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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제작기] 국제신문 <슬기로운 물만골 탐구생활> 취재기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3-09-27

물만골은 부산 연제구의 산동네다. 경치 좋은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진 황령산 고갯길에 자리하고 있지만, 이 마을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는 별로 없다. 국제신문 취재진은 물만골에 두 달간 머물며 주민들과 일상을 함께했다. 그 두 달 동안의 이야기를 따라가본다. 편집자 주

 

부산 연제구 연산동은 부산광역시청이 있는 부산의 행정 1번지이자 부산에서 가장 교통량이 많은 연산교차로가 있어 시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하지만 부산시청에서 약 2㎞ 떨어진 산기슭에는 2023년 부산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독립적인 공간이 있다. 물이 많은 골짜기라고 해서 이름 붙은 물만골 마을이다. 마을은 연제구 연산동과 수영구 남천동을 잇는 황령산 고갯길의 연산동 쪽 초입에 있다. 황령산로로 이름 붙은 고갯길은 가파른 경사로에 좁은 도로 폭으로 운전 난이도가 높지만 황령산 전망대를 비롯해 이른 봄 해운대 달맞이길에 버금가는 화려한 벚꽃길, 광안대교와 마린시티, 부산항대교와 원도심을 모두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시민에게 친숙하다.

 

349세대, 529명의 주민(지난 5월 말 주민등록 기준)이 골짜기에 운집해 사는 이곳은 부산의 대표적인 빈민가다. 대중교통이라고는 마을버스 1개 노선뿐이다. 급경사지를 따라 형성된 물만골 마을은 부산 곳곳에 있는 여느 무허가 주거단지와 같이 주거 환경이 열악하다.

 

 


 

 

하지만 공동체를 중심으로 주민 간 결속력이 끈끈하기로 유명하다. 1970년 이후 부산 곳곳에서 몰려든 주민들은 서로의 주거 공간을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하고자 갈등과 반목을 거듭했지만, 자정 노력 끝에 2000년 이후 부산을 대표하는 마을 공동체가 형성됐다. 지금도 주민의 선출을 거쳐 ‘물만골 공동체’가 운영되고 있다. 공동체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4년 만에 주민운동회를 지난 5월 20일 성황리에 개최했다.

 

물만골은 청년회와 장년회까지 조직됐을 정도로 연령층이 다양했지만 지금은 노인회와 부녀회만 있다. 주민등록상 인구 기준, 60대 이상이 317명(70대 이상만 171명)으로 60%에 달한다. 실제로 마을에서는 50대 이하 주민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실제 거주 인구도 400명 남짓으로 추산되는 상황으로, 마을 인구의 절대다수가 만 65세 이상 노년층이다.

 

물만골은 영화 <1번가의 기적>(2007년 개봉, 임창정·하지원 주연)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재개발을 앞둔 무허가 주거 단지의 철거 과정을 그린 이 영화가 상영된 지 16년이 지난 지금 물만골 입구에는 초고층 아파트 단지가 병풍처럼 들어섰고, 대못처럼 서있는 고층 아파트 단지에 가로막혀 나머지 마을 정상에서 금정산까지 바라볼 수 있었던 별천지의 풍광은 사라졌다. 아파트의 높이만큼이나 물만골 주민의 상대적 박탈감은 커졌다.


취재 협조 얻지 못한 1차 회동

 

국제신문은 2023년 부산 도심의 독립 공간 물만골에서 약 2달 동안 살면서 마을 주민의 생활상을 탐구하는 ‘물만골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취재진도 출퇴근 시간 황령산로를 줄곧 이용했던 터라 생활 탐구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마을이 낯설지 않았다. 

 

취재진은 지난 8월 3일 본격적으로 마을 정착을 시도했다. 마을의 분위기를 익히고자 부산시청 맞은편에서 연제1번 마을버스에 올랐다. 예상과는 달리 서서 가야 할 정도로 마을버스 승객이 많았다. 하지만 중간중간 아파트 단지에서 하차하는 승객이 많아지더니 ‘연산더샵’ 정류장을 끝으로 마을버스에는 취재진 외에 70대 어르신 한 분만 남아 있었다.

