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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7~30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2022 국제 미디어 콘퍼런스(International Media Conference)’가 열렸다. ‘신뢰 없는 사회(Connecting in a Zero Trust World)’라는 주제로 미국 동서센터가 주최하고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후원한 이번 콘퍼런스의 주요 세션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한국은 왜 관심의 중심이 됐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본격화된 2018년부터 외국 기자들에게서 들은 질문은 늘상 북한 문제였다. 북한 경제가 스스로 붕괴될 것인지, 북한의 핵무기가 진짜인지, 남북통일이 될 것 같은지 등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처음으로 만난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나 합의가 결렬된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취재 현장에서, 한국 기자는 북한 문제에 있어 준전문가로 통했다.
이번 콘퍼런스 주제와 관련해서도 동서센터(East-West Center)는 북한이 올해 벌인 미사일 도발 및 핵실험 가능성 관련 주제가 어떻겠냐는 의사를 타진해왔고, 이에 한국 세션에 패널로 참가하는 한국 기자 세 명은 주제를 좀 일반화하자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 결과 세션의 제목은 ‘보수화되는 한국: 한반도에서 떠오르는 이슈들’로 정해졌다.
해당 세션의 진행을 맡은 스티븐 허먼(Steven L. Herman) 미국의소리(VOA) 방송 기자도 패널과의 사전 미팅에서 북한 문제에 대한 질문만 쏟아질 것을 우려했다. 북한이 올해 들어 무려 21차례나 무력시위를 벌인 데다가 7차 핵실험 우려도 지속적으로 제기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 시간 이상 진행된 세션에서 북한 문제는 단 한 번도 거론되지 않았다. 객석에서 북한에 대한 질문조차 나오지 않았다. 좌석을 꽉 채운 수십 명의 각국 언론인들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면에서 한국 그 자체를 궁금해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대선에서 이긴 이유, 한국이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실질적으로 이뤄낼 수 있을지 여부, 윤석열 정부가 소득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을지, BTS(방탄소년단)와 같은 한류 확산을 위해 한국 정부는 어떤 정책을 갖고 있는지 등 질문은 이어졌다. 윤 대통령이 법인세 인하 공약을 지킬 수 있겠냐는 상당히 구체적인 질문도 있었다. 세션이 끝난 뒤에도 꽤 많은 이들이 연단으로 나와 한국 집값 급등에 해법이 있을지, 한국에도 언론에 대한 정권의 탄압이 있는지 등을 물었다.
팬데믹으로 지난 몇 년간 국제 콘퍼런스에 참석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인지, 북한 문제가 빠진 콘퍼런스는 신선했다. 소위 ‘국뽕’의 환희도 느꼈고 북핵 위주의 외교에서 탈피해 문화·기술·환경·경제 등 다양한 분야로 역량을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도 느낄 수 있었다.
각국 기자와 대화를 나누며 이번 콘퍼런스에서 한국이 관심을 크게 받은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정리했다. 당연히 한류의 성장이 첫째 이유다. <오징어 게임>, <기생충>, BTS, 블랙핑크 등 설명이 무색하다. 현지 시간으로 지난 5월 29일 미국 워싱턴한국문화원은 한류 문화 전시회 ‘한국: 입체적 상상(Korea: Cubically Imagined)’을 열었는데 정부기관이 하는 행사임에도 95%가 사전에 매진되기도 했다.
또 장기 불황을 겪고 있기 때문인지 이번 콘퍼런스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다소 퇴조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여러 분야에서 한국 모델을 자국에 접목하려 하는 경향을 보여줬다.
미·중 간에 서 있는 한국의 독특한 위치는 자못 고통스러운 경우가 많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한국과 같은 선택의 딜레마를 겪는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이 한국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기도 했다. 실제 외국 기자들은 한국이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안보 협의체)에 가입할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가 가능할지 등을 물어왔다. 한 대만 기자는 “미국이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우려하고 공론화하고 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며 미국은 국익을 저버리면서까지 돕지 않는다는 것을 우린 배웠다”며 미·중 간에서 힘든 자국의 상황을 설명했다.
꺾이지 않는 펜, 마리아 레사
이번 콘퍼런스에서 마리아 레사(Maria Ressa)의 연설은 큰 울림을 전했다. 그는 콘퍼런스 첫날인 6월 28일 기조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밤에 (필리핀 증권거래위원회로부터) 제가 운영하는 래플러(Rappler)의 문을 닫으라는 명령을 처음 전해 들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항소할 것이고, 절대 문을 닫지 않을 겁니다. 밤새 120명의 직원 중 간부들에게 언론사 폐쇄 명령이 왔음을 알리고 논의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최악을 준비해야 합니다.”
레사는 2012년 온라인 탐사보도 매체 래플러를 창간하면서 권위주의에 맞서기 시작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Rodrigo Duterte) 전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6,000명 이상을 사망케 하는 ‘반인륜적 범죄’를 자행했다는 판단 아래 그를 ‘독재자’, ‘인권유린범’ 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래플러가 외국 자본으로 운영된다고 비난했고, 필리핀 증권거래위원회는 2018년 초 래플러가 외국인의 필리핀 언론 소유 금지 법규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후속 조치가 이날 내려진 것이다.
