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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자발적으로 플랫폼에 종속됐던 언론사들이 이제 그 폐해를 깨닫고 플랫폼으로부터 탈출할 결심을 하고 있다. 한국 언론의 가장 민감한 이슈로 떠오른 탈플랫폼의 원인과 그에 따른 혼란, 역설과 더불어 언론사들의 새로운 전략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밀당의 권유
플랫폼과 전면전할 생각 말고 적당한 선에서 ‘밀당’하라는 게 최근 한국 언론사들에게 던지는 미디어 전문가들의 충고인 듯하다. 몇 달 전 한 콘퍼런스에선 “포털을 악마화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등장하기도 했다. 소수의 거대 플랫폼을 겨냥한 얘기지만, 플랫폼과 헤어질 결심 또는 플랫폼을 탈출할 결심은 2000년대의 첫 사반세기를 마감해가는 시점에서 우리 언론의 가장 민감한 이슈가 됐다. 모든 전환기는 수준과 층위를 달리하지만, 어느 정도 오리무중의 성격을 띤다. 언론사에 따라 옅거나 짙을 수 있는 안개 속에서 모종의 밀당이 가능한지, 불가피한지, 바람직한지 따져보는 게 이 글의 목적이 되겠다. 편집진이 청탁한 원고의 얼개가 ‘탈플랫폼 시대 한국 언론 시장의 역설’이다. 3년 전 개인적인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기사 오리지널리티와 DB화
코로나19 대감염 이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생명보험회사의 매니저 두 분이 사무실(헬스조선)로 찾아왔다. 생명보험회사가 헬스케어에 관심을 기울인 지 이미 오래였다. 이유는 짐작할 만하다. 생명보험사의 주요 고객은 암과 심혈관질환의 예비 환자들이고 이들을 보장 전후로 붙잡으려면 적절한 건강 가이드를 제공해야 한다. 보험사 직원들은 의료·건강 전문 미디어와 제휴를 맺고 미디어가 생산하는 정보를 자신들의 헬스케어 사업에 활용하고 싶어했다. 네이버로 대표되는 대형 포털로부터 일정한 수준의 전재료(광고 수익을 나누기 전이었다)를 받는 것 외엔, 초보적 수준의 콘텐츠 판매만 하고 있던 미디어 입장에서도 기대되는 미팅이었다.
그러나 생명보험사와 건강 전문 미디어의 만남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보험사 측은 명확한 이유를 대지 않고 논의를 유야무야시켰지만, 그들의 질문 행간에 숨은 결렬 이유는 명확했다. 두 가지였다. 첫째, 기사 콘텐츠의 DB화가 고도화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둘째, 정보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에 만족하지 못했다. 검색은 되지만 세분화된 카테고리로 자사의 기사들을 분류하고 있는 언론사는 없다(DB화의 문제). 대부분의 기사들은 전문가나 전문가들이 생산한 자료의 단순 인용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오리지널리티의 문제).
무너지는 성역, 소멸하는 특권
의료 건강 정보에 대한 보험사의 태도는 기사를 보는 관점의 보정을 요구한다. 지금까지 ‘기사’라는 이름의 콘텐츠는 ‘언론사’와 ‘뉴스’라는 보호막 안에서 특권을 누렸다. 전문성의 결여에도 불구하고 언론사라는 특별한 주체가 생산하는 특별한 콘텐츠의 지위가 보장됐다. 그런 지위는 플랫폼에 의해 강화됐다. 텍스트 중심의 포털에서 언론사들의 뉴스는 다른 콘텐츠들과 따로 분류되고, 다양한 층위로 계층화(검색 제휴, 스탠드 제휴, 콘텐츠 제휴 등)됐다. 이런 장치들이 기사 형식의 콘텐츠를 성역화했다. 여타 콘텐츠들이 매체의 급변에 빠르게 발맞추며 변신, 약진했지만 이 성역을 침범하진 못했다.
그런데 성역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SNS에선 광고와 기사와 의견이 구분되지 않은 채로 유통되기 시작했고, 유튜브 등과 같은 영상 중심의 플랫폼에선 개인(1인 미디어)의 영향력이 법인(언론사)을 압도했다. ‘기사’도 특권을 버리고 ‘콘텐츠 시장’에서 백의종군하며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한 전문 매체의 보험사 미팅 에피소드는, 언론-콘텐츠 시장의 접점에서 발생한 해프닝이다.