 

물만골 마을에는 총 3개의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다. 취재진은 마을에서 거처로 삼을 공간을 직접 구해보겠다는 일념 아래 마을 초입에 있는 ‘물만골마을 입구’에 하차했다. 자동차로 수십 번을 지났던 곳이 분명했지만 걸어서 마주한 마을 입구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흑백영화 속 장면을 보는 듯한 건물의 외벽 색상과 지붕은 오래된 건물이 가진 낡음에 온갖 부정적 이미지가 덧칠된 모습이었다. 개 짖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들개가 출몰할 것만 같은 불길함이 엄습했다. 서둘러 마을회관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문은 잠긴 상태였다. 그늘진 아랫마을과는 달리 마을회관 인근은 햇볕이 잘 들어 밝은 이미지였고, 현대식으로 개량된 집들도 많았다. 아랫마을보다는 이곳이 낫겠다는 생각에 골목길을 돌아다니면서 만난 70대 할머니 두 분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귀가 어두우신지, 경계하시는 건지 알 수는 없었다. 어느 집 안에 있던 개는 더욱 격렬하게 동네가 떠나갈 듯이 짖어댔다.

 

이렇게 마을에서 경치 구경만 하고 하산하기를 사흘째. 주석수 연제구청장에게 도움을 요청해 구세주를 만났다. 바로 마을 통장이었다. 그렇게 물만골을 찾은 지 일주일이 돼서야 주민과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두 달 생활할 공간을 찾고 있는데, 방법을 알려달라”는 취재진의 이야기에 호응하는 주민은 아무도 없었다. 통장마저 “마을에 그런 공간은 없을 테고,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난색을 표하자 마음이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공인중개사들에게 사정을 설명했지만 중개 자체가 힘들다는 답변만 받았다. ‘생활 공간 구하기’라는 궁극적인 목적 달성이 어려워지면서 프로젝트 취지가 통째로 흔들리는 위기에 놓였다.

 

그러던 사이 마을 공동체에 취재 협조를 정식으로 구하는 자리가 어렵사리 마련됐다. 모두 직업을 가진 터라 공동체 운영위원장 등 마을 대표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는데, 통장의 주선으로 만남이 성사됐다. 취재 시작일로부터 주민에게 ‘마을 지도자’로 불리는 이들을 만나기까지 18일이 걸렸다.

 

하지만 물만골 대표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우리 마을에 온 이유가 뭐냐”는 냉랭한 인사와 함께 “원하는 게 뭔가. 우리를 또 이용하는 것이냐”는 날선 반응이 이어졌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혈혈단신으로 마주한 이런 상황은 19년 차 기자에게도 매우 힘겨웠다. ‘거처를 구해서 마을에 상주하면서 취재하겠다’면서 프로젝트의 취지를 구구절절 설명했지만 마을 대표들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둘러 공인중개사들에게 사정을 설명했지만 중개 자체가 힘들다는 답변만 받았다. ‘생활 공간 구하기’라는 궁극적인 목적 달성이 어려워지면서 프로젝트 취지가 통째로 흔들리는 위기에 놓였다.

 

그러던 사이 마을 공동체에 취재 협조를 정식으로 구하는 자리가 어렵사리 마련됐다. 모두 직업을 가진 터라 공동체 운영위원장 등 마을 대표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는데, 통장의 주선으로 만남이 성사됐다. 취재 시작일로부터 주민에게 ‘마을 지도자’로 불리는 이들을 만나기까지 18일이 걸렸다.

