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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제작기] 동아일보 <표류: 생사의 경계를 떠돌다> 취재기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3-04-28

응급 환자가 발생하면 119에 신고한다. 이내 구급차가 달려와 환자를 싣고 달려간다. 우리는 생각한다. 환자는 곧 병원에 도착할 것이고 의료진이 생명을 구할 것이라고. 과연 실상은 어떨까. <표류: 생사의 경계를 떠돌다> 취재기를 통해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확인해본다. 편집자 주

 

아들의 심장이 점점 느려지는데 구급차는 멈춰 서 있다. 남편의 부러진 다리가 썩어가는데 받아주는 병원이 없다. 지독한 악몽 같지만, 지난해 이준규 군(13)의 어머니와 박종열 씨(39)의 아내가 실제로 겪은 일이다. 그리고 지금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응급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떠도는 ‘표류’는 의료 현장에서 흔하디흔한 일이다. 하지만 ‘흔한 사건’이라는 사실이 환자에게 위안이 되지는 못 했을 것이다. 표류의 시간에 환자와 그 가족은 어떤 일들에 부닥칠까. 이런 사건이 반복되는 ‘진짜’ 이유가 뭘까.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 6기 팀의 <표류: 생사의 경계를 떠돌다> 시리즈는 두 가지 물음에 답을 찾으려는 시도였다.


‘탁월한 콘텐츠’에 걸맞은 주제 찾기

 

히어로콘텐츠팀은 2020년 동아일보 창간 100년을 맞아 출범했다. 취재기자 네 명이 발령 즉시 현업에서 손을 떼고 4~6개월간 하나의 프로젝트에 몰입한다. 인터랙티브 기사 기획자와 개발자, 디자이너 등까지 포함하면 총 10여 명이 참여한다. 오랜 시간 여러 사람이 투입되지만 주제와 형식에는 제한이 없다. ‘탁월한 콘텐츠’라는 기준이 유일하다.

 

앞선 1~5기 팀의 히어로콘텐츠도 서로 주제와 형식이 완전히 달랐다. 1기 <증발: 사라진 사람들>은 법원에서 실종 선고를 받은 226명을 추적해 ‘증발자’들의 생태계를 드러냈다. 5기 <산화,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은 순직 소방관의 아내 한 명을 중심에 둔 2만 7,000자가 넘는 내러티브를 통해 우리 사회가 영웅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응시했다. 한 명의 동료 기자이자 독자로서, 모두 ‘탁월하다’는 걸 직관할 수 있는 시리즈였다.

 

그래서 6기 팀장이라는 역할은 주제를 정하는 단계부터 부담이 컸다. 2022년 9월 26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2주간 국내외 언론사의 탐사보도와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훑었다. 선구자들의 땀과 고민이 담긴 프로젝트를 섭렵하면서 원칙과 기준을 잡을 수 있었다. △생생한 현장(시각화를 위해) △사람 이야기(공감과 몰입을 위해) △무게감(장기간 취재·제작에 걸맞도록) △사회에 미칠 영향. 이 네 가지를 아우르는 주제를 찾는 게 첫 번째 과제였다.

 

 


 


‘흔한 사건’을 탐사보도 주제로

 

‘표류’를 아이템 회의에 처음 낸 건 팀을 꾸린 지 2주가 지났을 때였다. 보건복지 분야를 담당하면서 관련 기사를 수십 건 썼다. 그래서 오히려 히어로콘텐츠 후보에서 제외했었다. 너무 자주 나온 얘기라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주 나온 얘기’를 뒤집어보면 그만큼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도 해결이 안 되는 문제라는 뜻이었다. 환자가 허무하게 목숨을 잃고, 정부가 대책을 내놓고, 다른 이슈에 묻혀 대책이 흐지부지되고, 또 다른 환자가 숨을 거두고…. 정부가 5년마다 내놓는 응급 의료 기본 계획의 핵심 내용은 매번 거의 똑같았다. 반복되는 굴레의 원인을 파고들어 고발하는 건 심층 취재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만 가능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무엇보다, 표류 기사를 수없이 쓰면서도 당사자인 환자의 절망을 제대로 다룬 적이 없었다. 생사의 경계를 헤맬 땐 누구나 무력한 존재가 된다. 약자 중의 약자가 된다. 이런 수많은 ‘A 씨’들이 목소리도 없이 잊힌다. 온전히 환자의 시각에서 사건을 따라가기만 해도 충격적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다.

 

영화 <시>(2010년)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사과를 진짜로 본 게 아니에요. 사과라는 것을 정말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로 보는 거예요.”

 

지금까지 응급의료 문제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인터랙티브를 중심에 두다

 

취재팀이 치열한 토론 끝에 표류를 아이템으로 정했지만, 바깥에서는 ‘식상하다’는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기시감이 강해 관심조차 끌지 못할 거란 우려도 있었다.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심각한 문제라고 외친들 독자가 읽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다. 우려를 타파할 길은 하나였다. 충격을 줘야 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방식으로 보여줘야 했다.

 

독자가 표류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기사를 최우선에 두고 기획자와 개발자, 디자이너들과 머리를 맞댔다. 기사의 문제의식을 효과적으로 드러낼 방식을 다양한 직군과 함께 고민하는 건 그 자체로 신선한 경험이었다.

