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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제작기] 중앙일보 <울갤 리포트> 취재기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3-05-26

지난 4월 10대 청소년이 강남구 한 건물에서 몸을 던졌다. 자신의 휴대전화로 실시간 방송을 켜놓은 채라 수십 명이 그 죽음을 지켜봤다. 충격적인 이 사건 뒤에는 온라인 커뮤니티, 우울증 갤러리가 있었다. 이곳을 심층 취재한 <울갤 리포트> 취재기를 따라가본다. 편집자 주

 

“나는 마침내 나의 정신 속에서 인간적 희망을 온통 사라지게 만들었다.”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 철’ 일부다. 지난 5월 1~2일 디시인사이드 우울증 갤러리의 실상을 2회에 걸쳐 보도한 <울갤 리포트>를 취재하며 불현듯 이 시가 떠올랐다. 약 2주간 지켜본 우울증 갤러리엔 우울과 자살이 감기처럼 번져있었다. 그들은 왜 정신 속에서 희망을 사라지게 하는 그곳에 머물 수밖에 없었을까.

 

취재의 계기는 ‘자살 라이브’였다. 지난 4월 강남에서 10대 여성이 투신자살을 생중계했다. 수십 명이 그의 죽음을 지켜봤다. 우울증 갤러리는 그가 평소 활동했던 온라인 커뮤니티로 세상에 드러났다. 마지막까지 함께였던 사람도 우울증 갤러리에서 동반 자살을 모의한 20대 남성이었다. 남성은 자살방조 및 자살예방법 위반 혐의로 5월 19일 불구속 송치됐다.

 

사건 이후 우울증 갤러리를 둘러싼 믿을 수 없이 많은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 우울증으로 취약해진 10대 여성을 성적으로 노리고 온 20대 남성들이 태반이란 의혹

△ ‘제2의 n번방’이나 다름없는 미성년자 성착취가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의혹

△ ‘술피뎀(술+졸피뎀)’과 같은 약물 오남용이 횡행한다는 의혹

△ 이번이 첫 번째 죽음이 아니며, 최소 대여섯 명의 10대 여성 우울증 갤러리 유저가 삶을 비관해 자살했다는 의혹

△ 자살 시도와 자살 조롱이 밥 먹듯이 이뤄지고 있다는 의혹

 

그 수많은 제보가 마치 공론화가 될 날만을 기다린 것 같았다. 이게 전부 사실일까? 벼랑 끝 1020세대의 심연을 한가득 안고 나타난 이곳을 심층 취재해보기로 했다. 이하 우울증 갤러리는 유저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표현인 ‘울갤’로 표기한다.

 

 

우울증 갤러리의 실상을 보도한 <울갤 리포트> 첫 회 <출처 - 중앙일보 기사 화면 갈무리>

 


“일단 10명을 만나자”

 

먼저 취재 방향을 정해야 했다. 수십 초면 삭제되길 반복하는 논란성 게시글들을 실시간 캡처해가며 데이터를 쌓았다. 하지만 날밤을 새우며 울갤을 모니터링해봐도 ‘실체적 진실’은 멀게만 느껴졌다. 온라인 상에 떠도는 무수한 소문들의 실체를 검증하려면, 현실 세계로 이들을 끄집어내야 했다. 퀘스트(임무)가 생겼다. “일단 울갤러 10명을 만나볼 것.”

 

이미 여러 곳에서 보도가 된 ‘지금 울갤에서 벌어지는 일들’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탐구해보기로 했다. 살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우울증이 심한 상태라면 왜 우울증을 얻게 됐는지, 울갤엔 어떤 경로로 유입됐는지 등을 좇다 보니 울갤의 대략적인 작동 방식을 이해할 수 있었다.

 

피해자, 가해자, 여성, 남성, 10대, 20대, 탈갤러(더이상 갤러리에 접속하지 않는 사람), 고닉(고정 닉네임이란 뜻으로, ‘고인물’ 회원을 지칭) 등 여러 층위의 인터뷰이를 균형적으로 만나는 데 초점을 뒀다. 가령 20대 남성 인터뷰이가 많아지면 10대 여성 인터뷰이를 발굴하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 10대 여성 2명, 20대 여성 2명, 탈갤러와 고닉이 섞인 20대 남성 6명으로 구성된 10명의 인터뷰이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이 들려준 울갤의 세계는 생경하고 지독했다.