 

하지만 물만골 대표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우리 마을에 온 이유가 뭐냐”는 냉랭한 인사와 함께 “원하는 게 뭔가. 우리를 또 이용하는 것이냐”는 날선 반응이 이어졌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혈혈단신으로 마주한 이런 상황은 19년 차 기자에게도 매우 힘겨웠다. ‘거처를 구해서 마을에 상주하면서 취재하겠다’면서 프로젝트의 취지를 구구절절 설명했지만 마을 대표들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없었다. “열심히 하세요”라는 고마운 답변도 있었지만 취재에 협조하겠다는 반응은 끝내 얻지 못한 채 결국 1차 회동은 무위로 돌아갔다.


물만골의 현재에 취재력을 집중하다

 

하산 이후에도 마을 대표들의 매서운 눈초리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고 주제와 장소 등 취재 계획을 전면 수정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통장을 졸라 일주일 만에 2차 회동을 가졌다. “번거롭게 또 만남을 요청드려 송구하다”는 기자의 인사에 마을 대표들도 명함을 전하며 각자 자신을 소개했다. 한층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이번 취재 의도를 설명했다.

 

“도심 한복판에 있지만 부산과 어울리지 않는 특이한 공간인 물만골에서 국제신문이 주민의 생활을 소상히 전달하는 생활 취재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빈민가 주민을 동정하고 그들의 생활상을 그저 흥밋거리인 양 기사에 담으려고 이렇게 마을을 찾은 것은 아닙니다. 저희는 주민의 생활상을 있는 그대로 전할 예정입니다. 물만골에 마을이 생긴 이래 이곳의 주민은 누구고, 왜 그들은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지, 그리고 물만골을 찾아온 사람들은 누구인지부터 ‘부산 시민’인 물만골 주민의 바람까지 물만골의 모든 것을 국제신문이 시민과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단순 방문 취재가 아닌 생활 취재를 하려 합니다. 마을에서도 시민과 정치권, 행정기관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가감 없이 국제신문을 이용하십시오. 취재에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첫 만남 때 싸늘하게 노려보기만 했던 노인회장과 공동체 운영위원장도 다소 누그러진 표정으로 기자를 응시했다. 긴장한 나머지 두서없이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던 중 “그러면 방을 어떻게 구할 텐가”라고 노인회장이 질문을 던졌다. 이때다 싶어 “한두 달 생활할 공간인데 어르신들께서 꼭 좀 찾아주십시오. 엄두가 안 납니다. 마을에 개도 많아 혼자 돌아다니기도 무서워서 솔직히 차에서 내리는 것도 겁납니다”라고 하소연했고, 마을 대표들은 잠시 상의하더니 “빈 곳이 있는데 거기가 적합할지 모르겠다. 일단 정리해보고 방 상태를 통보해주겠다”고 화답했다.

 

그리고 이틀 뒤 마을에서 방을 한 번 보라는 연락이 왔고, 반가운 나머지 “무조건 계약하겠습니다. 당장 가겠습니다”라고 답한 뒤 계약서부터 만들어 마을로 달려갔다. 노인회장이 마련해준 공간은 예상과 달리 넉넉하고 말끔한 상태의 방 2칸이었다. 이것저것 잴 것도 없이 곧장 약간의 사용료를 지불하고 50일 사용 계약서를 작성하려 했는데, 노인회장은 “일단 열쇠부터 받으라”며 기자의 주머니에 열쇠를 집어넣은 뒤 “돈은 필요 없다. 요란스럽지만 않으면 되니 여기서 편하게 업무를 보면 된다”고 사용료 받는 것을 거부했다. 그럴 수는 없는 노릇. 취재진은 노인회장에게 공간 사용의 대가를 정식으로 지급하기로 한 취재 계획을 언급하면서 ‘일방적’으로 사용료를 적었고 계약을 강제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노인회장이 마지못해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면서 국제신문은 비로소 마을에 정착하게 됐다. 취재 차 마을에 처음 발을 들인 이후 26일 만의 일이었다.

 

국제신문은 이후 지금은 여기서 누가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고 있고, 왜 이들은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물만골의 현재에 취재력을 집중했다. 마을 대표들과 주민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취재를 시작했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주민의 경제활동과 주거 환경이었다. 

