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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다. 경제적 활기에 종종 가려지는 사실이지만, 엄연히 공산당이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있으며 언론의 자유도 또한 낮다. 국경없는기자회가 매년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에서 최근 몇 년간 베트남은 174~175위를 기록했다. 중국과 같은 ‘매우 나쁨’ 국가로 분류된다. 최근 한국은 41~43위로 영국, 캐나다, 미국, 호주, 프랑스 등과 동일한 ‘만족스러움’ 분류에 해당한다. 그 이상인 ‘좋음’에 속하는 나라는 노르웨이, 덴마크 등 한 손에 꼽히는 수준이다. 반면 베트남보다 상황이 안 좋은 국가로는 중국, 미얀마, 투르크메니스탄을 꼽을 수 있다. 이 같은 현황만 보더라도 베트남과 한국의 언론 환경은 완전히 딴판이다.
국제부에서 아시아 지역을 담당하다 보니 베트남 매체를 종종 찾아본다. 그때마다 ‘개성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당 주요 인사의 행적이나 개발 계획, 해외 투자 유치 등에 관한 소식을 제외하면 일반 시민의 목소리가 반영된 생생한 기사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렇듯 현지 매체만 봐서는 베트남에 관한 발제를 하기가 힘들다.
이 같은 선입견을 안고 지난해 10월 30일부터 6박 7일간 2022년 KPF 디플로마 ‘베트남 전문가’ 과정 해외 연수의 일환으로 베트남 유수 매체 및 유관기관 등을 방문했다. 방문한 곳은 하노이와 호찌민시에 있는 베트남TV(VTV), 인민일보(Nhn Dn), 베트남뉴스통신(VNA), 베트남 저널리즘 및 커뮤니케이션 아카데미(AJC), 사이공해방(사이공자이퐁) 등이다. 절대 다수의 매체가 공산당 혹은 각 정부 부처에 소속된 기관지인 베트남에서 언론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기자는 어떠한 사회적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베트남 언론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봤다.
여성 비율 높은 베트남 언론계
막상 가보니 ‘세계 어디서나 기자는 기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 언론인들이 말하는 핵심, 즉 언론의 책임과 기자의 사회적 역할은 한국 기자들이 생각하는 바와 다르지 않았다. VTV, 인민일보, VNA, AJC 그리고 사이공자이퐁 등 어느 매체를 가더라도 정확한 사실 보도를 강조했다. 사이공자이퐁의 예를 들면, 전문성, 신뢰성, 정확성 같은 전통적인 저널리즘의 가치뿐 아니라 온라인에서의 신속성을 중시한다고 했다.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세상에서 정말 검증된 것만 기사화하는 것이 매체의 자부심이라고도 했다. 제보자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한다는 것 또한 같았다.
특히 여러 언론 기관이 “기술과 플랫폼을 잘 활용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페이스북과 유튜브, 틱톡, 트위터가 불러온 새로운 물결에 고민하는 모습이 한국 언론사의 근심과도 겹쳐졌다. 실제 체감한 바로도, 베트남 사람들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뉴스 미디어처럼 운영한다. 일례로 한국 소식을 전문적으로 번역해 올리는 뉴스 페이지도 꽤 성행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전파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번역 및 게시까지의 소요 시간이 정말 짧다. 코로나19 초기에 논란이 됐던 ‘바잉미(반미) 사태’도 문제의 ‘빵 쪼가리’ 발언이 즉각 번역·공유됐다. 이처럼 주요 사건·사고를 비롯한 흥미로운 소식이 전통적인 매체보다는 새로운 경로로 활발히 유통되니, 미래 독자를 잡아야 하는 레거시 미디어로서 고민이 커 보였다.
베트남 매체를 견학하며 기대 이상이었던 면모도 발견했다. 베트남 대표 매체들은 규모 면에서 한국 매체에 뒤처지지 않는다. 베트남 대표 일간지이자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기자 수가 약 800명이라고 했다. 국영 뉴스통신사 VNA의 경우 기자는 1,000명이며 해외 27개 지사에 특파원이 90여 명 파견돼 있다. 이는 한국 연합뉴스를 넘어 중국 신화통신에 비견한다. VNA가 하루에 영문으로 발행하는 기사 또한 60여 건이니, 한국에서 이를 따라잡을 수 있는 매체는 없다. 한국의 KBS에 견줄 수 있는 VTV 또한 무려 9개 채널을 운영하며 해외 10개국, 12개 지사를 운영한다. 직원은 4,000명 규모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점은 우리와 면담하러 나온 언론사 대표, 편집국장(보도국장), 부장 및 에디터급 인사 중 여성의 비율이 상당히 높았다는 사실이다. 어림잡아 평균적으로 절반은 여성이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띄는 차이였다. 한국 언론은 여성 편집국장이 탄생하면 미디어 전문지에 실릴 정도로 아직까지 고위직에서 여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사장이나 이사는 말할 것도 없고, 보직 부장만 놓고 보더라도 여자 선배가 남자 선배만큼 흔하지 않다.
