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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스로트(deep throat)에 대해 얼마나 말해줄 수 있나?”
“얼마나 아셔야 해요?”
“그를 믿을 수 있나?”
“그럼요.” (잠시 침묵)
“내가 믿는 건 내 기자들뿐이야. 다른 누구도 안 믿어… 이제 쓰라고.”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을 깊이 파고든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의 실화를 영화로 옮긴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에 나오는 대사를 옮겼다. 당시 워싱턴포스트의 편집인이었던 벤저민 브래들리(Benjamin Bradlee)는 닉슨 행정부의 부정을 취재한 콤비 밥 우드워드(Bob Woodward), 칼 번스타인(Carl Bernstein) 기자와 늦은 밤 편집국에서 마주 앉았다. 그는 결정적인 제보자 역할을 한 일명 ‘딥스로트(후에 FBI 부국장인 마크 펠트(Mark Felt)로 밝혀졌다)’를 믿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 기자들이 그렇다고 하자, 편집인은 “난 내 기자들만 믿는다”고 말한다. 그러고선 기사 작성을 지시한다. 닉슨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워싱턴포스트 워터게이트 특종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한국 저널리즘은 누구에게 충성하나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던 10여 년 전의 필자는 틈나는 대로 기자와 언론사를 다룬 소설과 영화를 찾아봤다. 유난히 이 영화와 이 장면이 사무쳐서, 입사 이후에도 일에 회의감이 들 때마다 몇 번이고 반복 재생해 봤다. 50년 전 미국 기자들의 활약상을 지켜보면서 가슴속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고 그 힘으로 다시 취재했다(물론 그들처럼 세상을 뒤집는 특종을 하진 못했지만).
편집인과 기자들의 저 건조한 대화를 곱씹어본다. 표면적으로 편집국 책임자가 기자들에 대한 강력한 신뢰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동시에 그 맥락은 언론은 기자들이 충실하게 취재한 내용이 믿을 수 있다면 권력의 상층부가 됐든 그들의 지지자들이 됐든 눈치 보지 않고 보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 대화에서 다뤄지는 키워드는 믿음, 신뢰뿐이다.
박선이 교수가 꼬집은 한국언론의 정파성(partisanship)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현직 기자들이 기자 생활을 하기 전부터 문제로 지적됐다. 한국전쟁 기간 집권한 자유당 정권에서 등장한 여당지와 야당지의 분류법은 우리나라 언론의 정파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오늘날 그런 구분법은 널리 쓰이지 않지만 언론 소비자들에게 여전히 보수 매체-진보 매체의 구분은 유효해 보인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최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상황은) 주요 매체들이 스스로 정파성을 강하게 띠고 있다. 보수 쪽에 한 그룹, 진보 쪽에 한 그룹, 그리고 가운데 소수 매체가 위치한 형국”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파의 이익이 아닌 시민사회의 공익을 말할 수 있는 언론의 입지가 굉장히 취약하다”고 꼬집었다.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Kovach & Rosenstiel)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서 네 번째 원칙으로 ‘정파로부터 독립’을 제시하면서 “(이것의) 중심적 쟁점은 충성의 문제”라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부연했다. “그 일이 진실성의 원칙을 지키면서 진행되는가, 시민과 전체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을 바탕으로 하는가.”
그렇다면 정파성 문제에 대해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한국의 저널리즘은 누구에게 충성하고 있는가.
정파성의 넓은 해석: 상업적 정파성정파성 문제는 좁은 해석과 넓은 해석이 모두 가능하다고 했다. 좁게 보면, 각 매체가 품은 고유의 이념적·정치적 성향에 따라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단체의 이익과 입장에 편향된 보도 태도를 의미한다. 정파성과 관련한 여러 저작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분석이 있다. 우리 언론은 정파성을 띠면서도 ‘우리가 취재해보니 사실은 이랬다’면서 정파적 보도를 정당화한다.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2021년 《신문과방송》 4월호 <‘허술한 객관주의’보다 ‘진실 추구하는 의견’이 백배 낫다>에서 “정치 영역에서 지나친 사실 추구는 역설적으로 (우리 언론이) 정파성의 늪에 빠지는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정파성을 해석하는 범위를 넓혀보자. 그러면 대기업 등 일부 경제 권력에 대한 정파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른바 상업적 정파성이다. 이 층위의 정파성은 필자가 일하고 있는 경제 매체들이 주로 마주하곤 한다. 친기업적 정파성을 보인다는 지적은 경제신문들을 향해 늘 제기되는 비판이다. 현장의 기자들도 공공연히 “삼성의 비위를 지적하는 기사는 못 나간다”고 말한다. 주요 기업과 언론이 상부상조하는 관계 아니냐는 지적은 뼈아프다. 기업의 홍보담당자와 일부 출입기자들이 호형호제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사명감을 품고 기자직에 발을 내디딘 젊은 기자들은 현장에서 기자들과 출입처의 밀착을 목격하며 혼란을 느낀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 실종된 취재 현장에서 언론은 공익보단 기업과의 관계, 거기서 피어나는 상업적 이익을 더 따지게 된다.
