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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사태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지만, 사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산업은 태동 이후 무수한 사건·사고가 이어졌다. 역설적이게도 이 산업은 그러한 사건·사고를 토대로 발전해 왔다. 루나 사태를 통해 점검하고 확인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편집자 주
루나 사태가 발생하고 2개월이 지났지만 시장은 아직 루나 사태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다. 루나 사태를 시발로 루나-UST1)와 연결돼 있던 여러 디파이2) 서비스들에서 가격 폭락이나 청산이 있었다. 몇 개의 대형 서비스들은 연쇄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루나 사태로 인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당시 하락한 비트코인 가격은 아직 루나 사태 이전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사고 직전 기준 테라 시총이 약 37조 원(약 300억 달러), UST 시총이 약 23조 원(약 190억 달러)으로 약 60조 원 규모의 경제 시장이 통째로 사라졌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도 시장은 다소 진정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트코인도 한 달 가까이 횡보하고 있고, 디파이 서비스들의 연쇄 청산도 어느 정도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사실 이 산업에서 사건·사고는 낯선 이벤트가 아니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산업이 처음 태동한 이후 13년간 무수한 사건들이 있었다. 마운트곡스 해킹 사건, 이더리움의 DAO 해킹 사건, 비트코인 하드포크 사건, 플래시론 공격을 비롯한 여러 디파이 해킹 사건, 웜홀과 로닌 브릿지 해킹 사건 등이 있었다. 그중 루나 사태는 가장 큰 규모의 사건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블록체인 산업은 끊임없는 사건·사고를 통해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사건과 사고가 발생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수의 제안과 그 제안에 기반한 기술 프로젝트들이 발의되고, 어느 시점에는 그러한 사건과 사고를 방지하거나 회피하는 방안들, 기술들을 고안해 낸다. 그 대응 주기가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수년이 걸리기 때문에 무척 느리거나 또는 아예 대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루나 사태를 통해 우리가 점검하고 확인해야 할 사항들은 무엇일까? 필자는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루나 사태를 반추한다.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 코인
가장 먼저, 루나 사태는 ‘알고리즘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이 지속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검증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은 기본적으로 시장이 알고리즘으로 대응 가능한 범위 이내에서 변동할 때나 작동 가능한 모델이다. 그러나 ‘시장은 알고리즘을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암호화폐 산업의 과격한 변동성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2022년 5월 11일부터 23일까지 약 2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비트코인은 약 56,704달러(약 7,400만 원)에서 34,770달러(약 4,600만 원)로 약 39% 하락했다. 같은 기간 이더리움은 약 50%, BNB 코인은 약 62% 하락했다. 종종 비트코인이 하루에 20% 떨어지는 일도 있다. 암호화폐 산업에서 이 정도의 변동성은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이렇듯 과격한 변동성에 알고리즘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시장에는 구조적·기술적 허점을 전문적으로 파고들어 공격할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범죄 세력, 공매도 세력, 시세 조작 세력이 항시 대기중이다. 따라서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 코인의 가격이 심각하게 흔들리는 시점은 언젠가는 반드시 도래하고 만다. 그 흔들림이 임계점을 넘으면 ‘죽음의 나선(Death Spiral)’에 진입하고, 그것으로 끝이다. 지금껏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 코인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용 가치보다 경제 규모 확장에 집중했던 한계
두 번째, 테라팀은 스테이블 코인인 UST의 사용가치(Utility)를 확보하려는 노력보다는 ‘금융’ 로직을 만드는 데 압도적으로 의존했다. 애초 스테이블 코인이 탄생하게 된 이유는 일반적인 암호화폐들의 변동성이 지극히 높아서 현실적인 거래 수단으로 사용하기 부적합했기 때문이다. 즉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그리고 더 나아가 국경을 넘나드는 경제적 교류의 장에서 일정량의 가치를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거의 변동 없이 주고받기 위해 등장한 것이 스테이블 코인이다. 따라서 대표적 스테이블 코인인 USDC와 USDT 등은 법정화폐 대비 일정한 가치를 유지하는 거래수단으로서 Utility적 성격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런데 테라팀은 ‘앵커 프로토콜(Anchor Protocol)’3)을 구축하고, UST가 담보대출의 기축통화로 사용되도록 만들었다. 테라팀은 UST 그 자체의 유틸리티적 가치를 확장하기보다는 테라 생태계의 금융적 가치를 증대시키는 일종의 레버리지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물론 그 자체가 문제라고 보는 것은 과도할 것이다. 자산 가치가 형성된 곳에서는 항상 금융 행위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흔들리는 자산 가치 위에 과도한 금융 로직을 적용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 번째 이슈로 이어진다.
세 번째, 테라팀이 금융 활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든 앵커 프로토콜은 19.5%라는 파격적인 이자를 제공함으로써 시장의 자금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관론자들의 비판대로 연이율 19.5%는 사실상 불가능한 약속이었고, 이자 지급을 위한 준비금은 빠르게 소진됐다. 앵커 프로토콜에 예치되는 자금이 많아질수록 이자 준비금은 더 빨리 소진됐다. 테라팀은 부족한 이자 준비금을 만들기 위해 2022년 2월, 루나파운데이션가드(LFG)를 만들고 이를 통해 약 6,000억 원(4억 5,000만 달러)을 이자 준비금으로 투입하기도 했다.
