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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점검 : 강력 범죄에 대한 언론의 시선] 피의자 신상공개, 필요한가 - 신중
집중점검 | 등록일 : 2023-09-27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범죄 예방 차원이라는 점에서 신상 공개를 찬성하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경찰이나 언론 매체에 의한 신상 공개로 문제가 발생한다면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신상 공개 확대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의 이유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피의자 신상 공개는 말 그대로 유죄 확정 전 진범을 전제로 그 신상을 공개하는 특별한 조치다. 이는 헌법 제27조 제4항에 명시된 무죄추정의 원칙과 충돌한다는 점에서 매우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2010년 도입된 피의자 신상 공개는 특정강력범죄와 성폭력 범죄에 한정해 허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요건이 매우 엄격하다. ①특정강력범죄(살인, 인신매매, 강도, 강간 등) 중에서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사건 또는 성폭력 범죄에 해당하고, ②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어야 하고, ③국민의 알 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 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해야 하며, ④피의자가 「청소년보호법」 제2조 제1호의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엄격한 요건을 요구하는 것은 신상 공개가 무죄추정의 원칙의 예외로 인정될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고, 피의자가 범인이 아닐 가능성이 거의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지난 13년 동안 신상 공개된 피의자 중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그러나 그동안 언론 보도에 의해 엉뚱한 피해를 본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 2012년 9월 1일 조선일보가 성폭행 사건 피의자 고종석에 대해 보도하면서 엉뚱한 사람의 사진을 실은 경우가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언론 보도의 특성상 그 피해를 완전히 회복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터넷을 통해 확산된 보도 내용을 모두 정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피의자 신상 공개의 요건을 완화하고 대상을 확대할 경우 그중에서 무죄판결을 받는 사례가 나올 가능성이 커질 것이며, 실제로 그런 사례가 발생한다면 신상 공개로 인한 인권침해 문제는 매우 심각한 쟁점으로 대두될 것이다.

 

최근 교사들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해 가해 학부모로 지목되어 신상 털기와 별점 테러 등을 당한 사람 중에는 본인이 가해 학부모가 아니라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모욕죄 등으로 법정투쟁을 시작한 사람도 있다. 만일 경찰 또는 언론 매체의 신상 공개에 의해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면 누가 어떻게 책임질 수 있는가?

 

흔히 열 명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범죄자를 놓치는 것은 수사기관의 무능함이고 그를 검거하기 위한 기회는 다시 가질 수 있지만, 억울한 사람을 만드는 것은 곧 정의를 깨뜨리는 것이고 국가 전체에 대한 회복할 수 없는 불신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헌법상 명시된 이유도 같은 맥락이고,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라는 원칙에 따라 법관이 아무리 유죄의 심증을 갖고 있어도 물증 없이는 유죄로 판단하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국민이 각종 강력 범죄 피의자에게 공분하고 이들을 비난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정의감에 비추어 볼 때 당연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감만을 근거로 신상 공개의 확대를 추진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위험한 일이다. 특정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정의감은 반대의 사건(예컨대 부적절한 신상 공개로 인해 인권이 침해된 사건)이 발생하면 순식간에 사라지거나 반대 입장으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 여론이 헌법상 원칙보다 우위는 아니다

 

