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사 상세
[커버스토리: MZ세대에게 뉴스란 무엇인가] MZ세대의 이야기① 나는 왜 뉴스에 진심인가
커버스토리 | 등록일 : 2022-07-29

MZ세대에게 뉴스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디지털에 익숙하고 다양한 매체로부터 정보를 접하는 그들은 뉴스를 접하고 소비하는 방식도 기성세대와는 다를 것이다. 먼저 한겨레 열린편집위원으로 활동할 정도로 뉴스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대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이 출시됐습니다. 그리고 2011년 스마트폰을 구매했습니다. 언제든 검색하면 원하는 내용의 뉴스를 찾아볼 수 있는 ‘검색 저널리즘’의 시대가 저에게 열렸습니다. 뉴스에 대한 저의 진심은 이때부터 시작됐습니다.


가장 최신 버전의 백과사전, 뉴스 

 

‘질문, 질문 열매를 먹은 친구’. 학창 시절 저의 별명입니다. 저는 질문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공부에 필요한 질문도 있었지만 교과서 밖 세상사와 연관된 엉뚱한 질문도 많이 했습니다. 잘 각색된 교과서 이야기보다 궁금했던 건 그 너머 날 것의 이야기, 세상 속 이야기였습니다. 제가 하는 일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어떤 배경에서 진행되는지 항상 궁금했습니다. 이런 저에게 세상 속 이야기를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뉴스가 흥미로웠던 것은 필연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뉴스에 처음부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침마다 신문을 읽고, 저녁마다 방송 뉴스를 보는 집안 분위기에서 습관적으로 뉴스를 읽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뉴스는 저에게 오늘의 소식을 잘 전달하는 매체에 불과했습니다. 뉴스는 세상 속 이야기를 세련되게 가공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저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알기 어려웠습니다. 구독 해야지만, 저녁 시간에 맞춰 TV를 켜야지만 볼 수 있던 뉴스에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멀게 느껴졌습니다. 중요한 사건들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뉴스, 그리고 그런 뉴스를 공부하듯 보는 나. 뉴스와 저는 그런 관계였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기 시작하면서부터 뉴스에 친근함을 느꼈습니다. 최근 이슈 중 제가 관심 있고 궁금한 분야를 원하는 때면 언제든 검색해서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학생 때는 하교 후 학원에 가기 전, 고등학생 때는 야간자율학습을 시작하기 전 약간의 저녁 시간에 짬을 내어 뉴스를 봤습니다. 뉴스는 궁금한 내용을 가장 최신의 버전으로 제공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신뢰할만했습니다. 저는 주로 같은 내용을 다룬 여러 기사를 비교해가며 가장 친절하고 깊이 있는 기사를 찾았습니다. 그런 기사들은 저의 호기심을 해결해줄 뿐 아니라 사안에 대한 저의 인식까지 바꿔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차별화된 해설 기사나 기획 기사를 유독 좋아했습니다. 뉴스는 책만큼 오래 보지 않아도 되면서 업데이트가 잘 돼 있는 콘텐츠입니다. 뉴스는 저에게 ‘가장 최신 버전의 백과사전’이었습니다.


뉴스에 진심이 되기까지

 

그때 그때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던 뉴스는 저에게 분명 유용했습니다. 그러나 ‘유용함’만으로 제가 뉴스에 진심이 된 것은 아닙니다. 제가 뉴스에 진심이 된 건 뉴스가 ‘저의 문제를 사회의 언어로 만들고 소통’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2011년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학교 폭력 보도 때문입니다. ‘중2병’이라는 말이 돌던 시기입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는 험했습니다. 동급생을 음악실에 가두고 때린 사건도 있었고, 지적 장애가 있는 학생을 화장실에 가두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따금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렸습니다. 학교에 경찰이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학교에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학교에 변화가 생긴 건 그해 말 발생했던 ‘대구 중학생 사건’ 이후였습니다. 피해자는 동급생으로부터 물고문과 구타를 당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시감이 느껴졌습니다. 제 경험에 비춰보면 어디선가는 일어날 만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만큼 학교에 폭력이 빈번했습니다. 청소년들의 문제가 ‘아이들끼리 싸우면서 크는 것’ 혹은 중2병 정도로 치부되어 수면 아래로 가려져 있을 때, 그 안에서는 문제가 곪아가고 있었습니다.

 

사건을 계기로 언론은 우리 사회의 학교 폭력 문제를 진지하게 다뤘습니다. 저는 매일 매일 시도 때도 없이 관련 뉴스를 검색했습니다. 뉴스들을 읽으며 사건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난한 학교 폭력의 원인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등을 찾아봤습니다. 학교 폭력 뉴스는 결국 제가 처한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발본색원돼야 한다는 분노어린 감정이 있었습니다. 언론이 뜨겁게 보도했고, 사회에는 큰 반향이 일었습니다.

 

언론 보도 이후 제가 다니던 학교는 바뀌었습니다. 먼저 학교 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학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이 학교 폭력 문제에 보다 진지하게 접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 내부에서도 조심하고 반성하는 분위기가 생겼습니다. 학교전담경찰관 등 다양한 제도적 대책도 마련됐습니다. 시작은 비극적인 사건이었지만, 언론의 관심으로 청소년들의 가려졌던 이야기가 세상에 전해지며 조금이나마 해결의 장이 마련된 것입니다.