 

막노동을 하거나 일용직에 종사하는 주민이 많았지만 여성 고령자가 많은 마을 특성상 작업장 하나 없이 집안에서 포장 작업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주민도 쉽게 볼 수 있었다. 포장의 달인이라는 별칭으로 유쾌하게 접근했지만, 한 70대 할머니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허리와 무릎 한 번 펴지 못한 채 삼사십 대 남자 기자들도 힘든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했다. 

 

예상보다 더 열악했던 주거 환경은 주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이었다. 석면이 검출되는 슬레이트를 철거하지 못하고 그 위에 패널을 입혀덧대 사용하는 세대가 상당수였다. 취재하는 내내, 그리고 취재 후기를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물만골의 주거 환경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만골의 새로운 내일을 엿볼 수도 있었다. 전국 각지의 미술학도를 불러 모으는 숲민화갤러리와 서면 과일주스의 원조에서 이제는 호박 식혜 장인으로 거듭난 주인장이 만든 물만골 휴게소는 물만골이 각각 문화예술생태촌과 휴식·안식 공간으로 변모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와 함께 마을 주민인 노인 요양보호사가 마을 주민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례를 찾아내 고령화가 심각한 마을 내에서 돌봄과 노인 일자리를 한데 해결할 수 있는 재가 노인요양보호 서비스의 모델을 발굴하기도 했다.


사회 저변의 혐오와 당국의 무관심

 

하지만 취재진은 이번 물만골 생활 취재를 통해 가난과 불편에 익숙한 주민의 체념과 이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우리 사회 저변의 혐오, ‘무허가 건축물에 사는 주민’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당국의 무관심을 직접 경험했다. 특히 물만골 주민을 위한 교통안전 및 주거 환경 대책 마련을 주문하는 기사가 나가면 주민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거칠고 공격적인 반응이 잇따랐다. “마음대로 무허가 건축물 짓고 지금껏 살아놓고 이제 와서 불편 타령이냐”는 말은 매우 점잖은 편이었다. “열심히 살면 될 것을 왜 부산시와 연제구가 세금을 들여 지원해야 하냐”, “희망도 없는 곳에 뭣 하러 세금을 낭비하냐”며 주민을 비난하고 혐오하는 반응도 상당히 많았다.

 

게다가 관할 지자체인 연제구는 국제신문이 물만골 환경 개선을 위해 제안한 몇 가지 사안에 대해 건건이 “무허가 건축물이라서 안 된다”는 취지의 답변으로만 일관했다. 구의 적극 행정을 기대한 바는 아니지만 고민의 흔적조차 없는 영혼 없는 답변을 받아보니 물만골 주민의 상대적 박탈감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 수 있었다.

 

 


 

 

가난과 실패는 반드시 개인이 무능력하고 게으르다고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자급자족의 농경사회가 아닌 이상 개인의 어려움과 힘듦에는 개인 사정과 함께 사회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공정을 내세운 능력주의의 잣대로 약자 보호를 위한 국가와 사회의 안전망 구축을 대단히 거추장스럽고, 형평에 어긋나는 불공정이라고 여긴다.

 

국제신문 취재진은 이번 물만골 생활 취재를 통해 국가와 사회는 사적 영역에서의 경쟁 구도에 끼어들 여력이 없는 사회적 약자의 인간 존엄성과 생명, 안전을 보호하고 이들을 배려하면서 공동선을 이루는 제도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지의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국가와 사회의 이러한 역할은 논란의 여지 없이 우리 사회가 합의한 최소한의 의무다.

 

“슬레이트에서 석면이 나와서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건 우리도 잘 안다.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우리 같은 사람들은 철거하고 개량하는 비용도 생각해야 할 것 아니냐”는 물만골 어르신의 하소연이 귓가를 맴돈다. 가난을 동정하거나 원주민의 생활상을 그저 흥밋거리로 다루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시작한 물만골 생활 취재를 돌아보면서 물만골 주민, 나아가 부산 지역의 모든 사회적 약자를 위해 국가와 사회가 튼튼한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일조하도록 앞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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