하청, 동어반복, 황폐화
기사에 부여됐던 특권의 해체는 탈플랫폼 상황에서 정점에 이른다. 탈플랫폼은 언론사들에게 안전막의 철거를 의미한다. 그런데 탈플랫폼의 원인과 그에 따른 혼란, 역설 그리고 언론사들의 새 전략을 알아보기 전에 플랫폼이란 보호 장치 속에서 온존했던 기사 형식 콘텐츠의 경쟁력을 잠시 짚어봐야 한다. 21세기 초반, 기사라는 형식은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콘텐츠 시장에서 생존에 필요한 힘을 지녔을까.
언론사들이 다양한 형태로 네이버에 ‘입점’한 지 20년이다. 그동안 언론사들은 하청업체였다. 메이저와 마이너의 차이는 비본질적이다. 뉴스 소비자들에겐 포털이 언론사였고, 포털에서 접하는 기사들에서 메이저-마이너의 차이를 감지하지 못했다. 포털에선 대동소이한 기사들이 10~20개씩 겹치는 게 일상적인 상황이다. 수많은 언론사가 하루 종일 동어반복을 거듭하는 게 거대 언론사 ‘포털’의 뉴스 카테고리에서 벌어지는 일상이다. 그렇게 별 차이 없는 기사를 생산하는 언론사들은 모두 포털의 하청업체였다.
하청업체들에게 브랜드는 의미가 없다. 20년 동안 언론사들은 브랜드의 가치를 상실했다. ○○일보, ○○신문, ○○방송은 속보 경쟁의 형식을 통해, 자신들의 브랜드를 소비자의 머릿속에서 치열하게 지워나갔다. 콘텐츠의 진화는 차이와 반복을 통해 이뤄진다. 한국의 언론 기사들은 차이 없는 무한 반복으로 콘텐츠를 쉬지 않고 황폐화시켰다.
헤어질 결심, 탈출할 결심
손쉬운 기사 노출과 안정적 전재료의 유혹 속에서 우리 언론들이 하청, 동어반복, 콘텐츠의 황폐화에 적응하고 익숙해졌을 때 두 번의 충격이 있었다. 그동안의 안주(安住)에 균열을 내는 충격이었다. 언론사들은 위기감을 느꼈다. 최근 3년간의 일이다.
2020년 4월 네이버가 기사 전재료 제도를 폐지했다. 대신 기사에 붙는 광고 수익을 언론사별로 배분하기로 했다. 뉴스 소비자의 구독을 얼마나 끌어내느냐, 기사에 대한 로열티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더 많은 수익을 나눠가질 기준이 됐다. 기사 콘텐츠의 황폐화는 가속화됐다. ‘오직 조회수’가 기사 작성의 관건이 됐다. 언론사의 정체성은 확보 가능한가, 자문하기 시작했다. 포털 플랫폼의 정책이 언론사의 존망까지는 아니어도 사업 구조와 기반을 좌지우지할 수 있단 사실을, 언론사들은 다시 한번 절감했다. 플랫폼 의존의 폐해가 한꺼번에 논의되기 시작했다. 언론사에 따라 콘텐츠의 제작, 퍼블리싱, 수요 분석까지 플랫폼에 의존해 왔다. 어느 정도 자발적인 종속을 통해, 심각할 정도로 취약한 사업 구조를 자청해왔다. 더 큰 문제는 포털의 정책에 따라 언론사들의 수익 기반이 한꺼번에 흔들릴 수 있다는 자각이었다.
2021년 12월 말 두 번째 충격이 왔다. 네이버와 언론사 간 조인트 벤처의 콘텐츠 장(場)이었던 주제판이 폐지됐다. 직전 5년간, 언론사들은 여행, 일자리 등 다양한 주제의 조인트 벤처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낙관했다. 네이버는 그러나 ‘사용자 편의’와 ‘메인 개선’을 앞세워 전격적으로 주제판 서비스를 없앴다.
메이저의 집단 항거?
