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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7일 새벽, 경남 진주시 가좌동 한 주공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범인은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뒤 흉기를 들고나와 비상계단으로 대피하는 주민들을 공격했다. 이 사고로 5명이 목숨을 잃었고, 1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진주 방화 살인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을 기록한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의 취재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2019년 4월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발생한 ‘진주 방화 살인 사건’ 이후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웅덩이: 1068일의 기록>(이하 <웅덩이>)은 2020년 창간 100주년을 맞아 출범한 히어로콘텐츠팀 4기의 결과물입니다.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길 꺼렸던 진주 방화 살인 사건 생존자이자 유가족이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는 기획이었습니다. 이들의 고백이 있었기에 잊혀질 수도 있었던 사건에 여론이 다시 관심을 갖게 됐고, 이를 바탕으로 정신질환자 관리 제도의 허점에 대한 지적까지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웅덩이>의 주인공인 금세은 씨, 그의 오빠 금민수(가명) 씨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진주 방화 살인 사건이 발생한 2019년 4월 17일입니다. 당시 조현병을 앓던 안인득에 의해 진주가좌주공아파트 주민 5명이 죽고 17명이 중경상을 입은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금세은 씨는 함께 살던 엄마, 그리고 조카를 잃었습니다. 금민수 씨는 엄마와 딸을 잃었습니다. 당시 금세은 씨, 금민수 씨를 비롯해 사건 생존자이자 유가족들을 아파트, 병원 등에서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건 발생 한 달 뒤, 다시 현장을 찾았습니다. 살아남은 이들은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파트 주민들은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때 금세은 씨도 다시 만났습니다. 금세은 씨의 상태는 악화돼있었습니다. 가족이 눈앞에서 죽어가던 모습이 잊히지 않아 환청과 환시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진주 방화 살인 사건이 생존자에게 남긴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것을 예감했습니다.
이후에도 금세은 씨와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던 중 지난해 9월 금세은 씨와 금민수 씨가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도움으로 국가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조현병 환자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국가에 사건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조현병 환자에 의한 강력범죄 사건을 막기 위해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히어로콘텐츠팀 4기 역시 이 논지에 공감했습니다. 2018년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교수가 담당 조현병 환자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부터 진주 방화 살인 사건, 지난해 남양주에서 발생한 조현병 환자의 존속 살해 사건 등 정신질환자에 의한 강력범죄는 끊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송 소식을 알게 된 뒤 진주를 찾아 금세은 씨를 만났습니다. 금세은 씨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의 트라우마가 더욱 심해졌음을 알았습니다. 소송을 준비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면서 금세은 씨는 자신의 가족이 이사를 갔고, 모두 개명을 하는 등 과거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여전히 발목이 잡혀있다고 호소했습니다. 불면증과 해리성 기억장애, 공황장애, 두통, 전신경련 등을 겪고 있었고, 금세은 씨와 오빠 모두 직업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금세은 씨의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인득은 2020년 10월 심신미약이 인정돼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이후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혔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사건 직후에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이들에게 덮친 비극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 짚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금세은 씨와 금민수 씨에게 그동안 겪었던 고통, 국가 소송에 나서게 된 과정을 들려달라고 설득했습니다. 한 달 뒤인 10월, 금세은 씨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취재에 응하겠다는 연락이었습니다.
“고통의 전시는 하지 않겠다”는 약속
취재는 크게 피해자들의 삶과 제도적 허점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됐습니다. 둘 중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된다는 데 팀원들은 뜻을 같이 했습니다. 황폐해진 피해자들의 삶만을 조명하는 것은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어떤 제도적 개선이 이뤄져야 하는지 반드시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대로 제도적 보완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들의 고통이 생생하게 독자들에게 전달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통에 대한 증언과, 제도 개선의 필요성. 두 가지는 상호 보완적인 요소였기에 두 부분을 모두 취재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기사의 주인공은 금세은 씨, 금민수 씨 가족으로 정했습니다. 진주 방화 살인 사건의 모든 피해자, 유가족을 취재하는 방법도 고민했으나 가장 큰 고통 속에 살고 있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송에 직접 나선 금 씨 남매의 이야기에 오롯이 집중하는 것이 이야기의 설득력을 높일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5명의 사망자 중 두 명이 금 씨 남매의 가족이었습니다. 국가 소송에 나선 것도 금 씨 남매였습니다.
강력범죄 피해자의 마음을 얻는 과정
주인공을 정한 뒤 가장 어려웠던 건 이들과 신뢰 관계를 쌓는 것이었습니다. 금 씨 남매는 취재에 응하기로 한 지난해 10월 이후에도 여러 차례 인터뷰 동의를 번복했습니다. 당시 상황, 이후 겪은 트라우마를 증언하는 과정 자체가 고통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는 말도 자주 했습니다. 보도로 여론이 모아진다 해도 이미 죽은 가족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의미였습니다. 이들에게 단순히 고통만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비극이 발생한 이유와 개선 방안을 반드시 지적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천천히 취재하겠다는 점도 약속했습니다. 직접 진주를 찾아 이 두 가지를 반복해 설명하자 금 씨 남매도 서서히 마음을 열어 주었습니다.
