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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KBS, MBC, SBS 3사 메인 뉴스의 공통점은 모두 여성 앵커들이 진행한다는 것이다. 여성 기자가 남성 기자와 뉴스 공동 진행을 맡은 지 40년 만이다. 여성 앵커가 낯설지 않은 오늘이 있기까지, 그 역사와 의미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한국의 지상파 방송 3사 메인 뉴스의 메인 앵커를 여성 기자가 모두 휩쓸었다. 방송계의 ‘뉴노멀’이다. 여성 앵커들의 종횡무진 활약상이란 사실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해진 일이다. 하지만 벽이 더 높아 보였던 지상파 3사의 메인 뉴스에서, 그것도 단독 메인 앵커를 여성들이 차지했다는 사실은 한국 미디어사에 이정표로 기록될 만하다. 특히 이들 세 명이 취재 현장을 10년 넘게 누벼온 중견 여성 기자 출신이란 점에서 그 시대적 의미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뉴노멀의 시작을 알린 것은 지상파 방송사 중 가장 보수적일 것 같은 KBS였다. 2019년 11월부터 KBS <뉴스9> 평일 메인 단독 앵커 자리를 이소정 기자가 3년 넘게 지키고 있다. MBC에서도 2022년부터 <뉴스데스크> 주말 단독 앵커석에 이지선 기자가 앉아있고, SBS 또한 2023년 4월 개편에서 정유미 기자를 주말 메인 뉴스의 단독 앵커로 발탁했다. SBS에서 주말 메인 뉴스 여성 앵커 단독 진행은 1995년 이지현 기자 이후 28년 만의 일인데, 이로써 지상파 방송 3사의 여성 앵커 트리오 체제가 완성됐다. KBS의 선제적 파격 행보가 ‘여성 단독 메인 앵커’라는 나비효과로 나타난 셈이다.
여성 기자의 앵커 데뷔 역사
디지털 빅테크 기반으로 뉴스 과잉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2011년 보도전문채널과 종합편성채널 출범에 이어 사실상 뉴스 플랫폼이 된 유튜브의 빠른 성장 속에 바야흐로 뉴스 영상의 홍수 시대가 됐다. 급증한 채널 선택권만큼 앵커군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해지고 있다. 지상파 여성 앵커 증가는 2015년부터 단독 앵커로 활약 중인 MBN 김주하 기자를 비롯해 여러 종편채널과 보도채널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직 여성이 진행자로 활약한 덕분에 대중의 인식을 바꿔놓은 배경도 한몫했을 것이다.
여성 기자의 앵커 데뷔 역사는 1983년 3월 이윤성 기자와 함께 KBS 심야 뉴스 <보도본부 24시> 진행을 맡은 전복수 기자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한수진 SBS 기자가 1994년 최초 메인 뉴스 앵커로 2002년까지 최장기간 활약했고, 당시 김은혜 MBC 기자도 1999년 <뉴스데스크> 여성 앵커로 발탁됐다. 최초의 메인 여성 앵커, 한수진 SBS 기자의 발탁은 당시로선 파격이었다. 여성 아나운서가 아닌 여성 기자를 메인 뉴스 앵커로 기용하고 앵커 리포트나 인터뷰를 통해 여성 앵커의 존재감을 부각시킨 최초의 시도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이후 30년의 간격을 두고 이번에 메인 앵커석에 앉게 된 여성 기자 세 명은 모두 경력 16~20년 차의 중견 기자들이다. 입사 후 주요 취재 부서를 두루 거치며 현장 취재 경험을 넉넉하게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방식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동안 방송계에서 남성 앵커는 취재 경험과 연륜 중심의 40~50대 기자들이 맡아온 반면, 여성 앵커는 설령 기자 출신이라고 해도, 20~30대에서 젊음과 미모 중심으로 선발된 것이 현실이다.1) 그러다 보니 나이와 경력이 부여하는 일종의 권력관계가 형성됐다. 여성 앵커와 남성 앵커가 주로 맡는 뉴스 아이템이 달랐고 출연 순서와 비중에서도 차이가 났다. 남성 앵커는 뉴스 시작과 함께 주요 뉴스, 경성 뉴스를 전하고 여성 앵커는 뒤이어 연성 뉴스나 간추린 단신들을 전하는 방식이다.
