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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제작기] KBS 시사직격 <침체의 서막> 제작기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3-03-31

어렵사리 팬데믹으로부터 벗어났지만 우리 사회는 다시 경제 위기에 직면했다. KBS 시사직격은 전문가 분석 대신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경제 위기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은 채 온몸으로 위기를 견디고 있는 서민들의 현실을 확인해본다. 편집자 주


 


 


우리는 가난해졌을까?

 

본방송이 전파를 탄 지 일주일 만에 유튜브 풀 영상 조회수가 300만 회를 육박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어려운 경제 현실에 공감하는 시청자들에게 먹힌 탓인지 인기 급상승 동영상 1위에 오르며 계속 순위권을 기록했다. 본방송 시청률로 평가되는 프로그램 지표에 유튜브 지표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평균 시청 시간(12분)과 조회수(300만)를 곱해 실제 러닝타임 48분으로 환산하면 약 100만 명이 본방송 시청률에 더해진다. <침체의 서막-모두가 가난해진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제목, 경제 위기라는 시대정신이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울림을 준 덕일까. 전혀 기대도 안 했던 유튜브 조회수 폭발로 아주 오랜만에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 아이템을 풀기 위해 늘 보던 식의 전문가 진단 방식보다 무조건 현장을 통해 보여주자는 방식이 통했던 것 같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시대에 다들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인지라 한 번쯤 피드를 눌러보지 않았을까.


침체의 서막은 서민들에게 먼저 온다

 

팬데믹은 변곡점이었다. 세상 모두가 망할 것 같았고, 모든 관계가 단절되는 걸 경험했다. 이른바 ‘거리두기’라는 이름으로 가족조차 마스크를 사이에 두고 단절되는 시대. 지난 3년간 우리는 팬데믹 지옥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네트워크를 차단하며 버텨냈다. 하지만 돈은 달랐다. 이른바 기존에 찍어내던 돈의 몇 배를 찍어내며 무슨 무슨 지원금 명목으로 돈을 뿌리던 각국 정부들. 때아닌 유동성 호황에 주식이며 코인이며 부동산이며 모든 자산 가치가 엄청나게 폭등했다. 투자 안 하는 사람은 바보라는 말이 돌 정도로 젊은 층부터 빚을 내 투자하는 이른바 ‘영끌’이 시대정신이었다. 하루아침에 늘어나는 자산 가치에 근로소득조차 우스워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빚으로 만든 자산 버블이 꺼지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급망이 붕괴되고,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지난 반 년간 급격하게 금리를 올리며 킹달러를 만들었다. 결국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했고, 수입 의존형인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대미 환율 탓에 수입 원가가 엄청나게 오르면서 우리가 먹는 기본 식자재부터 제품의 소재들 가격까지 안 오른 게 없이 다 올랐다. 기름 한 방울도 안 나는 나라, 밀가루 자급률이 1%도 안 되는 나라, 겨우 반도체와 조선, 자동차 수출로 먹고살던 나라인데 이제 무역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섰고, 대내외 악재가 차고 넘치는 상황 속에서 금리와 물가는 미친 듯이 올랐다. 저금리 시대에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창업하고 집을 사고, 주식과 코인에 투자했던 서민들에게 결국 빚은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그렇게 모든 위기는 IMF 시절에도, 금융위기 시절에도, 포스트 팬데믹 시절에도 어김없이 서민들에게 가장 먼저 온다.


그저 몸으로 버텨내는 사람들

 

크리스마스이브, 강남의 한 백화점 앞에서 명품 오픈런 아르바이트를 하는 취재원을 만났다. 영하 10도의 혹한기, 얇은 담요 하나로 추위를 버텨내며 거리에서 꼬박 밤을 새워 16만 원을 벌었다. 그는 코로나19로 공연 예술계가 직격탄을 맞는 바람에 본업을 잃었다. 생계형 아르바이트로 한 달 생활비와 월세, 공과금을 겨우 막아낸다. 페이를 받는 그의 쓴웃음에 허탈함이 묻어났다.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주말, 아이들과 영상통화를 하며 안부를 묻는 가장의 웃음도 비슷했다. 평일 14시간은 기본, 토요일도 10시간 가까이 공수(근무수당)를 뛰면서 한 달에 이틀만 쉰다. 시간과 교통비가 아까워 쉬는 주말에는 홀로 숙소에서 세 끼를 해결한다. 가족들을 못 본 지 두 달이 넘었다. 하루라도 쉬면 일당이 날아가니까 몸이 아파도, 천근만근 무거워도 매일같이 새벽 4시에 눈을 뜨고, 밤 10시가 넘어 눈을 감는다. 그는 평택 반도체공장 건설 현장에서 배관 조공을 담당하는 일용직 근로자였다. 

