 있던 것이다. 이제는 무조건 취재해야 한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먼저 사전 취재를 위해 자료를 검색했다. 그런데 참고할 만한 자료가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 정부 차원에서 폐지 수집 노동에 대한 실태조사를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민간 영역에서도 전국 단위의 조사가 없긴 마찬가지였다. 취재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나 이왕 시작한 이상 끝까지 밀어붙여 보기로 했다. 직접 기초 연구 자료를 만들기로 했다.
이에 취재 목적을 분명히 세웠다. △폐지 수집 노동 특성 파악 △수집 노인 인구 산출 △사회적 가치 도출 △대책 마련 촉구. 그러나 기자의 취재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노인 문제를 연구하는 다양한 연구단 체와 접촉했다. 그중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서 관심을 보였다. 박경하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연구조사센터 센터장과 배재윤 부연구위원이 연구 의뢰에 흔쾌히 응했다. 이렇게 KBS와 전문 연
구기관의 공동 연구가 시작됐다.
GPS로 노인 노동의 실체를 낚다
곧바로 또 다른 과제가 생겼다. 사건팀 김도훈 선배가 새로운 취재 방법을 요구한 것이다. 평범한 취재로는 시청자가 관심 가지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가난’과 ‘노인’은 시청자들이 불편해하는 소재인데, 그 둘을 붙여놓았으니 맞는 말이었다. 당장 나부터도 뉴스에 관심이 생기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기획 아이디어를 찾아와야 했다. 특히 선배는 노인 빈곤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기획에 정성을 들이라고 강조했다.
그즈음 나는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세명대가 공동 진행하는 ‘기획탐사 디플로마’ 교육과정에 참여하고 있었다. 제정임·심석태·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에게 해당 취재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교수들은 폐지 수집 문제의 실체를 잡아낼 ‘증거’를 찾으라고 했다. 단순히 ‘가난해서 힘들다’ 보도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물성’을 확보하라는 말이었다. 그래야 보도에 힘이 생긴다고 했다. 어떤 물성을 이용해 폐지 수집 노동 실체를 잡아야 하나 고민했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GPS, 위치 추적이었다. <007> 같은 첩보 영화에서 차량 트렁크에 달아 위치를 추적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리어카에 GPS를 달면 사람들의 흥미가 생길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실태조사라는 취지에도 GPS가 적합했다. GPS가 노인들의 노동 시간과 이동 거리를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기록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GPS는 노동 실체를 오롯이 낚아챌 것이다.

‘GPS와 리어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이 선배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또 다른 난관이 있었다. <007> 영화에서 보던 고성능 GPS는 가격이 너무 비쌌던 것이다. 한 대당 백만 원은 기본이었다. 최소한 열 대의 GPS가 필요했는데, 제작비를 훌쩍 뛰어넘었다. 다시 취재 예산에 맞춰서 GPS를 찾아보니, 이번에는 성능이 문제였다. 반려동물 실종 방지용 GPS가 있었는데, 위치 좌표가 30분에 한 번씩 찍혔다.
결국 2주 동안, GPS 업체를 여러 번 거친 끝에 가격과 성능이 적당한 GPS를 찾을 수 있었다. 원래 미아 방지 목적으로 출시된 제품인데, 가격도 싸고 1분에 한 번씩 좌표가 찍혔다. 다만 배터리가 하루 정도만 유지돼 매일 배터리를 교체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도 GPS를 구해서 다행이었다. GPS 업체는 노인들의 누적 이동 거리를 계산하는 프로그램도 제공해줬다.
38분 뉴스에 20분짜리 다큐멘터리 방송
진짜 난관은 노인 섭외였다. 노인들이 한사코 취재를 거절한 것이다.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라며 거절은 기본, ‘언제 당신들이 우리한테 관심 가진 적 있느냐’는 물음에는 아무런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기자 명함을 드리니 곧장 리어카에 던지는 노인도 많았다. 연구도 의뢰하고, GPS까지 구했는데 노인 섭외가 되지 않았다.
