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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MZ세대에게 뉴스란 무엇인가] MZ세대의 이야기② 나는 왜 뉴스에 관심이 없는가
커버스토리 | 등록일 : 2022-07-29

MZ세대가 다른 세대에 비해 전통 매체의 뉴스에 관심이 덜하다는 것은 다양한 조사 결과로 알 수 있다. 과연 그들은 뉴스와 멀어졌을까? 멀어졌다면 왜 멀어졌을까. 고교 시절까지 뉴스를 애독하다 지금은 더 이상 뉴스를 보지 않는다는 대학생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편집자 주

 

그런 시절이 있었다. 저녁을 먹고 9시가 되면 가족이 TV 앞에 모여 앉아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유심히 지켜보던 시절이. TV를 통해 쏟아지는 세상의 사건·사고들은 어린 내가 이해하기에 버겁거나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세상에 꼭 전해야 하는 일들을 널리 알리겠다는 PD라는 장래 희망을 갖게 하기에는 충분했던 것 같다.

 

뉴스를 통해 접하는 정보들을 통해 나는 환호했고, 또 동시에 분노했다. 중학생 땐 9시만 되면 TV 앞에 앉아 뉴스를 챙겨볼 때마다 사회를 더 가까이 이해하고 있다는 우쭐함에 빠지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됐을 때, PD라는 꿈의 모습은 이리저리 모습이 바뀌었지만 3년간 CA(Club Activity) 활동으로 신문부를 선택했고, 바쁜 고등학교 생활에도 신문과 뉴스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거창한 이유나 소명은 없었다. 그 당시 세상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뉴스와 신문은 당연히 봐야 하는 것일 뿐이었으니까.


뉴스는 공정할 수 있을까?

 

2016년,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 정국이 시작되기 전, 대통령에 대한 의혹이 터져 나오는 상황 속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뉴스를 보다 문득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물론 소위 말하는 종편 방송사들의 성향, 혹은 진보 언론과 보수 언론의 기 싸움 따위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다고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사건에 대해 각기 너무나 다른 주장을 목놓아 외치는 언론사들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나 누구보다 공정하고 명확해야 할 공영방송이 범람하는 의혹 속에서 줄을 타듯 갈팡질팡하는 모습은 꽤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성향에 따라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서로 다른 관점이라는 미명하에 하나의 사건을 서로 다르게 묘사해 보도한다면 과연 뉴스와 신문의 역할을 다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더욱이 국민의 알 권리를 책임진다던 공영방송이라면? 불행인지 다행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분노에 찬 사람들이 광화문으로 쏟아져 나오고 연이어 시위와 탄핵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며 석연찮았던 기사와 뉴스 꼭지들은 눈에 띄지 않게 됐지만, 뉴스와 신문, 언론의 공정에 대한 의문은 내 마음에 단단히 자리 잡게 됐다.


새로운 미디어의 문을 열고

 

성인이 된 후 기후 위기 문제에 절망을 느껴 환경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거나,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 상경했다거나 하는 크고 작은 개인적 변화가 생겼지만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세상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특정 플랫폼에서 한정된 형태로 실시간 송출되던 개인 미디어들이 ‘유튜브’라는 거대한 바다를 타고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종류와 형태의 콘텐츠들은 너무나 손쉽게 사람들의 시간을 차지하기 시작했고, 그 다양한 종류 중에서도 특정 분야의 소식들을 빠르고 감각적으로 전하는 미디어 콘텐츠들은 뉴스의 자리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신문도 상황은 마찬가지라 이메일을 통해 내가 원하는 내용의 소식들을, 심지어는 신문 기사를 요약해서 전해주는 뉴스레터들이 급부상하기 시작하면서, 온·오프라인으로 운영하던 기존의 종합지들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사그라들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소식들을 요약한 후, 더욱 흥미롭게 편집해 무료로 볼 수 있게 한다는 발상은 스마트폰을 신체처럼 여기는 10~20대의 마음을 사기에 충분했다. 너무나도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형식으로 사회 전반의 소식 전달을 표명하는 뉴스는 자연스레 ‘올드 미디어’라는 명찰을 찰 수밖에 없게 됐고, 반대로 ‘뉴미디어’는 사회의 소식을 얻는 새로운 창구로 몸집을 불려 나가게 된 것이다.