플랫폼과 메이저 언론사들의 파워게임으로, 이 전쟁의 국면을 전환하는 건 불가능할까. 그런 논의들이 간헐적으로 있어왔다. 예컨대 메이저 언론들이 포털에서 집단 탈출하고 그들만의 리그(자체 포털)를 꾸리는 방식이다. 메이저 언론들이 한꺼번에 이탈하면 포털도 타격을 입지 않을까. 메이저 언론들이 집결한 뉴스 포털이라면, 적어도 뉴스 콘텐츠에서 거대 포털과 정면 대결을 벌일 수 있지 않을까.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하청과 동어반복과 콘텐츠의 황폐화가 첫 번째 이유다. 포털 생태계에서 메이저 언론사와 마이너 언론사의 차이는 미미하다. 나아가 포털을 위시한 플랫폼은 사업적 명민함에서 언론사들을 크게 뛰어넘는다. 예컨대 ‘전재료→광고 수익 배분’의 국면에서만 해도 언론사들의 이해관계가 크게 엇갈렸다. 손해를 본 언론사들과(주로 메이저), 이득을 본 언론사들이 동시에 발생했다. 디바이드 앤드 룰(divide and rule, 분할통치)은 어쩌면 플랫폼들이 언론사들을 상대하는 큰 그림의 일환일지 모른다.
디커플링 그리고 두 개의 벽
언론사들은 개별적인 엑소더스를 감행하기로 한다. 오랫동안 방치했거나 최소한의 관리만 했던 자사의 뉴스 홈페이지(닷컴이라 부르자)가 목적지다. 그러나 전면적 탈출, 완벽한 탈플랫폼은 불가능하다. 광고 수익이란 이름으로, 플랫폼에 걸린 판돈이 너무 크다.
잠정적 결론은 디커플링(decoupling)이다. 1단계엔 닷컴의 메인 화면과 포털에 마련된 자사 뉴스 창의 메인 화면을 차별화한다. 포털의 뉴스 창엔 눈에 띄는 소위 ‘낚시성 기사’들을 주로 배치한다. 닷컴엔 타사 기사들과 차별화되는 발굴·기획 기사를 배치한다. 그러나 효과는 크지 않다. 언론사들은 공급 기사 자체를 디커플링하기 시작한다. 닷컴용 기사와 포털용 기사를 따로 준비한다. 닷컴에 와야만 볼 수 있는 기사들이 만들어진다.
이어 기사 앞에 차단벽들을 세운다. 두 개의 벽이 필요하다. 먼저 로그인 월(login wall)을 세운다. 회원이 되어야 기사를 제대로 열람할 수 있다. 이어 페이월(pay wall)이 중첩된다. 돈을 내야 기사를 볼 수 있다. 2023년 언론사들의 최대 화두가 된 유료화의 전개다.
데자뷔: 유료화의 그늘
몇몇 언론사들이 작년부터 닷컴 기사의 유료화를 선도했다. 맨 처음 중간 성적을 공개한 매체는 중앙일보다. 2022년 말 기준으로 5,000명의 유료 회원을 모았다. 2023년까지 2만 명, 2025년까지 10만 명의 유료 구독자를 확보하겠단 계획도 알려졌다. 경제·IT 기사와 한국 현대사의 이슈를 다룬 기사가 유료화를 견인했다. 그러나 과연 어떤 기사가 ‘돈을 받을 만한 기사’일까. 어떤 기자도, 어떤 언론사도 정답을 갖고 있진 못하다. 기자들 사이에선 이런 혼선이 빚어진다.
“유료로 팔 콘텐츠가 갖춰져야 한다는 게 무엇인가. 위에선 고급 콘텐츠를 팔면 된다고 쉽게 말하는데, 포장을 잘하란 건지, 다른 데선 안 하는 걸 하는 건지, 돈 버는 데 도움이 되는 건지, 방향성이 모호하다.”1)
원고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옛 기사들 몇 건을 훑어보다가 10년 전인 2013년, 한 신문의 유료화 시도와 편집국 내의 혼란을 접했다. 데자뷔(deja vu)를 느꼈다. 한 기자의 이런 코멘트가 등장한다.
“기자의 전문 분야를 부각시키거나 취재 뒷이야기에 그치고 있다. 유료 콘텐츠가 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2)
같은 지면에 한 언론학자의 평가도 등장했다.
“좋은 그림이지만, 결국 윗돌을 빼서 아랫돌을 막는 느낌이다.”3)
뉴디맨드 전략: 카테고리 창출과 마이크로 세그멘테이션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윗돌을 빼서 아랫돌을 막는’ 수준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뉴스에 어느 정도 민감한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인상 비평을 하자면 ‘닷컴의 매거진화’ 정도로 최근 상황을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일간지 콘셉트로 만들어진 기존 닷컴의 기사들에 주간지·월간지·전문지 콘셉트가 가미된 느낌이랄까. 진일보가 필요하다. 그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 요구되는 게 ‘탈기사’와 ‘탈언론’의 마인드다. 기사 아닌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고, 언론사 아닌 콘텐츠 공급자가 돼야 한다.