여성 앵커의 상징성
한국 사회에서 텔레비전 뉴스 앵커가 갖는 역할과 사회적 위상에 대한 연구 논문을 찾아보면, 시대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여성 앵커’라는 논문 키워드 검색 결과, 연구 내용은 여성 앵커의 ‘재킷 색상’과 ‘슈트 스타일’, ‘빨간색 의상’, ‘외모’, ‘메이크업’ 등 이미지에 대한 분석과 연구 등이 다수를 이룬다. 물론, 젠더를 가릴 것 없이 앵커를 비롯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진행자의 의상 스타일과 색상 등은 그 상징적 의미와 전달 효과 등에서 중요한 학술적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여성 앵커가 소구되어온 상징성과 이미지가 어떠했는지 그 일면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변화는 서서히, 그리고 단편적으로 진행됐다. 1990년부터 2010년까지 MBC <뉴스데스크>를 대상으로 10년에 걸쳐 앵커의 젠더와 기사 중요도 등의 상관성을 분석한 2011년 당시 논문을 보면 뉴스의 주제와 형식에서 남녀 앵커의 점유율과 격차가 줄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당시에도 남성 앵커가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뉴스를 다루고 있으며, 스트레이트 뉴스의 경우 여전히 여성 앵커의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사실이 지적되고 있다.2)
여성의 방송 진출이 눈에 띄게 늘어난 최근에도 방송 미디어에서 여성 앵커와 여성 기자의 양적·질적인 ‘과소재현(寡少再現)’ 현상이 여전하다는 지적은 이어졌다. 2015년 당시 지상파 방송 3사와 종편채널 4사의 저녁종합뉴스를 분석한 연구 논문을 보면 여성 기자와 앵커뿐만 아니라 인터뷰이도 여성은 실제보다 작은 비중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당시 분석 결과 인터뷰 참여자 가운데 남성은 일반 시민과 전문가의 등장 비율이 비슷한 반면, 여성은 일반 시민이 전문가의 두 배가량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3)
드디어 2023년, 바야흐로 ‘여성 앵커 전성시대’다. 여기에는 그동안의 시대적 맥락과 연결 가능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현장 취재 경험과 연륜을 갖춘 여성 기자 앵커의 등장이, 비슷한 연차와 경험의 남성 기자 앵커처럼,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졌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사회의 거울이자 창인 미디어, 특히 모든 연령의 시청자 접근도가 높은 미디어인 텔레비전 뉴스에서, 여성의 시각과 입장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이해하며 전달하는 뉴스 리포트와 멘트가, 그에 비례한 다양성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다. 그리고, 단순히 여성 기자와 앵커가 얼마나 출연하느냐를 넘어서서, 한국의 미디어가 여성의 과소재현 시대를 넘어서고 있는가 하는 물음표다.
미디어가 제대로 사회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각과 입장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이해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각자의 입장과 상황, 계층에 따라 사회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성과 포용성의 수준은 그 사회의 민주화 및 문화적 수준을 가늠할 만한 핵심 지표다. 이는 또한 그 사회를 기록하는 언론인이 갖춰야 할 소명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서도 젠더의 위상과 역할은 빠르게 변화하며 다양성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사회상을 잘 비추고 담아내려면, 앵커와 기자, 즉, ‘화자’ 및 ‘전달자’의 젠더 비중 변화는 오늘날 사회의 변화상에 맞춘 매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며, 또한 당연한 일이다.
이 시점에 다시 한번 질문해 본다. 여성 앵커 전면 등장을 계기로 1990년대 민주화 역사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된 미디어의 ‘여성 과소재현’ 현상은 획기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그 답을 말하기엔 아직 이르지 않을까?
지상파 방송 3사 메인 뉴스 앵커. 위로부터 이소정, 이지선, 정유미 <출처 - 각 방송사 뉴스 화면 갈무리>
또 한 번의 나비효과를 기대하며
KBS는 최근 정기 인사에서 주요 부서장에 여성 기자를 대거 발탁했다. 첫 여성 정치부장을 지냈던 송현정 기자가 취재1주간에 오른 데 이어 정치부장과 통일외교부장에는 김세정 기자와 홍희정 기자, 첫 사회부장에 노윤정 기자가 각각 임명됐다. 여성 기자들에겐 좀처럼 허용되지 않았던 주요 취재부서, 이른바 ‘정경사(정치·경제·사회부)’의 장을 여성 기자들이 싹쓸이한 것이다.
