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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제작기] 국제신문 다큐멘터리 <죽어도 자이언츠> 제작기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2-12-30

출범 원년부터 한국 프로야구와 역사를 함께해 온 롯데자이언츠. 2020년부터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온 국제신문은 지난해 10월 롯데자이언츠의 40년을 기록한 <죽어도 자이언츠>를 만들어 극장에서 개봉했다. 신문기자가 영화를 만들기까지, 그 고충과 의미를 확인해 본다. 편집자 주

 

“오스카 수상자는…<더 퀸 오브 바스켓볼>(The Oscar goes to…The Queen of Basketball)!”

 

2022년 3월 28일 열린 제94회 오스카 시상식. 이날 최대 이슈는 남우주연상 수상자인 윌 스미스(Will Smith)가 진행자 크리스 록(Chris Rock)의 뺨을 내리친 순간이었지만 이와 동시에 미디어 업계의 경사도 날아왔다. 뉴욕타임스 다큐멘터리인 <더 퀸 오브 바스켓볼(The Queen of Basketball)>이 신문사 제작 영화 최초로 오스카 시상식 본상에서 수상한 것이다. 영화는 1970년대 미국 농구계에서 활약한 루시아 해리스(Lusia Harris)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이는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섹션인 ‘옵 독스(Op-Docs)’가 출범하고 첫 영상이 업로드된 지 11년 만에 이룩한 성과다. 옵 독스에는 지금도 영화계의 거장 에롤 모리스(Errol Morris)의 단편부터 전 세계 각국의 논쟁적인 소재의 다큐멘터리가 업로드되고 있다.

 

같은 시각, 국제신문. 필자는 영상 편집툴인 프리미어 프로(Premiere Pro)를 매만지고 있었다. 타임라인에는 1992년 롯데자이언츠의 우승 주역 중 한 명인 투수 염종석의 인터뷰가 파편처럼 흩어져 있었다. 인터뷰 총 길이는 67분이었다. ‘중간에 끊지 않고 모두 다 듣는다’는 제작진의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내용을 하나하나 다 찾아야 했다. 헌데 염종석은 문제가 아니었다. ‘악바리’ 박정태 인터뷰는 85분, 당시 우승 감독이었던 강병철 감독 인터뷰는 130분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큰 덩어리라서 이를 자르고 붙이며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나가야 했다. 이를테면 “한국시리즈 5차전 마지막 우승 순간이 어땠냐”는 질문에 염종석은 “신인이라 마냥 좋았다”고 답하고 박정태는 “그냥 쉬고 싶었다”고 말하는 식이다.

 

하지만 사실 그것 역시 아주 큰 문제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평균 길이 60분에 달하는 인터뷰이가 35명이나 있었고 인터뷰를 합치면 총 2,000분, 용량으로 10TB가 넘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때는 3월 말이니 야구 시즌은 시작도 안 했다는 무엄한 진실이 눈앞에 놓였다. 오전 10시에 시작한 염종석과 박정태의 인터뷰 편집을 끝내니 벌써 다음날 새벽 2시가 됐다. 매일 보던 야간 경비원 아저씨에게 인사를 드리고 택시를 탔다. 내가 몇 시에 출근하는지, 또 몇 시에 퇴근하는지 데스크에게 보고하는 것도 별로 의미가 없었다.

 

“니 죽는 거 아니가.”

“선배, 실손보험은 들어놓으셨죠…?”

 

좀비가 된 내 모습을 보며 동료들은 속도 모르고 놀리고 갔다. 눈을 뜨면 다음 장면을 고민하며 편집 프로그램 앞에 앉아있고, 눈을 감으면 롯데가 우승하는 꿈을 꿨다. 그 꿈속, 아마도 사직야구장의 관중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남들은 30년 만의 롯데자이언츠 우승에 기쁨으로 얼싸안을 때 나는 슬픔으로 통곡하며 머리를 쥐었다.

 

“아, 롯데야. 그만 찍자.”

 

잠을 깼고 8개월을 그렇게 살아버렸다.

 

 

<죽어도 자이언츠> 스틸컷 Ⓒ국제신문

 


영화의 방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

 