여기에 UST를 담보로 넣고 UST를 빌린 사람들은 이를 담보로 넣어 또다시 UST를 빌리는 행위를 반복했다. 100UST를 넣으면 60UST를 빌릴 수 있었고, 이를 다시 담보로 넣으면 36UST를 추가로 빌릴 수 있었다. 이렇게 담보 넣고 대출받는 과정을 세 번만 반복해도 이미 원금을 초과하는 대출이 가능해진다. 이와 같은 앵커 프로토콜의 구조는 비트코인의 급격한 하락 등 시장이 요동치는 경우 언제든지 가격 하락이 추가 하락을 유도하는 죽음의 나선에 빠지도록 만드는 시한폭탄이었다.
앵커 프로토콜과 함께 테라의 양대 비즈니스 축이라 할 수 있는 ‘미러 프로토콜(Mirror Protocol)’4)은 그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언제든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증권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거나 법적인 조치를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있었다. 실제로 루나 사태가 한창 진행 중이던 6월 12일 미국 법원은 SEC의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소환을 합법으로 인정하는 두 번째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위 문제를 종합해보면, 테라팀은 스테이블 코인으로 거래수단으로서의 사용성을 확장하면서 메인넷(mainnet)의 영향력을 키우기보다는 금융게임을 통해 경제 규모를 뻥튀기하는 전략에 ‘몰빵(집중 투자)’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은 결국 파국을 맞았다.
메인넷으로서 가치 부족했던 테라
네 번째, ‘메인넷의 중립성’ 문제를 논의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테라 메인넷에 올라탄 서비스들은 테라 메인넷의 경제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모두 피난민이 되고 말았다. 통상 메인넷이 기술 이슈로 멈추거나 서비스 장애가 발생하는 사례는 드물지 않게 있어왔지만, 메인넷의 경제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메인넷 작동까지 중단되는 사례는 일찍이 존재하지 않았다. 테라 메인넷이 붕괴된 근본적인 원인은 테라라는 메인넷이 응용서비스 중 하나인 스테이블 코인 UST와 분리 불가능하게 결합돼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테라 메인넷에 올라탄 dApp5) 서비스들은 실상 루나 또는 UST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UST의 붕괴 사태로부터 파괴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메인넷은 타 프로젝트들에게 블록체인 기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인프라 성격의 플랫폼을 제공하는 비즈니스다. 메인넷은 일종의 서비스고, 다른 무엇보다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루나 사태는 메인넷이 지켜야 할 가이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메인넷의 기술적 가치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메인넷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요소는 다양하다. 메인넷이 미래에도 기술적으로 의미있게 존재하도록 만드는 기술 가치, 메인넷 위에서 작동하는 어떤 비즈니스 모델들 즉 dApp 서비스들이 만들어내는 사용 가치, 생태계의 규모가 만들어내는 금융 가치, 메인넷을 리드하는 팀에 대한 신뢰 또는 인지도가 만들어내는 신뢰 가치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중 기술가치는 메인넷의 기반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다. 메인넷은 블록체인 산업과 응용 서비스들을 가능케 하는 기반 기술이다. 따라서 메인넷 영역에서는 미래 블록체인 산업의 기술 주도권을 두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최신 전산학과 암호학, 프로토콜 설계 능력과 구현 능력 그리고 네트워크 운영 능력 등이 종합된 기술 혁신의 전쟁터다. 그래서 어떤 메인넷 기술이 실제로 문제없이 작동하고, 여기에 비즈니스적 가치를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면 시장에서 최소 수천 억에서 수조 원까지 가치를 인정받는다.
테라 정도의 경제 규모를 실제로 작동시킨 원천기술이라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기술이다. 만약 테라팀이 자체적인 기술을 보유했다면 테라 2.0은 최소한의 기술가치를 갖고 시작할 수 있었고, 시간을 두고 신뢰를 회복할 가능성도 훨씬 높았을 것이다. 급격한 하락으로 메인넷의 가치가 일시적으로 0에 수렴할 수는 있어도 그 이후에는 어느 정도 저점에서 바닥을 실험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실상 테라는 코스모스 SDK로 만든 블록체인이다. 즉 자기만의 원천기술이 없다. 따라서 사용 가치, 금융 가치 그리고 신뢰가 무너질 경우 테라 메인넷의 가치는 0에 수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로 나타났다.
블록체인 산업의 짧은 역사를 되돌아보면, 기반이 단단하지 못한 프로젝트들은 2021년 5월의 폭락과 같은 시기, 2022년 6월의 폭락과 같은 시기에 추락하거나 파산했다. 2022년 6월이 아니더라도, 그 시간은 언젠가는 온다. 크립토 산업은 그 수많은 사건·사고와 거품과 폭락을 반복하는 와중에 기술적 지반이 허약하거나, 합리적인 경제구조를 벗어나 있거나, 사기성 짙은 프로젝트들을 주기적으로 청산해왔다. 이와 같은 과격한 방식으로 산업의 건전성과 지속성을 확보해 왔다. 기존의 규제기관이 마땅한 역할을 못 하는 영역이기에, 더더욱 과격하고 파괴적인 방식으로 자정작용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루나 사태는 메인넷과 메인넷의 금융활동이 과연 어디까지 가능한지, 어떠한 것을 하면 되고 어떠한 것을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블록체인 산업은 끊임없는 사건과 사고를 딛고 발전해 왔다. 블록체인 산업이 비슷한 오류를 반복하지 않고,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해 본다.
1) 테라USD(UST), 1달러에 고정(페깅)된 테라, 편집자 주
2) 디파이·Defi(탈중앙화금융), 편집자 주
3) 테라를 예금하면 이자를 주고, 다른 암호화폐를 담보로 테라를 대출하는 서비스. 편집자 주
4) 테라 기반 합성자산 플랫폼, 편집자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