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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의 심각성은 지구촌 모두가 공감하는 주제다. 제주에서도 봄가을이 짧아지고 바다가 뜨거워지는 현실을 누구나 체감하고 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지만 정작 실천에는 인색하다. 그 이유를 찾아 떠난 제주CBS의 취재 여정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우리는 어릴 때부터 “지구가 아프다”, “이대로 두면 인류의 미래는 없다” 등의 구호나 표어를 수도 없이 들었고 매일매일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체감하고 있다. 그래서 기후 위기 문제는 모든 언론사가 한 번쯤은 다뤘을 기획 아이템이다. 기후 위기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기후 보호를 위한 실천과 행동은 찾아보기 힘들다. 왜 그런지에 대한 의문으로 지난해 3월 취재에 착수했다.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며 여러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내고 있는 유럽연합, 특히 독일의 사례는 그런 점에서 시사점이 컸다. 사전 취재 과정에서 독일의 지속가능발전교육이 눈에 들어왔다. 1980년부터 준비 단계와 개발기, 발전기, 정착기를 거쳐 완성된 지속가능발전은 자연환경을 이용하는 인간의 모든 활동은 생태계 수용 능력의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개념이다. 환경문제를 단순히 보호 차원에서 보지 않고, 특정인과 관계자만의 문제가 아닌 누구나 환경문제의 책임자이자 당사자라는 인식에서 출발한 지속가능발전교육은 각 학교에서 기후 교육과 환경 교육으로 구체화됐다. 이런 점을 확인한 뒤 독일 내에서도 특히 이 분야에서 앞서나가고 있는 함부르크 취재를 결정했다. 2022년 7월, 코로나19와 현지 섭외의 어려움이 함부르크 취재 계획의 발목을 잡았다. 현지 학교와 교사, 학생, 전문가 등의 섭외를 위한 이메일 질의응답이 지루하게 이어졌고 기후 교육에 모범이 될 만한 국내 학교를 찾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여름, 서울 반지하 주택 침수로 10여 명의 사망자가 나왔고 포르투갈과 스페인, 독일, 미국 등은 폭염과 가뭄으로, 호주에선 기록적인 홍수로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이 연일 전해졌다. 또 사전 취재를 하며 제주도의 기후변화도 심상치 않음을 확인했다.
2021년 제주지방기상청 <제주도 계절길이 변화 분석 자료집>을 봤더니 제주의 여름은 30년 전과 비교해 15일이나 길어진 반면 가을은 14일 짧아졌다. 바다 역시 뜨거워지고 있는데, 국립수산과학원 분석 자료를 통해 2021년 제주 해역의 연평균 수온은 16.51도로 30년 전보다 0.56도 상승한 것을 확인했다.
한마디로 제주의 봄가을은 짧아지고 바다는 뜨거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기획 보도의 제목을 <기후역습-제주의 봄가을은 안녕하십니까>로 선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전 취재가 한창이던 지난해 8월에도 제주시의 낮 기온은 37.5도까지 올라가 1923년 기상관측 이래 제주 지역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 환경을 위한 시민의 목소리
독일과 국내 취재 계획이 확정되고 코로나19 입국 규제도 완화되면서 드디어 지난해 10월 독일 함부르크로 떠났다. 현지는 우리나라의 가을 날씨와 비슷하다고 해서 쌀쌀함에 대비해 두꺼운 옷을 준비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현지 취재를 한 나흘간 현지 평균 낮 기온이 20도를 웃도는 바람에 두꺼운 옷은 단 하루도 입지 못했고 가벼운 셔츠나 심지어는 반소매 차림으로 취재를 다녀야 했다. 김나지움 랄슈테트
(Gymnasium Rahlstedt)라는 학교에서 만난 한 학생은 “14년 전인 2008년 10월의 함부르크 기온을 조사했는데 그때는 평균 10도 안팎이었다”며 “지금은 20도를 웃돌며 14년 전보다 10도나 높은 기온 분포를 보이고 있다”고 귀띔해 줬다.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다.
함부르크 시민들이 기후변화에 얼마나 민감한지는 매주 금요일 갠제마르크트(G nsemarkt) 광장에서 열리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 시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광장에는 10대 청소년부터 대학생, 성인까지 많은 함부르크 시민이 모였다. 그들이 요구하는 건 명쾌했다. 지구 온도 1.5도 상승을 막는 데 동참해달라는 것이다. 정부에도 자연과 환경·기후 보호에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라고 촉구했다. 한 시민은 “매주 금요일 진행되는 시위에는 많게는 500명까지 참여하고 1년에 서너 차례 열리는 글로벌 시위에는 1만 명 이상이 참가해
한 목소리를 낸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연설이 끝나자 시위대는 곧바로 거리 행진을 했다. 갠제마르크트 광장부터 함부르크 시청까지 1시간 넘게 걷는데, 100여 명이었던 시민들은 가두 시위를 하자 200여 명으로 늘었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는 독일 등 90여 개 나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스웨덴의 청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가 고등학생이던 2018년 8월부터 시작하면서 전 세계로 확산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전 세계 연대 조직으로 결성된 ‘청소년기후행동’이 2020년 3월 기후 소송을 제기해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해 9월 24일 서울과 제주 등 전국에서는 기후정의행진이 열렸다. 화석연료 사용을 중단하고 난개발을 끝내 기후 재난을 막자는 다짐이었다.