취재팀은 9~12월 총 4개월 동안 6번 진주를 방문해 오전부터 밤 10시가 넘어서까지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금세은 씨의 직장, 집, 자주 가는 카페, 진료를 받는 경상대병원, 사건이 발생했던 진주가좌주공아파트를 함께 찾았습니다. 직장을 잃어 삼겹살집을 차린 금민수 씨의 경우, 식당을 찾아가 함께 식사를 하며 신뢰를 쌓았습니다.
피해자의 삶과 트라우마 취재에서 본인 취재는 물론 이들과 가까운 지인들을 통한 증언을 듣는 것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더욱 객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를 위해 사건 직후부터 금세은 씨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친구와 주치의를 진주에서 직접 만났습니다. 주치의인 김병조 경상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년 반 동안 금세은 씨의 상태가 더욱 악화됐으며, 트라우마가 크기에 앞으로도 상태 호전을 약속할 수 없다는 이야길 해줬습니다.
비극의 원인을 짚는 과정
제도 문제 지적에 있어서는 사건 발생에 국가의 책임이 있다는 이들 소송의 요지가 맞는지 검증하기 위해 안인득에 대한 경찰의 대응이 적합했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취재원을 통해 경찰이 사건 발생 후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발표한 자료, 그리고 금 씨 남매의 국가 소송 소장을 확보했습니다. 해당 자료에는 안인득에 대한 신고가 사건 2달여 전부터 지속됐으나 경찰이 행정입원, 응급입원 등 필요한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취재팀은 한 걸음 더 들어가 경찰이 왜 안인득에대해 병원 이송 후 진단, 외래치료, 비자의 입원 등과 같은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지속적으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을 주장해 온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금 씨 남매 소송 대리를 맡은 법률사무소 법과치유의 오지원 변호사를 직접 만나 2017년 비자의 입원을 더욱 까다롭게 만든 법 개정의 문제점을 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안인득처럼 보호자가 없는 경우 비자의 입원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인권침해 소지로 인해 경찰이나 지방자치단체도 적극적 개입이 어렵다는 사실을 파악했습니다.
정신질환자의 비자의 입원에 대한 균형적 보도가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자칫 정신질환자의 인권 침해를 정당화하는 논지로 비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내 최대 정신장애인 인권단체 ‘파도손’ 측에 연락을 취했습니다. 처음 진주 방화 살인 사건 피해자들을 취재한다는 취지를 듣고 답변을 꺼렸으나, 정신질환자 본인의 입장도 있어야 사회가 합의점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득을 거쳐 박환갑 사무국장과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안인득처럼 장기간 방치돼 정신질환이 심각한 상태의 경우 비자의 입원이 필요하나, 비자의 입원 과정과 치료에서의 인권침해가 사라져야 하며, 지역사회에서 미리 정신질환자를 인지해 외래치료를 받도록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동아일보만이 할 수 있었던 기획
기존 국내 언론이 시도한 적 없는 ‘일러스트 구현’도 <웅덩이> 기획이 갖는 차별점입니다. 히어로콘텐츠팀이 취재한 내용은 동아일보 ‘디 오리지널’ 홈페이지1)에 별도로 올라갑니다. 디 오리지널용 콘텐츠는 각종 동영상과 일러스트, 인터랙티브 기술을 동원한 디지털 최적화 콘텐츠를 지향합니다. <웅덩이>의 디 오리지널용 콘텐츠는 모두 일러스트로 구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참혹했던 사건 현장의 사진을 사용하기 어렵고, 독자들이 온전히 이들의 이야기에 몰입해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했습니다. 취재 초기부터 취재팀과 협업한 웹페이지 개발자들은 사건 현장 사진, 피해자가 제공한 과거 사진, 취재팀이 촬영한 사진 등을 종합적으로 참고해 기사를 40여 개의 장면으로 나누어 일러스트로 구현했습니다. 이를 통해 사건 당일 피해자가 목격했던 현장을 재구성하고, 현재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삶을 몰입감 있게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금세은 씨, 금민수 씨와 이들의 소송을 대리한 법률사무소 법과치유,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해 10월 26일 진주 방화 살인 사건에 대한 국가 소송을 진행한다는 내용의 온라인 기자회견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해당 내용은 지역 언론을 비롯해 종합일간지, 통신 등 온라인 기사로 다뤄졌습니다. 이후 여러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이 있었으나, 언론 대응을 담당했던 법과치유의 오지원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언론과 여러 차례 인터뷰할 경우 당시의 회상 등으로 트라우마가 가중될 것을 우려했고, 금 씨 남매도 이를 원치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오지원 변호사만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히어로콘텐츠팀은 9월 진주에 직접 방문해 금 씨 남매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송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고, 인터뷰 동의도 받아 둔 이후였습니다. 그 덕분에 어떤 언론도 듣지 못했던 금 씨 남매의 목소리를, 직접 이들을 만나 들을 수 있었습니다. <웅덩이> 콘텐츠는 취재 기자가 금 씨 남매와 사건 직후부터 알고 지내며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했고, 오랜 기간 설득을 거친 끝에 장기간에 걸친 대면 인터뷰를 허락받은, 동아일보만이 할 수 있었던 기획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 https://original.donga.com/2022/jinj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