 

뉴스와 신문을 꼬박꼬박 챙겨봤지만 때때로 관심 없는 내용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곤 했던 나도 내가 원하는 소식만 모아 언제든 원할 때 보여준다는 뉴미디어의 등장에 마음이 흔들린 것이 사실이었다.

 

그건 제가 알고 싶은 게 아닌데요

 

앞서 말했던 보도의 공정성에 관한 문제나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은 뉴스와 마음의 거리를 두게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뉴스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전보다는 낮은 빈도였으나 사회 전반을 둘러보겠다는 심산으로 간간이 뉴스를 챙겨봤었고, TV 없는 집에서 살 때도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뉴스를 돌려보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도대체 왜 뉴스를 보지 않게 됐을까? 놀랍게도 앞서 말한 사건들과는 별개로 아주 사소한 자각을 통해서였다. 앞서 말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뉴스에서 다루는 소식들에 사소한 의심과 약간의 무관심을 가지고 보게 됐을 무렵, 문득 뉴스에서 정말 다뤄야 하는 일들은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정치인들의 논란이나 공방, 그날의 스포츠 경기 결과는 격앙된 목소리로 다뤄지지만, 우리 주변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눈 씻고 살펴봐도 보이지 않았다. 부동산의 가격이 오르고 내리는 것은 따로 코너를 할애하며 열변을 토했지만, 정작 끊임없는 개발로 산과 바다가 뒤집어지는 소식은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내몰린 이들의 생이 다하거나, 더는 외면할 수 없을 만큼 큰 문제가 됐을 때서야 우려에 찬 목소리로 잠시 시혜하듯 쳐다봐 줄 뿐이었다.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커지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뉴스를 보고 있는데, 화면 속 앵커가 정돈된 목소리로 말해주는 사건들이 갑자기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그럭저럭 흥미를 가지고 들었을 사건·사고들과 정장을 빼입은 정치인들의 중대 발표가 갑자기 너무나 사소하게 들리는 것이다. 그날이 유독 별 소식 아니었던 것 아니었냐고?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똑똑히 기억나는데, TV 속 인사가 했던 말은 수능을 일주일 연기하겠다는 충격 발표였기 때문이다.

 

매도하듯 쏟아내고 이런 말을 다시 하는 게 웃기지만, 그렇다고 뉴스에서 다루는 소식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방송사에서 만드는 뉴스는 전 국민이라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제공되고, 방송사는 그들의 시청률로 스스로를 평가하는 만큼 한정된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는 소재를 다룰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누군가에겐 부동산이 가장 중요하고, 누군가에게는 정치인의 소식이, 또 누군가에겐 사회 전반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것이 가장 중요할 수 있다. 아니, 많은 이들이 그러한 것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나 오랜 시간 동안 뉴스가 같은 자리에서 같은 종류의 소식들을 열심히 전해오지 않았겠는가. 나 또한 그런 소식을 챙겨 듣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어느 순간 뉴스에서 잘 다루지 않는 우리 주변 노동자의 치열한 삶이나, 우리 삶을 시시각각 위협하는 기후 위기 문제가 더 중요한 사람이 됐고, 그걸 자각한 순간부터 뉴스에 대한 회의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렸다. 뉴스는 처음 접했던 그 시절부터 한결같이 변하지 않았는데, 스스로는 뉴스를 꼬박꼬박 챙겨보던 그때와 완전히 달라져 버린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뉴스를 챙겨보지 않았다. 밥을 먹으러 가서 틀어진 TV 뉴스를 멍하니 쳐다본 적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자발적으로 뉴스를 찾거나 귀를 쫑긋 기울여 본 적은 없다. 절이 싫으면 스님이 떠나야 한다는 말처럼 변한 스스로를 인정한 순간부터 뉴스에 관한 관심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내게는 더욱 관심 있는 영역이 생겼고, 뉴스는 그 소식들을 다뤄주지 않으니, 나는 자연스럽게 뉴스를 떠난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유난스럽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혹은 공영방송에서는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소식들이 다뤄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는 사건이 항상 더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유난스러운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뉴스를 떠나고 있다. 더 이상 뉴스가 우리에게 해주는 이야기가 흥미롭지 않기 때문에, 혹은 편협한 시각으로 전한다고 느끼거나, 미처 다 알 수 없는 저마다의 이유로 뉴스를 떠난다. 2020

