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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현장] 워싱턴포스트 CEO는 왜 불명예 퇴진했나
미디어현장 | 등록일 : 2023-08-25

워싱턴포스트의 CEO 겸 발행인 프레드 라이언이 9년 만에 물러났다. 제프 베이조스의 ‘디지털 미디어 전략’을 실현하며 워싱턴포스트의 체질을 바꾸는 데 한몫한 그가 사임한 이유는 무엇인지, 그 배경과 이후 워싱턴포스트의 전망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2015년 10월 미국의 유력지 워싱턴포스트가 온라인 구독자 수에서 경쟁지 뉴욕타임스를 추월했다는 소식은 미디어 업계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당시 미국 리서치 기관 컴스코어(Comscore)는 워싱턴포스트의 10월 월간 순 방문자 수가 6,690만 명을 기록해 6,580만 명의 뉴욕타임스를 근소한 차로 앞섰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조사 결과가 발표된 이후 2013년 워싱턴포스트를 2억 5,000만 달러(약 3,350억 원)에 인수한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디지털 미디어 전략’은 각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가 워싱턴포스트의 체질을 바꾼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제프 베이조스는 워싱턴포스트 인수 이후 전통적인 종이신문 경영 방식을 버리고 아마존의 디지털 유전자(DNA)를 조직에 이식했다. 지역언론사들과 활발하게 제휴하는 한편,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 등과의 결합을 통해 온라인 구독자 파이를 키웠다. 신문의 생명인 콘텐츠 강화를 위해 취재기자와 에디터를 늘리고, 아마존 소속 엔지니어들을 워싱턴포스트에 파견해 디지털 고객 확장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했다. 

 

이 같은 베이조스의 디지털 경영을 전면에서 실현한 사람이 바로 프레드 라이언(Fred Ryan) CEO 겸 발행인이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인 프레드 라이언은 2007년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Politico)를 공동 창업한 인물이다. 프레드 라이언이 몸담았던 신생 매체 폴리티코는 깊이 있는 워싱턴 정가 소식을 다루며 미국 내 유력 매체로 급성장했다. 그는 2014년 베이조스에게 낙점돼 워싱턴포스트로 온 후 3만 5,000명에 불과하던 온라인 구독자를 현재 약 250만 명으로 늘리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의 성장 정체 및 뉴스룸 내부 갈등 논란 속에서 프레드 라이언은 지난 6월 전격적인 퇴진을 선언했다. 그는 워싱턴포스트 CEO에서 물러나 레이건 대통령 재단 소속 공공시민센터(Center on Public Civility)의 수장을 맡게 된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의 격변의 한 시대가 저문 것이다.


뒤숭숭한 뉴스룸, 줄어드는 구독자

 

프레드 라이언의 전격적인 퇴진은 워싱턴포스트 내부에서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선임 직원들도 그가 물러난다는 것을 공식 발표 직전에나 알았다고 한다. 프레드 라이언은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를 통해 워싱턴포스트가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온라인 구독자 수를 크게 늘리며 글로벌한 조직으로 탈바꿈한 것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실제 워싱턴 D.C.의 지역신문 성격이 강했던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10여 년 동안 보도의 반경을 세계적으로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프 베이조스 역시 저널리즘의 성장과 혁신을 보여줬다며 프레드 라이언의 헌신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하지만 이처럼 겉으로 보기에 아름다운 이별 뒤에는 워싱턴포스트 뉴스룸이 갖고 있던 고민이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워싱턴포스트 직원들 사이에서는 프레드 라이언이 주도한 딱딱한 비즈니스 문화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상태였다고 경쟁 매체인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프레드 라이언은 2년 전 편집장으로 워싱턴포스트에 합류한 샐리 버즈비(Sally Buzbee)와도 출판 방향을 두고 종종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프레드 라이언은 특히 팬데믹 기간 정착된 재택근무 문화를 되돌려 놓고 많은 직원이 사무실에 주기적으로 출근하기를 바랐는데, 이 같은 기업 경영식 마인드에 기자들이 지쳐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 큰 문제는 최근 3~4년간 워싱턴포스트 자체의 디지털 경쟁력이 무너졌다는 부분에 있었다. 워싱턴포스트의 온라인 구독자는 2020년 300만 명까지 증가했으나 그 이후 줄어들기 시작해 현재 250만 명 수준이다. 같은 기간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 등 경쟁 매체들이 구독자를 늘린 것과는 확연히 비교된다. 

