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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현장] 콘텐츠 전성시대,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역할
미디어현장 | 등록일 : 2023-08-25

시청자는 콘텐츠의 주제나 내용에 주목할 뿐 장르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간 우리는 ‘시사교양’이라는 장르에 속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나 왔다. 방송 생태계 변화로 장르 구분의 의미가 사라져 가는 현재,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역할과 나아갈 방향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시사교양은 방송 제작자나 방송 담당 기자에게는 익숙하지만, 시청자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용어다. 대체로 <추적 60분>, <PD수첩>,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이른바 탐사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가 그에 해당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다른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그 장르를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지도 불분명하다. 이전에는 막연히 일반인이 출연하거나 정보와 지식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시사교양 장르에 해당한다고 여겼지만, 지금은 역사나 교양 과학을 다루는 여러 정보성 프로그램을 연예인들이 진행하고 다양한 분야의 일반인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국민MC 유재석을 만난다. 그런가 하면 글로벌 OTT에서 반향을 일으켰던 <피지컬: 100> 연출자는 지상파 방송사 시사교양 출신이다.

 

요컨대, 시청자들에게 장르 구분은 별 의미가 없고 필요에 따라 원하는 콘텐츠 또는 프로그램을 소비할 뿐이다. 현장에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자들 또한 더 이상 장르의 구분 안에서 사고하지 않고 더 많은 시청자에게 도달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을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최근까지 시사교양 장르 콘텐츠를 제작해 온 현업인들은 사안에 대한 접근 방식, 제작 인력의 직업윤리, 작업의 프로세스 전반을 포함하는 시사교양의 직무적 특성이 소멸되거나 심각하게 축소될 것을 우려한다. 이는 단지 기술 발전에 따른 변화에 역행해 특정 직업군의 배타적 이익을 고수하고자 하는 퇴행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 방송의 사회적 책무가 의미하는 공적 영역의 축소 가능성에 대한 문제의식이라는 점에서 살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튜브와 글로벌 OTT가 불러온 격변

 

2010년대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유튜브 등 모바일 플랫폼에서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과 2016년 넷플릭스코리아의 영업 개시로 시작된 글로벌 OTT의 한국 시장 진출이 방송 콘텐츠 시장에 전례 없는 격변을 불러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두 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변화 중 가장 주목할 것은 시청자 수요의 매우 구체적인 세분화와 콘텐츠 제작 비용의 급격한 상승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장르와 무관하게 방송 제작자 모두가 직면한 현실이다. 이전까지 한 방향,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공급되던 콘텐츠는 시간이 지날수록 구체적인 시청층 대상으로 세분화하고, 기술 발전 방향도 그런 변화에 동조한다. 드라마와 예능, 시사교양 등 장르를 불문하고 콘텐츠 제작과 유통 전 과정에서 다양해진 시청자의 취향에 부합할 수 있는 더 세련된 스토리텔링, 더 효과적인 전달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동시에 많은 시간과 자원이 투입된 콘텐츠가 글로벌 OTT를 통해 공급되면서 시청자들의 높아진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필수적으로 투입되는 시간과 자원의 절대량이 증가한다. 시사교양 장르에 국한해 본다면 이러한 방송 환경 전반의 변화에 더해 직면해야 하는 또 다른 과제가 있는데, 그것은 장르 자체의 특성에 기인한다. 시사교양은 예능과 크게 다르지 않은 콘텐츠를 포함하는 한편, 시사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저널리즘의 영역에 존재하고, 다큐멘터리를 다른 장르와 구분하는 궁극의 영역으로 포용한다. 

 

 

넷플릭스 <피지컬: 100> Ⓒ넷플릭스

 

 

시사교양 장르는 20세기 후반 한국 사회 변화의 산물이다. 다른 많은 분야와 마찬가지로 방송 시스템과 편성 기준도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정보성 프로그램과 TV용 다큐멘터리가 교양 장르로 분류된 것이 1980년대 초의 일이고 1987년 시민혁명과 뒤이은 방송 민주화의 영향으로 탐사고발 프로그램이 주요한 영역으로 자리 잡으면서 시사교양이라는 용어가 완성됐다. 미국에서 뉴스 프로듀서들이 60분 분량의 탐사고발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된 게 1960년대 민권운동의 결과물인 것과 과정상 유사하지만, 뉴스룸에 속하지 않은 제작부서에서 저널리즘의 영역인 시사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다큐멘터리는 투입되는 시간과 비용에 비해 큰 수익이 나지 않는 콘텐츠지만 방송사의 플랫폼 기능이 강력하던 시기에 방송사 브랜드 이미지와 제작 역량을 과시하는 역할을 맡았고, 다큐멘터리를 선호하는 수요층 또한 꾸준히 존재해왔던 게 사실이다. 이른바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정확한 용어로 보자면 ‘논-스크립티드(Non-Scripted, 대본 없이 제작하는 비드라마 장르)’ 또는 ‘팩추얼(Factual)’ 콘텐츠라고 보는 것이 맞는데, 최근 경향은 탐사고발과 다큐멘터리를 제외하면 대체로 예능 콘텐츠와 서로 수렴하고 있다.