레사는 “지난 2년간 내게 제기된 10건이나 되는 형사 고발은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었고 이제 (정부의 공격은) 우리에겐 일상이 됐다”며 “하지만 우리는 용기를 내고, 적응하고, 생존하고, 번영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기자 혼자 가짜뉴스와 맞서고 싸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거무스름한 자신의 피부를 악용해 자신의 얼굴을 남성의 고환이나 귤껍질과 합성한 사진이 필리핀에서 퍼졌다며 증거 사진을 보여줬다. 레사는 “이렇게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일이 생기면) 플랫폼에 (삭제를) 간청해야 한다. 무엇보다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고 했다.
또 “좋은 저널리즘을 위해 우리는 그 비용이 막대하더라도 독립적인 저널리즘을 형성하고 거기에서 계속 살아남아야 한다”며 “그리고 우리는 우리 사회에 독립적인 언론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야 하며 이는 기자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레사는 이날 권위주의 정부가 사회관계망서비스를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SNS는 유독성 슬러지1)다. 분노, 증오, 음모 이론을 조장한다”며 “다른 과일을 SNS를 통해 사과라고 수없이 얘기하면 많은 이들이 사과라고 믿게 된다. 거짓말도 수없이 하면 사실이 돼 버린다”고 설명했다.
레사는 미국, 브라질 등 30개국 이상에서 올해 선거가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 뒤 “온전한 사실 없이 어떻게 온전한 선거를 치를 수 있겠나. 그럴 수는 없다”며 “우리는 신뢰를 재구축 해야 한다”고 말했다.
SNS를 통해 퍼지는 자극적인 가짜뉴스에 대해 언론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레사는 가짜뉴스와 달리 정작 “팩트체크는 온라인을 통해 확산되지 않는다”며 “우리는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거짓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SNS의 시대에 시민 참여를 조직해야 한다. 언론이 서로 경쟁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함께 가짜뉴스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진 각국 기자들의 질문 시간. 질문이라기보다 호소에 가까웠다. 아프가니스탄의 한 기자는 열악한 언론 현실을 쏟아내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냐며 눈물을 흘렸다. 레사는 해법을 제시하기보다는 공감했고, 이후 그가 질의응답을 마치고 퇴장할 때 회의장을 메운 수백 명의 전 세계 언론인들은 진실을 향한 그의 용기에 기립박수를 보냈다.
SNS의 반론 “우린 민주주의 수호자”
반면 지난해 10월 ‘내부 고발자’ 프랜시스 하우겐(Frances Haugen)의 제보 이후 입을 닫고 있던 메타(옛 페이스북)는 이번 콘퍼런스에서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섰다.
참고로 페이스북의 직원이었던 하우겐은 월스트리트저널에 회사 내부 문건을 건넸고, 이는 ‘페이스북 파일(Facebook File)’이라는 이름으로 기사화됐다. 핵심 주장은 ‘페이스북은 혐오 표현과 오보를 단속하는 것보다 이윤을 우선시해왔다’는 것이다.
일례로 페이스북의 알고리즘 자체가 자극적인 내용들만 올리도록 돼 있고 페이스북이 10대의 정신 건강에 유해한 콘텐츠를 방치했다는 것이다. 가짜뉴스 확산을 막는 정책도 폐기했고, 권력자 등 저명한 인사들에게는 게시물 규제가 느슨했다고 고발했다.
콘퍼런스 이틀째인 지난 6월 29일 메타의 보안 정책 책임자 나다니엘 글라이셔(Nathaniel Gleicher)는 SNS가 권위주의 정부에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라 권위주의 정부가 두려워하는 ‘민주주의 수호자’로서 기능을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좋은 예가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인스타그램은 우크라이나의 목소리가 러시아에 전달될 수 있었던 핵심 도구 중 하나였다”며 “러시아가 결국 자국에서 인스타그램을 차단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분명 SNS를 통해 러시아의 침공에 따른 참상을 전 세계에 전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도로 한복판에 서서 러시아 탱크를 막아서는 장면이나, 들판에서 러시아 헬기를 격추하는 영상은 SNS를 통해 확산됐고 자유를 위한 싸움은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글라이셔는 정교한 보안 정책에 대해 홍보하면서도 지나친 규제·보안은 이용자들의 ‘토론의 자유’를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각국의 언론인들은 수익을 위한 알고리즘 운영, 가짜뉴스를 삭제하기 위해 겪는 절차의 복잡함, 권력자의 게시물에 대한 느슨한 규제 등을 비판했다.
이번 콘퍼런스에서 레사를 필두로 한 언론인들과 페이스북의 공방은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 공방은 향후 치열한 논쟁으로 이어지며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콘퍼런스에 참석한 대다수가 ‘언론의 책무이자 권한은 대중에게 팩트를 전하는 것’이며 이를 위협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에 공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실을 향한 노력이 언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 하수처리 또는 정수과정에서 생긴 침전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