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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령 방송인 故송해 씨가 세상을 떠난 뒤 <전국노래자랑>의 MC는 공석이 됐다. 누가 국민 MC의 후임을 이을지 관심이 집중됐고 결국 그 주인공은 김신영 씨로 낙점됐다. 그가 <전국노래자랑>의 새 MC가 되기까지의 뒷얘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여기는 막내가 20년 차입니다.”
<전국노래자랑>의 후임 MC가 결정되고 제작진과의 첫 미팅 때 회의실로 들어오는 김신영 씨에게 처음 건넨 말이다. 지역 출장이 많은 프로그램이다 보니 피디 여러 명이 나눠서 연출하는데, 최고참 선배님은 퇴직이 얼마 안 남은 <전국노래자랑>의 산증인이시다. 다른 선배님들도 KBS 예능국에서 오래 일하신 분들이기에,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비교적 젊은 제작진과 일해 온 김신영 씨에게 아직은 <전국노래자랑> 제작진의 위용은 다소 어려워 보일 수도 있고, 예의를 차리느라 어색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농담조로 던진 말이었다.
PD들 역시 항상 송해 선생님을 모시며 일하다 보니, 젊은 기수가 MC를 맡고 함께 회의하는 것이 생경한 분위기였지만 김신영 씨가 <전국노래자랑>에 임하는 마음이 즐겁고 열정적이라는 느낌을 받고 곧 화기애애해졌다.
앞서 얘기한 고참 선배님이 또 재밌는 얘기를 들려주셨다. “예심 때 곧잘 하더라도 녹화 때 카메라와 관중 앞에 서면 정신을 잃는 출연자 분들이 많아요. 어떤 분은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데, 얼마나 긴장했는지 자기 이름도 까먹고 ‘00구에서 치킨집 하는… 접니다!’라고 하더라고요.” 회의실에는 곧 웃음이 가득 찼다. <전국노래자랑>이 만드는 웃음의 색깔이 고참 선배님이 전해 준 에피소드에서 느껴졌다.
지역민에게 사랑 주고, 받을 사람
매주 일요일 낮 12시 10분, 우리는 42년 동안 변함없이 송해 선생님이 “전국~노래자랑~”을 외치는 것을 보면서 컸다. 지역 출장을 가서 식당이나 목욕탕에 들르면, <전국노래자랑>으로 TV 채널이 고정된 경우가 다반사였다. ‘목포의 눈물’, ‘영일만 친구’, ‘부산 갈매기’ 등 지역민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는 출연자는 한 명쯤 꼭 출연시켰다. 각종 지역 특산물이 방송에 나오고, 송해 선생님은 언제나 눈을 지그시 감고 전통의 맛을 음미하고, 지역민의 자긍심을 지켜주셨다. 그리고 그런 송해 선생님이 식당에 들르면 정성스레 담근 술이며 반찬이 반상에 가득 채워졌다. 그렇게 사랑을 줬고 사랑을 받는 사람이 바로 <전국노래자랑>의 MC였고 앞으로도 그래야 했다.
MC 선정 회의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흠이 없고 맑은 사람, 힘겨운 여정을 즐겁게 함께할 수 있는 사람, 남녀노소 웃기거나 안 웃기거나 다 받아주며 놀아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재미있고 능력 있는 후보는 많았지만 <전국노래자랑>에 최우선으로 임하며, 진심으로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빼고파>에 출연했던 김신영 씨와 인연이 닿았다. 조심스레 MC에 관심이 있는지 물어봤는데 예상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김신영 씨는 “처음 코미디언 시험을 봤던 곳이 KBS이고 <스타 골든벨>에서 ‘모팔모’ 성대모사를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어요. <청춘불패>로 신인 예능상을 받기도 했고요”라고 했다. 그렇다. 김신영 씨에게 늘 처음으로 기회를 준 곳이 여기 KBS였던 것이다.
“<전국노래자랑> MC가 되면 어떻게든 스케줄을 빼서 녹화 일정에 제가 맞추겠습니다.”
<전국노래자랑>은 지역 상황에 맞춰 보통 화요일, 토요일 녹화하는 게 수십 년간 이어온 루틴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MC를 물색하다 보니 다들 일정이 빡빡한 후보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래서 MC 스케줄에 맞춰 녹화 일정도 조정해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김신영 씨의 한마디는 참으로 속시원했다.
KBS 예능센터장님과 담당 CP, 그리고 담당 PD들이 매주 여러 후보를 두고 회의를 거듭한 끝에 최종적으로 김신영 씨가 MC로 낙점됐다. 그리고 언론에 공개하자마자, ‘신박’하고 ‘찰떡’이라는 반응이 쏟아져 나왔고 김신영 씨는 9월 브랜드 평판 1위를 기록했다. 예상보다 뜨거운 반응에 제작진은 살짝 흥분했고, 앞으로 어떻게 김신영 씨와 <전국노래자랑>의 앞길을 열어나갈까 고심에 고심을 기울였다.