 

당초 워싱턴포스트의 목표는 ‘5 by 25’. 즉, 2025년까지 500만 명의 유료 구독자를 확보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 같은 목표가 요원해 보인다. 구독자 확장은커녕 약 1억 달러(약 1,340억 원)의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어느 지점에서인가 워싱턴포스트가 길을 잘못 든 것이다.

 

 

프레드 라이언 전 워싱턴포스트 CEO 겸 발행인 Ⓒ연합뉴스

 


과도한 정치 뉴스, 핵심 인재 유실

 

워싱턴포스트는 10여 년 전 미디어 시장의 변화를 포착해 선제적으로 움직였다. 사양산업인 종이신문이 나아갈 길을 보여줬다는 찬사도 쏟아졌다. 그러나 최근 3~4년 동안 워싱턴포스트의 모습은 기대에 못 미쳤다. 특히 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이후 정치 뉴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식어가는 흐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CEO로서 워싱턴포스트를 이끌었던 프레드 라이언이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 주류 언론들은 트럼프와 대척하면서도, 트럼프로 인해 엄청난 반사 효과를 누렸다. 트럼프가 트위터를 통해 쉴 새 없이 쏟아내는 발언들은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고, 이를 분석하는 미국 언론들의 홈페이지로도 구독자가 대거 유입됐다. 특히 진보적 색채를 가진 워싱턴포스트는 날카롭게 트럼프를 비판했으며 이는 트럼프 반대 진영에서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트럼프의 퇴진 이후 정치 뉴스는 예전처럼 소비되지 않고 있다. 워싱턴 특파원으로서 현장에서 느끼기에 미국 대선을 1년여 앞둔 현시점까지도 정치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예전처럼 높아지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도 워싱턴포스트는 정치 뉴스에 상당한 비중을 싣고 있는데, 이는 온라인 구독자가 급격히 줄어드는 원인 중 하나로 분석된다. 변화하는 구독자의 니즈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이다. 

 

신문사의 핵심인 인재를 지켜내지 못한 것 또한 워싱턴포스트의 경영상 패착으로 꼽힌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 백악관 취재를 총괄했던 스티븐 긴스버그(Steven Ginsberg), 회사 경영의 핵심을 담당했던 조이 로빈스(Joy Robins) 등이 뉴욕타임스로 떠났고, 상당수 시니어 기자와 직원들이 내부 갈등 속에서 다른 매체로 옮겼다. 

 

워싱턴포스트가 보도의 영역을 크게 넓히기 위해 인수합병(M&A)을 추진한다는 소문도 있었으나 이 역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다. 물망에 오른 언론사에는 AP, 가디언, 이코노미스트 등 유력 매체들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프레드 라이언은 경쟁 매체를 인수하기보다는 워싱턴포스트의 역량을 넓히겠다는 방향을 잡았고, 이 전략이 아직까지는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새로운 그림 그리는 제프 베이조스

 

이 같은 이유로, 프레드 라이언의 퇴진을 두고 제프 베이조스가 워싱턴포스트의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제프 베이조스는 오랜만에 워싱턴포스트 뉴스룸을 찾았다고 한다. 기자들과 직원들은 그에게 프레드 라이언의 경영 방식, 워싱턴 포스트의 제작 방향에 대한 우려를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이후 워싱턴포스트에서는 CEO의 퇴진을 비롯해 변화의 움직임이 뚜렷하게 보이고 있다. 

 

제프 베이조스는 워싱턴포스트의 두 번째 온라인 혁신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하나는 미국 전역의 독자들이 자신의 의견과 논평을 제출할 수 있는 오피니언 섹션이다. 일종의 참여형 미디어를 만든다는 발상인 셈인데, 구체적인 모습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워싱턴포스트는 54년 된 스타일 섹션을 9월 개편할 방침이다. 온라인 홈페이지 전반에 걸쳐 새 단장이 이뤄질 것으로 전해졌다. 제프 베이조스는 이 과정에 모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계속해서 수준 높은 저널리즘을 선보이고 우수한 기자들을 지키는 것 또한 정론지인 워싱턴포스트의 정체성 측면에서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지난 5월 워싱턴포스트는 보도 기사로 2개의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두 명의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이 쓴 《그의 이름은 조지 플로이드(His Name is George Floyd)》라는 책이 최우수 일반 논픽션 부문 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저력이 여전히 살아있는 셈이다. 제프 베이조스는 올해의 수익성 악화에 굴하기보단, 추가 투자와 새로운 실험을 통해 워싱턴포스트의 경쟁력을 되찾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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