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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됐다. 남미의 수리남에서 활동했던 마약왕 조봉행을 검거한 국가정보원 요원과 민간인 조력자 K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 사건은 11년 전 중앙선데이에 최초 보도된 바 있다. 영화보다 더 극적인 실화를 상세히 다뤘던 당시 기사의 취재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아, 그런 사연이 있었어? 그런 건 알려야지. 내가 취재할 수 있게 소개해줘. 자세히 기사를 쓸게.”
11년 전인 2011년 9월 초였다. 중앙일보에서 발행하는 일요판 신문인 중앙선데이 편집국에 파견돼 근무할 때였다.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에서 언론 홍보를 담당하던 후배가 인사차 찾아왔다. 일간지 기자 출신으로 대학 동문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그해 6월 언론에 크게 보도됐던 한국인 출신 마약왕 조봉행의 체포와 구속 기소 얘기가 나왔다. 후배는 “사실 조봉행 체포 과정에서 국정원이 한 역할이 상당히 크다.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그렇게 어렵게 이뤄낸 성과가 전혀 알려지지 않아서 서운해 하는 직원들도 많다”고 아쉬워했다.
실제로 관련 기사들은 조봉행의 마약 밀매와 악행을 다루고 있지만 어떻게 체포됐는지에 대해선 ‘국제 공조’란 단어로 모호하게 표현돼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후배에게 “그 작전을 편 관계자를 소개해 달라. 내가 자세하게 보도하겠다. 이런 성과는 알려야 한다. 국정원이 우리나라와 국민을 위해 이런 엄청난 일을 했다는 걸 알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후배는 내부 논의를 해보겠다고 했다. 시간이 좀 흐른 뒤 취재에 응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내친김에 조봉행 검거 작전에 나섰던 국정원 요원, 그리고 민간인 조력자 K씨를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K씨가 바로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의 6부작 드라마 <수리남>에서 하정우 배우가 맡았던 ‘강인구’ 역할의 실존 인물이다.
국정원 요원 통해 만난 K씨
국정원 요원과 K씨를 만나기 전에 관련 기사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추가로 확인해야 할 부분들을 정리했다. 역시나 국제 공조란 단어 속에 묻혀 있는 사연들이 가장 궁금했다. 마침내 2011년 9월 22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인터뷰가 진행됐다. 당시 40대 초중반이었던 K씨는 가무잡잡한 얼굴에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이었던 기억이다.
얘기는 조봉행 검거 작전과 K씨가 합류하게 된 사연, 그리고 죽음의 고비들로 이어졌다. 사실 남미의 수리남이라는 나라부터 낯설었던 게 사실이다. 조봉행은 선박냉동기사로 일하던 시절 수리남에서 8년간 체류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국내에서 빌라 건축 관련 사기로 수배를 받던 중 과거 인연이 있던 수리남으로 도피해 그곳에서 대통령을 비롯한 군부 실세, 경찰 고위직 등과 두터운 친분을 맺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국정원 요원은 조봉행이 마약에 손대게 된 과정을 설명해 줬다. 부분적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조봉행은 처음부터 마약 밀매를 한 건 아니었다. 생선 가공 공장을 통한 면세유 밀매와 밀입국자 알선 등으로 돈을 벌었다고 했다. 그러나 면세유 공급에 차질이 생기고, 미국 밀입국 알선도 단속이 강화되자 마약 거래에 나서게 됐다는 설명이었다. 유럽이 주 공략 대상이었다.
여기서 의문이 생겼다. 조봉행이 나쁜 짓을 하는 건 맞지만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건 아닌 듯한데 왜 국정원이 검거에 나선 걸까. 국정원 요원의 답은 이랬다. 우선 조봉행이 수리남의 한인 교포를 통해 주로 국내에서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이나 주부 등을 포섭한 뒤 이들을 마약 운반책으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1인당 소지량이 제한된 보석 원석을 남미에서 유럽으로 운반해주면 400~500만 원을 준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이렇게 모은 인원만 100여 명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들이 운반한 건 단순한 보석 원석이 아니었다. 그 속엔 조봉행 일당이 숨겨 놓은 마약이 있었다. 이들에게 속은 사람들 중엔 단속에 걸려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한 경우도 있다. 전도연 배우 주연의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이 바로 이 얘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보고 있었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었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조봉행이 한국에서 마약을 유통하기 위해 판로를 모색하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고 했다. 이미 조봉행은 일본과 마약 거래를 하고 있었다. 국정원 요원은 “더 이상 조봉행을 그냥 둬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때가 2007년 10월이었다. 그러나 막상 조봉행을 체포하기로 방침을 세웠지만 수리남과는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은데다 마약 조직과 연계 가능성이 큰 수리남 치안 당국의 협조를 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했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하던 시점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K씨였다. 그는 친구와 함께 선박용 특수용접봉 판매 사업을 하기 위해 수리남을 찾았다가 조봉행 일당에 속아 사실상 전 재산을 날린 상태였다. 어려움에 처하게 된 K씨가 주베네수엘라 한국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를 했다는 사실을 국정원이 포착했다. 국정원은 K씨에게 조봉행 검거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고, 그는 고심 끝에 수락했다.
