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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제작기] 포항MBC <포스코 직장 상사 4명이 20대 여직원 성폭력 가해>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2-08-26

지난 6월 20일 포스코 포항제철소 사내 성희롱 사건이 보도됐다. 대한민국 대표 글로벌 기업에서 벌어진 데다 피해자의 신고에도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고 오히려 2차 피해까지 입었다는 사실에 대중은 분노했다. 자극적인 내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사건의 본질을 파헤친 포항MBC의 취재 뒷얘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한 여성이 상사들을 성추행 등으로 고소했다.”

 

제보를 받았다.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피해자와의 만남을 서두르진 않았다. 피해자가 정말 원할 때 기사를 써야 하는 일이었다. 원하지 않으면 취재를 보류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피해 여성이었다. 직접 만난 여성은 얼마 전 심각한 성폭력을 당했다고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가해자는 같은 부서의 선임이라고 했다. 구체적인 피해 내용을 듣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그런데 이어진 이야기는 더 심각했다.

 

수년 전 포항제철소에 입사한 여성은 줄곧 부서의 유일한 여성 직원이었다. 50여 명 가운데 혼자였다. 이런 조직에서 여성은 수년 동안 부서 남성 상사들로부터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당했다고 했다. 버티고 버티다 지난해 한 차례 신고도 했지만 오히려 2차 피해에 시달렸다고 했다. 일회성 사건이 아니었다. ‘글로벌 기업’이라는 포스코의 남성 중심적이고 폐쇄적인 구조 속에서 여성은 너무 큰 고통을 받고 있었다. 추가 취재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첫 번째 보도가 나가기까지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부분은 그런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냥 가벼운 장난이었다고요.”

 

한 상사는 억울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사실은 이렇다며 논점을 흐리는 얘기를 늘어놓았다. 고성으로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인터뷰는 거절했다. 관리 책임이 있는 포스코에도 연락을 취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이미 직장인 익명 애플리케이션 등에서 한 차례 논란이 됐던 일이라고 답했다. 떠도는 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증거가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조사는 시작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사내 조사 없이 경찰 조사를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을 인지하는 즉시 조사에 들어가야 한다는 규정조차 모르고 있었다. 긴 통화 끝에 포스코와 상사들의 입장을 정리할 수 있었다. 뉴스 방송까지 2시간도 채 안 남았을 때였다.

 

급히 녹음을 마치고 편집을 시작했는데 갑자기 포스코 관계자들이 회사에 찾아왔다. 직접 만나 설명하고 싶다고 했다. 한창 얘기가 오가던 중 한 남성이 들어왔다. 가해자로 지목된 상사 중 한 명이었다. 남성은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며 동료 직원들에게 물어보라고 말했다. 다시 한번 인터뷰를 제안해 남성의 주장을 담았다. 우여곡절 끝에 첫 보도가 이뤄졌다. 

 

기사가 나간 뒤에도 대부분의 언론은 조용했다. 유튜브 동영상의 조회수가 하루 만에 100만이 넘었는데도 정작 이 내용을 다루는 추가 보도는 거의 없었다. 두 가지 이유에서라고 생각했다. 포스코의 적극적인 대응과 여성의 진술을 제외하곤 부족해 보이는 증거. 민감한 내용이었기에 모두가 조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폭풍 전야 같았다.

 

증언과 증거 바탕으로 후속보도

 

모두가 침묵하던 그때 증인이 나타났다. 같은 부서에 있었던 한 남성 직원이었다. 긴 대화 끝에 남성이 용기를 냈다. 회식 자리의 성추행부터 지속적인 성희롱까지…. 남성은 자신이 목격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털어놨다. 그렇게 증언을 확보했다. 

 

다음은 증거였다. 직장 내 성희롱이나 성추행은 사건 특성상 직접적인 증거가 남아 있기 힘들다. 하지만 정황 증거가 있을 수 있다. 여성의 다이어리와 메시지 등 최대한 많은 기록을 확보했다. 그리고 찬찬히 살펴봤다. ‘조직 문화가 더럽다’, ‘이 부서에 계속 있을 수 있을까?’ 등 다이어리에는 성추행이 있던 회식 때마다 여성이 느꼈던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녹취 파일들에선 2차 피해의 정황을 찾을 수 있었다. 증언과 증거들을 바탕으로 후속 기사를 썼다.

 

 

두 번째 보도에 나간 여성의 다이어리 구절 <출처 –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구체적인 정황 증거가 담긴 기사가 나가자 비판 여론이 거세졌다. 다른 언론사들도 하나둘 보도를 이어갔다. 그 와중에 포스코가 여성에게 계속해서 2차 피해 유발 행위를 한 사실도 드러났다. 결국 첫 보도 사흘 만인 6월 23일 늦은 저녁 포스코 측은 급하게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때까지 보였던 유보적인 태도와는 달리 사내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했다. 피해자를 보호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진실 공방은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듯했다.

 

2차 가해를 생생히 드러낸 CCTV

 

하지만 한 통의 전화로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사과문이 담긴 포스코 홍보팀의 문자를 받자마자 여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성도 이 사과를 전달받았는지 묻기 위해서였다.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여성은 “기자님, 너무 무서워요”라고 말하며 겁에 질려 있었다. 지금 자신의 집 앞에 포스코 임원들이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여성이 거부하는데도 만나자고 전화를 걸고 여성의 가족에게까지 연락을 취했다고 했다.