민주국가에서 국민의 여론이 강력한 힘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정치과정에서는 여론의 힘이 매우 크게 작용한다. 그러나 사법절차에 여론이 작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예로부터 여론 재판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많았던 것은 ‘법치와 인권 보장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만큼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재판만을 생각해야 하며, 특히 소수자의 인권 보장을 위해서는 다수 국민 여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널리 인정됐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볼 때, 국민의 여론 때문에 신상 공개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변화무쌍한 국민의 여론이 무죄추정이라는 헌법상의 원칙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선거에 의해 당선된 대통령은 국민의 국정 지지율 여론조사의 변화무쌍한 결과와 상관없이 임기 동안 그 직을 수행하는 것처럼, 피의자 신상 공개도 여론의 변화보다는 제도 자체의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현행법상 피의자 신상 공개의 본질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서 매우 예외적으로만 인정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예외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법률상 정해진 엄격한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3년 동안(머그샷 인정 등 일부 개선돼야 할 점들이 남아 있지만) 피의자 신상 공개가 큰 무리 없이 진행됐던 것도 이러한 본질에 충실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엄격한 신상 공개로 인해 국민의 알 권리뿐만 아니라 언론 매체의 보도 자유도 위축된다는 지적도 있다. 과거 신상 공개되지 않은 피의자에 대해 일부 언론 매체가 보도를 강행함으로써 무죄추정원칙 위반이 문제된 적도 있었고, 미국 등에 비해 우리나라의 신상 공개가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서구 선진국 중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다만, 미국처럼 오보의 책임을 언론사에 떠넘기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즉 미국의 경우에는 보도에 대한 사전적 통제가 완화됐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통해 매우 엄격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만일 언론사에서 진범으로 확신하고 실명과 사진 등을 보도했는데 진범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면, 언론사의 기둥뿌리가 뽑힐 수도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제도의 차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신상 공개와 미국의 신상 공개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신상 공개 확대하면 주변 인물 피해도 커져

 

이와 더불어 주목해야 할 점은 신상 공개가 피의자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지, 회사 동료 등에게까지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점이다. 신상 공개를 확대하는 것은 주변 인물의 피해도 키우는 것이고, 그로 인해 현대판 연좌제로 지칭되고 있다. 아무리 피의자가 진범이라 하더라도 그 가족이나 회사에 감내하기 어려운 불이익이 생기게 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더욱이 최근 인터넷을 통한 신상 털기 등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사적 보복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사적 보복이 엄격하게 금지되는 것은 자칫 엉뚱한 사람에게 보복하거나 과잉 보복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은 감정적인 보복으로 인해 보복이 보복을 낳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에 의한 신상 공개와 사적 보복을 동일선상에 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신상 공개가 과도하게 확대되면 유사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배제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사적인 신상 털기 등을 정당한 것으로 오인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와 더불어 강조될 점은, 범죄와 처벌은 항상 비례에 맞아야 한다는 점이다. 지은 죄가 얼마나 중대한지에 따라서 형량이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만일 중대한 범죄에 대해 가벼운 형벌이, 가벼운 범죄에 대해 무거운 형벌이 가해진다면 이는 결코 정의롭다고 평가될 수 없다. 그런데 범죄에 대한 형벌 이외에 신상 공개를 추가적인 형벌처럼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신상 공개의 효과를 강조하면서 신상 공개 확대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는 감옥에 가는 것 이상으로 신상 공개로 공개적인 망신을 당하는 것이 고통스럽고, 이런 일이 많아지면 범죄 예방 효과도 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 신상 공개를 확대하는 것은 비례성을 무시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범죄 예방 효과를 위해 교통법규 위반자를 중형에 처할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므로 피의자 신상 공개는 앞으로도 계속 엄격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매우 제한적으로만 허용되는 것이 옳다. 이를 위해 현행법상의 신상 공개 요건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진범이라는 것이 증거에 의해 확인되어야 한다. 신상 공개된 피의자가 무죄판결을 받는 일은 발생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둘째, 재범이나 모방 범죄 등으로 인한 선량한 시민의 피해를 막는 데 필요한 경우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대한 예외를 인정할 수 있다. 

셋째,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신상 공개는 공인(公人)이나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공적 사건에 한정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대상 범죄에 대해 신상 공개를 하자는 것과 다르지 않게 된다.

 

이와 관련해 공적 사건 여부 판단은 시도경찰청마다 설치된 신상공개심의위원회에서 하는데, 그 기준의 통일성이 계속 문제 되고 있으므로 이를 전국적으로 통합하는 것도 고려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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