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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제작기] 뉴시스 <멸종위기 소아과> 취재기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3-08-25

지역마다 소아과가 문을 닫고 있고, 소아과 전문의가 부족하다는 뉴스에 모든 부모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소아과 붕괴 위기를 다룬 보도 기사에 ‘멸종 위기’라는 심각한 단어를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취재 후기를 통해 확인해본다. 편집자 주

 

“조만간 ‘옛날에 소아과가 있었다더라’라는 말을 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소아·청소년 확진자가 급증했던 지난해 3월,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소아청소년과(소아과) 의사에게 뜻밖의 얘기를 듣게 됐습니다. 소아과가 곧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당시 거센 오미크론 변이 확산세로 전체 확진자 네 명 중 한 명이 소아·청소년이긴 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답변에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학회 등을 통해 소아과, 소아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을 수소문했고 이내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저출산 흐름 장기화로 인한 소아청소년 환자 급감, 고착화된 낮은 수가(진료비), 코로나19로 인한 진료량 급감 등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면서 전공의들의 소아청소년과 지원이 크게 줄어 소아과가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전공의 부족에 따른 인력난으로 현장 의료진들은 이미 극심한 피로를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소아응급의학과 A전문의는 “원래 소아 응급 전담 의사와 간호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소아 확진자가 크게 늘어 다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수년째 이어져 오던 의료 현장의 소아과 의사 부족 현상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수면 위에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전공의가 턱없이 부족해 소아 응급 환자 진료 자격이 있는 촉탁의(전담의)를 고용해 응급의학과 전문의들과 교대로 진료를 보도록 하는 병원도 있고, 환자가 없어 운영난에 시달리는 지방 병원 중에는 이마저도 어려워 아예 응급실 문을 닫는 곳도 있었습니다.

 

 

<멸종위기 소아과> 시리즈 첫 회 Ⓒ뉴시스

 


현장의 목소리로 확인한 소아과 붕괴 원인

 

그로부터 1년 가까이 흐른 올해 2월. 소아·청소년 진료 현장의 어려움이 단순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면서 <멸종위기 소아과> 시리즈를 기획하게 됐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의사 부족으로 수도권 소재 병원들을 중심으로 소아과 입원 치료와 응급실 야간 진료를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소아과의 위기는 객관적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도 상반기 레지던트 모집 결과 소아과 모집 정원 확보율은 20%로, 2021년(36%), 2022년(22%)에 이어 하락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소아과 레지던트 모집 정원이 있는 50개 대학병원 중 76%(38개)는 레지던트를 단 한 명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모집 정원을 다 채운 곳은 서울대병원이 유일했고, 50%를 넘긴 곳도 순천향대 서울병원, 아주대병원, 전남대병원, 울산대병원 등 4곳에 불과했습니다. 

 

소아과가 붕괴 위기에 놓인 이유를 좀 더 명확하게 파악하려면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부터 소아응급의학과 전문의, 소아심장 전문의, 소아중환자 전담의, 소아혈액종양 전문의 등에 이르기까지 묻고 또 물었습니다. 의료진이 부족한 상황에서 환자들을 돌보시는 분들이다 보니 답변을 듣기까지 기다림의 연속이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진료 일정이나 출장 등으로 취재에 응하기 어렵다고 밝힌 취재원들에게는 소아과가 처한 현실을 가능한 생생하게 전해 정책에 조금이나마 반영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설득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취재원 대부분은 부족한 시간을 쪼개 소아과가 위기에 직면한 상황과 원인, 대책 등에 대해 성심성의껏 답해줬고 소아과가 붕괴 위기에 놓이기까지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년 넘게 이어져 온 저출산 장기화, 모든 진료과 중 가장 낮은 수가, 소아는 성인에 비해 진료가 까다로운 반면 기대여명(앞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는 기간)이 길어 상대적으로 큰 의료소송 위험, 성인의 두세 배에 달하는 업무 강도(입원 진료 기준) 등이었습니다.

 

특히 어린이 중환자 진료는 전공의 지원 감소에 따른 전문의 부족, 근무 여건 악화, 기존 전문의 이탈 등으로 이미 붕괴된 상태였습니다. 소아 중환자 진료가 24시간 가능하려면 소아 중환자를 전담하는 5~7명의 의사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고난도, 고강도, 고위험 업무이다 보니 전공의들이 기피하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있는 인력마저도 수도권 병원에 집중돼 있다 보니 지방의 경우 소아·청소년 환자의 응급상황 대처마저도 어려운 실정이었습니다. 최희정 계명대 동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소아심장 전문의)는 “어린이 환자 진료는 업무 강도가 훨씬 센데 생활의 질은 낮아 전공의들이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다”고 호소했습니다. 당시 동산병원은 상급종합병원이지만, 소아심장 전문의는 한 명뿐이었습니다. 어린이 진료의 특성상 다른 과 전문의는 검사나 치료 결정을 할 수 없어 응급 심장질환자가 발생하면 365일 언제든지 병원에 나와야 하는 실정이었습니다. 의사로서의 삶만 있을 뿐 개인의 삶은 없었습니다.