젊어진 무대를 선보이자
감사하게도, 첫 방송의 소임은 내게 주어졌다. 막내 PD인 만큼 더 젊어진 분위기의 <전국노래자랑>을 선보이란 주문이었다. 송은이 씨와 김신영 씨가 함께한 미팅에서 첫 방송 구성과 내용을 설명했는데, 오프닝을 평소 어머니처럼 대해 주시는 양희은 씨가 열어 주며, 새로운 MC가 된 김신영 씨를 소개하고 응원의 덕담을 해 주시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김신영 씨와 친한 연예인이 있으면 우정 출연해서 일반인들처럼 ‘땡’도 맞고, 장기자랑도 하면 재밌을 것 같다고 했더니, 즉석에서 이계인 씨를 추천해 주었다. 함께 모팔모 성대모사도 하고, 직접 키운 닭이 낳은 달걀도 선물하면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겠다 싶었다.
트로트 외의 장르를 부르는 초대가수도 섭외하고 싶었다. 보통은 <전국노래자랑>은 트로트라고들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예심 때 2030 세대가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는 에일리의 ‘보여줄게’이고, 요즘 미취학 아동들은 아이브의 ‘러브 다이브’를 가장 많이 부른다. 전통적으로 노라조의 ‘슈퍼맨’도 인기곡이고 방탄소년단, 싸이, 아이유의 노래도 많이 나온다. 힙합을 하는 지원자도 꼭 있다. 전 국민이 아는 인기곡이거나, 마을 회관이나 노래방에서 혹은 지역의 동호회에서 함께 놀 때 부르는 노래, 이런 노래들이 객석 반응도 훨씬 좋다. 트로트도 좋지만, 다른 장르라 해서 나쁠 것도 없다. 이런 섭외 방향에 맞춰 에일리와 브레이브걸스를 추가로 섭외했고, 다들 흔쾌히 응해줬다.
마침내 9월 17일 경기도 하남시 녹화 날, 미사경정공원에 시민들과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오전까지 내리던 비가 그치고 객석 의자에 맺힌 물방울에 햇빛이 반짝거리는 청명한 하늘이었다. 이날 김신영 씨는 오전 9시부터 녹화가 끝나는 시간까지 숨돌릴 틈 없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하남시 본선 진출자들의 리허설을 꼼꼼히 챙기고 대본 리딩을 한 후, 바로 50여 명의 기자가 참석한 간담회에서 인터뷰를 진행했고, 하루 종일 <연예가중계>를 비롯한 다수의 촬영팀이 따라다녔다. 점심도 거르고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녹화할 때 당 떨어지면 안 되는데…” 하며 걱정하자 “괜찮아요. 식사하고 탈 나면 안 되니까요. 행사 많이 해봐서 식사 거르고 하는 데 익숙해요”라고 제작진을 안심시켰다.
양희은 씨가 현장에 도착하고, 막 기자간담회를 끝낸 김신영 씨가 함께 음향 부스에서 리허설을 했다. 급한 와중이었지만 함께 ‘행복의 나라’를 부르는 대목에서 연출자인 나도, 김신영 씨도 울컥하는 감정이 든 건 왜였을까.
새로운 MC의 데뷔 무대
드디어 녹화가 시작됐다. 미사경정공원의 푸르고 맑은 하늘 아래 새로운 MC의 데뷔를 지켜보는 많은 이들의 총총한 눈빛들이 빛났다. 전주가 흐르며 새소리가 들리고 양희은 씨의 ‘참 좋다’가 울려 퍼졌다
“햇살이 참 좋다 / 네가 있어 참 좋다 / 언제나 내 곁에서 따스한 미소 짓는 네가 고맙다”
김신영 씨에게 하는 말, 새로운 MC에게 건네는 첫 인사였다. 두 번째 노래는 김신영 씨와 양희은 씨가 함께 불렀다.
“장막을 걷어라 / 나의 좁은 눈으로 / 이 세상을 떠보자”
리허설 때도 그랬건만, 녹화 때도 여지없이 김신영 씨의 눈동자에 눈물이 맺혔다.
“얼마나 떨리겠어요. <전국노래자랑>의 어린싹이라고 생각하시고 보듬어 주세요”라며 양희은 씨가 격려해 줬고, 이날 객석은 여느 때처럼 즐거운 분위기에서 김신영 씨의 데뷔 무대를 지켜봤다.
김신영 씨가 “전국노래자랑이라는 거목 옆에서 조금씩 자라나는 나무가 되려 합니다. 시청자분들이 막둥이 하나 키운다는 생각으로 예쁘게 봐주셨으면 합니다”라고 했듯이 우리도 새로운 MC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켜봐 주길 바랄 뿐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시인의 <풀꽃>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