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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미디어 스타트업 성공 사례는 많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기존 언론사들을 뛰어넘을 만한 미디어 스타트업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미디어 스타트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조건을 확인해본다. 편집자 주
필자는 지난 20여 년 동안 많은 스타트업을 지켜봐 왔다. 기자로서 그들을 취재해 지면을 통해 전하는 입장에 있었다. 직접 온라인 미디어 기업을 운영해보기도 했고, 인터넷포털 기업에서 미디어 기업들과 제휴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미국 시장과 일본 시장에서 직접 기업을 운영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10년 전부터는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일을 하다 벤처투자자로 변신해 직접 벤처 펀드를 만들고 적극적으로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해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항상 초기 경력이 언론계였기 때문에 “언론·미디어 업계에서도 스타트업이 나올 수 있는가? 미디어 스타트업이 잘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질문 받는 일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미적지근했다. 뉴스 미디어 업계에서 스타트업이야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기존 언론사들을 위협하고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지속적으로 잘 성장할 수 있을지, 또 큰 투자를 유치하고 상장이나 매각을 통해 성공적인 엑싯(Exit)1)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는 것이 내 속마음이었다.
미디어 스타트업의 안정적 성장을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여기서의 가정은 몇 명 정도의 인원이 뉴스 콘텐츠 생산을 통해 광고나 구독료로 적당히 먹고사는 그런 회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콘텐츠 생산과 유통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며, 적어도 매년 지속적으로 매출과 인원 등 규모를 키워가며 성장하는 기업을 말한다. 리더들이 “우리는 스타트업”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투자를 유치해 성장하며 성공적인 엑싯을 꿈꾸는 기업이다.
투자자로 일하면서 나는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첫 번째 조건으로 ‘투자를 받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투자를 판단하는 나름대로의 프레임워크를 만들어봤다. △창업자/팀 △제품/서비스 △시장 △성과 등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 기준을 미디어 스타트업의 안정적인 성장을 위한 조건에 대입해 설명해보려고 한다.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의 성장 조건
우선 첫 번째로 창업자, 팀이 중요하다. 얼마나 똑똑하고, 매력과 끈기가 있고, 실행력이 있는 창업자인가를 본다. 학습 능력과 소통 능력도 중요하다.
여기서 미디어 스타트업이라면 콘텐츠 생산·편집 능력이 있는 창업자인지도 중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무엇이 자신이 타깃으로 하는 고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콘텐츠인지를 이해하고 매력적으로 편집해 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언론계에서 일해본 사람들은 이런 점에서는 감각이 있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로는 제품과 서비스를 본다. 시장의 절실한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가, 차별적인 경쟁력을 지니고 있는가를 본다. 예를 들어 시장에 있는 수많은 경제 뉴스와 아무 차별점 없는 똑같은 경제 뉴스를 만들어 뉴스 사이트를 통해 제공한다면 전혀 경쟁력이 없을 것이다.
뉴닉의 경우 이런 천편일률적인 경제 뉴스를 찾아 읽지 않는 MZ세대를 위해 뉴스를 쉽게 친구처럼 설명해주는 이메일 뉴스레터를 만들어 젊은 층의 큰 지지를 받았다. 나중에 많은 언론사가 뉴닉을 따라 비슷한 류의 뉴스레터를 우후죽순처럼 만들어 내놨다는 것이 이들이 차별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세 번째로는 시장을 본다. 이 미디어 스타트업이 겨냥하는 시장이 아주 큰지, 그리고 성장하는 시장인지가 중요하다. 또 글로벌 확장 가능성이 있는가도 중요하다. 사실 스타트업은 처음부터 큰 시장을 겨냥한다기보다 뾰족하게 특별한 계층을 겨냥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런 다음에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많은 한국의 미디어 스타트업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그들이 한국어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너무 작은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투자자가 한국의 미디어 스타트업에 투자하기를 꺼리는 이유는 한국의 작은 시장 규모 때문이다.