국제신문은 2020년부터 매년 장편 다큐멘터리를 한 편씩 제작해왔다. 첫 영화인 <청년 졸업 에세이>(2020)를 거쳐 부마항쟁을 다룬 <10월의 이름들>(2021)은 예상 밖의 성과가 났다. 일간지 제작 영화 최초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된 것이다. 영화는 국제신문이 2018년 8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21차례에 걸쳐 보도한 <다시 쓰는 부마항쟁 보고서 1·2·3>을 토대로 제작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텍스트 중심인 신문에서 영상이라는 다른 형태의 표현 언어로 변주된 셈이다. 더욱이 독립영화 배급사 ‘시네마달’과 배급 계약을 체결하고, 부산·울산·경남 교육청에 무상 제공하며 공적인 의미도 챙겼다. 전작에서의 연출과 편집 경험을 살려 올해도 다시 한번 메가폰을 잡게 됐다. 소재는 롯데자이언츠. 부마항쟁보다는 좀 더 상업적인 소재로 가닿았다. “영화제를 경험했으니 올해는 개봉을 목표로 두자”라는 말이 귓가에 어른거렸다. 1년은 한 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개봉하기까지 물리적으로 만만치 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마음가짐으로는 “영화제 출품할 때는 그런 거 생각하고 제작했나”라는 괜한 오기도 생겼다. 오기의 원인은 전작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어난 제작비 때문일 것이다. 영화 <타짜>(2006)의 조연 곽철용이 주인공 고니에게 했던 명대사 “한 편에 1억을 태워?”가 떠올랐다.

 

2021년 12월. 가제를 <죽어도 자이언츠>로 정했다. 유명 넷플릭스 축구 시리즈인 <죽어도 선덜랜드>(2018)를 패러디한 제목이었다. 호기롭게 기획을 시작했지만 동시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원인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전작 <10월의 이름들>과 달리 선배들이 적은 기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토리를 혼자 다 짜야 하는 셈이다. 이 부분은 내가 머리를 싸매면 되니 퉁치고 넘어갔다. 한데 한 단어 앞에서 막혔다. ‘구도부산(球都釜山)’. 얼마나 야구를 좋아하면 ‘야구의 도시’라는 한자성어가 있나. 더군다나 2022년은 롯데자이언츠 창단 40주년임과 동시에 마지막 우승을 한 지 30년이 되는 해였다. 영화에서도 언급되는 것처럼 ‘창단 이후 정규리그 우승 경험이 없는 유일한 팀’, ‘21세기 이후 한국시리즈 진출이 없는 유일한 팀’ 등 각종 불명예 기록을 보유한 팀이 롯데였다. 사직야구장은 칭찬보다는 욕설이, 꽃보다는 소주병과 오물이 더 많이 날아다녔다. 외국인 감독 제리 로이스터(Jerry Royster)를 영입하며 롯데가 꽤나 잘 나가던 필자의 중학생 시절, 경기가 안 풀리면 선수와 스태프에게 욕설을 내뱉고 소주병을 던지던 아저씨들의 얼굴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 때문에 제작진은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영화의 방점을 어디에 둘지에 대한 논의를 철저하게 했다. 영화만이 표현 가능한 부분은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특히 다큐멘터리의 경우 드라마적인 서사가 있다고 해도 결국 극장 밖 현실 세계와 맞닿아있다. 이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구분 짓는 숙명이다. 이에 여러 변수를 매우 미세하게 통제하고 최소화하고자 했다. ‘부산 40년 야구사(史) 다큐멘터리’라는 초기 기획을 토대로 두 번의 우승(1984·1992)과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1999), 로이스터 부임(2008)을 영화 내 들어갈 핵심 연도로 뒀다. 또 연도에 맞게 챕터를 4개(퀄리티스타트·퍼펙트게임·더블스틸·와인드업)로 나눴다.

 

역사성과 시간성이 영화에 투영되길

 

영화의 큰 틀을 잡은 이후에는 다양한 레퍼런스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했다. 영화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구조를 형상화하는 것을 촬영 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는 영화의 리듬과 태도, 인터뷰이와의 관계와 직결된 문제기 때문이다.

 

다소 도식적인 구분법이지만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 기법이 존재한다. 하나는 ‘다이렉트 시네마(direct cinema)’, 또 다른 하나는 ‘시네마 베리테(cinema verite)’로 불리는 양식이다. 전자인 다이렉트 시네마의 경우 무(無) 개입이 원칙이다. 개입하지 않기에 감독과 제작진은 상황이 발생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본질이 지켜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프레드릭 와이즈먼(Frederick Wiseman), 왕빙(王兵) 같은 다큐멘터리 거장들이 고수하는 방식이다. 시네마 베리테의 경우 감독이 자신이 원하는 메시지와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극 내부의 상호작용을 허가한다. 영화를 담는 ‘카메라의 존재’가 보다 명확한 사례다. 2010년대부터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경향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저널리즘 다큐멘터리’도 이와 유사한 양식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선 다양한 레퍼런스를 토대로 <죽어도 자이언츠>의 제작 방식을 고민했다. 다큐멘터리 영화사에서 내로라하는 감독들의 작업 방식도 염두에 뒀다. 하지만 8개월 정도의 짧은 제작 기간 동안 이들의 방식을 차용할 경우 말 그대로 ‘흉내 내는 것’에 그칠 공산이 컸다. 대신 전작 <10월의 이름들>과 마찬가지로 출연자의 육성을 서사의 동력으로 삼기로 했다. 서사의 구분은 과거와 2022 시즌을 교차하기로 했다.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가 은퇴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영화의 핵심이기도 한 개성고 배광률까지 섭외했다. 이를 통해 ‘과거-현재-미래’라는 역사성과 시간성이 영화에 투영되기를 바랐다.

