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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8주기를 맞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이에 대한 공인된 진실을 알지 못한다. 뉴스타파는 그간 취재 과정에서 수집한 기록을 토대로 <세월호, 사실과 기록>이라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방대한 데이터가 참사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도구로 정리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치열함과 답답함이 공존한 세월호 장기 탐사 취재
2015년 가을. 한 세월호 유가족과 만났습니다. 세월호 관련 모든 재판을 방청하고 모든 수사와 재판 기록을 등사해 읽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분의 자료들을 전달받았습니다. 전부 읽는 데 수개월이 걸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해경은 왜 수백 명을 구조하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세간의 의혹처럼 고의로 구하지 않은 게 아니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해경의 인적·물적 시스템과 능력으로는 대형 여객선 승객 구조가 불가능했습니다.
2017년 봄. 세월호 선체가 3년 만에 인양됐습니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이하 선조위)의 활동이 시작됐습니다. 선조위의 모든 공개 회의를 취재하고 비공식 경로로 각종 조사 자료들도 입수했습니다. 전문적 내용이 너무 많아 조선공학·항해학 개론서를 공부하며 자료들을 분석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세월호가 왜 쓰러졌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고의로 닻을 투하한 것도 잠수함이 들이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언제든 쓰러질 준비가 돼 있던 배에서 그 날은 조타장치가 고장나 버렸던 것이었습니다.
2019년 3월 28일 ‘세월호 DVR 바꿔치기 의혹’을 발표하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출처 - 필자 제공>
치열하게 취재한 내용을 토대로 수많은 보도를 내놨습니다. 하지만 유가족과 시민단체들은 여전히 세월호 침몰 원인이 ‘미궁’이라고 말했습니다. 닻 투하나 잠수함 충돌 사실을 박근혜 정부가 은폐했고, 해경의 ‘고의적 구조 방기’도 이와 관련됐다고 믿는 유가족도 많았습니다. 언론 보도도 유가족과 시민단체들의 인식에 의존해 이뤄졌습니다. 답답했습니다.
2019년 말. 세월호 2기 특별조사위원회로 불린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의 활동이 시작됐습니다. 사참위의 첫 언론 브리핑은 ‘DVR1) 바꿔치기 의혹’이었습니다. 발표 내용을 들으며 귀를 의심했습니다. 국가조사기구가 유튜버나 시민단체 수준의 음모론을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검증 없이 받아만 쓰는 언론 보도들을 보며 한숨이 나왔습니다.
사참위는 DVR 바꿔치기 의혹에 이어 임경빈 군 헬기 이송 지연 의혹, CCTV 영상 파일 조작 의혹, AIS2) 항적 데이터 조작 의혹을 잇달아 발표했습니다. 하나같이 상식에서 벗어난 비현실적 내용이었습니다. 사참위가 음모론적 관점을 벗어나 사실 중심의 조사로 전환하길, 언론이 무비판적 받아쓰기에서 벗어나 국가조사기구의 활동을 충실히 감시하고 비판하길 기대하며 최선을 다해 반론 검증 보도를 내놨습니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사참위 조사가 진행될수록 기존 의혹들이 해소되긴커녕 새로운 의혹들이 계속 덧붙여지고 있었습니다. 이대로라면 사회적으로 공인되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은 영원히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모든 데이터를 모든 이들과 공유하자
‘나 홀로 보도’만으로는 오랜 ‘의혹 프레임’에 함몰된 대중적 인식을 바꾸는 데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장기 탐사 취재 과정에서 입수해 공부한 모든 데이터로 ‘창고’를 짓자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내가 세월호 침몰 원인과 구조 실패 이유를 이해하는 토대가 된 데이터들이 다른 이들에게도 합리적 판단을 내릴 도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2020년 1월. 6년의 취재 동안 입수한 모든 데이터를 모아둔 개인 외장하드 8개를 열어봤습니다. 데이터 용량을 단순 합산해 보니 5TB가 넘었습니다. 세월호 침몰과 구조 실패에 관련된 데이터들만을 뽑아내 따로 정리했습니다. 1TB 수준으로 압축됐습니다.