 

 

<멸종위기 소아과> 시리즈 2회 Ⓒ뉴시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지난 2017년 12월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이화여대 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은 전공의들이 소아과 지원을 기피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소아과 의사는 일이 고된 반면 보상은 적어 전공의 기피 현상이 심각한데, 생명을 살리지 못하거나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구속된다는 인식까지 생겼다고 합니다.

 

의사의 사명감은 임계점을 넘은 지 이미 오래입니다. 지방의 한 소아과 의사는 지난달 국회 토론회에서 “전공의가 없다 보니 1년 365일 온콜(호출) 대기하면서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조마조마하다”며 “최선을 다해 치료하고 싶다는 마음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다섯 살 아들을 키우는 엄마인 저는 취재 과정에서 이른바 ‘소아과 오픈런’이나 ‘응급실 뺑뺑이’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두렵기도 했습니다. 특히 응급실, 중환자실 진료는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데, 중증 어린이 환자가 응급 처치나 수술을 적시에 또는 아예 받지 못하는 상황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평소 동네 소아과에 대기 환자가 많아 진료가 늦어지기만 해도 속이 타들어 가는데, 응급 수술이 필요한 자녀를 둔 부모의 심정은 어떨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사회안전망 역할을 해야 할 정부가 효과가 미미한 출산 장려책에 치중하면서 정작 소아과를 살릴 실효성 있는 대책은 내놓지 못해 현장의 어려움을 가중시킨 점도 안타까운 지점입니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어린이 응급 의료는 고사 직전인데 아이들이 소중하다는 말뿐 정작 재정은 지원하지 않고 있다”, “저출산 예산을 많이 지출하고도 실패한 정책 담당자들에게 패널티를 줘야 한다”며 답답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일부 의료진 사이에서는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고위직의 자녀나 고위직 관련자들이 진료를 제때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지경이 되어야 소아청소년 의료체계 개선을 위한 투자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왔습니다. 실제 미국은 1985년 연방정부법에 따라 매년 어린이 응급 의료 체계 지원금을 각 주에 나눠주고 있는데, 미국 상원의원 캠프 직원의 딸(영아)이 호흡 정지를 겪은 것이 법안이 발의되는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이후 미국은 1986년부터 매년 어린이 응급 의료 서비스(EMSC) 홈페이지에 연방정부 소아응급 재정 사용 내역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사례도 참고할 만합니다. 일본 정부와 각 지방정부(현)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 의료를 담당하는 각 현의 현립 어린이 병원과 거점 소아암 병원에 1년에 200억~300억여 원의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각 현립병원에서는 환자 수에 얽매이지 않고 인력, 시설, 장비를 갖추고 환자를 진료한다고 합니다. 

 

반면 국내 어린이 응급의료 체계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는 미비한 실정입니다. 지난해 2월 무소속 김홍걸 의원은 11명의 의원과 함께 어린이 환자 전문응급의료센터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공동 발의했지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계류돼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A국회의원의 손자가 아팠지만, 당장 진료 받을 수 있는 소아과를 찾기 힘들어 한참을 헤맸다고 합니다. A의원은 이를 계기로 소아과의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새삼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대정부 질문은 물론 대책도 꼼꼼히 챙기겠다고 했습니다. 지난달 말 국회에선 소아 응급의료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입법과 예산 지원에 나서겠다”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정부는 수가 개선, 인력 확대 등 처우 개선을 통해 전공의들이 자발적으로 소아과에 지원할 수 있도록 의료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멸종 위기에 직면했다 복원에 성공한 아프리카의 검은 코뿔소 사례는 필수 의료 중 하나지만 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는 소아과 살리기에 참고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와 긴급 처방, 시장 개입 모두 검은 코뿔소 복원에 효과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주민들의 ‘코뿔소 보호 의식’을 높이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밀렵을 저지하는 등 코뿔소 보호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경제학자들이 사파리를 만들어 발생한 관광 수입을 아프리카 주민들이 골고루 나눠 갖도록 한 것입니다. 검은 코뿔소 개체 수도 2000년대 2,000마리에서 2010년 4,000마리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소아과를 살리기 위한 국가의 장기적인 과감한 투자로 환자와 의사 모두 상처받지 않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조만간 ‘옛날에 소아과가 있었다더라’라는 말을 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어느 소아과 의사의 우려가 기우(杞憂)에 그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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