 

앞에선 사과문을 발표하고 뒤에선 여성을 찾아가다니. 믿기 힘들 정도로 모순적인 행동이었다. 여성의 집 앞으로 달려갔다. 이 남성들의 2차 가해 현장을 포착하고 싶다는 기자로서의 마음과 혼자 공포에 떨고 있을 여성에 대한 걱정이 교차했다. 허탕을 쳤다. 남성들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근처 카페도 찾아갔지만 아무도 없었다. 이미 떠난 뒤인 것 같았다. 안심해도 된다고 여성에게 전하고 회사로 돌아왔다. 어떻게 하면 이 만행을 사람들에게 알릴수 있을까? 잠들기 전까지 끊임없이 생각했다. 순간 CCTV를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집 앞을 찾았다. 이때까지도 여성의 집 바로 아래층에 살고 있던 가해 선임이 아침부터 이사 중이었다. 보도가 나가자 그제야 가해자와의 분리 조치가 이뤄진 것이다. 건물 한구석에서 CCTV를 돌려봤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중 수상한 중년 남성이 눈에 띄었다. 남성은 건물 앞을 서성이다 문 안쪽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찍힌 시각은 여성과 내가 전날 통화했던 그즈음이었다. 다른 각도의 CCTV도 살펴봤다. 남성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가지고 있던 사진과 비교해 봤을 때 포항제철소 고위 임원이 확실했다.

 

녹취 속 임원은 ‘원하는 게 뭐냐’고 묻기도 했다. 명백한 2차 가해였다. 여성은 자신을 회유하려는 것 같아 압박감을 느꼈다고 했다. 자문을 구하기 위해 연락한 여러 여성단체 관계자들은 자초지종을 듣자 경악했다. 설마 정말 그런 짓까지 했냐고 나에게 재차 묻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행동이 대표적인 2차 가해라고 단언했다.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까지 가능한 사안이라고 했다. 관련 규정을 찾아 리포트를 제작했다.

 

보도가 나가자 파장이 일었다. 방송 기자의 숙명과도 같은 CCTV 영상이 이번에야말로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여성이 느낀 공포가 직관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이틀 뒤 포스코는 집 앞에 찾아간 고위직들을 포함해 6명의 임원을 징계했다고 밝혔다. 취재 결과 징계 대상에는 부회장이 포함돼 있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여성의 집에 찾아온 임원이 여성의 가족에게까지 연락을 취했다는 메시지 내용 <출처 –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기사가 2차 피해가 되지 않게

 

이렇게 2차 피해 취재에 큰 힘을 쏟은 만큼 중요하게 생각한 원칙이 있다. 2차 피해를 막는 것이다. ‘꽃뱀’부터 ‘헤픈 여자’까지. 앞서 있었던 수많은 성폭력 사건들에서 피해자를 탓하는 반응을 목격한 기억이 뚜렷이 남아 있었다. 피해 사실을 알린 보도로 또 다른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걸 막는 데 가장 신경을 많이 썼다. ‘보도로 2차 피해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가 기사 작성의 최우선 순위였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성폭력 사건을 선정적이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로 다뤄서는 안 된다’는 보도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피해자 측이 밝힌 사실이라고 해도 적절한 게이트키핑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2017년 미투 운동을 촉발한 하비 와인스타인(Harvey Weinstein) 성폭력 사건을 보도한 뉴욕타임스 기자들은 가해자 개개인을 넘어 시스템의 문제를 짚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보도의 초점은 시스템이 돼야 했다.

 

우리는 자극적인 내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구조적인 문제에 집중했다. △피해 여성의 의사에 반한 원 부서 복귀 △여성을 상대로 보도를 무마하려 한 시도 △즉각 이뤄지지 않은 분리 조치 △여성의 집에 찾아간 임원들 등 성폭력을 방관하고 피해를 키운 사측의 부적절한 대응을 중심으로 기사를 쓰려 노력했다.

 

의도한 대로 기사가 잘 전달된 걸까? 다행히 우려했던 일은 크게 발생하지 않았다. 첫 리포트의 유튜브 동영상에만 1만 개 넘는 댓글이 달렸는데 거의 대부분이 여성의 아픔에 공감하는 내용이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겪은 직장 내 성희롱 피해 사실을 댓글로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시청자가 사측의 미온적인 태도와 부적절한 대응에 함께 분노했다.

 

문제는 폐쇄적인 구조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고용노동부는 직권조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전 조사 한 달여 만에 1차 결과를 발표했다. 고용노동부는 포스코에 과태료 500만 원을 부과했다. 여성이 첫 성희롱을 신고한 뒤 부서 이동을 요청했지만 이를 즉시 조치해주지 않았다는 혐의였다.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제4항 위반이었다. 포스코가 계속 부인하던 부분이 사실로 인정된 것이다. 원부서 복귀와 집에 찾아간 행위 등 2차 가해에 대해서는 수사를 통해 사법 처리하겠다고 했다. 여성 인권 전문 변호사들은 이들의 행위가 명백히 법률 위반이기 때문에 처벌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이번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도 드러났다. 고용노동부가 포항제철소 전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폐쇄적인 구조가 조직 안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성희롱 관련 경험이 있는 피해자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고 후 불이익이 우려되고 사내 처리 제도를 믿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원하는 것이 뭐냐고요?

 

여성이 원하는 것. 포스코 측은 난제라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정답은 정말 단순했다. 바로 이런 그릇된 구조의 변화였다. 여성은 남성 위주의 폐쇄적인 조직 문화가 변해야 한다고 했다. 더 이상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사건의 파장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으면서도 여성이 버틴 이유였다. 

 

이번 보도는 전적으로 여성의 의지와 용기가 이뤄낸 결실이다. 거대 기업에 맞서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성의 용기가 헛되지 않도록, 포스코가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낼 때까지 관심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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