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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5년마다 국민연금의 재정계산을 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재정계산은 기금 추이를 확인하고, 재정 건전성을 평가해 개선점을 찾는 이른바 ‘건강검진’이다. 이를 두고 언론은 다양한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국민연금 관련 보도, 어떻게 봐야 할지 짚어본다. 편집자 주
국민연금은 2023년 언론이 주목하는 주요 의제다. 윤석열 정부가 노동·교육 개혁과 함께 ‘3대 사회 개혁’ 중 하나로 연금 개혁을 지속적으로 주창해온데다, 무엇보다 올해가 재정계산이 진행되는 시기기 때문이다.
국민연금법은 5년마다 재정계산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국민연금은 수입과 지출 대부분이 보험료와 지급액으로 구성되는 구조다. 그렇기에 저출산, 고령화 등 사회경제적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다. 대한민국은 지금 세계에서 유례없는 초저출산율에 생산 가능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는 변화를 겪고 있다. 이런 인구 변화는 공적연금의 지속 가능성에 직격탄을 때린다. 연금의 제도부양비는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 규모 대비 노령연금 수급자 수를 뜻하는데, 이 수치는 올해 24%였다. 하지만 인구 변화는 이 수치를 2078년에 143.8%로 최고점에 이르게 할 전망이다.
재정계산은 이렇듯 미래의 환경 변화에 따른 수입과 지출 추이를 살펴 재정 추계를 내는 게 1차적인 목적이다. 하지만 본뜻은 추계 결과 그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국민연금에 대한 일종의 정기 ‘건강검진’과 같은 것으로, 재정 상황을 진단해 문제 부위를 수술하라는 게 본래 취지다.
따라서 더 주목할 것은 이를 바탕으로 마련되는 제도 개선 방안이다. 그런데 이 방안은 가입자, 이해당사자는 물론 세대와 이념 등 여러 층위에서 이해관계가 다르고 지향이 엇갈려 격렬한 논쟁을 불러올 여지가 다분하다. 재정계산 시기마다 연금 개혁이 우리 사회의 공론장에 핫 이슈로 떠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 재정계산 시기마다 연금 개혁 방안은 정치권은 물론 언론의 ‘뜨거운 감자’였다. 2003년 처음 시작한 1차 재정계산 시기부터 그랬다. 당시 노무현 행정부는 그해 8월 ‘더 내고 덜 받는’ 연금 개정안을 내놓았다. 소득대체율은 60%(2003년)에서 50%(2008년)로 낮추고, 보험료율은 9%에서 2030년까지 15.9%로 높이자는 이른바 ‘재정 안정화 방안’이었다. 이를 둘러싸고 그해 언론은 기사를 쏟아냈다.
그 가운데 유독 ㅈ일보의 <국민연금 원금도 못받는다>(2003.8.16)라는 기사가 떠오른다. 원금을 못 받는다고 하니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자극적인 기사였다. 이 신문은 이후 2020년에도 <“국민연금 원금도 못받게 왜 바꾸나”>란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2003년 당시 정부는 “납부한 원금만큼 연금을 못 받는 일이 없다”는 해명을 내놓는 한편, 이 기사와 관련해 ㅈ일보에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냈다. 연금에 관한 언론 보도에 대해 정부가 소송으로 대응한 대표적인 사례다. 언론의 연금 보도에 대해 그동안 오보나 선정적 보도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온 바는 있었으나 정부가 소송으로 맞선 것은 당시만해도 이례적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해 10월 국회에 제출된 연금법 개정안은 2004년 6월 16대 국회 만료로 폐기됐다.
타임 루프에 갇힌 연금 개혁
이후 2008년, 2013년, 2018년, 어김없이 5년마다 재정계산 시기가 다가왔고, 그때마다 연금 개혁은 어김없이 언론의 주요 의제였다. 올해는 바야흐로 다섯 번째 맞는 5차 재정계산 시기다. 정부는 으레 그렇듯 ‘연금 개혁’을 피력하고, 정치권은 당장에 연금 개혁을 할 듯 호언장담하다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언론은 자극적인 기사로 정부와 정치권을 맹렬히 질타하는 한편, 경마식 속보 경쟁이나 특종 경쟁에 몰두하느라 정작 공론장의 중재자 역할, 심도 있는 대안 제시에는 큰 힘을 쏟지 않거나 못 한다. 재정계산 시기마다 이뤄지는 연금 개혁을 둘러싼 우리 사회 정책결정자 및 관련 행위자 그리고 언론의 모습은 기시감이 들 정도로 어찌 매번 이토록 판박이인가 싶다.