K씨는 이후 위험한 고비를 무수히 넘겼다고 했다. 자신에게 전향을 약속했던 조봉행의 부하로부터 배신당해 죽음의 문턱까지 가기도 했다. K씨는 인터뷰에서 “그땐 진짜 여기서 끝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더라”고 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을까 싶은 임기응변으로 조봉행을 오히려 윽박질러 위기를 넘기게 된 순간이었다. 수리남은 치안이 불안한데다 K씨 자신도 신변에 위협을 느낀 탓에 잘 때도 늘 권총을 머리맡에 뒀다고 했다. 권총을 5정이나 구입했다는 말도 전했다.
아이들에게 떳떳한 아빠이고 싶어서
국정원 요원과 K씨가 전해준 조봉행 체포 과정은 그야말로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조봉행을 눈여겨보던 미국 마약 당국도 전폭적인 협조를 약속했지만, 수리남 현지에서의 체포 작업에는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중무장한 마약 조직과의 대규모 총격전을 우려해서다. 당초 수리남 현지 체포를 우선순위에 뒀던 국정원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바꾼 작전이 해외 유인이었다. 처음엔 미국령 괌으로 조봉행을 불러내려고 했으나 조봉행이 완강히 거부해 실패했다. 그래서 다시 제안한 게 브라질 북부의 벨렝(Belm)이었다. 이번엔 브라질 치안 당국이 문제를 제기했다. 벨렝은 수리남에서 가까워 마약 조직의 영향력이 미치는 지역이라 위험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고심 끝에 정한 곳이 상파울루(S o Paulo)였다. 어르고 달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조봉행을 불러내는 데 성공했고 드디어 그의 손에 수갑을 채울 수 있었다. 국정원 요원은 “정 안되면 조봉행 제거가 최후의 계획”이었다고 했다. K씨는 인터뷰 내내 차분하게 당시 상황을 전해줬다. 그에게 왜 그토록 어려운 일을 수락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K씨는 “나중에 아이들에게 떳떳한 아빠이고 싶어서 그랬다”고 답했다. 그는 1남 2녀를 두고 있었다.
취재를 끝낼 무렵 그에게 다시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생활하실 건가요? 어려움이 많으실 텐데….” 그의 안전도 우려되고 생계도 걱정되는 게 사실이었다. 그러자 K씨는 “국정원에서 도와주겠죠”라며 함께 어려움을 헤쳐 왔던 국정원 요원을 웃으며 바라봤다. 그렇게 인터뷰는 끝났고, <수리남 군경이 마약왕 비호, 잡을 방법은 오직 외국 유인뿐>, <“국정원과 접촉 들켜 죽을 고비… 자나깨나 권총 지니고 살았다”>는 제목으로 2011년 10월 2일 자 중앙선데이에 기사를 썼다. 얼마 뒤 나름 이름이 알려진 영화감독이 영화로 제작하고 싶다는 의사를 알려왔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러나 아마도 K씨의 신변이 노출될 위험 등 여러 이유로 성사되지 못한 듯싶었다.
문득문득 K씨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인터뷰 때도 그의 신변 안전을 고려해 연락처는 물론 이름도 묻지 않았다.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당시 취재 수첩엔 그의 성(姓)과 출생 연도만 적혀있을 뿐이다. 그러다 조봉행 검거 작전을 모티브로 한 <수리남>이 제작돼 방영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순간 ‘아 저 내용 내가 기사 썼던 건데…’라는 생각에 반가움이 들었다.
그리고는 영화 제작에 얽힌 기사와 감독 인터뷰 등을 찾아봤다. 거기서 윤종빈 감독이 K씨를 두 번인가 만났다는 내용을 읽었다. 그래도 무탈하게 지내고 있나 보다 하는 생각에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조봉행이 살아있는데 괜찮을까 하는 걱정도 됐다. 그리고 며칠 뒤 조봉행이 몇 년 전 수감 중에 지병이 악화돼 사망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당시 취재한 K씨와 국정원의 활약상은 지금 생각해도 한 편의 영화다. 감사하고 또 그들의 안녕을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