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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벽을 쌓고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는 청년들이 있다. 부산일보는 니트 청년과 은둔형 외톨이를 아울러 ‘고립청년’이라 이름 붙이고 부산 지역 내 이들의 실태를 취재 보도했다. 한일 공동 취재를 시도하며 이 시대 청년 문제를 깊이 있게 들여다본 취재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교육받지도, 경제활동도 하지 않고 그냥 쉬는 상태) 청년을 돕는 사업 예산은 지난해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는데, 코로나19 팬데믹 탓인지 아이들이 대면 활동에 익숙하지 않아서 참여를 끌어내느라 사업 담당자가 아주 고생하고 있다.”
취재는 우연히 시작됐다. 출입처인 부산경제진흥원의 몇몇 팀장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던 와중 나온 말이다. 평소 니트 청년과 코로나19 팬데믹의 관련성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보지 않은 터라 신선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길어진 팬데믹이 니트 청년 수를 더 늘리고, 이들이 단순 니트 상태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데 영향을 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마침 부산일보에서 편집국 기자를 대상으로 매주 월요일 공모하는 ‘K콘텐츠(킬러 콘텐츠라는 뜻으로 평소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가 깊이 있게 취재하는 부산일보의 단독·기획 기사를 뜻한다)’ 기획안 제출 날짜도 다가오고 있었다.
조금 더 깊이 취재해보면 꽤 괜찮은 K콘텐츠가 나오겠다는 감이 왔다. 사실상 니트·은둔형 외톨이 청년을 돕는 구직단념청년 지원 사업인 부산경제진흥원 ‘위닛캠퍼스’를 활용해, 고립된 청년들을 취재해보기로 결심했다.
‘고립청년’의 탄생
지난 5월 8일, ‘부산 비경제활동인구 32%는 청년… 구직단념청년을 취업의 길로’라는 제목의 취재 계획을 올렸다. 실제로 취재해보니 부산 비경제활동인구 10명 중 3명이 청년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결과가 나와, 이를 앞세웠다.
안 그래도 부산은 청년이 일자리를 찾아 떠나 남은 건 ‘노인과 바다’밖에 없다는 오명을 쓰고 있는데, 또 하나의 씁쓸한 통계가 더해진 셈이었다. 보강 취재를 해서 이번 주 중 제대로 기사를 써보자고 마음먹고 있던 터에 부장께 전화를 받았다.
“아침 편집국 회의에서 관심을 많이 받았다. 국장단과 부장들이 이제 막 대학에 입학했거나 곧 졸업을 앞둔 자녀를 두고 있는 나이다 보니 남 일 같지 않다는 평가가 많았다. 마침 기획취재부에서 은둔형 외톨이와 관련해 기획 보도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기획취재부와 협업해 상·중·하 정도로 나눠 기획 취재를 하면 좋겠다. 평소 업무가 많으니 협업이 어렵다면 기획 내용과 취재원 자료를 기획취재부에 넘기고 빠져도 괜찮다.”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지만, 발제해놓고 취재하지 않는 것은 책임감 없는 행동이라 판단했다. 벌써 7년 전이지만 1년 내내 청년을 주제로 취재한 적도 있는 터라 청년 문제에 대한 애정도 있었다.
그렇게 기획취재부와 첫 회의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각자 취재한 내용을 공유하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취재할지 논의하는 브레인스토밍에 가까운 회의였다. 기획취재부 박세익 부장, 이자영 팀장, 손희문 기자까지 총 네 명이 모였다.
