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코로나19로 헌혈이 줄어 피가 모자란다는 소식을 언론에서 자주 다뤘다. 지금도 누군가는 헌혈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생사를 오가고 있지만 대중은 실감하지 못한다. 심각한 혈액난의 실상과 제도적 문제점을 집중 취재·보도한 한국일보 기획취재공모전 최우수상작 <K-구혈기> 취재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소설은 현대를 반영합니다. 피를 소재로 한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우리 시대에 리메이크한다면 《구혈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이유입니다. 대한적십자사도, 병원도 아닌 환자가 직접 피를 구하고 나선 시대기 때문입니다. <K-구혈기(求血記)>는 당장 치료나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헌혈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피를 못 구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환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쓴 기사입니다. 그 목소리는 절절했습니다.
지난해 5월 광화문 헌혈의집에는 빈 침대가 없었습니다. 헌혈하려면 한참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만큼 헌혈자로 가득했습니다. 언론 보도와 달랐습니다. 기사에서는 분명 헌혈자가 너무 적다고 했습니다. 혈액 보유량이 ‘주의’ 단계로까지 진입했다고 했습니다.
현장이 너무 의외여서 간호사를 붙잡고 물어봤습니다. 간호사는 박스째로 쌓아둔 지정헌혈 신청서를 보여줬습니다. 코로나19로 군대, 학교 등에서 단체 헌혈이 줄어 전체 혈액량이 줄어들면서 생긴 기현상이라고 했습니다. 단체 헌혈이 줄어든 대신 대한적십자사를 끼고 친구나 가족에게 직접 피를 전달하는 지정 헌혈이 활황이었습니다. 아는 사람 혹은 마음이 움직이는 사연을 쓴 사람에게만 피를 넘겨주는 모양새였습니다. 자기가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무조건으로 피를 내어주던 ‘일반 헌혈’의 시대가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 내 대학병원의 혈액은행을 무작정 찾았던 이유입니다. 일반 헌혈이 줄어들면서 일선 병원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알고 싶었습니다. 혈액은행 문 앞에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버젓이 적혔습니다. 기자도 아니고, 연구생도 아니고, 그냥 기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문을 두드렸습니다. 꼬깃한 수첩에 적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옷에 붙은 주머니 네 곳에 비상 휴대폰을 지닌 혈액은행 직원은 “코드블루 방송이 나올 때마다 줄 피가 없어서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혈액난이 눈앞에서 보였습니다.
현장이 상상을 자극했습니다. 아는 사람끼리만 피를 전해주는데, 전체 혈액량마저 부족하다면, 피를 달라고 부탁할 친구나 가족이 없는 환자는 어떻게 될까. 당장 병원에서 피를 받을 수 없고, 지정 헌혈자를 구해줄 보호자조차 없다면 어떻게 될까. 어딘가에서 애타게 피를 구하고 있을 환자와 그 보호자의 사정이 궁금해졌습니다. 구혈기의 주인공을 찾아나서기로 했습니다.
선행 보도와 차별되는 독창성
제3회 한국일보 기획취재공모전의 공고가 뜬 날, MBC저널리즘스쿨 동료들과 팀을 꾸렸습니다. 팀원들은 첫 발제 회의에서 각자 묵혀놓았던 필살기 아이템을 꺼내 들었습니다. 구혈기 아이템은 그중 하나였습니다. 시의성과 독창성이라는 기준으로 서로의 아이템을 평가했습니다. 일 년 동안 품고 있었던 기획안이었던 터라,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허점을 숨길 수는 없었습니다. 경쟁하듯 발제 회의를 거치면서 부족한 면들이 드러났습니다.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었습니다. 혈액 부족이 시의성이 높은 의제다 보니, 다른 언론이 먼저 보도한 부분이 많지 않느냐는 이야기였습니다.
부정적인 피드백에 더 마음이 쓰이는 편입니다. 독창성이 이 기획 기사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첫 회의 때부터 마지막 제출 날까지 선행 보도를 매일같이 들여다봤습니다. ‘혈액난’, ‘혈액부족난’, ‘헌혈’, ‘지정헌혈’ 등 몇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기사를 검색했습니다.
비슷한 소재와 시각으로 쓴 기사가 나올 때마다 아찔했습니다. 기존 보도보다 한 걸음만 더 나가보자고 목표를 세웠습니다. 아직 언론과 닿지 않은 취재원, 전문가를 찾으려고 노력했던 이유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찾으면 새로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땀 흘린 만큼 결과물이 좋아졌습니다.