데이터들의 형식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영상·이미지·음성·문서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이 데이터들을 가장 이해하기 쉬운 형식으로 구성해야 했습니다. 또 데이터들을 통해 확인된 중요한 사실관계들도 요약해 정리해야 했습니다. ‘시청각 타임라인’, ‘데이터 아카이브’, ‘의문과 팩트’라는 세 개의 카테고리는 이런 고민 끝에 정립됐습니다.
세월호의 마지막 17시간 10분… ‘시청각 타임라인’
무엇보다 8년 전 세월호의 ‘마지막 항해’ 동안 있었던 객관적 사실들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는 타임라인이 필요했습니다. 단원고 학생들이 인천항에 도착한 2014년 4월 15일 오후 5시 30분부터 세월호가 뱃머리 일부만 남기고 침몰한 4월 16일 오전 10시 40분까지 총 17시간 10분 구간 위에 영상과 음성, 문서 데이터들을 정렬하기로 했습니다.
영상 데이터는 인천항 항만 CCTV, 인천항 여객터미널 대합실 CCTV, 세월호 선내 CCTV, 세월호 화물칸 차량 7대의 블랙박스 복원 영상, 희생자와 생존자 72명의 휴대전화 포렌식 영상, 해경 등 구조 세력(123정, 헬기 511호·512호·513호·505호, CN235 초계기, 전남 어업지도선)의 촬영 영상, 사고 현장에 접근했던 민간 상선(두라에이스호, 드라곤에이스 11호)의 촬영 영상 파일이었습니다. 음성 데이터는 승객들의 119 및 122 신고 전화, 세월호와 인천·제주·진도 VTS3) 간의 VHF4) 교신, 해경 구조 세력의 TRS5)교신, 어업통신망 SSB6) 교신, 각급 해경 상황실(본청, 서해청, 목포서)의 경비전화, 해경·청와대 핫라인음성 파일이었고, 문서 데이터는 해경의 문자 상황 보고 시스템 내역과 세월호의 AIS 항적 원문 데이터였습니다. 모두 800GB에 달했습니다.
이 ‘로우데이터’들의 파일명은 대부분 ‘시간 정보’(예컨대 20140416_093030 형식)로 돼 있었습니다. 데이터가 기록되기 시작한 시간이 파일명으로 자동 생성된 것입니다. 하지만 휴대전화 촬영 영상과 사진들 외엔 시간 정보를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 각 데이터를 최초 기록한 장비들의 설정 시간에 따라 거기서 생성된 파일들의 시간 정보도 크고 작은 오차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단순한 사실들의 나열을 넘어 ‘맥락적 선후 관계’를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영상 데이터들의 ‘시간 동기화’를 위해 모든 영상 수십 번씩 돌려보며 같은 장면이 담긴 부분들을 찾아내 비교하며 일일이 시간 오차들을 보정했습니다. 교신 음성 파일의 경우, 검찰 수사 기록 속에 담긴 123정장과 해경 본청 사이의 휴대전화 사용 기록의 시간을 기준으로 놓고 다른 음성들의 시간을 하나씩 맞춰 갔습니다. 예컨대, 123정장과 해경 본청의 통화 도중 해경 본청 상황실에서 헬기 511호의 TRS 교신음이 가늘게 들리는 것을 포착해 TRS 음성 파일들의 실제 시각을 계산하는 식이었습니다. 진도 VTS 교신 음성 파일의 시간 오차는 세월호 AIS 데이터와의 비교를 통해 보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모든 교신 음성 파일들의 실제 녹음 시각을 초 단위까지 맞췄습니다.