무엇보다 함부르크에선 학교 현장에서부터 기후와 환경 교육을 하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준비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각 학교를 돌며 교장과 교사, 학생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이 실천하는 기후 보호 프로그램을 현장 취재하는 일정이 나흘간 이어졌다. 함부르크에서는 일단 기후학교로 지정되면 교사와 학생들이 직접 기후와 환경보호 프로젝트를 만들어 실천한다. 한 교사는 취재진에게 “교사와 학생은 물론 학교의 모든 사람이 다 같이 기후 보호 계획 50가지를 세웠고 환경학교 프로젝트로는 학교 정원 조성과 하천 가꾸기 등을 한다”고 말했다.
기후 보호를 위한 다양한 실천 프로그램 중에서도 플라스틱병을 한곳에 모아 마트에서 현금으로 교환한 뒤 아프리카나 동물보호단체에 기부하는 프로젝트가 인상적이었다. 플라스틱병과 캔을 반납하면 돈으로 교환해주는 독일의 반환보증금제, 판트(Pfand)를 이용한 것이다. 판트는 유리병만 돈으로 환급해주는 우리나라와 달리 캔과 플라스틱병을 반납해도 돈을 주는 제도로 플라스틱병의 재활용률을 97%까
지 높인 일등 공신이라고 한다. 또 기후학교에는 쓰던 물건을 가져다 놓고 필요한 학생이 가져가게 하는 공간도 있었다. 무엇보다 학생의 3분의 2, 교사의 절반이 자전거로 등하교한다는 점에서 기후 보호에 대한 그들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 퍼트리는 선한 영향력
학교에서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은 학생들의 관심도를 끌어 올렸다. 2011년 환경학교로 지정된 한 학교는 꿀벌 키우기 프로젝트를 통해 꿀벌이 환경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가르치고 꿀벌이 두려운 존재가 아닌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생물임을 알려준다. 학생들이 카누를 타고 강에 떠 있는 쓰레기를 줍는 프로젝트도 이색적이었다. 학생들은 카누를 타는 것을 흥미로워 하고 쓰레기까지 줍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직접 모은 쓰레기의 양에 놀라고 인간이 이렇게 많은 쓰레기를 강에 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다.
학생들의 선한 영향력은 곧바로 지역사회로 퍼진다. 한 교장은 “학생들이 스스로 기후나 환경보호를 위해 플라스틱병을 모으고 수익금도 기부하면서 긍정적인 영향력이 지역사회로 번진다. 이런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는 방침에서 환경과 기후 교육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독일의 지속가능발전교육은 환경문제를 단순한 보호 차원으로 보지 않는다. 특정인과 관계자만이 아닌 누구나 문제의 책임자이자 당사자라는 점을 강조한다. 학교 교육과정에서도 특정 교과서만이 아닌, 대부분의 교과목에서 환경이나 기후 관련 내용을 다룬다. 가령 수학 문제에는 이산화탄소가 얼마나 배출됐는지 계산하게 하고 미술 과목에선 오래 쓴 물건들을 어떻게 재활용할지 고민한다.

독일에서 환경학교를 가장 먼저 시작한 함부르크는 2011년부터는 기후학교까지 운영하고 있는 유일한 도시다. 함부르크에 있는 학교 400여 곳 중 기후학교로 지정된 곳이 75곳이고 환경학교를 운영하는 곳은 60곳이었으며 2023년에는 기후학교가 85곳으로, 환경학교는 65곳으로 늘어난다고 한다. 기후학교는 학교 회의를 통한 참여 결정과 학교 모든 구성원에 의한 기후 보호 계획 채택 등의 절차를 거쳐 인증된다. 교사는 물론 학생과 학부모, 교내 직원까지 만나 기후학교에 동참하고 싶은지 물어보고 모두 동의하면 기후학교가 된다. 학교 시설이 기후 보호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기후 보호 프로젝트를 세워 실천할 수 있는지를 꼼꼼히 진단하는 현장이 무척 부러웠다.
기후학교의 목표는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것이고 모든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기후 보호를 실천하는 것이다. 에너지 절약을 한 학교는 1년에 9,000유로(약 1,200만 원) 안팎의 상금도 받는다. 또 학생들이 관리자로 지정된다. 학교에선 교사와 학생들이 참여하는 기후 모임이 열리고 환경팀이 구성돼 에너지 절약을 고민한다. 이처럼 함부르크에서 기후 교육의 목적은 ‘일상생활에서의 적용’이다.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해 어떤 물건을 사야 할지, 냉난방기는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등을 고민하고 이를 토대로 시민사회에 기후 보호를 위한 의식을 확산하는 것이 기후 교육이라고 독일 교사들은 귀띔해 줬다.