하지만 K-POP과 K-드라마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요즘 미디어 스타트업 창업자들도 더이상 자신의 시장을 한국만으로 한정할 필요가 없다. 열린 생각을 가지고 틀을 깨고 시장을 확장해 나가는 창업자들을 투자자들은 좋아한다.
사례를 하나 소개하고 싶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인터뷰하고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미디어 스타트업 ‘EO’의 김태용 대표다. 김 대표는 언론인 출신은 아니다. 하지만 스타트업 생태계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고, 열정을 가지고 한국의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매력적인 콘텐츠로 만들어 잘 소개해 왔다. 하지만 창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 EO의 콘텐츠를 봐서 그런지 대부분 콘텐츠의 조회수는 몇만 뷰로 제한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EO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8개월 전부터 영어로 인터뷰하는 글로벌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실리콘밸리의 거물 창업자들을 섭외해 영어 인터뷰 동영상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 동영상은 확실히 전 세계로 대상을 넓혀서 그런지 비슷한 한국어 콘텐츠보다 몇 배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EO의 성장을 가속화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요소
위에서 설명한 훌륭한 창업자/팀, 차별적인 제품/서비스, 크고 성장하는 시장만 가지고도 초기 투자는 받을 수 있다. 어느 정도 초기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성장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는 많은 미디어 스타트업들이 이 단계에서 성장을 멈춘다는 것이다. 수십 억의 시리즈A 투자를 받고 다음 단계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뭔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성과’다. 즉, 지표로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지표로 이용자 수, 일간·주간·월간 방문자 수, 페이지뷰, 유료 구독자 수, 광고 매출, 구독자 매출 등이 있겠다. 이 모든 지표가 우상향이어야 투자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벤처투자가 활발했던 2022년 초까지만 해도 적자가 나더라도, 즉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우상향 지표만 있으면 어느 정도 투자유치가 가능했다. 저금리로 인해 시중에 돈이 넘쳤고 덕분에 많은 자금이 벤처투자로 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에 힘입어 적자 기업이라도 기술성, 성장성 등이 입증되면 상장이 가능했고 높은 기업 가치가 매겨졌다. 부풀어 오른 증시 덕분에 몸값이 높아진 대기업들과 유니콘 스타트업들이 적극적으로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덕분에 엑싯도 비교적 수월했다.
하지만 그런 시절은 지나갔다. 요즘 투자를 유치하려는 스타트업들은 당장 흑자를 내거나 곧 흑자를 낼 수 있다는 것을 투자자들에게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뉴스미디어 스타트업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차별화된 콘텐츠,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한 균형 잡힌 광고와 구독자 매출일 것이다. 그리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외부 환경의 변화에도 견딜 수 있는 단단한 비즈니스 모델이 구축돼 있어야 한다.
한때 뉴스 저널리즘의 대표 스타트업으로 유니콘 지위에 오른 버즈피드와 바이스미디어는 외부 환경의 변화로 매출이 급감하고 적자가 쌓이며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버즈피드는 퓰리처상을 받을 정도로 훌륭한 콘텐츠를 생산했지만 SNS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결국 좌초했다. 주가는 급락했고 감원을 거듭하며 상폐 위기에 몰리고 있다. 투자받은 돈으로 사세를 늘리며 특히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해 회자된 콘텐츠로 트래픽을 늘려왔지만 페이스북 등이 피드 알고리즘을 바꾸며 트래픽이 떨어져 매출에 큰 타격을 입었고, 결국 새로운 매출원을 찾지 못한 것이다.
한때 7조 원의 몸값을 자랑했던 바이스미디어도 지난 5월 파산을 신청했다. 역시 SNS에 과도하게 의존했던 트래픽과 매출이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목할 만한 성공 사례: 악시오스와 디애슬래틱
반면 성공 사례도 있다. 주요 뉴스를 빠르게 요약해 요점 위주로 전달하는 것으로 유명한 악시오스(Axios)는 지난해 8월 콕스커뮤니케이션(Cox communications)에 약 5억 2,000만 달러에 매각됐다. 한화로는 7,000억 원 가량의 거액이다. 온라인 정치 매체인 폴리티코(Politico) 출신들이 2016년 설립한 악시오스는 약 5,500만 달러(약 724억 9,000만 원)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성장해 6년 만에 이런 큰 엑싯에 성공했다.