손희문 기자는 이미 고립형·은둔형 외톨이를 주제로 취재를 해왔지만, 벽에 부딪힌 상황이었다. 손 기자는 부산복지개발원이 지난해 9월 발표한 <부산시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5월 발표한 <고립·은둔 청년 현황과 지원 방안> 같은 보고서를 기반으로 취재를 확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은둔형 외톨이를 둘러싼 다른 미디어의 보도와 차별성을 두고 부산의 문제를 제기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다른 매체가 은둔형 외톨이를 다루는 방식을 답습하고 싶지 않았다는 게 손희문 기자의 설명이었다. 각자 취재한 내용을 공유하고 보니 니트 청년과 은둔형 외톨이 청년을 합쳐 단순히 구직단념청년으로 부르기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국가나 사회 차원에서 취업은 중요한 문제지만 청년 개인을 단순히 취업한 청년과 취업을 단념한 청년이라고 이분법적으로 나눈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니트 청년과 은둔형 외톨이는 결국 사회로부터 고립됐다는 공통점이 있는 만큼 ‘고립청년’으로 부르자고 이자영 팀장이 제안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오히려 고립청년 문제를 더 심화시켰을지도 모른다는 가설도 세웠다.

한일 공동 취재의 의미
은둔형 외톨이라는 말은 일본어 ‘히키코모리’에서 나왔다. 은둔형 외톨이 문제는 한국보다 일본이 훨씬 더 먼저 겪은 만큼, 최근 편집국에 파견 기자로 온 이와사키 사야카(岩崎さやか) 서일본신문(Nishinippon Simbun) 기자와 공동 취재를 하면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것 같았다.
부산일보는 일본 규슈 지역 후쿠오카시에 본사를 둔 서일본신문과 올해로 21년째 파견(교환) 기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나 역시 2017년 서일본신문 파견 기자로 선발돼 후쿠오카에서 서일본신문 기자들과 한 해 동안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 <구마모토 지진 1주년> 등을 주제로 공동 취재를 한 경험이 있다.
고립청년 문제야말로 한일 공동 취재에 적합한 주제라는 확신이 들었다. 첫 회의가 끝나고 이와사키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고립청년을 주제로 취재를 시작했는데, 일본 고립청년의 실태나 이들을 돕는 민간단체의 활동을 함께 취재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이와사키 기자는 흔쾌히 공동 취재에 동의했다. 우선 일본 정부의 은둔형 외톨이 조사 결과를 확인하고, 서일본신문에서 기존에 보도된 은둔형 외톨이 문제에 대해 사전 취재한 뒤 다음 회의에 합류하기로 했다.
이와사키 기자의 합류는 취재가 더욱 확장되는 계기가 됐다. 한국 매체가 일반적으로 보도하는 일본 히키코모리의 전형성 대신 현재 일본에서 더 큰 사회문제로 떠오른 ‘8050 문제’에 대해 집중하기로 했다. 8050 문제는 1990년대 취업 빙하기 이후 여러 이유로 히키코모리가 된 청년이 5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80대가 된 노부모의 연금에 기대 생활하며 일어나는 각종 사회문제를 뜻한다.
2019년 일본 농림수산성 사무차관까지 지냈던 고위 관료 출신인 70대 아버지가 40대 히키코모리 아들과의 갈등 끝에 자택에서 아들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나, 앞서 같은 해 5월 51세 은둔형 외톨이 남성이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서 행인에게 흉기를 휘둘러 2명이 숨지고 18명이 중상을 입은 사건인 ‘가와사키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이 대표적인 8050 문제 관련 사건으로 꼽힌다.
현재 일본 사회는 은둔형 외톨이 청년이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미 한국에서 고립청년을 대상으로 정책적 접근을 하고 있으니, 일본의 경우 정부 차원의 대응보다는 민간 차원의 대응을 취재하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그래서 후쿠오카시에서 히키코모리를 돕고 있는 ‘(사)야오키주쿠(후쿠오카 청년 취업지원 프로젝트)’ 도스 마사하루(63) 대표를 섭외하고, 이와사키 기자가 인터뷰하는 자리에 배석했다. 도스 대표는 중학교 3학년 아들의 등교 거부를 계기로 2015년부터 히키코모리 지원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고립청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람들과의 교류와 접점을 늘려 사회에 한 발짝씩 내디딜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립청년 실제로 만나보니
이번 기획에서는 고립청년 당사자와 만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고립청년 문제를 이해하는 핵심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부산경제진흥원이 이미 추진하고 있는 위닛캠퍼스 프로그램 중 하나를 손희문 기자, 이와사키 사야카 기자와 함께 방문 취재하기로 했다.
