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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가 교실에서 숨졌다. 사건이 알려지자 분노한 전국의 교사들이 연대해 투쟁에 나섰다.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공교육 현장은 시한폭탄처럼 위태로웠다. 서이초 비극의 실체를 알린 취재기를 통해 교육 환경의 문제점을 확인해본다. 편집자 주
수많은 고민, 그러나 보도해야만 했다
믿기 어려운 소식이었다. 갓 임용된 초등 교사가 교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실 확인을 위해 경찰에 연락했다. “보도하지 말아달라”는 답이 돌아왔다. 개인사로 인한 선택 같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고민이 시작됐다. 일반적으로 극단적 선택은 보도가 어렵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도 자살 보도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건이 발생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도 보게 될 테다. 당시 학교는 선생님의 죽음을 학생들에게 알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보도해야만 했다. 수많은 장소 가운데 교실이었다. 장소의 상징적 의미가 컸다. 그날 마감한 기사도 떠올랐다. <초등 6학년이 교실서 女교사 무차별 폭행>. 돌이켜보니 교권 침해 뉴스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공교육 현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한폭탄이었다. 서이초등학교(이하 서이초) 선생님의 비극은 교권 붕괴의 정점이었다. 경찰을 제외하니 사실 확인이 어려웠다. 갓 임용됐던 고인은 교원노조나 교원단체에 가입이 돼있지 않았다. 사안을 파악하고 있던 서울시교육청 관계자와 겨우 연락이 닿아 사실관계를 듣고 온라인으로 단독 보도했다.
보도 직후부터 밤까지 “기사를 내려달라”는 경찰의 연락이 이어졌다. 죽음의 원인이 학부모가 아닐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정확한 원인이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요구를 하는 건 이례적이었다.
잠을 못 이뤘다. 보도 직후부터 이메일과 댓글을 통한 제보가 쏟아졌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가해 학부모에 대한 다양한 의혹이 제기됐다. 첫차를 타고 새벽 6시께 서이초에 갔다.
응어리진 교사들의 분노가 터지다
멀리서부터 수십 개의 화환이 보였다. 전국의 교사들이 보내온 근조화환은 학교 전체를 한 바퀴 둘러싸고 나서도 계속해서 배달됐다. 정문에는 밤새 다녀간 추모객들이 남긴 흰 국화와 포스트잇이 빼곡했다. 검은 옷을 입은 교사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선생님들은 일면식 없던 교사의 죽음에 소리 내어 울었다. 어린 후배 교사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괴롭다고 했다.
서이초는 함구령을 내렸다. 학교 앞에서 만난 교사 다수는 학교에서 입단속을 하고 있어 사안에 대해 말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대신 학교 보안관 김모 씨가 입을 열었다. “앳된 선생님 얼굴이 아직 눈에 선해요. 항상 웃는 얼굴로 인사하는 어여쁜 선생님이었어요.”
비극은 어린 교사 한 명의 일이 아니었다. 전국초등교사노조 설문 결과, 초등 교사 가운데 99.2%가 교권 침해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 가장 많은 유형은 ‘학부모의 악성 민원’(49.0%)이었다.
각자의 마음속에 눌러두었던 응어리가 동시에 터졌다. 선생님들은 이틀 뒤 ‘나는 곧 당신’이라 연대하며 거리에 나왔다. 7주 연속 수만 명의 선생님들이 주말을 포기하고 여름 아스팔트 위에 나와 검은 집회를 이어갔다.
선생님들의 조직력은 집회가 거듭될수록 강해졌다. 매주 새롭게 구성된 집회 주최진은 언론 대응팀을 만들어 집회를 적극 알렸다. 대규모 집회를 안전하게 진행하기 위해 질서 유지인을 자발적으로 선발했다. 교육부와 교육청에 팩스 ‘총공’을 통해 현장 교사의 입장을 전달했다. 정책 TF를 구성하고 제도의 허점을 파헤쳤다.