올해 관훈저널 여름호에 실린 <시청자·독자 위원들이 본 경제 뉴스의 정파성> 칼럼을 쓴 이승윤 YTN 부장은 방송사 시청자위원회와 신문사 독자위원회 회의록 내용을 분석한 결과를 실었다. 뉴스 소비자들이 뉴스의 정파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그들은 한결같이 “정부, 기업에 대한 비판과 검증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조회수 지상주의, 새로운 정파성의 등장
디지털 변혁의 한가운데서 모든 매체가 길을 찾고 있는 지금의 미디어 환경에서, 각 언론사는 새로운 충성 대상을 좇고 있다. 페이지뷰(PV), 조회수 같은 정량적 성과다. 이른바 ‘조회수 정파성’의 등장이다. 대형 포털을 통해 뉴스가 대량으로 유통·소비되며 그 과정에서 언론이 약간의 과실(광고 수익 배분)을 얻는 구조에서 이러한 정파성이 짙어졌다고 생각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독자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아이템이나 주제 같은 것들이 기사 작성의 우선순위 맨 위에 자리 잡는다.
일부 매체는 편집국 안에 실시간 조회수를 보여주는 전광판을 설치했다. 마치 실시간 주가 시세판과 닮았다. 이런 상황에서 ‘읽히는 기사’가 곧 ‘좋은 기사’라는 위험한 인식이 암묵적으로 형성됐다는 위기감이 나온다. 9년 차 경제지 기자 A는 “공들여 취재한 기획 기사여도 결과적으로 온라인에서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으면 평가절하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더불어 기자들은 조회수 지상주의 분위기 속에서 ‘사실 확인의 규율’이 무시되고 있음을 우려한다. “제대로 알아봤어?”, “이거 믿을 수 있어?”라고 일갈하며 필터링하는 데스킹의 무게감은 점점 떨어진다. 온라인뉴스 부서에서 일하는 종합일간지 7년 차 기자 B는 “‘일단 온라인에 내보내자. 오타든, 비문이든, 사실관계든 고칠 게 생기면 나중에 고치면 된다’는 암묵적 가이드가 있다. 팀장이나 부장이 꼼꼼히 기사를 봐주기엔 그들이 신경 쓸 게 너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정량적 소비지표에 기자들이 충성하면서,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서 언급된 ‘진실성의 원칙’과 ‘시민과 전체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이 설 자리는 좁아진다.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킨 경쟁력 있는 탁월한 콘텐츠가 답
팩트체크, 심층 취재. 여러 논문과 칼럼 등에서 정파성이 촉발하는 저널리즘 품질 저하의 문제를 타개할 방법론으로 거론된다. ‘이게 믿을 수 있는 사실인가?’ 체계적인 사실 검증을 앞세우는 취재는 갖은 정파성의 유혹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할 것이다. 필자는 올 9월에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팩트체크 디플로마 연수에 참여하면서 그 가능성을 느꼈다.
하지만 장애물이 많다. 먼저 현재 소속 매체에서 팩트체크와 심층 보도를 담당하는 기자들이 공유하는 애로들이 있다. 팩트체크를 전담하는 부서를 운영하는 매체는 극히 일부다. 그마저도 기자 한 명과 작가, 인턴으로 구성된 소규모 조직들이다. 지상파 방송의 C 기자는 “기자 조직 내부에서부터 팩트체크팀의 고민과 어려움에 공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토로했다. 국내 최초의 팩트체크 전문 플랫폼인 SNU팩트체크센터에 재정 지원을 해오던 네이버는 최근 지원을 중단하기로 했다. 팩트체크 담당 기자들은 “부서가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팩트체크는 어디까지나 저널리즘 개념이지만, 많은 것들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진영논리 속에서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인 미래를 기대한다. 정치 과잉의 사회 환경,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미디어에서 난립하는 양극화된 콘텐츠의 홍수에서 합리적인 독자들은 언론다운 역할을 기대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포털 뉴스의 논리에서 벗어나 고품질 콘텐츠를 내세우며 자체 구독자를 찾아 나선 매체들의 시도는 응원할 필요가 있다.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키면서 경쟁력 있는 탁월한 콘텐츠로 독자 유치에 전력을 다한다면 시민과 공공의 이익을 향한 정파성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