불황 속에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마케터들은 뉴디맨드 전략이라 부른다. 새로운 수요를 어떻게 만들어낼까. 확실한 방법은 혁신이다. 구식 핸드폰 시장에 아이폰을 던져 놓으면 게임은 끝난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대신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 수 있다. 타깃을 잘게 쪼개는 것도 한 방법이다. 마케터들이 마이크로 세그멘테이션(micro segmentation)이라 부르는 방식이다.
기사 유료화는 없던 수요를 만들어내는 일에 가깝다. 닷컴의 매거진화를 넘어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 수는 없을까. 독자층을 잘게 쪼개 그에 맞는 기사들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가까운 곳에서 사례를 찾아보자. 지상파 미디어 SBS는 새로운 카테고리 창출을 택했다. 언론사 뉴스 홈페이지와 별도로 프리미엄 콘텐츠 플랫폼을 만들었다. ‘언론사 홈페이지’가 아니라 ‘지식구독플랫폼’을 표방한다. 한국일보는 닷컴을 개편하면서 관심 주제를 세분화하고 연재의 꼭지를 크게 늘렸다. 마이크로 세그멘테이션에 갈음한다. 그러나 새 카테고리 창출과 마이크로 세그멘테이션은 ‘기사 너머’까지 확장돼야 한다. 뉴욕타임스는 레시피와 크로스워드 콘텐츠를 유료화했다.
역설들: 한국 언론사를 추억하며
한국 언론사(史)는 140년 전 한성순보에서 시작된다. 이후 언론들은 합방, 해방, 전쟁, 독재, 산업화, 민주화를 겪으며 거대한 충격을 견뎌냈다. 기자들은 지조와 신념으로 위기를 이겨냈고, 언론을 지켜냈다. 그런데 20세기 말 시작돼 도약을 거듭하는 방식으로 고도화된 정보화는 다른 차원의 문제를 제공한다. 언론들은 2000년대 초반 플랫폼에 자신을 위탁했고, 20년이 지나 플랫폼과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중이다. 민주화의 시기까지 언론들이 언론이란 틀에 자신을 더 확실히 가두는 방법으로 사회·정치·경제적 위기를 극복했다면, 플랫폼과의 이별은 탈언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얼마 전 한 언론인 모임에서 만난 미디어 전문가는 언론의 세 가지 축으로 저널리즘-비즈니스-테크놀로지를 지목했다. 세상이 그렇게 변했다. 그런데 한국 언론은 어땠나. 테크놀로지는 단순했고, 비즈니스는 폭력적이었고, 저널리즘은 동어반복이었다. 100년의 ‘투쟁’ 속에 경직된 채 저널리즘에만 과도하게 집착했다.
탈플랫폼 과정에서 다양한 역설과 자가당착이 드러나는 건 대개 그런 이유다. 구독 모델을 아주 오래전, 신문을 통해 선취했으면서도 온라인에선 후발주자가 되고 말았다. 뉴스룸이 유료(닷컴용)-조회수(포털용)-신문(또는 방송) 담당 조직으로 분화하면서 해묵은 출입처별 편제는 족쇄가 됐다. 기사의 형식은 수십 년째 변하지 않는다. 한국 언론은 뿌리 깊은 모순들을 떨쳐내고 다시 한번 전진할 수 있을까. 길지 않은 원고에서 여러 번 강조한 대로 승부처는 탈언론의 달성 정도에 있다. 플랫폼과의 거리두기를 성공시키기 위해, 언론이 먼저 해야 할 일은 구태의연한 자신과의 거리두기다.
1) 박서연, <막오른 ‘로그인 월’ 대전, 언론계 경쟁 넘어 성공은?>, 미디어오늘, 2022.12.25,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7596
2) 정철운, <조선일보 기자 “유료뉴스, 꾸역꾸역 채우기 급급”>, 미디어오늘, 2013.11.19,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3193
3) 정철운, <조선일보 유료화모델 ‘프리미엄 조선’ 살펴보니>, 미디어오늘, 2013.11.6,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2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