인민일보에 베트남 언론계의 성비를 물어보니 여성 비율이 70%에 이르는 매체도 있다고 했다. VNA에서는 여성이 글쓰기를 잘해서 그런 것이 같다는 ‘농반진반’인 답이 돌아왔다. 사실 성비에 관해 한국 방문단이 ‘진심으로 궁금해서’ 질문한 것에 비하면 답변이 시원하게 나오지는 않았다. 돌이켜 보면 질문을 받는 베트남 언론인 입장에서는 왜 이러한 질문이 나왔는지 의아해했을 수도 있겠다. 그들에겐 너무 당연한 현실일테니 말이다. 왜 여성 기자가 많은지, 베트남의 언론사 조직 문화는 남초적인 특성이 별로 없는지와 같은 궁금증이 여전하다.
호찌민 인민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사이공해방 방문 후 기념 촬영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의 역할은 선전 도구
새로운 언로로 활용되는 뉴미디어
이처럼 언론의 소명과 가치에 관해 국경과 체제를 넘는 공감대가 형성됐음에도 VTV, 인민일보, VNA, AJC와 사이공자이퐁에서 듣지 못했던 말이 있다. 바로 ‘권력에 대한 견제’나 ‘민주주의 수호’, ‘사회적 약자를 비롯한 다양한 목소리 대변’ 같은 것들이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한국에서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건 너무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언론의 존재 이유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가 베트남에서 만난 언론인들은 이 부분을 강조하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언론은 ‘선전’ 도구로 간주되는 경향이 강하다. 공산당이 인정하는 언론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당을 홍보하고 정부의 활동을 알리는 방향에 그친다. 인민일보의 벽면에 걸린 ‘베트남 공산당의 광명이여 영원하라’는 문구, 사이공자이퐁 현판에 적힌 ‘호찌민시 인민과 정권, 당의 목소리’란 소개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한국 기자인 내가 베트남 매체의 기사를 봤을 때 영 재미가 없다고 느낀 이유는 보도 내용이 홍보 자료 같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얌전하고, 나쁘게 말하면 촌스럽다. 한국과 베트남의 정치체제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체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언론의 역할이 무엇이냐를 둘러싸고도 이런 차이가 발생한다.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인민일보 본사 <출처 – 필자 제공>
이번 연수 기간 방문한 베트남 언론사에는 전부 호찌민(Ho Chi Minh) 전 국가주석의 사진이나 흉상, 전신상이 있었다. 호찌민과 마르크스, 레닌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기도 했다. 이를 보며 궁금증이 들었다. 호찌민은 언제까지 살아 있을까? 호찌민은 으레 ‘베트남의 국부’로 소개되곤 하지만, 사실 베트남에서 호찌민의 위상은 그 이상이며 한두 마디로 감히 설명할 수 없는 존재감을 지닌다. 그는 반 세기 전 타계했지만 베트남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자 상징으로서 여전히 살아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입을 열어 해답을 알려줄 것처럼 말이다.
호찌민 전 주석이 베트남 언론의 미래를 어디까지 내다봤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전통적인 뉴스 미디어가 젊은이들로부터 외면당하고, 개개인이 1인 크리에이터로서 활동하는 이 시점에 당과 정부의 기관지가 목표하는 선전의 효과가 점차 줄어들 것은 자명해 보인다. 베트남뿐만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프로파간다로 도배된 관제 미술이 이미 대중의 인기를 잃었듯이 말이다. 선전은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으면 사람들은 보지 않는다.
한국 드라마와 K-POP을 보고 들으며 한국어를 배우고, 넷플릭스에서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자란 베트남의 젊은 세대에게 정치에 대해서만큼은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말라고 하는 건 불가능하다. 문화와 경제는 개방됐지만 정치적 다원화는 요원하고, 시민사회 발달은 더디다. 언로가 다양하지 못하니 불만과 갈등을 정당히 표출하지 못한다. 이 정치적 지체 현상에서 오는 어떤 갈증이 분명히 베트남 사회에 내재한다. 베트남에서 뉴스가 전형적인 뉴스 아울렛보다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해 더 많이 ‘작성’되고 전파되는 데는 이러한 갈증이 한몫하는 게 아닐지 조심스레 가정해 본다. 그렇다면 호찌민 시대의 해법과 가르침은 이 갈증 해소에 과연 얼마나 유용할 것인가, 베트남 언론계는 어떤 답을 찾아가는가. 앞으로 흥미롭게 지켜볼 예정이다.
한국과 베트남 언론의 같음과 다름
베트남에서 보낸 6박 7일을 요약하자면 한국과 베트남 양국 언론의 같음과 다름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기자는 취재를 통해 보도하는 사람’이라는 대전제는 같지만, 언론과 기자의 역할이 자리한 정치사회적 맥락이 다르다 보니 ‘우리는 과연 같은 일을 하는 걸까’란 의구심이 싹 걷히긴 힘들었다. 그래서 베트남에서 만난 언론인들이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을 나눠서 생각해 봐야 했다. 전자에서는 언론의 보도 윤리와 미래를 고민한다는 공통점이, 후자에서는 언론의 근본에 관한 차이점이 드러났다.
양국 수교 30주년을 맞아 마련된 이번 연수를 통해 언론이라는 익숙한 틀로 베트남을 낯설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와 다른 체제에 기여하는 언론인을 만나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고민을 나눌 자리는 좀처럼 흔치 않다. ‘사회주의 국가의 언론을 굳이 왜 들여다보느냐’는 선입견과 섣부른 가치 평가를 넘어, 앞으로 양국 언론인들이 직접 대화하고 서로의 발전 방안을 모색할 기회가 늘어나리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