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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제작기] KBS <2022 카타르 월드컵> 취재기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3-01-27

2022년 11월 열린 제22회 카타르 월드컵은 온 국민을 열광하게 만든 큰 잔치였다. 우리나라는 목표로 했던 16강 진출을 이뤄 더욱 기억할 만한 대회가 됐다. 중동에서 최초로 열린 월드컵으로 많은 화제와 논란을 낳았던 카타르 월드컵 현장 취재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진짜 덥다!”

 

카타르 도하 국제공항에 내린 뒤 나도 모르게 내뱉은 한마디였다. 이제 막 동이 트기 시작하는 이른 아침이었지만, ‘열사의 땅’ 도하는 뜨거웠다. 대한민국 경기도 면적만 한 카타르. 날씨도 무덥고, 길거리엔 사람이 돌아다니는 모습조차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서 정말 전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이 열린단 말인가?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내내 의문과 걱정이 머릿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러나 일명 ‘오일 머니(oil money)’를 앞세운 카타르는 맹렬한 더위와 중동 월드컵에 대한 우려를 돈의 힘 앞에 굴복시키고 말았다. 

 

카타르는 8개 경기장 등 월드컵 인프라 구축을 위해 무려 30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경기가 열리는 스타디움에 설치된 에어컨 시스템은 찬 바람을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관중석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서늘한 기운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경기장에 설치된 에어컨에선 종이가 휘날릴 정도로 강풍이 나왔다. ⒸKBS

 

 

역시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완공한 3개 지하철 노선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축구 팬들과 미디어 관계자들을 모든 경기장 코앞까지 데려다주곤 했다. 심지어 길바닥에서까지 에어컨이 나오는 카타르는 이렇게 돈의 힘으로 더위를 느끼지 못하게, 아니 햇빛을 최대한 마주치는 일이 없게 만들었다.

 

FIFA의 공식 스폰서 중 한 곳은 이번 대회를 통해 ‘세기의 골(Goal of the Century)’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채 지속 가능한 친환경 미래를 만들자고 설파했다. 그러나 그 문구가 광고판을 통해 흘러나오는 현장은 화석연료로 돌아가는 에어컨으로 도배된 경기장이라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고나 할까?

 

아 한 가지 더. 이슬람 율법에 따라 음주가 허용되지 않는 카타르에선 대회 기간 경기장 내에서 맥주 판매를 금지했다. 그러나 한 가지 예외는 있었으니 바로 VIP. 일반 티켓 가격의 수십 배에 달하는 VIP 티켓 소지자에겐 럭셔리한 스카이박스(Sky Box)에서 맥주, 와인, 위스키 등 모든 종류의 술이 제공됐다. 이것 역시 돈의 힘이랄까?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 관통했던 월드컵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줄여서 ‘중꺾마’. 이번 월드컵을 관통한 문장을 하나 꼽자면 바로 중꺾마일 것이다. 중꺾마 신드롬은 2022년 11월 대한민국 전체를 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르투갈과의 운명의 조별 리그 3차전 당시 믹스드존(Mixed Zone, 공동취재구역) 담당이었던 터라, 후반 35분쯤 자리를 떴다. 축구 담당 기자의 숙명일 수도 있겠지만, 가장 극적인 순간이 연출되기도 하는 마지막 10분은 언제나 보기 힘들다.

 

무승부로 끝날 것임을 확신하며 ‘역시 기적은 쉽게 이뤄지지 않아’라는 아쉬움과 ‘집에 갈 수 있다’라는 기쁨의 양가감정을 안은 채 믹스드존으로 향했다.

 

믹스드존으로 가는 동안에도 머릿속엔 16강 진출이 무산된 선수들에게 ‘과연 어떤 질문을 해야 하나’ 하는 막막함이 맴돌았다. ‘고생했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포르투갈과 비긴 것도 잘한 거다’ 등 수많은 말이 머릿속을 오갔다.

 

고민이 고민을 낳던 그 순간, 경기장이 갑자기 환호성으로 들끓었다. 서둘러 믹스드존에 놓여있는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갔다. 황희찬의 발끝에서 역전 골이 터진 것이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태극기를 든 국가대표 선수들 Ⓒ연합뉴스

 

 

“와, 이게 가능하단 말이야?”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 역시 순식간에 사라졌다. 손에 땀을 쥐며 지켜봤던 가와 우루과이 경기의 마지막 10분도 모두 지나가고, 대한민국은 그렇게 기적처럼 16강 티켓을 따냈다.

 

기적을 이뤄낸 선수들의 손엔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태극기가 들려있었다. 아, 역시 중꺾마의 힘이었단 말인가?

 

믹스드존으로 나오는 선수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상기돼 있었다. 자신들이 이뤄낸 기적이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두근거리던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고 나자 이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부끄러움이 밀려 올라왔다.

 

중꺾마. 리포트 내용에도, 한껏 힘줬던 스탠딩 멘트에도, 그렇게 중꺾마, 중꺾마를 외치던 나였는데, 정작 스스로는 중꺾마의 힘을 믿진 않았던 것이다.

 

치명적인 안면 골절 부상에도 1%의 가능성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가겠다는 손흥민 그리고 허벅지 부상을 안고도 폭발적인 스피드로 포르투갈 수비진의 다리 사이 작은 틈 하나만 보고 달려나갔던 황희찬. 그들은 그렇게 꺾이지 않는 마음의 힘으로 기적을 완성했다. 모두가 기쁨에 환호하고 있을 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과연 난 그들의 간절함을 제대로 전했던 것일까?

 

첫 월드컵 취재는 이렇게 기적 같은 16강을 함께했다는 자부심에 내 부끄러움을 은근슬쩍 묻은 채 마무리됐다. 물론 기적 같은 16강 진출에 기여한 것은 크게 없다. 오히려 태극전사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온 한 달이었다.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2023년을 살아보겠다는 다짐과 함께.

 

 

도하에서 만난 어린 친구들은 2022년을 어떻게 기억할까? ⒸKBS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

 

월드컵에서 만난 팬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설렘과 생기가 가득했다. 도하 게스트하우스에서 한 달 일하며 번 돈으로 경기를 보러왔다는 대학생들, 연차를 내고 포르투갈전을 보러온 직장인, 16강전까지 보고 가고 싶다며 회사 CEO에게 휴가 좀 더 달라고 패기 넘치게 말하는 그들의 얼굴엔 꿈을 이뤘다는 행복함이 묻어났다.

 

BTS 정국이 부른 월드컵 주제가 ‘드리머스(Dreamers)’의 첫 소절은 다음과 같다.

 

“Look who we are, we are the dreamers(우리가 누군지 봐봐. 우리는 꿈을 꾸는 사람들이야).”

 

월드컵 직관의 꿈을 이룬 수많은 축구 팬들. 그리고 월드컵 한복판에서 취재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던 스포츠 기자 지망생이었던 나 역시 이번 카타르에서 꿈을 이뤘다. 무더운 날씨 속 한 달간 계속된 취재에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월드컵은 꼭 한 번쯤 다시 경험해보고 싶은, 기적을 이뤄낸 축제의 현장으로 기억될 것이다. 다시 한번 전 세계 축구인의 축제를 취재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땐 월드컵이라는 무대를 조금 더 즐겨볼 생각이다. 태극전사들에게 한층 감정이입 된 채 말이다.

 

2026년 북중미 월드컵에선 ‘캡틴 SON’의 라스트 댄스를 조금 더 화려하게 전달하는 데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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