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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창은 곧 돈이다. 사람이 살아선 안 되는 공간에서도 돈에 따라 삶의 등급이 나뉜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창의 가격은 얼마일까. 창을 통해 삶의 격차를 들여다본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의 <빈부격,창> 취재기를 따라가 본다. 편집자 주
17년 전, 서울 관악구에 상경해 고시원 방을 얻었을 때였다. 당시 그곳은 복도로 나 있는 내창이 기본형이었는데, 여기에 5만 원을 더 주면 옆 건물 벽이 보이는 외창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20대 청년에게 5만 원은 큰돈이었다. 밥을 먹어도 10끼는 족히 때울 금액이었다. ‘창문 하나 없는 게 뭐. 바람이야 밖에 나가 쐬면 되고’라는 생각으로 외창을 포기했다. 그때는 포기한 게 시원한 공기뿐이라고 착각했다. 날이 흐린지 비가 오는지 알 수 없었다. 어느 날은 낮, 밤조차 가늠하지 못했다. 옴짝달싹 못 하게 비좁고 딱딱한 침대에 누워 이게 사는 것인가 자문하는 밤이 늘었다. 옆방 그리고 윗방 청년 역시 같은 생각으로 잠 못 들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부자와 가난한 이의 창, 무엇이 다른지
창은 곧 돈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창의 개수와 폭을 세어 세금을 매겼다. 그 후로 500여 년이 흐른 지금, 2022년 한국은 어떨까. 어쩌면 여전히 창이 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고 있지 않을까. 이 같은 의문을 갖고 <빈부격,창> 기획을 시작했다. 창이 없는 쪽방과 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부자와 가난한 이의 창은 무엇이 다른지, 창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파헤쳐 보기로 했다.
기획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이 공동으로 개설한 기획 탐사 디플로마 과정 팀원들이 참여했다. 제정임, 심석태,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의 조언을 바탕으로 취재 방향을 재정비했다. 이후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은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두 달간 서울·경기 지역의 고급 주택과 아파트, 다세대주택, 고시원, 쪽방을 돌며 이곳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취재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현실은 더 고됐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 집에 들어가 창을 보는 건 쉽지 않았다. 부탁도 마음의 빗장이 풀려야 가능한 일이었다. 3.3㎡(1평) 방이 삶의 전부인 이들의 경계는 더욱 심했다. 첫 취재지로 삼은 서울 용산 동자동 쪽방촌에서는 일주일가량을 인사만 하고 돌아다녔다. 얼굴을 익히고 신뢰를 줘야 했다. 가벼운 질문에도 대여섯 명의 거주민이 몰려와 인상을 썼다. 그래도 매일 가서 사는 얘기를 들었다. 밥도 같이 먹었다. 날이 거듭되자 그들의 대답이 길어졌다. 표정과 자세도 편해졌다. 나중에는 “비 오는데 왜 왔느냐”고 먼저 인사를 하는 이도 생겼다.
그렇게 한 달 정도 동자동, 종로 창신동·돈의동, 영등포 쪽방촌을 돌았다. 쪽방의 창 크기와 재질, 성능을 꼼꼼히 살폈다. 기계를 이용해 조도와 공기 질, 온·습도, 소음 차단 정도 등을 기록했다. 안타까웠던 건 데이터 쌓기가 무의미한 방이 많았다는 것이다. 작은 창이 있어도 세간살이를 쌓아두어 제 기능을 못 하는 곳이 태반이었다. 빛도 바람도 들지 않는 곳에서 묵은 공기와 악취에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었다. 실내로 난 창도 없는 이른바 ‘먹방’도 여럿이었다. 이곳이 감옥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은 열려있는 문 하나였다. 창 있는 쪽방은 26만 원, 먹방은 18만 원이었다. 사람이 살아선 안 되는 공간에서조차 돈에 따라 삶의 등급이 나뉘고 있었다.
청년들이 사는 대학가 원룸촌, 고시원도 다르지 않았다.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이 돌아본 30여 곳의 고시원에서 크기, 개수, 채광 등 여러 기준에 적정히 들어맞는 창을 찾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특히 도심에 있는 원룸이나 고시원들은 건물 간 이격거리(離隔距離)1)가 너무 좁았다. 주변 건물과 다닥다닥 붙어있어 창을 열면 바로 옆집이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조망은커녕 사생활 보호조차 어려웠다. 우리가 만난 청년들은 가진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은 전부 이렇다며 현실을 태연하게 받아들였다. 월세를 줄일 수만 있다면, 창이 없어도 참겠다는 이도 있었다. 청년들이 돈 때문에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자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쪽방의 ‘햇살 값’은 50만 원
주거 형태별 창의 면적, 개수에 대한 통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은 발로 뛰며 데이터를 직접 수집·기록했다.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아파트와 쪽방 거주자를 밀착 취재해 창에 따라 달라지는 하루를 비교했다. 에너지 고지서를 확보해 창이 작은 쪽방, 큰 창을 가진 패시브하우스2)의 에너지 격차도 조명했다. 여러 세대가 계량기를 같이 쓰는 쪽방 특성상 에너지 고지서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수십 일간의 탐문 끝에 고지서를 가진 쪽방 거주자를 만났다. 주거 면적은 21배나 벌어지지만, 에너지 비용 차이는 4,410원에 불과하다는 내용을 기사에 담았다.