손희문 기자는 별도로 부산복지개발원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은둔형 외톨이 당사자 청년 두 명을 더 만났다. 손희문 기자는 “취재 성사도 어려웠지만 만나서 취재하는 과정이 더 쉽지 않았다”면서 “어릴 적 학대를 비롯한 폭력에 대한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아 이들의 사회 적응을 방해했다. 이들의 경험담을 듣는 것만으로 고립 당시 심경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세 명의 기자가 공통으로 만난 고립청년 두 명은 조금 결이 달랐다. 이들은 이미 위닛캠퍼스에서 3개월 동안 프로그램을 이수한 상태였다. 취업에 도움이 되는 ‘보이스 트레이닝’ 강의를 듣고 취재진 앞에 나타난 이들은 표정부터 밝았다.
원래는 이들 청년 역시 아무와도 말을 섞지 않고 하루를 무기력하게 보내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털어놨다. 한 명은 직장 내 갈등으로 퇴사한 이후 6개월 동안 재취업을 시도했지만 취업이 되지 않아 깊은 고립에 빠진 경우였다. 또 다른 청년은 학창 시절 학교 부적응을 겪고 적성에 맞지 않는 직장 생활로 인해 부모와 함께 살면서 틈틈이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던 고립청년이었다.
이들은 비슷한 처지의 고립청년과 3개월을 함께하며 그동안 사회에서 받았던 상처를 조금씩 극복해가는 과정에 있었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함께 요리하고, 요리한 음식을 도시락에 싸서 함께 떠난 소풍이 최근 몇 년간 가장 행복한 일이었다는 고립청년의 설명에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이들이 진정 필요했던 것은 사람 사이의 연결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한편으로는 고립청년 네 명을 만나보고, 위닛캠퍼스 상담사를 인터뷰한 결과 한국의 고립청년 문제는 일본의 히키코모리 문제와 결이 다르다고 판단했다. 일본의 히키코모리는 완전히 사회와 연을 끊다시피 하며 자신의 방에서 대부분의 생활을 영위하는 ‘단절’에 가까웠다. 한국의 고립청년은 완전히 사회와 단절된 것은 아니지만 사회와 벽을 쌓고 무기력한 상태로 지내면서 말 그대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3년간의 팬데믹은 이러한 현상을 가속화했다. 사람과의 접촉 없이도 비대면으로 각종 편의가 해결되다가 엔데믹을 맞이했는데, 이미 비대면에 익숙한 청년이 갑자기 대면 활동이 필요해지자 어쩔 줄 몰라 하며 고립에 빠지는 악순환이 생겼다.
<부산 고립청년 리포트>는 현장 취재와 전문가 취재, 일본 민간단체 대표 인터뷰를 큰 축으로 지난 5월 30일 자 신문에 첫 보도를 내보낼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한국형 은둔형 외톨이 즉, 고립청년으로 추정되는 정유정이 과외 앱에서 만난 20대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사건이 일어난 직후였다. 정유정 사건은 지난 5월 26일 발생했는데, 사건의 참혹성이 언론에 알려진 것은 6월부터다.
한 전문가는 부산 고립청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기 발견과 개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유정이 터놓고 자신의 일상과 고민을 말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오늘도 평범한 20대 부산 청년으로 하루를 살고 있지 않았을까.
<부산 고립청년 리포트> 보도는 한국과 일본의 두 지역신문이 힘을 합쳐 고립청년이라는 의제를 제시한 의미 있는 기획이라고 자평한다. 제2의 정유정을 막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고립청년 이슈를 이끌어가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