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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라는 말을 흔하게 듣는 시대지만 정작 뉴스나 신문 지면에서 관련 기사를 자주 볼 수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KBS는 재난미디어센터를 두고, 홈페이지에 기후 관련 코너를 운영 중이다. 재난미디어센터가 자리잡기까지의 과정과 국내 언론의 기후 위기 보도 현황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나는 국가재난방송 주관방송사인 KBS의 기상 전문기자다. 2008년 입사 이후 해마다 잦아지는 이상기후를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라떼는 말이야’로 얘기하면, 옛날에는 여름 한 철이 기상 전문기자의 ‘시즌’이었다면 지금은 사시사철 재난이다. 집에 갈 시간도 없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상승하며 산업화 이후 지구의 평균기온은 1.15도 상승했다. 동시에 폭염과 폭우, 가뭄, 산불, 한파, 폭설 같은 기후 재난이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지구의 기후 시스템이 균형을 잃은 채 마치 시소를 타듯 극단적인 변동성으로 출렁거리는 것이다.
2022년을 되돌아보면 국내에서도 1년 내내 기록이 쏟아졌다. 겨울 가뭄은 역대 최장 기간의 산불을 불러왔고 여름에는 유례없는 2차 장마가 찾아왔다. 가을 태풍과 북극 한파도 피해갈 수 없었다. 일상이 된 기후 위기, 언론은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할 수 없게 됐다. 기후 위기의 피해가 저 멀리 북극이나 남태평양 섬나라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팀’에서 ‘재난미디어센터’로, KBS의 변화
최근 기후 위기에 대한 보도가 늘고 탄소중립에 관한 기사도 쏟아지고 있다. KBS에서도 거대한 변화가 진행 중이다. 기후 위기에 대한 KBS의 시각과 대응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날씨와 기후를 취재하는, 그러니까 기상 전문기자가 일하는 부서의 이름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2008년 입사할 때 ‘네트워크팀’으로 발령이 났다. 네트워크팀은 과거 ‘전국부’로 불리던 부서다. 지방에서 올라오는 뉴스들을 담당하는 곳으로, 재난이 지방에서 많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팀은 지역국과 활발히 소통하며 인터뷰와 영상을 요청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2011년 국내 방송사로는 처음 ‘과학재난부’가 보도국 산하에 만들어졌다. 거세지는 기후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과학과 기상, 재난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재하고 제작했다. 기상 전문기자와 과학 취재기자들이 각자의 업무를 하다가 재난이 발생하면 재난 상황에 다 같이 협업하는 방식이었다. 재난 관련 정부 기관인 행정안전부와 소방방재청, 기상청과 협약을 맺어 재난 정보를 실시간으로 시청자에게 전할 수 있는 통합 디지털 재난방송시스템이 만들어진 것도 이때다.
2019년에는 고성 산불을 계기로 보도본부장 산하로 재난방송센터가 분리됐다. 이후 재난미디어센터로 이름이 바뀌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과학재난부 때와 달라진 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출입 기자들 대신 환경부 기자들이 센터로 합쳐졌다는 것이다. 과학과 환경 모두를 취재해본 기상 전문기자의 입장에서 볼 때 둘 다 연관성이 큰 분야다. 다만 환경부의 경우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을 주관하는 부처 중 하나기 때문에 기후 위기 시대에 더욱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 환경부 기자들 역시 재난 상황이 터지면 특보에 참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KBS 내부에서 기후 관련 영역이 지역 뉴스를 담당하는 작은 부서에서 국가 재난 전체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부서로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KBS 재난미디어센터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며 생방송을 이어가는 것뿐 아니라 기후 위기 관련 기획이나 재난 예방 보도 역시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KBS 뉴스 홈페이지에는 관련 보도를 모아둔 ‘기후는 말한다’라는 메뉴가 만들어졌다.
전사적으로 달려들어도 모자랄 판에
최근 언론사들은 기후 위기 보도에서 재난 취약계층에 대한 뉘앙스를 한 스푼씩 더해가고 있다. 기후 위기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는 사회적인 인식을 확산시키고 그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해서다. 탄소중립 역시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이 핵심 과제로 남아있다.
이럴수록 공영방송인 KBS는 기후 재난 보도뿐 아니라 취약 계층을 보듬을 수 있는 기획을 더 늘려나가야 한다. 탄소를 줄이지 않으면 맞게 될 비극적인 미래를 막기 위해 정치권과 기업을 집요하게 압박해야 한다. 그래야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가 성립하게 된다. 산업혁명의 동력이었던 화석연료와 작별하고 사회의 축을 새로 세워야 하는 거대한 도전이다. 따라서 재난미디어센터 기자들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부와 정치부, 경제부, 산업과학부, 문화복지부, 외교부, 국제부 등 모든 부서의 기자들이 달려들어도 모자랄 판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아직 경계를 넘는 기후 보도에는 인색하기만 하다. 현업 부서에 있는 기자들은 출입처에서 쏟아져 나오는 보도자료를 처리하기에 급급하다. 주 52시간 근무가 자리 잡으면서 어느 부서건 사람이 없다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야근이나 주말 근무도 마찬가지다. 연말 기자협회 송년회 자리가 아니면 부서 간의 소통이나 만남은 사실상 어렵다. 기후 위기에 대한 심층적인 공동 기획이 나올 수 없는 구조, 이게 바로 언론사의 현실이다. 기자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기도 하다.