그래도 손에 잡히는 결과를 만들면 우여곡절의 과정이라고 여기겠지만, 지금껏 단 한 번도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한 바가 없기에 허탈하고 갑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의 반복이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연금 개혁은 특정 장면이 계속 반복되는 타임 루프에 갇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연금 개혁을 둘러싼 좌절과 실패의 흑역사를 두고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많은 질타가 있다. 그런데 이 흑역사의 어두운 한쪽에 언론이 어른거리는 것은 왜일까? 이유는 명확하다. 공론장의 주체이자 대한민국 정책 생태계의 주요 행위자로서 언론이 제 기능과 역할을 뚜렷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금 개혁의 흑역사는 언론과도 무관하지 않다.
선정적이고 과장된 보도, 정보를 잘못 전달한 오보, 기금 소진을 중심으로 한 재정문제에만 초점을 둔 편향적 보도 등은 국민연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나 시민의 오해와 편견을 낳아 궁극에는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불러온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는 점은 솔직히 부인하기 힘들다.
과거 보건복지부 출입기자 시절에 겪은 그릇된 언론 보도의 두 사례가 떠오른다. 1999년 4월 27일자에 보도된 ㅁ일보의 <국민연금-보험상품비교 35세 男, 60세 수령땐 1억넘게 손해>라는 기사1)가 그중 하나다. 국민연금을 사적연금과 비교해 쓴 엉터리 기사였다. 20년을 가입하고 60세부터 연금을 받을 경우, A사 상품이 월 56만 원, 국민연금이 월 52만 원을 받게 돼 88살까지 연금을 받는다면 총 수령액이 A사 상품은 2억 9,000만 원, 국민연금은 1억 9,000만 원으로 국민연금 가입 시 1억 원을 더 손해본다는 내용이었다. 사적연금과 국민연금을 ‘용감하게’ 비교한 이 기사는 국민연금 지급액과 관련한 기초적 사실조차 몰랐다. 국민연금 지급액은 해마다 물가상승률을 반영한다. 따라서 기사가 제시한 국민연금 월 52만 원은 25년 후에는 대략 197만 원(물가상승률 3%)으로 추정된다. 기사는 이 사실을 간과했다. 따라서 제대로 비교하면 국민연금이 무려 최소 4.5배 이상 더 많이 받는다. 이렇게 보면, 보도 내용은 허위 정보였던 것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자극적인 보도
연기금 주식 투자 손실 관련 사례도 또 다른 유형의 그릇된 보도다. 국민연금은 해마다 쌓이는 막대한 기금을 주식과 채권 등에 투자해 상당한 수익을 거둔다. 이 수익은 국민연금 재정 안정에 크게 기여한다. 하지만 엄연히 투자니 매번 수익만 거둘 수 없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경제가 세계적으로 곤두박질치면 큰 손실을 본다. 이때 많은 언론은 국민연금이 수천억 원을 잃었다는 식으로 보도하며 질타하거나 엉뚱하게 이를 근거로 기금 운용의 전문성과 기금 거버넌스의 독립성을 운운한다.
사실 언론이 보도한 손실액은 실제 손실은 아닌 그 시점의 평가 손실이다. 주가가 다시 오르면 평가 손실은 줄거나 다시 수익으로 바뀌기도 한다. 이런 속성 때문에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은 물론 전문가들도 절대액보다 수익률로 연기금 투자 실적을 평가해 보도해줄 것을 권고한다. 액수로 보도할 때는 평가손실임을 밝히면 된다.
그래도 위에 언급한 두 부류의 오보는 지금은 극히 보기 드물다. 이 점은 전문가들도 대체로 인정한다. 적어도 국민연금에 대한 언론의 정책 보도가 이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 언론의 국민연금 보도가 문제없다는 건 물론 아니다.
