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2019년 존엄사에 대해 기획 보도했던 서울신문은 올해 다시 존엄사의 방법 중 하나인 조력 사망에 대해 다뤘다. 취재 시점 기준 스위스에서는 이미 10명의 한국인이 조력 사망으로 세상을 떠났다.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존엄사 문제를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서울신문이 지난 7월 10일부터 7월 26일까지 6회에 걸쳐 보도한 <금기된 죽음, 안락사> 기획은 존엄사의 한 방법으로 논의되는 조력 사망 제도에 대해 이를 원하는 당사자와 가족, 지인, 의료계, 법조계, 정치계와 국내외 전문가, 그리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까지 인터뷰와 설문조사, 질적 분석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심층 취재한 기사다. 4년 전 필자가 서울신문 탐사보도부에서 직접 스위스에 가 현장 취재했던 <존엄한 죽음을 말하다>(2019년 3월 6~13일 6회 보도)1) 기획의 후속편이기도 하다.
이 기획을 다시 하게 된 것은 지난해 8월 받은 한 통의 메일 때문이었다. 메일을 보낸 사람은 췌장암 말기 환자였다. 그는 간까지 암이 전이되어 치료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스위스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디그니타스(Dignitas) 등 여러 스위스 존엄사 단체에도 가입해 있었다. 그가 필자에게 메일을 보낸 이유는 스위스 동행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가족이 반대하는 데다 가족이 스위스에 동행했을 때 자칫 자살방조죄로 곤란해지는 것을 걱정해 가족이 아닌 다른 동행자를 찾고 있었다. 스위스 현지 취재 경험이 있는 필자가 이번에도 취재라는 명분을 빌려 동행해 준다면 자살방조죄 우려에서도 좀 더 자유롭지 않을까 생각한 것 같다.
그때 그의 요청을 받아들여 동행취재를 했다면 지금쯤 국내에는 적잖은 충격과 파장이 일었을 것이다. 1년 넘게 국회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조력존엄사 법안 논의도 더 뜨거워졌을 것이며, 병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 가족 몰래 스위스 안락사를 검색하고 있을 사람들에게는 좀 더 위안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요청을 들어줄 수 없었다. 법적 부담도 만만찮았지만, 그보다 가족 모르게 떠나는 마지막 여행의 동행자가 될 순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스위스 조력 사망에 동행자가 필요한 이유는 사후 신원 확인을 위해서다. 그렇기에 아무리 취재 목적이라 해도 동행자 없이 진행하기 어려운 조력 사망이 기자의 동행으로 가능해진다면, 그건 단순히 동행취재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 다시 말해 기자가 그의 선택 과정에 개입하게 되는 것이고, 그러면 보도는 윤리적 정당성을 잃게 된다.
그와 동행할 순 없었지만, 다시 한 번 이 주제를 기사로 다뤄야 할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그 사이 법안도 발의되고 여론조사에서 조력 사망에 대한 찬성률이 80% 넘게 나올 정도로 국민 관심도 높아지고 있었지만, 당사자들은 여전히 이 문제를 터놓지 못한 채 홀로 고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안락사라는 주제는 이미 우리 사회 수면 위에 떠올랐는데, 언론은 여전히 이 문제를 에둘러 이야기하고 있었다. 유독 논쟁적인 이슈엔 나서지 않으려는 한국 언론의 태도가 아쉬웠다.
안락사 보도는 그동안 한국인의 이야기로 다뤄진 적이 거의 없었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취재 윤리 기준을 하나씩 세워나갔다. 매 순간 토론이 벌어졌고, 그때마다 예리한 칼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시간이 오래 걸렸고, 특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일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세운 방향은 안락사를 국내 존엄사법(연명의료결정법) 수준에서 두루뭉술하게 다루지 말고, 안락사 문제만을 정면으로 다뤄보자는 것이었다. 이것이 4년 전 기획과 차별화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했다.