궁지에 몰린 취재
사람을 찾는 취재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병원 문 앞부터 막혔습니다. 무연고 환자가 입원한 병원을 겨우 찾아서 병원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는 10초 만에 끊겼고, 환자를 돌보고 생업을 이어 나가느라 바쁜 환자 보호자와 만남은 여러 차례 불발됐습니다.
무작정 병원 앞에서 뻗쳐볼까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미크론 확진자가 수십만씩 쏟아지던 때라, 병원에 가는 일 자체가 무척 조심스러웠습니다. 코로나19로 의료 시설에 외부인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탓입니다. 팀원 중 하나는 취재를 하던 중 코로나19에 확진되기도 했습니다. 변변한 소속조차 없던 저희가 명함을 내밀만한 명분도 장소도 없었습니다.
이렇듯 현장에서 시작했던 취재였지만, 막상 현장을 찾자 문턱이 높았습니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눈을 돌린 곳은 ‘온라인’이었습니다. 이식편대숙주병이라는 부작용 때문에 가족 간의 수혈이 불가능한 탓에, 환자를 콕 집어 지정 헌혈해달라는 호소문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혈액형만 맞는다면 완벽한 타인인 헌혈자를 구하기 제격인 셈입니다. 저희는 네이버 카페부터 각종 SNS, ‘중고나라’와 ‘당근마켓’까지 온라인 채널을 모두 출입처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온라인 출입처를 손으로 뛰며, 환자들의 사연과 연락처를 전방위로 모았습니다.
300명도 넘는 환자들에게 연락을 남겼지만, 돌아온 답은 9건에 불과했습니다. 당장 생명을 두고 분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일면식도 없는 저희와 선뜻 시간을 내 인터뷰를 하기란 쉽지 않았던 탓입니다. “취지는 알겠지만 여력이 되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오기 일쑤였습니다. 인터뷰에 응하는 ‘가뭄의 단비’와 같은 환자를 만나면 곧장 달려갔습니다. 특히 수혈 1순위인 임산부조차 출산 과정에서 수혈받을 피가 없어 문제가 된 경우를 취재하기 위해 KTX에 몸을 싣기도 했습니다. 올봄 최고기온을 찍었던 무더운 날, 마땅한 장소조차 없어 경주역 앞 벤치에서 직사광선을 내리 맞으며 인터뷰를 했습니다.
흩어져 있는 단서를 하나씩 이어가며 현장에 다가갔습니다. 특히 임산부의 경우 맘카페나 블로그를 통해 만삭의 몸으로 지정 헌혈에 대비하던 경험을 공유하곤 했습니다. 또 온라인 채널의 특성상 블로그와 개인 SNS를 연동해두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지정 헌혈 후기를 찾고, 이를 통해 SNS를 찾아 메시지를 드렸습니다. 온라인 특유의 채널 간 연결성이 톡톡히 도움이 된 순간이었습니다.
오픈채팅방에 모여 있는 전국의 헌혈자들은 일종의 특파원이었습니다. 저희는 취재 내내 ‘세상을 바꾸는 헌혈자들’이라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상주하며 500명이 넘는 헌혈자와 수혈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대화 하나하나가 모두 현장이었습니다. 도저히 취재원을 구하기 어려웠던 상황에 직접 글을 올려 취재원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전국 헌혈의집의 기념품 현황을 확인하기 위해서, 헌혈하고 받은 기념품 사진을 직접 제보받기도 했습니다.
치밀한 검증으로 높인 기사의 밀도
취재하며 만난 한 활동가는 “헌혈자에게 현금성 기념품을 주는 것은 일시적인 대책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현금성 대가의 가치를 낮게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유독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헌혈 인구가 10·20대에 치우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헌혈의집에서 만난 젊은 헌혈자들도 군 가산점이나 상품권을 받기 위해 어쩌다 한번 헌혈한다고 했습니다. 현장을 곱씹을수록 정부의 헌혈 정책이 헌혈자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엔 어딘가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정부의 문제를 제대로 꼬집기 위해 치밀하게 검증하고 확인했습니다. 현장의 목소리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자료가 뒷받침돼야 했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대한적십자사가 현금성 기념품에 의존했는지, 했다면 얼마나 했는지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문득 공공기관의 모든 입찰 정보는 나라장터 사이트를 통해 공개된다는 사실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나라장터에 등록된 ‘헌혈자 기념품’ 입찰공고를 모두 취합했습니다. 공고에 담긴 시기, 예산액, 수량, 품목 등 정보를 손수 데이터베이스화해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대한적십자사는 매혈 비판으로 멈췄던 문화상품권 지급을 2019년부터 다시 시작했고, 팬데믹 기간에는 그 규모를 8배 이상 늘려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기준을 위한 기준도 챙겼습니다. 현금성 기념품 지급을 확대한 게 잘못임을 짚기 위해서는 명확한 상위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적십자사의 규정을 모두 찾아 읽으며 국제 표준을 확인했습니다. 국제적십자사는 자발적이고 보상 없는 헌혈(VNRBD)을 핵심 원칙으로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현금성 기념품 확대는 이에 배치되는, 원칙에 벗어난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따로 또 같이, 협업 중시된 기획취재
“너한테는 그 취재원이 정말 중요하구나?”