현장에서는 바로 그 효과가 나온다. 분리수거와 헌 옷 물려주기, 조명 확인은 필수고 청소년들은 심지어 빨래도 지금 당장 필요한지 고민한다. 함부르크에서 자전거 타기는 일상화됐는데, 인도와 횡단보도 옆에는 반드시 자전거도로가 있고 신호등에 자전거 표시가 있을 정도였다.
갈 길 먼 국내 기후 교육
독일 현장 취재를 마친 후 서울에 있는 학교 두 군데도 찾았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제품을 만들어 직접 판매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텃밭 가꾸기 또는 자전거 타며 쓰레기 줍기 등의 프로젝트를 연중 수행하는 학교들이었다. 교사의 열정과 학생들의 높은 관심으로 기후 교육의 효과를 입증하고 있는 학교가 국내에도 존재한다는 점에 일단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나 국내 기후 교육의 현실은 어둡고 아직 갈 길이 멀다. 독일과 달리 우리나라는 정부나 교육청 차원의 기후 교육에 대한 로드맵이 없고 각 교과와의 연계도 없이 단기적 성과에 치중하며 교사의 개인기에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나 탄소중립 시범학교를 진행하는 곳은 소수에 불과하고 학교 교육과정에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학교 자체적으로 논의한 지침은 없었다. 독일이 환경문제를 비롯한 지속가능발전교육을 전체 교육의 상위 목표로 두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그저 특정 교과서의 한 주제로만 다루고 있었다. 독일은 연방정부가 교육기본법을 통해 초중등 교육의 목표를 지속가능성으로 정하고 국가, 계층, 문화의 지속가능성은 물론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동식물과 공존하는 체제로 가자는 개념을 제시했다. 다만 취재진이 만난 교사들은 이구동성으로 국가가 기후 교육의 큰 그림은 그려주되 학교에서의 수업과 프로젝트 실행은 교사들에게 자율성을 주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기후 교육을 전문적으로 진행할 교사 양성은 필수다. 독일은 ‘교사훈련과 학교 개발을 위한 주립연구소’를 두고 기후학교와 환경학교 교사들을 양성하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이 과학과 사회 과목에서만 일시적으로 기후 문제를 다루는 것도 개선해야 한다. 기후라는 주제를 수학과 국어, 미술 등 모든 교과에 녹여 하나의 프로젝트로 만들고 교육과정을 넘어서 학생들이 학교에서 지내는 동안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고민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 교육청이 생태 전환 교육과 민주시민 교육, 환경 교육 등으로 각각 다르게 진행하는 기후 교육의 용어도 통
합이 필요하고, 환경 교육을 시범학교 위주로 실시하다가 단기적인 성과만 내는 식으로 잠시 시늉만 내는 방식도 개선돼야 한다. 효율적인 기후 교육이 이뤄지려면 지역사회와의 협력이 중요한데, 우리나라의 경우 교육청은 학교 교육에만 신경 쓰고 학교 밖의 문제는 지방자치단체가 챙기다 보니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 간 연계와 협력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가슴 아팠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자는 목소리에서 기후 보호를 위한 실천으로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 학교 현장에서의 통합 기후 교육을 실시하고 이를 통해 지역사회로 그 영향을 퍼트리는 독일 함부르크의 기후학교 현장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컸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에서 기후 보호의 실천으로
취재와 기획 보도가 한창 이뤄지던 지난해 11월에도 제주에서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온 도민이 체감해야 했다. 이틀 사이에 여름과 겨울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11월 28일 제주시의 낮 최고기온은 27.4도로 1923년 기상관측 이래 11월 기온이 27도를 넘긴 첫 기록을 남겼다. 그러더니 이틀 후인 11월 30일에는 기온이 4.1도로 뚝 떨어졌고 한라산은 물론 제주 해안에도 첫눈이 내렸다. 때아닌 무더위에 반소매 셔츠를 입던 시민들은 이틀 만에 두꺼운 외투로 몸을 꽁꽁 싸매야 했다.

제주CBS는 취재 결과를 지난해 11월 21일부터 12월 2일까지 10차례 걸쳐 라디오 리포트와 노컷뉴스 기획으로 보도했다. 또 라디오 다큐멘터리로도 제작해 올해 2월 2일과 3일 이틀간 2부작으로 방송했다. 고맙게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 보도를 올해 2월 ‘이달의 좋은프로그램상’으로 선정하며 “독일과 국내외 환경 교육 사례를 소개하며 기후 위기의 문제를 교육의 문제로 접근해 우리나라 기후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고 격려해 줬다.
사전 취재와 독일 함부르크 현지 및 국내 취재, 기획 보도와 다큐멘터리 제작까지 11개월에 걸친 대장정은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기후 보호의 실천으로 어떻게 바꿔나갈 지에 대해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