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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편집기자는 취재기자와 달리 지면에 이름이 등장할 기회가 거의 없다. 강원도민일보는 그런 편집기자들의 이름을 지면에 활자화했다. 편집기자들이 직접 기사를 쓰고 편집까지 담당해 2022 올해의 편집기자상을 수상한 바 있는 ‘편집기자가 운영하는 펀(FUN)집숍’의 제작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사람은 평생 자기 이름을 몇 번이나 쓸까
‘홍길동 ○○○○○@kado.net’. 강원도민일보 기자가 되면 부여되는 ‘바이라인(By Line, 기사 끝에 붙는 기자 이름)’이다. 기사 말미에 자석처럼 달라붙던 기자명과 이메일. 기계처럼 누르던 Ctrl+E(바이라인 생성 단축키)와 당연한 듯 늘 그 자리를 지키는 취재기자의 이름. 하지만 편집기자에게 본인 이름을 활자화할 기회는 없다. 몇 년 전 쓴 칼럼에서 편집기자를 ‘바이라인으로 대변되는 취재기자 너머, 지면 위 이름 없이 부유하는 아무개’로 표현한 적이 있다. 이름 없는 아무개. 과한 표현 같지만 편집기자들만이 느끼는 상실감이 있다. ‘이름 없는 편집기자’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기엔 뒷맛이 씁쓸했다.
“편집기자들이 기사를 직접 쓰고 편집까지 해보는 건 어때?”
어느 날 던져진 송정록 편집국장의 말에 선뜻 그리하겠다 답하지 못했다. 격무에 시달리는 부원들에게 입을 뗄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지면 뒤편 이름 없이 묵묵히 활동해왔던 편집기자들을 지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지 않은가. 고심 끝에 기획을 결정짓고 부원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우려와 달리 흔쾌히 도전해보겠단 반응이 돌아왔다. 다행이었으며 동시에 부담이었다.
2022년 2월 기획 시리즈 시작에 앞서 편집부원들은 여러 차례 자발적인 회의를 가졌다. 기획 콘셉트부터 면머리(타이틀)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다음은 부원들이 마련한 지면 운영방안이다.
△ 편집부 지면 운영 방안: 편집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취미 혹은 관심사를 세세히 풀어내며, 세태를 꼬집거나 여론을 조성, 정보를 전달하는 지면 구성 - 몽당연필 제작이 취미인 기자가 연필을 소개 - 키보드를 좋아하는 기자가 키보드 선택법 소개 - 곱슬머리 관리에 꽂힌 기자가 관리법 등을 소개 - 카페 투어 좋아하는 기자의 가볼 만한 카페 추천 - 인테리어가 취미인 기자의 ‘꿀템’ 소개 - 강아지를 키우는 기자의 강아지와 함께 갈만한 여행지 추천 △ 면머리 네이밍 1) Life+(라이프 에디션) 2) 후평동날적이 3) 뉴스pop 4) 시시각각 5) 3V(value vivid view) △ 신문의 ‘리빙’ 코너처럼 운용, 매거진처럼 특집으로 편집 제작 △ 레이아웃은 해당 내용을 부각할 수 있는 특징적인 이미지를 크게 사용해 보는 맛을 주도록 한다. |
편집부에는 소설가·사진작가·강태공·덕후가 산다
“본지 편집기자들이 한 달에 두 번 주말 특집판 ‘펀(FUN)집숍’을 통해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한 매장에서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만나볼 수 있는 ‘편집숍’에서 이름은 딴 ‘펀(FUN)집숍’ 코너에는 ‘덕후의 세계’부터 연필로 하는 필사, 연고팀 없는 강원도 배구 팬, MZ세대도 모르는 MZ 등 종잡을 수 없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진열됩니다. ‘펀(FUN)집숍’의 첫 번째 상품은 코시국에 만나는 소소한 재미 ‘홈카페’ 입니다.”
지난해 2월 첫발을 내디딘 <펀집숍>의 1면 알림 내용이다. 지면의 헤더에는 ‘편집기자가 운영하는 펀(FUN)집숍’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펀집숍>은 그저 지면 뒤편에서 이름없이 묵묵히 활동하는 편집기자들이 지면 위로 올라와 본인의 이름을 내건 하나의 지면을 완성하는 대장정이었다. 기사 작성부터 편집까지 오롯이 편집기자 한 사람의 손길로 탄생했다.
강원도민일보 편집팀에는 소설가도 있고, 시인도 있다. 사진기자 출신도 있고, 강태공도 있다. 배구에 미쳐있는 일명 ‘배구빠’도 있고, 주말마다 뮤지컬 공연을 보는 ‘덕질’ 기자도 있다. 물론 온 세상에 당당함을 외치는 MZ 기자도 빼놓을 수 없다. 이렇듯 편집기자들이 가슴 속 깊이 품고 있는 잠재된 콘텐츠들이 지면을 통해 빛을 보게 하자는 것이 <펀집숍>의 기획 의도였다.