아동학대법의 그늘
서이초 비극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났다. 사건 초기 가해 학부모로 지목됐던 정치인들은 이 사건과 무관했다. 특권계층 학부모의 갑질이 아니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교사를 교단에서 내쫓을 수 있었다. 제도의 문제였다.
아동학대 고소는 교사에게 큰 위협이었다. 인스타그램 민원스쿨 계정이 제보받은 결과 3일 만에 2,077건의 학부모 교권 침해 사례가 접수됐다. 교사들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학생에게 심리검사를 권해서’,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아서’, ‘(학부모) 전화를 안 받아서’ 아동학대로 고소당했다. 이로 인해 공황장애, 우울증, 자살 충동을 겪고 있다는 교사도 줄을 이었다.
2년 전 교육공무원법이 개정된 것도 한몫했다. 이 법에 따르면 아동학대 혐의 수사 대상이 되기만 해도 직위 해제가 가능하다. 직위 해제는 교직 생활을 송두리째 흔든다. 명예 실추 외에도 최대 70%에 이르는 봉급·수당의 감액, 호봉 승급·승진 제한, 연가·연금 산정에서 재직 기간 제외 등 추가 불이익이 발생한다. 이후 수사와 재판에서 경징계 결과가 나와도 불이익이 회복되지 않는다.
정상적인 생활지도가 어려워지면서 교육 현장은 점점 방어적으로 변했다. 선생님들은 안전이 우려돼 체육 활동을 줄이고, 교우 관계가 불안해 모둠 활동을 없앴다. 하루 종일 녹음기를 틀어두고, 아이들이 주는 편지를 모아뒀다. 학부모가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할 경우 아동학대죄 무고를 증명할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교육부 직원의 교권침해 사례 보도
무고한 아동학대 고소에 관해 취재하던 중 의외의 가해자도 찾았다. 한 교원단체를 통해 ‘교육부 사무관이 아동학대 관련 법의 허점을 이용해 자녀의 담임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고 소속 교육청이 즉각 직위 해제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당시에는 당사자가 심적 부담을 느껴 보도를 보류했다.
예의주시하던 중 새로운 제보가 왔다. 해당 사무관이 교체된 담임교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온 것이다. 교사가 받은 편지에는 “왕의 DNA를 가진 아이니 듣기 좋게 돌려서 말하라”, “안돼, 하지마 등 제지하는 말은 절대 하지 마라”, “또래와 갈등이 생겼을 때 철저히 편들어 달라”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초등교사노조를 통해 사실임을 확인하고 온라인으로 단독 보도했다.
도덕적 해이 문제도 심각했다. 더 나은 교육 환경 조성에 일조해야 하는 교육부 직원임에도 불구, 교사들에게 ‘슈퍼 갑’인 사회적 위치를 악용해 공직자 메일로 공문을 하달하듯 연락했다. 교사를 직위 해제하지 않으면 언론에 유포하겠다고 학교와 교육청 등을 압박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사무관은 즉각 사과했다. 교육부 기자단을 통해 선생님과 학교 관계자 등에게 마음의 상처를 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묵살하고 있던 교권보호위원회 결정도 이행하겠다고 했다.
교육부는 사안을 엄중히 받아들였다. 해당 사무관의 행위를 심각한 교권 침해로 판단하고 중앙징계위원회에 중징계 의결을 요구했다. 교육부 정책에 대한 신뢰성을 저하한 책임도 있다고 봤다.
교육부 공무원 행동강령도 손본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다. 행동강령에는 교육부 공무원이 자녀 등을 지도하는 교원 등에 ‘교육활동을 침해하는 행위’와 ‘직무와 관련이 없거나 직무의 범위를 벗어난 부당한 지시 요구를 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이 담긴다.
공교육 멈춤의 날, 교육부의 입장 바뀌어
집회는 서이초 교사 49재였던 지난 9월 4일을 향해 달렸다. 교사들은 이날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이름 짓고 연가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고인을 추모하는 동시에 국회와 교육 당국에 교권 보호 관련 법안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교육부는 엄중히 경고했다. 집단행동은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라고 규정했다. 학교장의 재량휴업일 지정도 불허했다. 교사들은 교육부의 경고에 더욱 분노했다. 교권 침해 해결 의지에 대한 의심의 목소리도 나왔다.