사실 이미 심층 기획으로 다뤘던 주제를 또 취재한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잘해도 ‘평타’일 가능성이 컸다. 대신 우리가 확실히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조력 사망 및 안락사 이슈는 국내에 정보가 많지 않고, 취재원이나 인터뷰이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취재 경험이 있기에 관련 자료나 접근 방법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존엄사 단체 회원들이나 조력 사망을 원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수월할 거란 장담은 할 수 없었다.
우선, 해외 존엄사 단체부터 접촉해 한국인 가입자를 찾았다. 그 사이 스위스 존엄사 단체에 가입한 한국인의 수는 훨씬 늘어나 있었다. 디그니타스·라이프서클(Life Circle)·엑시트인터내셔널(Exit International) 등 스위스 단체 3곳에 가입한 한국인은 200명이 넘었고, 페가소스(Pegasos Swiss Association)라는 단체가 새로 생겼다. 페가소스는 회원 수를 공개하진 않았지만, 급진적으로 수를 늘려가고 있었다.
조력 사망 한국인,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
디그니타스와 라이프서클을 통해 한국인 회원 150여 명에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기사가 나가기 전까지 스무 명이 넘는 회원들과 인터뷰했다. 이들과 전부 인터뷰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인터뷰이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일정을 한참 미뤄야 할 때도 있었고, 조력 사망을 진지하게 준비하고 있는 경우 언론에 자신의 이야기가 나가면 자칫 계획이 무산될지도 모른다는 매우 현실적인 이유로 인터뷰를 꺼리기도 했다. 죽음은 삶의 마지막이기에, 그들이 안락사를 원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 그들 삶의 이야기를 듣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7월 10일 자 1회 기사에는 스위스에서 조력 사망을 택한 10번째 한국인 남태순(가명·84) 씨의 이야기가 내러티브 형식으로 실렸다. 그는 지난해 아내가 세상을 먼저 떠났고, 본인은 말기 신부전으로 하루 8시간씩 복막 투석을 하고 있었다. 그가 처음에 필자에게 연락한 이유는 조력 사망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조력 사망에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도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존엄사’라는 말에 큰 의미를 두진 않았지만, 우리나라에도 안락사 도입 논의는 필요하다고 했다. 국내에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혼자 해외 사이트를 검색하고 영어로 서류를 작성해야 했던 그는 “내가 느낀 답답함을 다른 사람이 느끼지 않도록 풀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실 그와는 동행취재가 이뤄지길 바랐다. 하지만 그는 혼자 가길 원했고, 가족 인터뷰도 하지 않기를 요청했다. 취재팀 안에서는 그래도 가족 인터뷰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취재원과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기로 했다. 스스로 존엄한 죽음을 선택하는 당사자의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취재 역시 당사자를 최대한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의 사진을 남기지 못한 것은 가장 아쉬운 대목이지만, 대신 독자들에게는 그가 공유해준 디그니타스와 주고받은 수십 장의 자료를 사진으로 찍어 전달했다.
보도 시점 스위스에서 조력 사망한 한국인은 총 10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우리는 당사자의 목소리뿐 아니라 가족 등 남은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죽음은 단순히 자신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큰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총 세 명의 가족과 연락이 닿았으나 두 사람은 인터뷰를 거절했다. 존엄사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아직 충격이 남아 있는 듯했다. 인터뷰에 응한 한 사람은 2021년 8월 폐암 말기로 스위스에서 조력 사망한 호주 국적의 한국인 허모(당시 63) 씨의 아들 한울(가명·27) 씨였다. 그는 밝고 긍정적인 청년이었다. 가톨릭 신자인 그는 안락사를 찬성하진 않지만, 아버지의 뜻을 이해했고 그 선택을 존중한다고 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5회 <가족 그리고 죽음을 돕는 사람들>(7월 25일 자)에 실렸다.