2주에 하루 문 여는 <펀집숍>
지면 편집에만 몰두해 온 편집기자들이 직접 콘텐츠를 기획하고 취재, 기사 작성까지 맡아 진행하는 데 초기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우선 콘셉트가 명확하지 않거나, 취재가 충분하지 못해 겪는 어려움도 많았고, 기사 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저연차 기자들의 경우 수차례 탈고를 거쳐 하나의 기사를 완성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격주로 선보이는 기사이기에 시간에 쫓기는 데일리뉴스와 다르게 호흡이 길다는 장점이 있다. 정해진 주제에 대해 깊고 넓게 고민했다. 이러한 과정을 겪고 본인의 기사를 직접 편집하게 되니 지면 제작에 더 많은 애정과 정성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게 편집기자들의 한결같은 평가였다.
2022년 2월부터 11월까지 총 14편의 콘텐츠를 선보였다. 필사, 시 쓰기, 필름 카메라, 홈카페 등 방대한 주제를 다뤘다.
△ 본인의 취미와 관심사를 재치 있게 풀어낸 지면
<배구 직관러의 직관적인 경기장 토크>, <첫 손맛 추천 루어낚시 1·2>,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되는 필사>, <나를 사랑하는 방법, 시 읽기와 시 쓰기>, <느리게 추억을 기록하는 방법, 필름 카메라>, <늦가을 서핑하기 좋은 날>, <본연의 아름다움 살리는 곱슬머리 관리법>, <거리의 유기동물, 내 가족이 되기까지>
△ 코로나시대를 버티는 편집기자들만의 시선
<코시국을 버티는 노하우 홈카페>, <코시국 속 용감한 여행 유튜버가 뜬다>, <코로나시대 새로운 관광트렌드 북스테이>
△ 젊은 MZ편집기자들의 당돌한 한마디
<MZ세대가 MZ세대를 말하다>, <MZ세대 비거니즘 가치소비 열풍>
그동안 보도된 지면을 3개의 카테고리로 나눠봤지만, 결과론적인 분류일 뿐 편집기자들에게 던져진 명확한 주제는 없었다. “펀(FUN)집숍 타이틀처럼 재미있게 쓰고 즐겁게 편집해보라”라고 했고 어찌됐건 주제는 ‘제한 없음’이었는데 이것이 얼마나 무섭고 무거운 자유인가를 편집기자들은 새삼 깨달았을 것이다.
편집기자 두 명에게 <펀집숍> 제작 소감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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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집숍>이라는 무대에 오르며
“연극을 보고 기억에 남는 건 주연뿐이었다. 주연의 화려한 언변과 손짓은 관객을 홀리기 마련이다. 늘 그랬다. 편집기자의 역할은 조연이었다. ‘뒤를 봐주며’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무대 뒤 숨 가쁜 발걸음은 늘 편집기자의 몫이었다. 영화 엔딩크레딧을 볼 때마다 왜 배우와 감독이 우선인지, ‘도움 주신 분’들은 왜 항상 마지막에 나오는지 의문이 생길 무렵, 손에 쥐어진 <펀집숍>이라는 코너. <펀집숍>은 편집기자가 넘볼 수 없는 영역이라고 여겨왔던 무대, 즉 ‘바이라인’을 달고 기사를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취재기자의 취재 패턴과는 다르게 펀집숍은 ‘데드라인’이 여유로웠다. 매일같이 ‘생산하는’ 기사가 아닌 ‘제작하는’ 기사였기에 좀 더 공들일 수 있었다. 기사를 의뢰받았을 때 주제는 망설임 없이 내가 가장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분야로 선택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전공자로서 늘 내 곁에 맴돌고 있던 소재, ‘시’였다. 시에 대한 단상이 아닌 ‘시 읽기’와 ‘시 쓰기’를 어려워하는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많이 고민했다.
기사를 쓰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솔직함이다. 내가 느낀 부분을 가감 없이 내보이고, 독자들이 가장 공감할 만한 부분을 찾아내는 데 온 힘을 다했다. ‘기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처음으로 ‘무대’에 선 순간이었다. 내가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감독’의 입장에서 ‘주연’ 배우로 연기하는 순간의 짜릿함이란. 혹시나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까 하는 우려에 알고 있던 사실도 한 번 더 체크하고, 적확한 단어를 사용하기 위해 퇴고에 퇴고를 거듭했다.