 

표류에 접목할 레퍼런스를 물색했다. 해외 언론뿐 아니라 ‘구찌’ 등 고가 브랜드의 홍보 사이트나 소셜미디어가 만든 미니게임까지 참고했다. 전 세계의 실력자들이 소비자의 시간을 1초라도 더 사기 위해 기상천외한 시도를 하고 있었다. 11년간 신문기자로 일하며 출입처와 지면 제작에 매몰돼있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나름 깨어있는 뉴미디어 시대의 기자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완성된 인터랙티브 기사가 총 3건이다. <그들이 구급차를 탔던 날>은 퀴즈 형식이다. 표류 환자의 실제 사례를 제시하고 치료받기까지 걸린 시간을 시곗바늘을 돌려 추측하게 하는 등의 방식이다. <‘표류’ 속으로>에서는 환자가 119 신고 후 수술실에 도착하기까지 거치는 4개의 공간을 360° 영상으로 구현했다. 모두 독자의 ‘체험’에 주안점을 뒀다.


구급차와 응급실, 두 개의 문

 

지면과 인터랙티브 기사에 활용할 ‘재료’를 긁어모으는 작업도 기획과 동시에 진행했다. 구급차와 응급실 등에서 취재한 사진과 동영상을 디알파팀과 공유하며 기획을 수정해나가는 방식이었다. 

 

현장을 확보하는 건 간단해 보이지만 모든 걸음이 가시밭 위였다. 표류의 핵심인 119구급차 동승 허가를 받아내는 데만 꼬박 석 달이 걸렸다. 소방 측은 일선 구급대와 병원의 협력 관계가 틀어질까 봐 걱정했다. 타당한 우려였다. 소방청과 각 소방재난본부를 여러 차례 찾아다니며 ‘병원을 가해자처럼 묘사할 의도가 없다’고 설명한 끝에 구급차 문을 열 수 있었다.

 

응급실 협조를 구하는 것도 간단하지 않았다. 환자를 수술할 의사가 없어 다른 병원으로 전원(轉院) 보내는 현장을 꼭 담아야 했다. 대다수 병원이 이를 치부라고 여기고 손사래 쳤다. 특정 병원을 탓하는 기사가 아니라, 수술 의사가 부족한 구조를 겨냥하는 기사라는 걸 납득한 후에야 비로소 응급실 문을 열어줬다.

 

 


 

 

취재팀은 구급차와 응급실에서 총 37일을 보냈다. 응급환자가 몰리는 연휴를 놓치지 않으려 크리스마스와 신정, 설 연휴에도 현장을 지켰다. 기약 없는 ‘뻗치기’였지만 지난했던 섭외 과정을 생각하면 귀한 기회로만 느껴졌다. 그렇게 길어 올린 잠실119구급대와 여수전남병원 응급실의 현장 르포가 지면 시리즈 1회를 장식했다.


주인공 찾기

 

남은 과제는 ‘주인공’을 찾는 것이었다. 독자가 이 문제를 내 가족, 내 이웃의 이야기로 느끼려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다. 그러려면 △표류가 삶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으면서 △실명과 얼굴을 공개할 수 있고 △사건 당시를 재구성할 자료가 남아있는 환자여야 했다.

 

여러 갈래로 제보를 받았다. 의사들이 모인 단톡방이나 소방 노동조합, 민간이송업체 등 환자 정보가 모이는 길목을 지켰다. 사건이 생기면 달려가서 환자나 그 가족을 만나 설득했다. 그렇게 26명을 인터뷰했다. 대다수는 실명 공개에서 망설였다. ‘표류’의 시간을 떠올리는 게 괴로워 여러 차례 인터뷰 끝에 보도를 고사한 이들도 있었다.

 

끝까지 보도를 허락해준 이들 중에 준규 군과 종열 씨가 있었다. 이들이 겪은 228분, 378분의 표류를 ‘1분 단위’로 철저하게 복기하기 위해 미공개 자료를 포함해 총 1,300쪽이 넘는 기록을 검토했다. 두 환자를 이송했던 구급대원과 진료했던 의사 등 31명을 인터뷰했다. 이 과정은 준규 군의 어머니와 종열 씨에게도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이들이 고통을 견뎌준 이유는 단 하나.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일을 겪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지면 시리즈 2~5회를 관통하는 두 주인공, 준규 군과 종열 씨의 이야기는 이렇게 세상에 드러났다.


시리즈는 끝났지만

 

2023년 3월 27일부터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 페이지(original.donga.com)에서 인터랙티브 기사 3건이 순차적으로 공개됐다. 지면 5회 시리즈도 같은 날부터 게재됐다. 시리즈가 종료되고 이틀 후인 지난 4월 5일, 국민의힘과 정부는 ‘소아·응급·비대면 의료 대책 당정 협의회’를 열고 응급의료 대책을 발표했다.

 

원래는 취재기를 이렇게 마치려고 했다. 당정이 즉각 내놓은 대책에 <표류: 생사의 경계를 떠돌다> 시리즈의 핵심 제언이 얼마나 반영됐는지, 보도에 대한 독자와 환자단체의 반응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소개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걸로 된 걸까. 과연 이번엔 다를까. 아니면 혹시 지긋지긋한 폐곡선 위에 점 하나를 더한 건 아닐까. 다른 이슈에 묻혀 대책이 흐지부지되고, 또 다른 환자가 숨을 거두고, 똑같은 대책이 발표되고…. 모든 게 제자리인 건 아닐까.

 

아직은 변한 게 없다. “제 아이들은 이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종열 씨의 바람도, 지금 어디선가 표류하고 있을 누군가의 고통도 그대로다. 모든 게 그대로인 한, 시리즈는 끝나도 보도는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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