언론 보도를 접해온 연금 전문가들은 요즘의 국민연금 보도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할까? 몇몇 전문가에게 물으니 여전히 자극적인 보도를 꼽는다. 이들이 꼽은 최근의 대표적인 문제 기사는 <아마추어 국민연금 기금위…10년 수익률 ‘글로벌 최하위’>란 ㅎ경제신문 2023년 2월 3일 자 기사다. 이 신문은 글로벌 연기금 수익률을 종합해 통계를 내면서 국민연금의 10년(2013~2022년) 연평균 수익률이 4.99%로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 9.58%,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 7.12% 등 타국과 비교해 현저히 낮고, 일본의 공적연금 수익률 5.30%보다 낮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ㅈ일보는 2월 6일 자에 <수익률 ‘세계 꼴찌’, 국민연금 정치 외풍 휘둘린 결과>라는 제목의 사설로 이 보도를 인용하며, 이를 국민연금 지배구조를 비판하는 논거로 삼았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공단은 ㅎ경제신문이 제시한 4.99%가 단순히 산술평균해 수치를 낸 것이라 계산 방식이 부적절하다고 반박했다. 공단의 한 연구위원은 “무엇보다 세계 시장 악화로 지난해 3월 이후 수익률이 급락한 2022년도 1분기와 3분기를 반영해 10년 수치를 산정한 것이 악의적”이라고 말했다. 시점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평가가 다른데, 고의적으로 가장 나쁜 기간을 골라 보도했다는 반론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은 “수익률은 기간을 어떻게 끊고 평가하는지에 따라 달라지기에 비판하더라도 전체 기간 누적수익률이 6.8%라는 것과 연금 기금의 약 30%를 투자 수익금으로 채운다는 기본적 사실을 공유해야 한다”고 했고,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억지로 나쁜 통계를 만들어 보도하는 것은 왜곡”이라고 비판했다.
재정계산 시기 언론의 가장 큰 관심은 재정 고갈 시점이다. 보건복지부 국민연금 재정 추계전문위원회는 지난 1월 27일 재정 추계 시산 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 ‘연금 기금 고갈’로 검색해보니, 공식 발표일(1월 27일) 전후인 1월 21일부터 1월 28일 사이에 무려 200여 건의 기사가 쏟아졌다. ㄷ일보 2023년 1월 28일 자, <연금개혁 못하면, 2060년 월급 30% 국민연금으로 내야>를 비롯해 기금 고갈에 따른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기사들이 여전히 많았다.
재정 추계 수치 결과 나타난 기금 소진 시점은 팩트다. 이를 언론이 전달하는 것은 당연히 할 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금 소진으로 인해 마치 온 나라가 망한다는 식이나 그 시점 이후에는 연금을 아예 못 받는다는 식으로 등치하는 보도는 사실 보도가 아니다. 재정 추계는 기금 소진 시점을 가늠해 이를 늦추기 위한 방안을 다각적으로 찾기 위한 것이다. 즉 보험료율을 올리면 언제 얼마나 어떻게 올릴 것인지, 나라 살림 전체의 규모로 보건대 감당 가능한 수준인지, 또 국고를 투입한다면 언제 어떻게 하는지 등을 놓고 적절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연금개혁 못하면, 2060년 월급 30% 국민연금으로 내야>란 제목도 자극적인데, 따지자면 노동자가 월급의 30%를 내지 않는다. 직장 가입자의 경우, 국민연금 보험료는 노사가 각기 절반씩 부담한다. ㄷ일보는 제목 아래 회사가 ‘절반 부담’이란 말을 작은 글씨로 써놓았지만 면피성에 가깝고, 편집 의도는 재정 불안의 ‘공포’를 불러일으키려는 뜻으로 읽히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식의 보도는 연금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쌓고 연금 제도 자체를 불신케 한다.
기금 고갈을 중심으로 한 언론 보도는 실은 소득보장제도로서 국민연금과 재정 추계의 의미를 충분히 새기지 못하고 있는 데 기인한다. 재정안정화론에 입각한 연금 개혁 방안을 강조하려는 편향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나타나는 국민연금 보도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부정적 편향성’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이 경제 뉴스를 다룰 때 많이 엿볼 수 있는 이런 경향성은 연금 보도에서는 아주 뚜렷하다.