 

이후에도 저는 뉴스에 저와 관련된 내용이 나올 때마다 주의 깊게 읽었습니다. 제 삶에 의문점이 생기는 부분도 계속해서 검색하며 읽었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수저계급론’을 다룬 언론 보도들을 읽었습니다. ‘하면 된다’는 학교의 가르침이 가진 한계를 고민했습니다. ‘여성혐오’라는 시대적 화두를 던진 ‘강남역 살인 사건’을 마주하면서는 제가 여성으로서 불편부당하다고 생각했던 지점들을 구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몰입했고 검색했던 뉴스들은 모두 ‘더욱 노력해야지’ 혹은 ‘더욱 조심해야지’라고만 생각하고 넘어갔던 저의 문제들이었습니다. 제가 삶을 살아오면서 했던 고민들, 느꼈던 두려움 혹은 좌절이기도 했습니다. 뉴스는 그런 저의 문제들을 사회적 문제로 다루고 공론화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을 마련했습니다. 뉴스에선 말 못할 고민들이 모여 터놓고 이야기되었습니다.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도 마련했습니다. 저는 그런 뉴스에 진심이었습니다.


검색창의 경계를 넘었더니 ‘타인의 진심’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는 제 이야기 말고도 다양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마음속 깊은 고민과 걱정을 지니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고민들은 대개 우리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구구절절 타인과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분명 깊게 다뤄져야 할 것들입니다. 그 고민들을 한데 모아 논의의 장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뉴스입니다.

 

검색창의 경계를 넘어 신문과 방송 뉴스를 다시 보기 시작한 건 대학생이 된 이후입니다. 제 이야기만큼이나 타인의 이야기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고민을 만나기 위해서는 저만의 관심사를 넘어 우리의 공간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온갖 뉴스가 한데 모인 지면과 영상을 다시 찾았습니다.

 

뉴스에는 다양한 타인의 삶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삶의 이야기는 제 주위 사람들을 이해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경제위기와 자영업자에 대한 뉴스를 읽으며 아버지의 고민에 공감했습니다. M자 노동곡선을 다룬 기획기사를 읽으며 어머니의 인생을 곱씹어 볼 수 있었습니다. 지방에 사는 친구들은 서울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까지 올라오며 밝은 얼굴로 ‘난 서울에서 보는 게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뉴스는 지방 소멸과 차별을 다뤘습니다. 그 안에서 친구들이 말하지 못했을 고민과 불편함을 정면으로 만났습니다.

 

뉴스는 저의 고민을 드러냈듯 타인의 마음속에 있는 깊은 이야기, 말 못했던 진심을 드러내고 함께 고민합니다. 더불어 그러한 고민들은 사실 잠재적인 저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결국 같은 사회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뉴스 덕분에 타인의 고민들을 유추해내고 보다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타인에 깊이 공감하고 동조하며 의리있게 나서고자 하는 마음도 키웠습니다. 아마 뉴스가 공론화한 저의 고민들도 이러한 연대의 과정을 거쳐 뜨겁게 논의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일 겁니다. 이렇게 뉴스는 우리가 서로 대화하고 하나가 될 공간을 마련합니다. ‘세상 속 이야기’를 넘어 함께할 수 있는 ‘마음’을 전달하는 뉴스는 단순히 백과사전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소중한 존재입니다.


검색 저널리즘의 끝 무렵에서, 우리의 진심을 다룬 뉴스를 생각합니다

 

이제 뉴스를 검색해서 보는 시대도 끝나가고 있습니다. 검색하기도 전에 알고리즘이 먼저 저의 관심사에 맞춰 뉴스를 선택해줍니다. 제가 이전에 검색했던 주제의 뉴스 중 가장 많이 읽힐 법한 뉴스가 선택돼 먼저 다가옵니다. 그들은 친근하다 못해 저의 일부가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정보에 대한 갈증, 타인에 대한 관심을 키우기도 전에 먼저 찾아오는 뉴스는 너무나 편리합니다. 그러나 제가 궁금했던 세상 속 이야기를 온전히 담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이들은 백과사전도, 서로의 고민을 한데 모은 농축액도 아닌 그저 ‘자아의 메아리’로 느껴집니다.

 

MZ세대가 뉴스를 외면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MZ세대가 뉴스로부터 멀어지는 건 어쩌면 더 이상 뉴스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 언론 소비 환경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이런 뉴스 소비 환경에 맞춰 우리의 고민들을 왜곡해 전달하는 뉴스가 많아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최근 MZ세대 관련 보도 양상만 봐도 MZ세대가 가진 고민의 근본 원인을 탐구하기보다 곧바로 이를 특정 정치 세력, 정치인과 연결하며 지지세력화하거나 자극적인 내용들에 집중하는 뉴스들이 많습니다. 그러한 뉴스들이 양극화되고 선정적인 뉴스 소비 환경에서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습니다. 물론 잠시 클릭할 순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뉴스를 본 MZ세대들이 뉴스에 진심을 느끼고 관심을 가지긴 어렵겠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뉴스에 진심입니다. 그래서 고집스레 그러한 고민을 담은 뉴스들을 찾습니다. 물론 언론이 변화하는 환경에 저항하기 힘든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지금의 환경에 피로를 느끼며 ‘우리의 고민이 담긴 뉴스’를 보고 싶어하는 시민들이 많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단순히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기 위한 보도를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뉴스 소비 환경을 우리의 진심을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꿀지, 그 개혁 방안을 언론이 고민해볼 시점입니다.

저자의 다른 미디어
  • 필자 : 위지혜
  • 소속 :
  • 직함 :
  • 발행 : 2022-07-29
  • 조회수 : 7
  • 키워드 :
블로그 공유 트위터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