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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대통령 전용기는 떴고, MBC는 타지 못했다. 지난 11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시아 순방 및 G20 참여를 앞두고, 대통령실은 이번 순방에 ‘중요한 국익이 걸려있기 때문에’ MBC 기자의 전용기 탑승을 배제한다고 통보했다. 이번 대통령실의 결정은 지난 9월 대통령의 미국 방문 중 MBC가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을 보도한 것을 포함해 ‘왜곡·편파 보도가 반복돼 온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한다. 국익과 언론 보도의 관계는 이미 수도 없이 많이 다뤄진 저널리즘의 고전적 주제이기도 하지만, 과연 무엇이 국익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뉴욕타임스가 베트남 전쟁을 앞두고 미 국방성이 작성한 기밀문서를 폭로한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s)’ 사건, 그리고 국내에서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 조작을 폭로한 2005년 MBC <PD수첩> 사태 등 이미 국익과 언론 보도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 사례를 통해 더 이상 이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많은 논의가 있었으며, 이후 법적 판결을 통해서도 국익 때문이라고 해도 통제될 수 없는 언론 자유의 정당성이 반복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MBC는 배제된 채 전용기는 떴다. 이미 MBC가 헌법소원을 제기할 것을 밝히기도 했지만, 이번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 사건은 언론 자유와 국익의 관계에 헌법적 판단까지 요구하는 큰 파장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어쩌다 이런 사태까지 나타나게 된 것일까? 절대화된 국익이 다른 민주적 가치를 억압하는 우월한 것이 될 수 없음을 이미 오래전에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실의 모습이 나타난 데는 그 근본적 배경에 우리 언론의 존재론적 위기가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의 형식적 객관주의 관행, 사실 판단 책임 다하지 못하게 해
언론이 무엇을 보도하고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는 근본적으로 우리 공동체의 공공선과 관련해 언론 스스로의 윤리적 판단을 요구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공공선은 개인의 자유, 민주주의, 또는 행복한 삶과 같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부정될 수 없는 절대 선의 가치들과는 달리 현실적 제약과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서로 다른 이해와 주장들의 타협과 조정을 통해 찾아지는 담론적 성격을 갖는 것이다. 국익은 국가 공동체의 공공선으로 규정될 수 있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절대 선으로 간주되는 다른 가치들에 의해 도덕적 제약이 되거나 갈등하는 가운데 실천적 이성의 합의와 조정 담론 과정에 의해서만 정의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실천적 이성을 통해 공공선이 구성된다는 것은 국익에 대해서 다양한 논의와 정당화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의 공공선으로서 무언가가 국익으로 규정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언론이 공론의 장으로서 자신 본연의 덕성을 수행하는 가운데 그 과정에서 논의되고 사후적으로 정당화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공론장으로서 언론이 가져야 하는 덕성이란 공동체의 참 또는 거짓의 사실 판단에 기반한 실천적 합의가 발생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논의와 충분한 근거를 제공해야 하는 책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동안 우리 언론의 오래된 형식적 객관주의 관행이 공론장 본연의 임무에 해당하는 사실 판단의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객관주의라는 허명 속에서 본연의 사실 판단의 책임을 미뤄둔 채 실제 추구해야 하는 사실 추구의 책임을 기계적 균형성으로 대체해 모든 사실 판단의 사안을 논란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리는 모습이 바로 현재 언론의 무력함을 만들어낸 근본적 이유일 것이다. 하버마스가 강조한 것처럼,1) 마치 무지의 베일 뒤에 가려진 무언가를 판단하듯이 언론이 참, 거짓의 판단을 배제한 채 자신의 공론장의 책임을 미뤄두는 것은 결국 결과적으로 공공선의 문제를 공동체의 지속적인 갈등의 상태로 남겨두는 것이다.