언론의 중재자 역할 필요
현재 연금 개혁은 두 개의 다른 경로로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재정계산 과정을 통해 연금 개혁 방안을 도출하는 정부의 재정계산위원회 논의고, 다른 하나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이하 연금특위) 경로로, 두 개 트랙이다. 이 가운데 국회 연금특위는 별 소득 없이 3월 중순 현재 공회전 중이다.
직접적 배경은 산하의 전문가위원회에서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금 개혁 방안을 두고 두 갈래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하나는 소득 보장 강화를 중시하는 데 비해 다른 쪽은 재정 안정화를 우선한다. 이렇듯 두 방안이 묵은 갈등을 노정하고 있지만, 다수 언론은 재정 안정화 쪽에 서서 보도를 한다.
또 다른 ㅈ일보의 1월 31일 자 <“소득대체율 인상? 젊은이들 무슨 죄 졌나”… 이상해진 연금개혁> 기사는 소득강화론에 서 있는 전문가들이 꼽는 편파 보도 사례 중 하나다. 1월 30일 자 <[단독] 국민연금 보험료율 9%→15% 가닥, 소득보장서 갈렸다>는 기사에서 연금특위 자문위가 보험료율을 15%로 인상하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1월 31일 자 기사에 대해 “최근 언론 보도 중 이렇게 지독하게 편파성을 띤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1월 30일자 기사에 대해서는 보도 당일 자문위가 즉각 김연명·김용하 연금특위 공동위원장 명의의 입장문을 내어 “자문위원회 전체가 합의한 것이 아니다”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전문가들의 대립은 국민연금 개혁의 걸림돌이지만, 역으로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타협과 합의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이런 맥락에서 연금 개혁은 정치적 문제다. 국민연금은 정치인 것이다. 연금제도 자체는 재분배와 사회 연대의 논리를 내장하고 있어 본질적으로 정치적 타협이나 합의의 영역이다.
연금 개혁의 성패는 실은 구체적인 방안보다, 얼마나 관련 당사자들 간의 합의나 정치적 타협을 이끌어내는가에 달려 있다. 진정 개혁을 원한다면, 언론은 갈등과 대립을 키우거나 기자 자신이나 자사의 이해관계를 앞세우며 어느 일방에서 보도할 게 아니라, 시민들에게 사실을 정확히 알리는 한편, 대립하는 양쪽의 견해를 균형 있게 있는 그대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양쪽의 거리를 좁히는 공론장의 매개자이자 중재자로서 역할에 힘을 쏟을 필요가 있지만, 솔직히 그런 기대를 확인하기 란 여간 어렵지 않은 게 현실이다.
언론은 대한민국 정책 생태계의 주요 행위자 가운데 하나다. 보도와 논평이란 고유의 기능을 통해 정책을 평가한다. 오늘날 언론의 이런 기능은 갈수록 커졌고, 정책 보도의 비중도 높아졌다. 정책 의제의 중심에는 특히 정부의 경제·사회 분야의 핵심 정책이 자리한다. 오늘날 언론은 권력 감시란 원초적 기능에 더해 정책의 비판자와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정책 지식을 발굴·소개하거나 전문가들의 검토를 중재하는 한편, 정책 지식을 검증하는 토론의 장을 제공하는 역할이다. 언론이 이런 역할을 잘 수행할 때 민주주의가 숙의와 공론을 통해 보다 심화한다. 나아가 좋은 정책이 제도화함으로써 시민 삶의 질이 한층 높아질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언론의 정책 보도는 정책 결정자 못지않은 책무성과 정확성 등이 요구된다. 나 자신을 비롯해 특히 정책을 다루는 언론인이라면 깊게 자각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국민연금에 대한 언론인들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도 언론인 자신은 물론 언론사나 한국언론진흥재단 등에서 더 힘쓸 필요가 있다. 제도에 대한 기초적인 사실을 몰라 오보나 부정확한 보도를 하는 경우도 여전히 적잖기 때문이다.
1) 김연명, 복지동향, 1999년 6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