‘9시 뉴스’의 진실은?
2022년 11월 이집트에서 제27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가 열렸다. KBS는 9시 뉴스에 11월 6일 개막식부터 두바이 특파원을 연결해 현장 분위기를 보도했다. 이후에는 재난미디어센터 기자들과 함께 기후 위기와 탄소중립에 대한 기획을 이어 나갔다. 다른 방송사와 비교해도 많은 분량이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왜 COP27 관련 뉴스가 KBS에 안 나오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분명 개막부터 폐막까지 9시 뉴스에 나흘 정도 뉴스가 나갔는데, 이상한 반응이었다. COP27뿐 아니라 기후 뉴스가 전반적으로 적다는 학계의 불평도 쏟아졌다.
내가 생각해본 이유는 이렇다. 9시 뉴스에 분명히 나갔지만, 뉴스의 뒷부분에 배치돼 놓쳤을 수 있다. 2분 정도로 짧은 방송 뉴스는 잠시만 방심하면 지나간다. ‘다시보기’에만 존재하는 뉴스들인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로컬 시간대 편성이다. KBS 9시 뉴스는 35분 정도가 지나면 지역 방송으로 넘어간다. 이 시간대 방송되는 뉴스는 서울에서만 볼 수 있다. 기후 리포트는 보통 9시 뉴스의 뒷부분인 로컬 시간으로 밀리는 일이 많다. COP27이 개최되던 기간에는 월드컵뿐만 아니라 북한의 도발, 정치권 이슈가 가득했다.
사실 평소에도 비슷하다. 9시 뉴스 큐시트에 잘 잡혀있다가도 어딘가 사건, 사고가 터지면 연기되는 아이템 1순위는 기후와 환경, 과학 뉴스다. 그렇게 밀리다가 주말 9시 뉴스로 나가거나 더 운이 좋지 않으면 아침 뉴스에 소화되기도 한다. 기후 뉴스를 열심히 발제하고 단독을 물어와도 시청자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9시 뉴스에만 집착하지 말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디지털 뉴스도 마찬가지다. 서너 시간 반짝 좋은 자리에 걸려있다가 사라지거나 아예 빛을 못 보기도 한다. 기후 뉴스는 심각한 재난 상황이 아니면 클릭을 유도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이렇다 보니 취재기자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도 하다. 정치인들의 물고 뜯는 발언은 뉴스 앞부분에 비중 있게 나가는 반면 기후 뉴스는 심층적으로 취재해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한다. 재난미디어센터는 존재하지만 아직 보도본부의 기후 민감성은 높지 못하다. 재난이 터지면 앞다퉈 보도하지만 기후 위기는 먼 미래에 찾아올 일이라고 생각하는 여유로움이 도사리고 있다.
기후 뉴스 원하는 시청자 못 따라가는 언론사
1번부터 20번까지 등수가 정해져 있는 9시 뉴스와 달리 일단 유튜브에 뉴스가 올라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검색어와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이는 세상은 평등하기 때문이다. 생방송에서 뒤로 밀리던 기후뉴스는 높은 조회수와 댓글을 기록하며 시청자의 관심을 받고 있다.
한 예로 지난해 10월 20일 9시 뉴스에는 <“장마에서 ‘한국형 우기’로”>라는 보도가 나갔다. 기후 위기로 한반도 여름 강수 패턴이 변하면서 장마라는 좁은 개념 대신 광범위하게 우기를 적용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보도는 9시 뉴스 큐시트에 빠졌다 들어갔다를 반복하다가 겨우 끄트머리 로컬 시간대에 나갔다. 그러나 온라인에서는 반응이 뜨거웠다. 올여름 2차 장마를 겪은 뒤라 더 그랬다. 서울에 사
는 시청자만 보기에 아까운 뉴스가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변화에 민감하다. 기록적인 폭우에 서울이 물바다가 되고 온난화의 역설로 불리는 북극 한파로 인명 피해가 속출한다. 그 배경에는 기후 위기가 있다. 탄소를 줄이지 않으면 인류가 파국을 맞을 것임을 직감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사는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는 단순한 환경 이슈를 넘어 정치와 경제, 직업, 소득, 주거, 건강 등을 좌우할 가장 강력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들다.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기후 위기에 대한 과학적 입증이 끝난 만큼 이제는 기후 위기가 불러올 진실을 마주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역할이 시급하다. KBS 재난미디어센터에 기후위기대응팀이 있듯 다른 언론사에도 비슷한 부서와 담당 기자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또 언론사의 메인 뉴스와 지면에서 더 많은 기후 보도를 발견할 수 있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