 

탐사고발과 다큐멘터리 외의 팩추얼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시사교양 분야 소속 제작자들은 비교적 일찍부터 이전의 제작 관습에서 벗어나 예능 콘텐츠와 경쟁해왔다. 연예인을 기용하고 형식을 유연화하며, 서사의 밀도를 높이고 조금이라도 더 친절한 전달 방식을 지향한다. 연예인들과 상시 접촉하고 기획사들과 오랫동안 공생 관계를 유지해온 예능 제작자들에 비해 기획사에 대한 협상력이 떨어지고 엔터테인먼트 산업 생태계 내의 입지가 좁다는 비교열위를 갖고 있지만 그것은 기획력으로 상쇄할 수 있고, 이는 시청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당연히 필요한 과정이다. 시사교양 제작자들이 실제로 느끼는 위기감은 이른바 시사교양의 정수라 여겨져 온 탐사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 영역에서 두드러진다.

 

 

KBS <추적 60분> <출처 - <추적 60분> 유튜브 화면 갈무리>

 


탐사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의 딜레마

 

탐사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가 마주한 가장 큰 딜레마는 비효율을 형식화한 장르이면서 유통 측면에서는 효율을 지향해야 하는 다른 콘텐츠와 차이가 없다는 점에 있다. 탐사 프로그램이 권력과 자본의 불법이나 비리 행위를 감시하고 사회정의를 지향한다는 사실은 더 많은 시청자에게 도달해서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사실과 반드시 부합하지는 않는다. 다큐멘터리는 그 형식상 시간의 축적과 데이터의 집적, 새로운 사실을 필요로 하는데, 이 또한 시장이 요구하는 효율과는 거리가 있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나 BBC,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다큐멘터리 제작사들은 투입 비용과 자원을 늘리는 한편 도달 범위를 전 세계로 확장해 수익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비효율을 극복하는데, 그들의 소요 비용과 자원의 양은 국내에서는 최대치의 자원을 다큐멘터리에 투입할 수 있는 지상파 방송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시장에서 경쟁이 격화되고 시장 참여자들의 매출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수익 대비 비용 면에서 비효율적인 장르를 유지할 가능성은 제작을 맡은 주체가 ‘사회적 책무’라거나 ‘방송의 공공성’ 등 비시장적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정도에 비례한다. 수신료라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재원을 보장받는 대신 공공성을 실현할 의무를 부담하는 KBS가 비효율을 감당할 가능성이 가장 높고 광고 판매, IP 수입 등의 매출에 의존하지만 소유 구조 측면에서 공영 체제에 속한 MBC가 그다음, 민간 소유 방송이지만 지상파에 속한 SBS, 뒤이어 종합편성채널과 유료방송 제작자 순서로 가능성의 순위가 매겨질 것이다. 

 

탐사 프로그램 제작자의 고민을 가중시키는 것은 더 있다. 사회 구성원들의 삶에 더 큰 해악을 끼는 경제 범죄 등 이른바 화이트칼라 범죄는 대체로 영상화하기 어렵고 검증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 그리고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사회 문제는 더 다층적이고 내밀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책임 소재를 적시하거나 명쾌한 대안을 제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소셜미디어가 보편화되면서 의견의 양극화가 가중된 상황은 시청자들 일부가 탐사 프로그램 자체를 정파적인 것으로 치부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에 맞는 다른 콘텐츠를 선택하게 하는데, 이 또한 탐사 프로그램이 이전에 시청자들에게 가졌던 영향력을 희석하고 사회적 유용성을 저하한다. 한편, 인문·사회적 현상이나 자연과학에 관한 지식, 기행이나 역사, 국제 문제처럼 이전이라면 다큐멘터리가 다뤘을 주제들도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더 직접적이고 쉬운 방식으로 전해지고 있어 다큐멘터리의 서사 형식을 활용할 소재는 이전보다 매우 제한적이다. 

 

여기에 대한 제작 주체들의 대응도 소유구조와 공공성의 정도에 따라 서로 다르다. tvN은 시사나 교양이라는 구분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종합편성채널 중 JTBC는 창사 초기 구성됐던 교양 제작부서를 몇 해 전 폐지하고 대부분 외주화하고 있으며 탐사 프로그램 <스포트라이트>는 2021년 9월 이후 방송을 중단했다. MBN이나 채널A에는 정보성 또는 팩추얼 프로그램이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지만, 일반적인 탐사 프로그램은 없고 다큐멘터리는 드물게 외주제작 형식으로 제작한다. TV조선의 탐사 프로그램 <세븐>은 종영됐고 외주 제작 다큐멘터리만 남아있다. 지상파 채널 중 SBS는 홈페이지에서 ‘시사’와 ‘교양’을 구분했으나 최근 ‘교양’으로 통합했고 다큐멘터리 <SBS 스페셜>을 2021년부터 시즌제로 전환하며 52주 정규 편성을 마감했다. 탐사 프로그램은 <그것이 알고 싶다>가 시청률 등 경쟁력 면에 있어 가장 앞서 있지만 범죄와 사건·사고 분야에 전문화하고 있어 정치·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빈도는 높지 않다. MBC는 <PD수첩>, <스트레이트> 등의 탐사 프로그램에서 사회적 의제 설정 기능을 놓지 않고 있으나 정규 편성하던 <다큐플렉스>는 편성표에서 빠져있는 상태다. KBS는 최근 <추적 60분>을 부활시켜 <시사직격>을 대체하는 탐사 프로그램으로 제작 중이고 타사에 비해 많은 수의 다큐멘터리를 아직까지 정규 편성해 방송하고 있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SBS