SNS를 통한 트래픽과 광고 매출에 크게 의존했던 경쟁자들과 달리 악시오스는 지난해 10억 달러(약 1,300억 원) 매출의 80%를 뉴스레터 광고를 통해 얻었다. 이것은 악시오스가 수준 높은 저널리스트들을 확보해 정제된 팩트 위주의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뉴스레터 가입으로 호응했고 덕분에 악시오스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알고리즘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매출을 올리며 흑자를 낼 수 있었다. 이런 내재적인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높은 기업 가치를 인정받아 인수된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성공 사례는 2022년 1월 뉴욕타임스가 5억 5,000만 달러(약 7,250억 원)에 인수한 디애슬레틱(The Athletic)이다. 악시오스와 같이 2016년 설립된 디애슬레틱은 뉴스 스타트업으로는 보기 드물게 실리콘밸리의 명문 액셀러레이터2)인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에 선발됐다. 디애슬레틱의 모토는 ‘골수 스포츠팬들을 위한 스마트한 뉴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과 영국 주요 도시의 프로 축구, 야구, 농구, 하키의 모든 경기를 심층 분석해 제공하는 콘텐츠를 생산했다. 그리고 골수 스포츠팬들에게는 중요한 콘텐츠인 만큼 광고에 의존하지 않고 돈을 내고 보도록 구독 모델을 제시했다.
디애슬레틱은 인수 시점에 매년 72달러(약 9만 5,000원)의 구독료를 내는 120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했다. 디애슬레틱은 이같이 값진 콘텐츠를 만들고 성장하기 위해 600명을 고용하는 등 적자 상태에 머무르고 있었지만, 뉴욕타임스는 7,000억 원이 넘는 돈을 내고 디애슬레틱을 인수했다. 디지털 구독자 늘리기에 힘을 쏟고 있는 뉴욕타임스로서는 스포츠 뉴스 구독자 120만 명을 가진 디애슬레틱이 매력적인 인수처였을 것이다.

미디어 스타트업, 한국 시장을 넘어라
한국에서 그동안 많은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을 접했다. 직접 콘텐츠를 생산하거나 아니면 시중에 쏟아지는 뉴스 콘텐츠를 잘 큐레이션해서 보여주는 아이디어로 창업한 기업이 많았다. 하지만 악시오스나 디애슬레틱처럼 차별된 콘텐츠와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건실한 수익 모델을 가지고 성장하는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을 한국에서 만나기는 어려웠다.
한국 독자를 타깃으로 하는 국내 시장이 너무 협소한 탓도 있을 것이다. 뉴스 미디어 기업의 성장성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 보수적인 한국의 벤처투자자들도 한 요인일 수 있다. 또 한국 전통 미디어들이 워낙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 투자나 인수에 인색한 탓도 있다. 하지만 뉴스 미디어 부문 창업자들의 뉴스 콘텐츠에 대한 경험과 상상력이 아직 2% 부족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반면 다른 한국 콘텐츠 산업은 이제 월드클래스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세계적인 히트작을 만들어내는 게임 업계는 물론이고 K-POP, K-무비, K-드라마는 이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웹툰도 이제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보면 한국에서 세계적인 뉴스 미디어 기업이 나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한국어라는 언어의 한계를 넘어 다국어 뉴스 콘텐츠로 전 세계 독자를 사로잡아 유니콘으로 성장하는 한국 미디어 스타트업이 앞으로 나오길 기대한다.
1)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 등을 통해 투자자들이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거나 창업자들이 구주 매각으로 보유 주식을 현금화하는 것. 편집자 주
2)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성장을 위한 투자금과 일정 기간 동안 집중적인 멘토링 등 교육을 제공하는 전문화된 투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