 

 


 

힘들 땐 원망도 해야 되고, 슬플 땐 울어야 하고, 아플 땐 쉬어야 하는데….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취재 때 만난 수십 명의 취재원은 하나같이 이 현실을 악착같이 받아들였다. 시간을 아껴가며 투잡, 쓰리잡을 뛰고, 먹는 것을 아끼고, 잠을 줄이고, 제 몸을 깎아내며 이 악물고 위기를 버텨내고 있었다. 그 누구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다. 빚을 내 투자한 것도 본인의 선택이었고, 고생을 하는 것도 본인의 부족함 때문이었고, 세상과 시스템을 원망하는 이는 정말 한 명도 없었다. 지난해 부업자 수가 54만 7,000명으로 2년 전보다 무려 11만 명이 증가했다. 임금은 그대로인데, 물가는 치솟아 실질소득은 줄었다. 버는 만큼 쓸 수 있는 돈이 없는 것이다. 본업만 유지한 채 가족을 부양하기 쉽지 않은 시대라 부업을 선택한다. 주변만 봐도 저녁 배달 아르바이트와 대리운전을 뛰는 가장들이 크게 늘었다.

 

평택 고덕 현장에서 만난 취재원은 내게 몇 번씩 강조하며 말했다. “지금 몸을 갈아 넣고 있고 몸 내부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다”고. 그렇게 온몸을 갈아 넣고, 고독한 시간을 견뎌내며 그는 가난한 시간을 버티고 있었던 건 아닐까.


풀리지 않는 해답

 

방송이 나간 후 시청자 의견이나 심의위원 심의평에서 방송의 아쉬움으로 이 위기에 대한 솔루션을 찾아내는 책임을 물었다. 방송이 나가는 시간까지 고민했던 부분이다. 우리는 이 위기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방송에 나가지 않았지만, 경제 전문가를 열 명 넘게 만나 솔루션을 물었다. 세계 경기가 나아져야 하고, 수출 위기를 극복해야 하고, 대내외 악재를 해소할 수 있는 여건이 바뀌지 않는 한 자급적인 노력만으로 이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은 아무래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많은 전문가가 본격적인 경기 침체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이야기했다. 지금 같은 3고(高) 현상이 2023년 하반기까지 지속되어 기업의 채산성 악화와 한계기업의 연쇄적인 위기가 시작되면서 자연스럽게 실업률, 고용 악화로 이어진다면 정말로 모두가 가난해지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현장을 다녀보니 그 경고가 피부로 와 닿았다. 경기 침체 때 뉴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림은 공장 매물이 넘쳐나고, 중고기계 상가에 매물이 넘쳐나 고철로 팔린다는 건데 실제로 다녀본 현장은 뉴스와 달랐다. 중고기계 유통시장에 가보니 매물은 커녕 아예 거래가 절벽이었고, 부동산을 다녀보니 공장 매물도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팬데믹으로 한시적 이자 유예 정책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지원 정책으로 이어지며 이른바 한계기업, 한계 소상공인들이 빚으로 빚을 막으며 견뎌내고 있었던 것이다. 한계기업은 매출 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기업을 말한다. 경기가 어려워지면 매출은 줄어 재무구조가 악화되고, 재무구조를 우선으로 평가하는 기업 대출은 그림의 떡이 되고, 결국 더는 버티지 못하는 기업은 기업회생보다 파산을 선택한다. 파산으로 근로자 자동해고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팬데믹과 거리두기의 영향으로 문 닫는 점포들이 우후죽순 늘어났다. 수도권의 번화가를 가보더라도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 손님들은 날이 갈수록 준다. 결국 권리금도 포기하고 가게를 비워야 한다. 가슴 아픈 건 자신의 돈을 들여 인테리어한 매장의 철거 비용마저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소상공인이 힘들어지면 재료를 대는 산지의 농가들도 타격을 입는다. 고객들은 쓸 돈이 없어 김장을 안 하고, 수요가 줄면서 하락하는 배춧값에 결국 배추밭을 갈아엎는 농민, 비싼 원유와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 배를 띄우지 못하는 어민, 사룟값, 비룟값, 자잿값 다 오르는데 농산물 가격은 그대로인 아이러니가 취재하면서 알게 된 인플레이션의 역설이었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풀어야 할까? 부끄럽게도 방송에서도, 방송이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2023년도 두 달이나 지났는데 한국 경제 위기를 가리키는 지표들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체감경기는 갈수록 악화되는데 물가는 쉴 새 없이 오른다. 만성적자인 공기업 부채 문제는 공과금 현실화를 독촉하고, 금리 인상에 은행들은 때아닌 성과급 잔치를 열어 뭇매를 맞고, 정치는 민심을 못 읽은 지 한참이다. 말없이 위기를 몸으로 때우며 버텨내는 우리가 지쳐 쓰러지기 전에 한 번쯤 다 같이 가난을 이겨낼 길이 무엇인지 공론화해야 하지 않을까. 제작진은 소리 없는 아우성들을 담아 현실을 있는 그대로 충실히 보여주기 위해 뻔하고 추상적인 답을 담지 않았다. <침체의 서막>은 우리들의 체감형 르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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