 

 

년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1)에 따르면 아직 지상파 방송을 정기적으로 시청하는 20대 중에서 뉴스나 시사 보도를 시청하는 비율은 전체 시청자의 40%밖에 되지 않았다. 40~50대의 뉴스 시청 비율이 90% 이상에 육박하는 것만 봐도 압도적인 차이라 할 수 있는데, 전체 연령대 중 거주지에 TV가 있는 비율이 20대가 가장 낮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정말 많은 수의 20대가 뉴스를 떠났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뉴스가 더 이상 20대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는 것이다. TV가 있어도 마찬가지고, 없다면 더더욱.


세상 굴러가는 이야기 듣는 법

 

그렇다면 뉴스를 떠난 이들은 어떻게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을까. 당연하게도 예전처럼 뉴스를 보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과 단절되는 것은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나는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을 위한 청년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자연스레 국내외 기후변화 문제에 관심이 아주 많은데, 이런 사람들을 위해 기후변화와 관련된 외신을 정리해서 격주마다 이메일로 보내주는 뉴스레터가 있다. 그 외에도 정해진 시기가 되면 몇 가지 관심 있는 분야들의 소식이 메일함에 쌓인다. 혹시나 더욱 정확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검색 몇 번에 연구자들의 리포트를 다운로드받을 수 있고, 특정 지역이나 국가의 상황을 보고 싶다면 실시간으로 영상과 사진을 받아볼 수 있다.

 

국내에서 일어난 일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건에 대해 알고 싶다면 자연스럽게 검색창과 유튜브로 향한다. 누군가는 유튜브나 포털사이트 검색을 통해 얻는 정보들이 주관적이고 편집된, 혹은 편향된 정보라고 우려하지만, 뉴스나 신문을 볼 때도 서로 다른 관점을 솎아내며 봐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원하는 정보와 소식들을 뉴스보다 훨씬 빠르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뿐일 것이다.

눈 깜짝할 새 찾아온 변화 속에서 뉴스와 같이 한정적인 채널을 통해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범용적 매체는 양방향으로 내용을 주고받는 새로운 미디어를 따라가기 어렵다. 물론 뉴스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뉴스를 통해 세상의 흐름을 목격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들을 위해서라도 뉴스는 남아있어야 한다. 하지만 누구보다 정보를 자유자재로 얻을 수 있는 세대인 우리가 뉴스를 떠나는 것은 당연하다는 사실도 잊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굳이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이탈을 막고 싶은 것이라면 뉴스는 변해야 한다.

 

뉴스를 보도하는 공영방송사와 종편 일부는 이미 앞서 말한 유튜브 콘텐츠와 뉴스레터에 뛰어들었다. 심지어 몇몇 채널들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본 방송사를 위협할 만큼이나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그 방송사가 만든 뉴미디어일 뿐이고, 이탈된 세대가 다시 방송사로, 뉴스로 돌아오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뉴스는 여전히 관심의 바깥에 존재한다.

 

혹자는 이 글을 읽으며 너무나 주관적이라는 생각에 오목조목 반박할 말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이해한다. 뉴스의 주관성이나 진부함을 비판하며 뉴스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다는 것은 순전히 나의 개인사니 말이다. 하지만 20대를 필두로 수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뉴스를 떠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랜 시간 동안 뉴스는 변하지 않았고, 우리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뉴스로 대표되는 올드 미디어와 멀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변하지 않은 뉴스에 대한 불만은 없지만, 뉴스와 멀어지는 것이 그다지 아쉽지도 않다. 결국 우린 딱 그 정도의 사이가 된 것이다.

 

자, 그렇다면 앞으로 뉴스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그거야 뉴스 하기에 달리지 않았겠는가.

 

 

 

 

 

1) <2020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 317쪽, 방송통신위원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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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 김선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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