또 취재를 진행하며 쌓은 창 데이터를 통해 ‘햇살값’을 뽑아냈다. 햇살 값은 창문 1㎡당 누릴 수 있는 햇살의 가격이다. 창의 총면적 대 월 주거비용 비율을 계산했다. 이후 창의 면적을 1㎡로 가정하고, 월 주거비용을 치환해 개념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 비싼 햇살 값을 내고 있다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계산해보니 한 쪽방 햇살 값은 50만 원까지 치솟았다. 고급 아파트는 6만 2,181원에 그쳤다.
기획의 최종 목표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창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현행법에는 창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건축, 안전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의견과 해외 법령을 참조해 안전과 인간 존엄성을 지킬 창의 기준을 만들었다. 주거 환경 개선과 관련해 새로운 척도를 제시한 것이다.
취재나 기사 작성만큼 고민했던 건 표현과 전달이었다. 방대한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방법을 연구했고, 결론은 인터랙티브 페이지였다. 특히 부에 따라 으레 벌어질 것이라 여겼던 삶의 격차를 이미지와 숫자로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제작&퍼블리싱 에디터, 그래픽 디자이너, 영상 CG 제작자, 영상 PD, 취재기자, 사진기자 등이 모여 여러 차례 회의를 거듭한 끝에 3개의 인터랙티브 페이지를 제작했다. <당신의 햇살은 얼마입니까>, <공기도 빛도 공짜가 아니다>, <당신에게는 4시간의 햇살이 필요하다>가 그것이다.
<당신의 햇살은 얼마입니까> 편에서는 각종 사진과 숏다큐, 360도 VR 카메라 이미지를 담아 독자들이 컴퓨터 앞에서도 열악한 주거 현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했다. <공기도 빛도 공짜가 아니다> 편에서는 주택 면적, 창 면적 등에 따라 조도, 공기 질, 소음 상태가 어떻게 차이 나는지 데이터를 비교했다. 이어 용산구를 특정해 구 내에 있는 고급주택, 아파트, 원룸, 쪽방을 추리고 이곳들의 주거 면적, 창문 총면적, 주거 면적 1㎡당 창문 면적, 햇살 값을 계산해 보여줬다. 또 쪽방촌에 사는 30명을 대상으로 우울 정도를 측정하는 면접조사를 진행, 질문에 따라 이들의 답변을 음성으로 들을 수 있도록 구현했다. 마지막으로 <당신에게는 4시간의 햇살이 필요하다> 편에서는 전문가들이 제언하는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 조건의 창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제작했다.
창 없는 삶에 대한 사회적 고민 필요해
열악 주거 가구가 보는 세상이 얼마나 어둡고 좁은지, 이러한 환경이 한 사람의 생에 미치는 다양한 문제는 무엇인지 짚어보면서 가장 신경 쓴 것이 있다. 어렵게 방문을 열어 본인의 모든 것을 공개한 이들에게 상처 주지 않는 글을 쓰는 것이었다. 단어와 표현 하나에도 고민을 거듭했다. 이들의 고통을 세상에 알리되 존엄성은 지켜줄 이미지를 거르고 또 걸렀다. 취재진 입장에서 최대한 노력했지만, 막무가내로 달리는 악성 댓글까지는 막지 못했다. 혹여라도 댓글을 보고 상처받은 취재원이 있다면 깊이 사과드린다. 독자가 맥락에 맞지 않는 의견을 달았다면, 그 역시 기사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우리의 부족이다.
쪽방촌을 취재하면서 자주 들었던 말은 “이렇게 해봤자 달라지는 것 하나 없다”였다. 손사래 치는 그들을 설득하는 방법은 특별할 게 없었다. 계속 설명했다. 취재 이유를 설명하고, 취재원의 집과 창이 기사에 어떻게 쓰일 것인지 설명했다. 그리고 이런 보도가 쌓이면 사회가 변한다는 걸 설명했다. 하루에 끝나지 않으면 다음 날 다시 가서 말했다. 취재원들은 결국 마음의 문을 열었다. 기자들의 노력이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가 했던 설명 속에서 아주 작은 희망을 봤으리라 생각한다.
바람 한 점 드나들지 않는 방을 피해 누군가 거리에 앉아 깊은 숨을 내쉰다. 어쩌면 오늘 우리가 지나쳤을지 모르는 이웃이다. <빈부격,창> 기획을 통해 사회가 창 없는 삶을 생각하고, 이들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1) 주거시설 및 도로와 위험물, 혐오시설 간의 거리를 정한 것. 편집자 주 <출처 - 한경 경제용어사전>
2) 첨단 단열공법을 이용해 에너지의 낭비를 최소화한 건축물. 편집자 주 <출처 - 두산백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