현재 고연차인 여성 기자들의 경우, 수적 열세 탓인지, 아직은 주요 보직 임명 사례가 상대적으로 드문 한국 언론계에서 또 한 번의 나비효과로 나타날지 지켜볼 일이다. 그동안 ‘유리천장’을 깨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도 고위 책임자들이 늘상 내세웠던 변명은 “여성에게 중책을 맡기려 해도 마땅한 인물이 없다”는 식의 얘기들이었다.
이제 그런 변명 따위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만큼 중견 여성 기자의 인적 풀은 넓고 탄탄하고 든든해지고 있다. 내·외부적으로 여성의 과소재현 현상이 여전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면, 그리고 다양해진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호응하고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면, 기사의 출고와 편집을 책임지는 부서장과 편집인에 여성 기자의 기용을 늘리는 전략적인 판단을 제안해 본다. 무엇보다 각 매체의 부족한 다양성을 극복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엔 각 언론사도 신입 기자를 선발할 때 절반씩의 성비를 맞추려면 오히려 남성 사원의 최소 비율을 정해야 할 정도라는 후일담이 심심찮게 들린다. MZ 세대에서, 이후 미래 세대에서 여성 기자의 비율이 그만큼 가시적으로 늘었다는, 또 늘어날 것이란 뜻이다. “후배들 앞길 열어주려면 무조건 버텨야 한다”고, 전우애처럼 비장했던 여성 기자들의 성장 스토리도 이젠 옛말이 될 것 같다고 어느 여성 기자 후배는 귀띔하기도 한다.
이 같은 변화에 놀란 탓인지 요즘 한국 사회에선 다양하고 논쟁적인 젠더 담론과 갈등이, 그것도 최근의 정치 갈등과 맞물린 형태로, 매우 복잡하고 격렬하게, 때때로 과도하게 진행되는 중이다. 인류 역사 이래 글로벌하게 지속된 남성 우위 사회가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다양성 사회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어쩌면 필연적인 충돌이자 시대 전환의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0.78명. 세계 최저 출산율이 지속되면서 국가 소멸 위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전쟁과 전염병, 글로벌 경제 난국도 버거운데, 다층적 양극화와 심각한 갈등의 늪에 빠진 한국 사회에 시대를 앞서갔던 페미니스트이자 위대한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을 잠시 소환해 본다. 19세기 영국에서, 당시로선 너무 파격적이었던 ‘여성 참정권’ 도입을 외쳤던 밀은, 저서 《자유론》의 서문에서 집필 중 사망한 부인 해리엇(Harriot Taylor Mill)을 기리는 안타까움을 이렇게 절절히 토해냈다.
“무덤 속에 묻혀버린 그녀의 위대한 사상과 고귀한 감정을 반만이라도 이 세상에 전할 수 있다면 나는 커다란 은혜를 이 세상에 베푸는 중개자가 되었을 텐데…”
‘여성 앵커 전성시대’가 사회적 공기(公器)인 미디어의 다양성이 보다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길, 더 넓은 다양성과 포용성 사회로 가는 관문이자 신호탄이 되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1) 당시 여성 앵커 출신 전문 방송인 입장에서는 이 같은 세간의 인식과 관련해 각자 앵커로서의 전문성과 경쟁력이 저평가됐다는 반론을 주장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양해를 부탁드린다. 그리고 이 같은 인식은 ‘한국의 여성 앵커’에 관한 다수의 연구 논문, 특히 당시 여성 앵커들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통해 분석한 내용 등을 참고했음을 밝혀둔다(이규원, <한국 여성 앵커의 위상과 전문성에 관한 연구>, 이화여대 정보과학대학원, 2003. 외 다수).
2) 박덕준, <TV뉴스 앵커의 젠더와 기사의 주제, 형식, 중요도 상관성 –여성 앵커 위상 변화를 중심으로->,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연구, 제37권, 151-160쪽, 2011.
3) 김경희·강혜란, <여성의 과소재현과 상징적 소멸:텔레비전 뉴스프로그램에서의 젠더 구조를 중심으로>, 미디어, 젠더&문화,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31(3), 2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