뿐만 아니라 기사 작성과 편집을 동시에 하니 능률도 올랐다. 기사를 쓰는 순간에도 지면을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하게 됐다. 면 구성을 어떻게 할지, 기사 배치는 어떤 방식으로 할지, 어떻게 표현해야 기사가 돋보일지. 다른 기자가 써 온 기사를 읽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신나서 편집한 것 같다. 제목도 물론 정해진 대사처럼 나왔다. 비로소 완성된 지면은 나를 닮아 있었다. 나를 닮은 기사는 배 아파 낳은 자식처럼, 지면에서, 또 온라인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펀집숍>은 주연의 ‘부담감’과 조연의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게 해 준 고마운 코너다. 주연과 조연을 아랑곳하지 않는 엑스트라의 묵묵한 연기처럼, <펀집숍>은 ‘신스틸러’로 늘 내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박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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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적인 나의 밤’을 향한 필사적인 고민
“<펀집숍>에는 평소 신문을 통해 접할 수 없는 콘텐츠를 담으면서도 날마다 다채로운 기사와 레이아웃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명 한 명 개성 넘치는 기자들이 어우러져 한 부의 신문을 완성하는 우리 부서의 모습에서 착안, 저마다 가장 개인적인 소재를 꺼내 다양성을 채우기로 했다.
나는 대학에서 소설을 전공했다. 누군가 ‘소설 쓰시네’ 쉽게도 말하던 그 소설은 나에게만 혹독했고 좋은 작품을 써내기 위해 나는 부단히도 쓰고 읽었다. 쓰고, 읽고, 쓰고, 읽고 반복하다 쓰면서 읽기 시작한 것이 필사라는 취미를 갖게 된 시초였다. 활자가 손에서 사각거리는 소리로, 종이 위에 연필이 스치는 질감으로 변해 감각을 자극하고 느리게 읽는 만큼 깊숙이 와닿는 독서법이었다. 이런 매력 있는 취미 활동을 누군가에게 한 번쯤 소개해주고 싶었고 <펀집숍>은 좋은 기회였다.
필사라는 소재가 정해진 이후 편집기자는 발로 뛰는 취재가 불가능한 만큼 각종 논문과 저서, 관련 커뮤니티를 손가락으로 헤집으며 정보를 모았다. 개인적인 경험과 찾아낸 정보들을 적절히 조합해 정보 측면에서도, 읽는 경험 측면에서도 충만한 기사를 쓰고자 노력했다.
어떤 연구에서 스트레스 저감 효과가 실제로 확인되기도 한 만큼 빡빡하게 짜이기보다 느슨하게 풀어진, 세련되기보다 포근한 느낌을 주는 레이아웃을 고안했다. 단지 읽는 것과는 달리 활자가 공감각적으로 활보하며 감정을 파고드는 느낌을 밤과 닮은 어두운색 위에 이미지화해서 넣고 차분한 대칭형 기사 배치로 안정감을 줬다.
‘필사적인’이라는 어휘가 가진 ‘죽을힘을 다하는’의 사전적 의미와 거의 반대 지점에 있는 취미인 ‘필사’. ‘필사적인 나의 밤’이라는 제목은 ‘죽을힘을 다하는 나’의 밤이자, ‘필사를 해서 편안하고 풍요로운’ 나의 밤이라는 의미를 포함하는 한편 ‘죽을힘을 다하는’ 내가 ‘편안하고 풍요로운’ 밤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는 뜻도 담았다. 독자들이 제목만 봐서는 완벽히 알아챌 수 없는 의미를, 기사를 읽고 나면 속뜻을 알고 재미있다 느낄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지었다.” (최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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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올해의 편집기자상 수상
편집기자들은 이번 <펀집숍> 기획을 통해 ‘신문의 지속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고 했다. 신문을 ‘매일 집으로 도착하는 한 권의 책’이라고 생각하며 신문에서만 할 수 있는 일, 신문의 존재 이유가 부각되는 지면을 만들겠다는 욕구가 여느 취재기자들보다 컸다. 신문이 사라진다면 바이라인 한 줄 나간 적 없는 채로 사라지는 존재. 이러한 편집기자들이 신문 영역 확장을 통해 본인의 역량도 확대할 수 있었다.
편집기자들은 <펀집숍> 기사와 지면을 완성하며 성취감도 얻었지만, 취재기자를 이해하는 시간도 가졌다. 촉박한 시간 속 약속된 기간 내에 기사를 마감하는 행위가 얼마나 고된지, 또한 취재 과정과 기사 작성을 통해 어쩌면 편집의 반대편 혹은 대척점에 서 있는 취재 분야의 고충을 돌아보는 경험도 했다.
이러한 편집부의 노력은 한국편집기자협회 2022 올해의 편집기자상, 2022 강원기자상 수상으로 격려 받았다. 적은 인원이지만 서로 보듬고 도우며 <펀집숍> 제작에 참여한 김영희, 홍석범, 김명준, 최경진, 박희준, 한나라 기자에게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편집기자가 운영하는 펀(FUN)집숍’은 1년 운영을 끝으로 문을 닫았지만 강원도민일보 편집부는 제2의 콘텐츠 상점을 준비 중이다. 정교한 리모델링을 거쳐 독자들이 ‘혹’할만한 상품을 진열할 것이다. 신문이 정보 전달의 기능을 뛰어넘어 하나의 문화 플랫폼으로 자리 잡길 바라는 편집기자들의 마음을 모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