 

 

<울갤 리포트> 1회가 실린 중앙일보 5월 1일자 1면

 


빠져나올 수 없는 ‘아늑한 지옥’

 

<울갤 리포트> 1회의 제목은 <학대·학폭 끝 찾는 ‘아늑한 지옥’>으로 시작한다. 실제로 인터뷰에 응한 대부분이 가정에서 학대나 방임, 부모의 이혼을 경험했거나 가족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절반은 학교를 자퇴한 경험이 있었다. 초·중·고 내내 왕따에 시달린 학교폭력 피해자도 있었다. 그들은 “현실엔 기댈 가족·친구가 없다”거나 “어릴 때 주위 사람들 모두 내 우울증을 힘들어해서 멀어졌다”는 이야길 덤덤하게 

이어갔다. 그러다 정착한 곳이 울갤이라고 했다.

 

20대 울갤러들은 그래도 상황이 어느 정도 나았다. 방황 끝에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됐거나, 연인이나 마음 맞는 친구 등 기댈 사람을 찾은 경우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10대 울갤러들은 말 그대로 지옥 속에 살고 있었다. 한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자살 시도를 한 게 언제냐”고 묻자 “1시간 전”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매일 밤 공포스러운 환청과 환각에 시달린다고 했다.

 

가족이 첫 번째 가해자인 친구도 있었다. 수년간 친오빠의 성폭행이 이어졌지만, 부모는 “네가 참아”라고만 반응했다고 했다. 자살 시도를 해서 파출소를 들락거리면 엄마에게 맞았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무엇보다 가슴 저렸던 건 그 모든 생애를 남 일인 양 읊어주는 덤덤한 목소리였다.

 

이들은 하나같이 “여기가 나쁜 곳인 걸 안다”고 말했다. 울갤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모욕, 폭언, 성희롱, 성추행을 당하고 서로 욕설을 주고받는 게 정신 건강에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그만둘 수가 없다”는 말이 꼭 뒤에 따라붙었다. “힘들다, 죽고 싶다고 마음 놓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여기밖에 없다”는 이유였다. 울갤은 이들에게 ‘아늑한 지옥’이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섞인 곳

 

울갤은 파면 팔수록 피해자와 가해자가 양분되지 않는 공간이었다. 일베와 비슷한 난폭한 언어 문화 탓이었을까. 서로가 서로의 학대자이자 피학대자인 생활이 반복되고 있었다. 동시에 서로가 서로의 유일한 버팀목으로도 기능했다. 현실에 부재한 유대에 대한 갈증을 채워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체로 밤낮이 바뀌어있던 그들은 밤에는 서로를 욕하다가 새벽엔 죽음을 생각하고 아침이 오면 비로소 ‘새벽감성’에 젖어 삶을 한탄하고 서로를 위로했다.

 

직·간접적으로 만나본 울갤러들의 공통점을 꼽자면, 가정·학교·병원·시설 등 여러 사회 안전망에서 다층적으로 걸러진 존재들이었다는 것이다. 여러 번 폐쇄병동을 찾고 상담사를 만났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증언이 많았다. 사회가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정상성’에서 살짝 비껴갔을 뿐인데, 무척이나 쉽게 안전망에서 걸러지는 모습을 보며 울갤 같은 공간의 탄생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단 생각이 들었다. 


 

​<울갤 리포트> 1회가 실린 중앙일보 5월 1일자 6면

 

 

팩트체크의 벽

 

어떤 취재든 사실 검증은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가장 까다로운 작업일 테지만, 울갤은 특히 더 했던 것 같다. 익명을 내세운 비실체가 가득한 온라인 세계에서 참말과 거짓말을 구분하기란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다. 실제로 특정 울갤러들을 겨냥한 악의적인 합성 사진과 가짜 다이렉트 메시지(DM) 등을 몇 번 목격하고 나니, 취재에도 신중을 기하게 됐다. 우리가 직접 보지 못한 글이나, 크로스체크가 요원한 제보들은 기사에서 모두 배제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괴로웠던 것은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 자살 암시글들이었다. 주로 새벽 시간대에 ‘몇 시에 어디에서 죽겠다’, ‘자살 전에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켜겠다’와 같은 글들이 자주 올라왔다 금세 사라졌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신고를 하고 위로의 댓글을 달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결국 자살 시도로 이어지지 않는 장난글도 많았다. 그만큼 자살이 일상화된 공간이었다. 울갤 취재를 시작했을 때 처음 받았던 제보부터가 “저 지금 죽으려고요”라며 장난으로 보낸 옥상 사진이었다.