제작진은 결국 고물상 주인들을 공략했다. 노인들과 친밀감 있는 고물상 주인을 통해서만 섭외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루에 자양강장제를 다섯 박스씩 사들고, 대구 시내 고물상을 무작정 돌아다녔다. 폐지가 많이 들어올 때는 폐지를 같이 옮기기도 했다.
서서히 고물상 주인들이 경계를 풀었다. 그제야 이번 취재 취지를 상세히 설명하고, 노인 섭외를 부탁했다. 주인들은 생계가 특히 어려운 노인들을 소개해주며, 취재에 참여하라고 설득해줬다. 그제야 노인들이 섭외에 응하기 시작했다. 물론 제작진은 사례비를 챙겨드리기로 했다.
그렇게 생계형 폐지 수집 노인 열 명이 모였다. 남성 일곱 명, 여성 세 명이었다. 나이대는 70대 노인 일곱 명, 80대 노인 세 명이었다. 폐지 수집을 한 지는 3년부터 20년까지 다양했다. 일을 시작한 계기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배우자가 일찍 세상을 떠났거나, 사업이 부도나서, 병원비 부담 등…. 어쨌든 오늘 당장 폐지 줍지 않으면, 내일 입에 풀칠을 못 할 정도로 가난한 건 마찬가지였다.

가난한 노인들은 자녀들에게 손 벌릴 수도 없었다. 노인들의 자녀들은 장애인이거나, 불치병에 걸렸거나, 사업이 실패했거나, 실종됐거나, 사망 등의 이유로 부모를 도와주지 못했다. 예상보다 노인들의 생활 환경은 더욱 열악했다. 글자로만 접하던 ‘노인 빈곤’ 문제를 이때부터 절실히 실감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들에게 각자 6일 동안 GPS를 목에 걸고 평소처럼 일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GPS를 활용한 폐지 수집 노동 실태조사가 처음으로 시작됐다. 어떤 내용이 나올지 궁금했다. 의미 있는 보도를 위해 열악한 노동환경이 있는 그대로 기록됐으면 좋겠다는 기대 아닌 기대를 하면서도, 우리의 예상이 빗나가기를 기원하기도 했다.
이번 보도를 기획하면서 우리는 또 다른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2분 분량의 리포트와 함께, 2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도 함께 제작하기로 한 것이다. 특히 다큐멘터리는 따로 편성 시간을 받지 않고, 7시 뉴스에 통째로 방송하기로 했다. 38분 뉴스에 2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방송하는 것이니 파격이었다.
보도국 국장과 취재, 영상부장 등 데스크들은 흔쾌히 공간을 만들어줬다. 그리고 기획 제작에 더욱 집중하라며, 데일리 리포트 제작까지 제외시켜 주었다. 기자 수가 부족한 지역총국 인력 상황에서 힘든 결정일 수밖에 없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허투루 제작할 수가 없게 됐다.

12시간 넘는 노동
평균 이동 거리 13km
2021년 12월 28일. GPS 데이터가 처음으로 찍혔다. 컴퓨터 모니터로 좌표를 확인해보니, 노인 네 명 중 세 명이 새벽 3시에서 5시 사이에 일을 시작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처음부터 예상을 벗어나는 노동 행태가 나타난 것이다.