 

 

 

티빙 <케이팝 제너레이션> Ⓒ티빙

 

 

정체성을 지키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지상파 채널들은 자체적으로 보유한 방대한 영상 아카이브를 활용해 정보의 집적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다큐멘터리의 완성도를 높이는 전략을 취하기도 한다. KBS가 <모던코리아> 시리즈로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은 것이나 MBC가 JMS, 아가동산 등 사건에 대한 과거 촬영분과 최근 취재 내용을 결합하고 글로벌 OTT의 제작비를 활용해 제작한 <나는 신이다> 시리즈가 그러한 예다. SBS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도 과거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뤘던 사건의 영상들을 활용한다는 면에서 이와 유사하다. 결국 탐사 프로그램은 사건·사고로 연성화하고 다큐멘터리는 정규 편성에서 제외하며 비정기적인 대형 기획에 비용을 집중하는 것이 방송사들이 택한 전략의 방향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사실 여기까지 언급한 모든 변화와 대응은 온전히 공급자의 문제다. 제작 주체가 시사교양 소속이든 예능 소속이든 관심 있는 주제를 친근하고 몰입도 높은 방식으로 접할 수만 있다면 시청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좋은 점이 더 많은 것으로 볼 수 있다. 1987년 시민혁명의 산물이라고는 하지만 PD가 제작하는 탐사 프로그램이 살아남는 것이 시청자들에게는 별 의미는 없다. PD가 이른바 출입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고 스토리텔링에 익숙해 내러티브저널리즘의 장점을 구현한다는 점은 미덕에 속하지만 뉴스룸에서도 의지만 있다면 수준 높은 탐사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고 브랜드화할 수 있다. 최근에는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분야에 관한 다큐멘터리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2023년 1월 티빙에서 방송된 8부작 다큐멘터리 <케이팝 제너레이션>은 방송 전문 인력이 아니라 케이팝에 전문성을 가진 문화평론가가 연출과 스토리 구성을 주도했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자 한다면 방송사보다 OTT를, TV보다 스크린을 택해야 한다는 말도 점차 설득력을 얻는 상황이다. 

 

다만 생각해볼 것은, 방송 콘텐츠 제작을 하나의 산업으로 본다면, 원료 조달부터 최종 생산물이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의 가치사슬 전체에서 한 고리가 무너질 경우 그것이 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는 제작 요소 중 노동 공급이라는 고리를 지적할 수 있겠다. 1990년대 이래 최근까지 시사교양 제작자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는 기획자, 연출자, 작가, 촬영인 등의 인력이 지속적으로 배출됐으나 최근 해당 업종에서 직무적 전문성을 활용할 여건이 축소되면서 새로운 인력 공급이나 경험의 축적은 줄어들고 있다. 시사교양 콘텐츠, 그중에서도 탐사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가 사회적 의제 설정에 기여하고 간접경험을 통해 시청자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높이며 정서적, 지적 만족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온 것을 감안한다면 가치사슬 일부가 무너지는 것의 영향은 생각보다 무거울 수 있다. 노동 공급의 양적 측면 외에도 시사교양 장르가 존속되는 동안 방송의 공적 기능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형성된 제작 방식과 직업윤리 등 직군 내 하위문화가 소멸되는 것도 콘텐츠의 질적 측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시사교양 현업 제작자들은 장르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화제성 높은 대형 기획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하려고 하는 한편, 지속적인 정규 편성으로 콘텐츠의 항상성을 유지하되 방송분을 그대로 디지털 플랫폼에 공개해 수요자 도달률을 높일 방법을 찾기도 한다. 공급자 입장에서 희망적인 사실은 좋은 콘텐츠는 수요자가 알아본다는 것과 시장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탐사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에 대한 수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공영방송사들이 유튜브에 업로드한 탐사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들은 사용자들이 짧은 영상을 선호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한다. 

 

방송사들이 플랫폼 기능을 상실하면서 콘텐츠 제작사로 변모하고 있는 지금 시사교양이라는 이름의 장르나 부서, 또는 직업군이 존속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시사교양이든 드라마, 예능이든 방송 콘텐츠는 시청자와의 상호작용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만큼 일정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질 수밖에 없고 콘텐츠의 성격은 사회 변화에 연동된다는 사실이다. 공적 기구와 제도가 적절히 작동하지 않거나 사회적 부정의가 명확해질 때 탐사 프로그램의 수요가 커졌던 과거의 경험을 감안하면 사회 변화의 향배가 시사교양 장르를 강화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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