기사에 들어갈 케이스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팀원마다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취재원이 달랐습니다. 환자, 의료진 등 많은 취재원을 만나야 했기 때문에 때로는 혼자, 때로는 두 명이 팀을 이뤄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각개전투식으로 취재하고 온 후에는 서로 내용을 공유하고 어떤 식으로 기사에 녹여낼지 의논했습니다.
하루는 새벽 4시 넘어서도 회의가 이어졌습니다. 화상 회의 화면에 비치는 팀원들의 얼굴은 지쳐 보였지만 누구도 적당히 어중간하게 타협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팀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기사 개요가 나올 때까지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각자 원하는 리드가 다른 것 같다.”
하품 릴레이가 이어지고 침대에 누워서 회의하기에 이르렀을 때쯤 한 팀원이 무한 회의가 이어지는 상황에 대해 명쾌한 원인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우리가 기사의 무게중심을 다르게 두고 있는 가장 큰 이유를 깨닫게 됐습니다. 다른 팀원이 만나고 온 취재원보다 본인이 직접 만난 취재원의 사연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다 보니 그들에게 가장 큰 비중을 두게 됐고 그 결과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취재원이 전부 달랐던 것입니다.
무의식적으로 이뤄졌던 부분까지도 함께 짚고 나니 어떤 지점에서 의견이 계속 어긋났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본인이 직접 만났든 만나지 않았든 지금껏 우리가 만난 취재원들을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기사의 핵심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이야기를 골라 나갔습니다.
맡은 바 충실히, 맡겼다면 존중을
본격적으로 기사를 작성하면서 역할을 더 확실히 분담했습니다. 네 명의 팀원이 데이터 분석·인터뷰·초고 작성·데스킹 등 각자 전담할 역할을 정했습니다.
특히 데스킹을 맡은 팀원은 취재를 직접 다녀온 팀원이 쓴 초고를 보다 객관적이고 담백하게 검토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제삼자의 시선으로 글을 읽었기에 아무리 어렵게 취재한 이야기더라도 기사에 불필요하다고 판단된 케이스는 과감하게 삭제할 수 있었습니다. 잔가지를 쳐내듯 글을 완성하면서 100을 취재했다면 기사 내용에는 30만 담긴 글이 좋은 기사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이를테면 두 번째 기사 <인맥왕은 ‘쉽게’ 무연고는 ‘어렵게’...격차 만드는 지정헌혈>처럼 여러 사연이 담긴 글의 경우, 초고를 작성한 팀원을 제외한 나머지 팀원들이 취재된 내용을 기사에 넘치지 않게 담아내고 핵심만 살릴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기사가 단순 사연 나열로 빠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취재 다녀온 팀원과 초고를 쓴 팀원은 디테일을 챙겼습니다. 특히 이번 취재는 의료 취재이기 때문에 수혈이 어려운 환자들의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하려면 수혈 기준이 되는 환자의 헤모글로빈(Hb) 수치나 지금까지 이뤄진 수술 횟수 혹은 출산 당시 수혈받았던 혈액량 등 세세한 취재가 필수적이었습니다. 취재원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할 때는 기사에 필요할 것이라 예상한 핵심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취재원의 이야기를 A부터 Z까지 듣고 기록했습니다. 자세한 메모를 바탕으로 초고를 작성했기 때문에 훨씬 풍부하고 설득력 있는 장면 묘사가 가능했습니다.
역할을 철저히 분담했기에 각자가 전담한 영역에 있어서 담당자의 의견과 판단을 중시했습니다. 그 내용만큼은 담당했던 팀원이 가장 잘 이해하고 있으리라 서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글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각 기사의 초고를 쓴 팀원이 생각한 기사의 핵심을 놓치지 않으려 계속해서 서로 물어보고 답하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서로의 역할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상호 피드백을 주고받았기에 팀원 간의 활발한 의사소통의 결과물이 기사에 그대로 잘 반영될 수 있었습니다. 초고를 쓴 팀원들이 데스킹을 하는 팀원의 제언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데이터 분석을 하는 팀원이 같은 데이터 값을 두고도 더 유의미한 해석을 추출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팀원 간에 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뤄졌기에 가능했던 결과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