분노와 불안은 더 큰 집회로 이어졌다. 연가 투쟁 전 마지막 집회가 열렸던 지난 9월 2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교사 30만 명이 집결했다. 전국 교원의 절반을 훌쩍 넘는 숫자다.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제주도 등 섬 지역에서 1만 5,000여 명의 교사가 항공편 등으로 상경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전세 버스도 600여 대에 달했다.
집회의 열기는 ‘공교육 멈춤의 날’로 이어졌다. 상당수 교사가 연가와 병가를 활용해 동참했다. 부산에서는 초등 교사 가운데 1,600여 명, 인천에서는 2,000여 명이 연가·병가 등으로 자리를 비운 것으로 추산된다.
다수 학교가 학사일정을 조정했지만 학부모들은 이해했다. 서초구 한 초등학교에 들렀다. 이날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자녀를 마중 나온 학부모들은 “어린 교사를 보내려고 하는 날인데 당연히 일찍 끝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기꺼이 아이를 조금 더 데리고 있겠다”고 했다.
오후에는 서이초 강당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고인은 ‘서이초 교사’가 아닌 이름 석 자로 불렸다. 영정 사진 속 고인의 앳된 얼굴도 보였다. 추모사 낭독을 위해 앞에 선 동료 교사와 대학교 후배는 어렵게 입을 떼 버겁게 말을 이어갔다. 고인은 주변 사람들부터 챙기는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생전의 온기가 느껴지자 그가 포기하고 간 많은 것들이 보였다. 안타까움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교육부는 돌연 입장을 바꿨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그날 저녁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에 참여해 징계에 관한 모든 입장을 철회했다. 교권 지위 관련 정책 입법도 재차 약속했다.
교육의 질과 직결되는 교권 회복 반드시 이뤄져야
여름이 지나가고 새 학기가 시작됐다. 작은 기대감이 있었다. 교육 현장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리라는 기대였다.
그러나 교사들이 또 떠나갔다. 개학한 지 얼마 안 돼 대전과 충북 청주시에서 초등 교사가 연달아 목숨을 끊었다. 두 달 사이 서초구 서이초 교사를 비롯해 경기 용인·의정부시, 서울 양천구, 전북 군산시, 제주 등에서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가 언론에 보도된 것만 9건에 달했다.
베르테르 효과가 우려됐다. 타인의 극단적 선택을 모방하는 현상이다. 유명인이 아닌 비슷한 상황에 있는 인물에게 나를 투영해 더욱 비관하는 ‘수평적 베르테르 효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좌절감도 작용했다. 최선을 다했으나 달라진 바 없는 교육 현장에 많은 선생님이 절망했다. 체감되는 정책의 변화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체험학습 문제, 학부모 갑질, 나이스 오류, 돌봄으로 인한 업무 과중 등 여전히 나아진 것 없는 현실에 교사들은 더욱 좌절했다.
교사들의 요구는 단 하나다. ‘잘 가르칠 권리를 달라’다. 정상적인 교육 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임금 인상처럼 특정 집단만을 위한 요구도 아니다.
좌절 속에서도 선생님들은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매주 교원들과의 대화의 자리를 갖기로 했다. 현장의 목소리가 정부에 닿고 있다. 여전히 더디지만 분명한 변화는 시작됐다.
누군가의 비극이 있고 나서야 변화가 일어나는 현실이 안타깝다. 정부는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무너진 교권과 공교육 현장을 굳건히 세우기를 바란다. 국가 발전의 핵심은 미래 세대 양성이다. 교권 없는 교실에 양질의 교육은 없다.
세상을 등질 정도로 고통스러우셨을 선생님들이 그곳에서는 세상의 모든 수고를 내려놓고 편안하시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