조력 사망 당사자와 가족, 이를 원하는 사람과 돕는 사람들, 그리고 반대하는 사람들까지 국내외 50여 명을 인터뷰했다.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 1,000명, 의사 215명, 국회의원 100명 등 각계각층의 의견도 담았다. 기획부터 보도까지 8개월이 걸렸다. 취재팀의 노력뿐 아니라 의미 있는 보도를 위해 회사에서 충분한 시간을 주고 기다려줬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인터뷰 중에는 이른바 ‘야마에 안 맞는’ 인터뷰도 있었지만, 그 또한 안락사 논의의 한 단면이라 생각하고 기록했다. 대표적으로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랬다. 디그니타스 회원 중 상당수는 정신적 문제로 조력 사망을 희망했다. 사실 캐나다의 경우 정신질환만으로 조력 사망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 통과되기도 했지만, 논의를 막 시작하는 단계인 우리나라에서 정신질환 문제까지 다루긴 쉽지 않았다. 자칫 논의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목소리가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기에, 별도의 인터랙티브 페이지2)에 인터뷰한 18명의 사연을 모두 아카이빙하기로 했다.
반대 목소리도 수록해 균형 맞춰
기억에 남는 인터뷰 중 하나는 미국 국립보건연구원의 선임연구원 스콧 김(Scott Kim) 박사와의 인터뷰다. 사실 처음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땐 그가 조력 사망에 대해 강한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 그에게 연락한 건 그가 조력 사망·안락사 문제를 오랫동안 실증적으로 연구해온 정신 의학 및 생명윤리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안락사 논의에서 자칫 한쪽으로 기울 수 있는 균형추를 바로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 박사의 이야기에는 그동안 국내 반대론자에게선 한 번도 들을 수 없었던, 핵심을 찌르는 명쾌한 논리가 있었다. 그는 안락사 도입 여부를 논의할 때 이상적이고 개별적인 사례를 제시하며 안락사를 허용하자는 식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며, 정책을 만들 때는 개인의 찬성 여부를 떠나 사회 전체의 어떤 가치가 영향을 받고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그리고 누가 이익을 보고 피해를 보게 될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윤리적으로 괜찮다고 해서 정책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스위스 조력 사망에 동행한 케빈(가명) 씨와 신아연 작가 두 사람의 대담으로 장식한 마지막 회 기사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신문 연재 기사에서 가장 흔하게 마무리 짓는 방식이 전문가 좌담회다. 관련 전문가 서너 명을 모셔놓고 이런저런 제언을 듣는 것이다. 사실 독자 입장에선 새롭지도, 그다지 흥미롭지도 않지만, 형식적으로나마 대안을 제시하면서 끝내는 게 가장 무난한 결말이기에 많은 기획 기사들이 대개 이렇게 마무리된다. 우리는 형식적인 좌담회에서 벗어나 보다 실질적인 토론이 이뤄졌으면 했다. 두 사람은 조력 사망 전 과정을 지켜보면서 누구보다 이 문제에 깊이 고민해왔고 관련 지식도 갖추고 있었다. 4년 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로 국내에 조력 사망에 관한 화두를 처음 던진 케빈 씨는 친구의 조력 사망 후 안락사에 찬성하는 시민활동가가 되었고, 신 작가는 지인의 요청으로 조력 사망에 동행한 이후 반대 의견을 갖고 관련 경험을 책으로 썼다. 비슷한 경험을 했으나 이후 상반된 의견을 갖게 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이 논의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최근 존엄사 문제와 관련해 변호사 단체와 시민단체가 결성돼 조력 사망 도입을 원하는 당사자와 함께 헌법소원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당사자가 헌법소원에 나선 건 처음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캐나다 등 조력 사망을 합법화한 해외 국가의 사례를 보면, 당사자들이 조력 사망을 금지한 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법제화에 들어선 사례가 많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이 논의가 어떻게 펼쳐질지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 그 과정에서 이 기사가 의미 있는 자료로 쓰이면 좋겠다.
1) 신융아, <우리 언론의 금기 깬 안락사 보도>, 신문과방송 2019년 6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