 

 

지난 10월 19일 <죽어도 자이언츠> 언론시사회에 참석한 이동윤 감독 Ⓒ국제신문

 

 

롯데자이언츠 일대기 담은 다큐멘터리 개봉까지

 

기획을 마친 2022년 1월 29일. 사직야구장 전경을 찍는 것부터 시작했다. 필자가 PD와 연출·편집을 맡고 촬영은 부산 영상업체 ‘구구필름’이 맡았다. 첫 촬영 당시 사직구장은 펜스를 뒤로 미루는 대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흙과 먼지가 뒹구는 구장이 겨울의 찬 공기와 만나 을씨년스러운 기운마저 내뿜었고, 이는 마치 롯데의 근 몇 년간의 성적 같았다. 총 네 명의 스태프는 그렇게 장장 5개월간의 촬영에 돌입했다. 영화 대부분은 부산에서 찍었지만, 서울과 경기, 대전 등에 있는 레전드 선수들을 만나기 위해 전국 팔도를 누볐다. 이대호, 조성환, 김민호, 한문연, 김용희 등 선수들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 다. 이성의 끈을 붙잡고 냉정한 질문을 던지려던 당초의 목적은 온데간데없고 대부분의 선수와 만담하듯 인터뷰를 진행했다.

 

편집은 3월부터 돌입했다. 큰 틀은 한 가지였다. ‘롯데자이언츠 입덕 입문서’. 보편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실업팀 탄생 과정과 사직야구장 준공 비화도 담아냈다. 전작 <10월의 이름들>은 자료 화면이 너무 없어서 죽을 맛이었지만 이 영화의 경우 자료가 무궁무진해 도저히 무엇을 고를지 자괴감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스태프와 회사 동료들이 아이디어를 제공해줬고, 창작의 고통은 희열로 전환되곤 했다. 그럼에도 늘 불안했다. 평가의 순간이 다가왔다는 사실 때문이다. 2022년 6월 말, 롯데자이언츠 구단과 롯데엔터테인먼트, 제작 지원을 해준 부산영상위원회와 국제신문 관계자 20명이 내부 시사회를 하기 위해 모였다. 다소 믿기 어려운 사실이 있다. 시사회를 하기 전까지 데스크를 포함한 그 어떤 선배 기자도 영화 내용을 먼저 보여달라 하거나 수정을 요청하지 않았다. 오롯이 편집권을 보장해 준 것이다. 시사 때 큰 스크린으로 보니 연출자인 나도 루즈해 슬쩍 “좀 긴가요? 자를까요?”라고 물었다. 허무하게 한 마디로 끝이 났다.

 

“마 고생했고, 감독이 알아서 해라.”

 

 

<죽어도 자이언츠> 촬영 현장. 지난 8월 세상을 떠난 롯데자이언츠 팬 故캐리 마허 교수와 이동윤 감독 Ⓒ국제신문

 

 

2년간의 영화 제작은 고통스러웠지만 이런 지점에 감동하며 결국 완성될 수 있었다. 이후 벌어진 일련의 기적은 그 과정 전체를 핸들링 한 실무자로서 믿기 어려웠다. 2022년 8월 롯데엔터테인먼트 배급이 결정되고, 지난해 10월 27일 마침내 영화가 개봉한 것이다. 필자와 제작진은 롯데자이언츠라는 특급 구단을 ‘다큐 소재’로써 경유하며 어떤 것을 보았을까. 아마도 거기에는 수많은 시간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롯데 팬들은 ‘롯데 야구’라는 집단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유서 깊은 구단의 역사적 시간이 애증이라는 감정과 겹치며 끊기 어려운 마약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마운드에서 폭포수 커브를 던지던 故최동원, 영원히 2루를 향해 내달린 故임수혁,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응원하던 푸른 눈의 롯데 팬인 故캐리 마허(Kerry Maher)까지. 이들은 고인이 됐지만, 그 기록과 추억은 언제나 팬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죽어도 자이언츠>의 후반부, 롯데자이언츠의 레전드 선수이자 팬인 이대호는 이렇게 말한다. 개인적으로 영화 제작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코멘트였다.

 

“저는 부산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롯데 팬이었고, 또 롯데 때문에 이렇게 성장했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롯데를 응원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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