‘진실 추구’라는 언론의 존재론적 목적에 충실해야
대통령실은 MBC가 ‘바이든’이라고 자막을 달았던 것을 왜곡, 거짓 보도라고 단정하고 있는 듯하다. 다른 수많은 언론사가 해당 발언이 있은 후 ‘바이든’이라고 보도를 했음에도 유독 MBC만을 문제 삼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지만, 과연 MBC가 국익을 고려해 ‘바이든’이라고 자막을 달지 않았다면 과연 모든 문제는 사라졌을까? 또는 대통령실의 해명 이후, 이를 ‘바이든’ 또는 ‘날리면’이라고 확정하지 않고 보도한 언론들에 의해 우리의 국익은 보호된 것이었을까? 각기 다른 주장(예를 들면, ‘바이든’인가 ‘날리면’인가)이 있을 때, 이에 대해서 언론이 마치 무지의 베일 뒤에 놓인 것처럼 무지한 상태를 가정하는 것은 결국 무책임이며 이는 그것이 언론이 아니라 해도 또 다른 사회 갈등의 시작일 뿐이었을 것이다. 언론이 기계적 중립의 원칙하에서 무엇이 사실이었는지를 찾으려 하지 않고 각기 다른 견해를 중립적으로만 보도한다면 그것은 어떠한 공공선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쟁과 갈등도 해결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계적 객관주의 보도는 서로 다른 주장을 일시적 비례하게 보도한 것일 뿐 근원적 판단 조건(예를 들면, 진실성 판단에 따른 보도여야 하는가? 또는 국익에 부합하는 보도여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으로 또 다른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임시적 조치(modus vivendi)에 그치게 될 뿐일 것이다. 실제로, 현실에서 벌어지는 대통령실의 해명과 언론의 비속어 보도 이후 그것이 결국 대통령실 전용기 탑승 배제와 국익과 언론 자유 침해 논란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사실 판단의 책임을 배제한 언론과 공공선 논의가 얼마나 허망하고 소모적인가를 다시 깨닫게 된다.2)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Alasdair Chalmers MacIntyre)는 공공선에 있어서 공론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공공선의 논의에서 목적론적 책임을 배제한 채 도덕적 판단을 하는 주체를 허구적이라 했다. 무지의 장막 뒤에서 공정의 저울을 들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저 ‘무자아의 상태’에 놓여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 목적과 책임이 판단 배제된 무자아의 상태에서는 기껏해야 단순히 계산에 의한 판단으로 존재적 책임을 대체하는 소극적 윤리 판단의 주체가 되거나, 실제로는 관료제 통제에 사로잡힌 판단의 ‘유령적 자아’로 귀결된다는 것이다.3) 매킨타이어의 주장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바이든’과 ‘날리면’의 논란 속에서 우리가 경험한 것은 대통령실의 발표 이후 하루 만에 정치 관료의 능숙한 대응에 ‘유령적 자아’의 언론이 얼마나 쉽게 포획되는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또한, 마치 자신의 존재 목적과 덕성을 잃어버린 주체가 얼마나 무력해지는지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국익이란 오래된 이름의 관료적 기술 앞에서 전용기 탑승 여부와 상관없이(즉, 탑승한 언론의 초라함을 포함해) 우리 언론이 너무나 무력하게 자기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있는 모습이다.
결국, 우리가 확인하게 되는 것은 언론에 주어진 사명은 ‘진실 추구’이며 이는 다른 어떤 가치에 비해 우선하는 언론의 존재 목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진실 추구라는 언론의 존재론적 목적 위에 충실하게 서 있을 때만 다른 무엇에 쉽게 잠식되지 않는 스스로의 존엄과 덕성을 유지할 수 있음을 무심하게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면서 다시금 깨닫게 된다.
1) 김미영, 《현대공동체주의: 매킨타이어, 왈저, 바버》, 한국학술정보, 2006.
2) 언론의 자유와 국익에 대한 논쟁과 관련해, 2022년 10월 4일 MBC <뉴스하이킥>에 출연한 저널리스트 변상욱은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언론 종사자에게 진실만한 국익은 없습니다. 언론은 진실을 보도하고 그게 진실이었다면 그다음은 국민이 그걸 가지고 건강한 여론을 위해서 통제해 나가고 조정해 나가는 거지 이걸 정부가 얘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요. 그다음에 언론이 어떤 것을 보도하는 문제에 있어서 어떤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마치 범죄처럼 얘기하는데 국가의 존립과 현존하는 명백한 위험이 없는 한 국민은 진실을 알아야 됩니다. 국민이 진실을 아는 것이 위험한 일이라면 그걸 어떻게 해석해야 될지 한번 저도 묻고 싶은 상황인데 국민이 진실을 알면 위험해진다, 이게 뭐라고 그럴까요. 이걸 어떻게 얘기하면 되겠습니까?” https://v.daum.net/v/20221004191617637?f=o
3) MacIntyre, A., 《After virtue: A study in moral theory》, 2007, 이진우 옮김, 《덕의 상실》, 문예출판사, 2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