 

진위를 의심할 필요 없는 더 확실한 팩트를 찾아 법원도서관으로 갔다. 판결문을 뒤적이니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울갤에서 만나 성폭행·성착취·성희롱 등으로 번진 사건이 6건 발견됐다.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었고 나이는 14세, 16세, 16세, 16세, 17세, 20세였다. 울갤에 존재하는 미성년자 성착취가 좌시할 수준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제기됐던 여러 의혹들의 구슬을 꿰어갔다. 


‘극단적 선택’ 말고 ‘자살’

 

집필을 시작하자 뜻밖의 난관에 봉착했다. 어느 순간 언론이 ‘자살’ 대신 자연스럽게 쓰고 있는 ‘극단적 선택’이란 용어의 적절성에 의문이 든 것이다. 한국기자협회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은 애초에 극단적 선택이란 표현도 지양하길 권고한다.

 

울갤에선 매일같이 자살 시도가 벌어진다. 그들의 일상을 ‘극단적’이라고 치부해도 될까? 사회의 그 어떤 안전망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고 깊은 우울감에 침잠한 이들의 사망을 ‘개인의 선택’으로 단정해도 될까? 애당초 ‘극단적’이란 것도, ‘선택’이란 것도 주관적인 판단의 영역 아닌가? 그동안 고민 없이 극단적 선택이란 말을 써왔던 내게 울갤이 날선 물음을 던진 기분이었다.

 

마침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의 자살 위기극복 특별위원회가 지난 4월 “당사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극단적 선택이란 용어 사용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한 적이 있었다. 자살사별자모임과 전문가들의 제언대로 “자살은 결코 선택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는 취지가 포함됐다. 자살을 다른 표현으로 치환한다고 해서 자살률이 유의미하게 낮아진다는 과학적 근거도 없었다.

 

결국 ‘스스로 삶을 중단한다’는 뜻의 자살(自殺)이 가장 중립적인 표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별도의 편집 영역인 지면과 제목까진 건드릴 수 없었지만, 기사 본문에는 가급적 있는 그대로 ‘자살’을 쓰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울갤 리포트> 2회에는 자살이란 말이 21번 등장한다.

 

 

<울갤 리포트> 2회가 실린 중앙일보 5월 2일자 12면​

 

 

우리는 여전히 탈갤하지 못했다


출고 직전의 새벽, 그간 취재차 울갤에 올렸던 모든 게시글을 지웠다. 오픈카톡방, 인스타그램, 디스코드, 트위터를 차례대로 탈퇴했다. 함께 고생한 선후배들과 ‘탈갤’을 기념하며 조촐한 격려를 나눴다.

 

하지만 탈갤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기사가 나가고 3일쯤 지난 어린이날, 한남대교에서 15살과 17살 여성(두 친구 모두 학교를 자퇴했으니, 여학생은 아니다)이 동반 자살을 시도했다가 구조됐다는 뉴스를 접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직접 인터뷰했던 B양과 C양이었다.

 

‘언론은 영원한 방관자야.’

 

언론고시를 준비할 때 뇌리에 깊게 박혔던 한 선배의 말이 불현듯 스쳤다. 감히 그들을 구제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마음이 소란스러웠다.

 

기자는 제3자고, 관찰자기에 세상 모든 곳을 출입처 삼아 쏘다닐 수 있다. 드넓은 운동장이 이 직업의 장점이다. 하지만 관찰자는 결국 방관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굴레가 새삼 비탄스레 다가왔다. 나는 그날 탈갤에 실패했다. 지금도 여전히 울갤을 들락거린다.

 

나는 나만 탈갤에 실패한 줄 알았다. 오만이었다. 후배의 스마트폰 홈 화면엔 아직도 맨 윗줄에 디시 울갤 바로가기 앱이 깔려있다. 라방(라이브방송) 알림이 울리면 무의식적으로 들어가 녹화 버튼을 눌렀다고 한다.

 

울갤과 관련한 수많은 기사가 나왔다. 경찰 수사도 계속 진행 중이다. 디시는 강남 자살 생중계 사건 이후 모니터링을 강화했다. 전문가들은 울갤이 진화한 n번방이라는 의견을 앞다퉈 내놨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울갤의 생태계를 바꾸진 못했다. 그곳은 여전히 습관적 학대와 피학대가 지속되는 음험한 늪지로 남아있다. 울갤 뿐이랴. 지금도 트위터, 디스코드, 텔레그램 우울계·우울방에선 끊임없이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우린 무엇을 바꿨을까. 이 기사로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끝으로 동고동락하며 함께 취재했던 후배의 말을 빌린다. 

 

“어둡고 축축한 동굴에 틀어박혀 있는 이 친구들을 대체 어떻게 꺼내서 햇볕에 잘 말려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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