하루 1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 13km의 평균 이동 거리는 그렇게 GPS 좌표로 나타났다. 촬영기자 백재민 선배는 노인 열 명을 일일이 따라다니며, 카메라로 폐지 수집 노동 현장을 가감 없이 담았다. 사전 취재를 할 수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촬영 분량은 거의 폐지 수집 노동 실시간과 비슷하게 길어졌다. 겨울 새벽 추위를 고스란히 느끼며, 이 힘든 일을 노인들이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특히 노동 대가를 계산하는 과정은 안타까움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매일 GPS 배터리를 교체하면서 노인들이 그날 벌어들인 폐짓값을 일일이 기록했다. 4명, 3명, 3명씩 모두 3주 차로 나눠서 GPS 취재를 이어갔는데, 하루 일한 시간에 벌어들인 폐짓값을 나눠, 평균 시급을 계산한 것이다. 시급 수준은 첫째 주에 1,200원에서 매주 점점 낮아졌다. 결국, 시급 1,000원대가 깨지고, 948원으로 내려왔다. 2022년 최저임금 9,160원의 10분의 1수준에 불과했다. 노인들의 노동환경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처참했다.
실상을 알아야 대책이 나온다. GPS 취재 결과가 나온 이상, 기초 자료 연구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연구진은 KBS가 전국 자치단체로부터 받은 노령층 기초 자료를 토대로 연구를 시작했다. 머신러닝을 통해 전국의 생계형 폐지 수집 노인 인구가 최초로 산출됐고, 이를 활용해 노인들이 폐지 재활용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는지 사회적 가치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본 연구 내용은 정부와 국회에서 정책을 만들 때 기초 자료로 쓰일 수 있다는 기대를 받게 됐다.
단순히 실태와 연구 결과 보도에만 그치면 의미 없었다. 국회의원에게 대책 마련을 부탁하기로 했다. 노인들의 생활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처참해져갔기 때문이다. 보도 이후, 그들의 관심을 마냥 기다릴 수가 없었다. 지난 3년 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회의록을 뒤졌다. 그리고 폐지 수집 노동의 열악한 환경을 지적한 의원 세 명을 찾았다. 이들은 정부를 상대로, 기초 자료와 정책 연구를 주문했다.
우리는 그들의 지적대로 연구 자료를 만들었다. 그래서 의원들에게 취재 내용과 연구 자료를 미리 제공했다. 의원들은 그 내용에 놀라워하며 폐지 수집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대책과 보호 방안 등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과정을 모두 뉴스에 담았다.
노인 돕겠다는 시청자 반응 이어져
마지막 과제가 있었다. 취재 내용을 더 많은 채널로 유통시키는 것이었다. 노인 빈곤에 대해 사회 전반의 심을 불러일으키려면 다양한 세대가 뉴스를 봐야 했다. 방송을 목적으로 만든 뉴스를 그 포맷 그대로 포털에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젊은 층이 흥미를 가지도록 내러티브 형식의 글 기사로 따로 만들었다.
또 2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유튜브로 따로 유통했다. 중장년층은 기존의 TV 뉴스로, 젊은 세대는 글 기사로, 이를 아우르는 시청자는 유튜브로 시선을 잡으려는 전략이었다. 물론 뉴스 제작에 두 배의 시간이 들었다. 다행히 취재진 기대대로 채널별로 각 세대의 편리에 따라 뉴스가 유통됐다. 방송기자라고 단순히 방송 뉴스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보도 이후 많은 반응이 잇따랐다. 솔직히 말해 취재진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전화와 메일을 통해 노인들을 직접 돕고 싶다는 연락이 이어졌다. 젊은 세대가 자주 이용하는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댓글이 달리는 것을 보고서는 보람도 느꼈다.
무엇보다 그동안 무관심하게 방치됐던 이들의 노동 가치를 사람들이 인식한 것이 다행스러웠다. 향후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만들 기반을 닦은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기자가 기획 단계에서부터 전문가와 협업을 통해 데이터를 새로 만들어도 좋다는 경험을 하게 됐다.
5월 말에는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서 KBS와 공동 연구 형식으로, 이번 연구 내용이 모두 포함된 보고서가 발간된다. 취재진은 이번 보도에 그치지 않고, 실제 빈곤 노인을 보호할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후속 보도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번 보도에 출연한 노인을 포함해 모든 노인이 좀 더 편안한 환경에서 여생을 보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