시간 동기화를 마친 영상·이미지·음성·문서 데이터들을 시간 축 위에 배열했더니 세월호가 쓰러진 이후부터는 동일 시간대에 최대 10개 넘는 데이터들이 겹치는 구간이 존재했습니다. 이를 모두 한꺼번에 보고 듣게 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데이터의 형식별로 사람의 눈과 귀로 동시 식별 가능한 최대치를 설정해야 했습니다. 이에 따라 왼쪽에는 세월호 AIS 데이터를 시각화해 배치하고 오른쪽에는 영상 4개와 음성 1개가 동시 재생되는 화면을 구성했습니다.
4분할 화면 아래로 ‘데이터 소스 트랙’을 층층이 쌓았습니다. 하나의 화면 속에 담기지 못한 다른 출처의 영상과 이미지, 음성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사용자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데이터가 존재하는 ‘활성화 영역’을 클릭하면 4분할 화면 위에 1개의 소스를 동시간에 추가 재생시킬 수 있는 기능을 더해 사용자에게 선택권을 부여했습니다.
소스 트랙의 데이터 클릭 시 4분할 화면 위에 해당 데이터 추가 동시 재생<출처 - <세월호, 사실과 기록>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https://sewol-fact.newstapa.org/>;
‘데이터 아카이브’와 ‘의문과 팩트’
8년의 세월호 탐사 취재 과정에서 입수한 문서 자료들 가운데 일반에 공개가 가능한 것은 국가기관의 공식 기록물들이었습니다. 참사 이후 8년간 진상 규명 활동을 벌인 9개 조사·수사 기구의 기록물들 6,600여 건, 55GB 분량을 추렸습니다.
이 데이터들도 시간의 흐름을 따라 정렬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조사·수사 기구들의 활동 순서에 따라 △검경 합동수사본부 △국회 국정조사 특위 △감사원 △해양안전심판원 △세월호 참사특별조사위원회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검찰 세월호 특별수사단 △세월호 특별검사로 대분류 체계를 정했습니다. 각 기구가 생산한 기록물의 성격별로 다시 하위 분류 체계를 만들고 데이터들을 담았습니다.
모두가 수사·조사 기록물이기 때문에 주민등록번호 등 상당한 개인정보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차후 문제의 소지가 없도록 개인정보들을 꼼꼼하게 가리는 작업을 수개월 진행했습니다. 다만, 법정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세월호 선원과 청해진해운 임직원들, 그리고 관련 정부 기관 공무원들의 실명은 모두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의문과 팩트’ 카테고리 속에 뉴스타파가 지난 8년간 세월호 관련 다양한 사회적 의문과 논란들에 대해 엄밀한 팩트체크를 수행한 결과물을 Q&A 형식으로 정리했습니다. 사용자들에게 <세월호, 사실과 기록>에 담긴 기록물 데이터들이 실제로 어떻게 활용돼 어떤 결과물을 냈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세월호 진상 규명의 책무를 띈 사실상 마지막 국가조사기구인 사참위의 활동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지난 3년 반 동안 의혹의 해소보다는 확산의 기조로 조사를 진행해 온 후폭풍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 같습니다.
실제로 최근 AIS 조작, DVR 바꿔치기, CCTV 영상 조작이 있었다고 판단된다는 조사결과보고서는 내부 격론 끝에 가까스로 불채택됐습니다. 하지만 세월호가 외력(사실상 잠수함) 때문에 침몰했다고 판단한 보고서 두 건에 대해선 ‘외력 확인’도 ‘외력 기각’도 아닌 모호한 결론으로 채택됐습니다.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한 사회적 논란은 앞으로도 피하기 어려워진 겁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사실’에 대한 집중입니다. 사실들의 단순한 나열과 총합만으로 ‘진실’을 완성할 순 없겠지만, 그 어떤 진실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구성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사실과 기록>이 세월호의 진실을 갈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유용한 도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1) 디지털영상저장장치(Digital Video Recorder). 편집자 주
2) 선박자동식별장치(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 편집자 주
3) 해상교통관제(Vessel Traffic Service). 편집자 주
4) 초단파(Very High Frequency). 편집자 주
5) 주파수공용통신시스템(Trunked Radio System). 편집자 주
6) 단측파대전송(Single Side Band Transmission). 편집자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