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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점검 : 강력 범죄에 대한 언론의 시선] 사건기자가 본 강력 범죄 보도의 원칙과 현실
집중점검 | 등록일 : 2023-09-27

사람들은 대부분 언론 보도를 통해 범죄를 접한다. 전달자의 태도에 따라 사건을 보는 시각 또한 달라지기 때문에 범죄 보도는 그만큼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현장 기자의 목소리를 통해 범죄 보도의 원칙과 현실, 개선 방안을 가늠해본다. 편집자 주

 

“양천구 신월동 살해·방화 피해자 유족 측의 입장문입니다.”

 

지난 8월 9일 오후 5시 15분쯤, 사건팀원 9명이 모인 휴대전화 메신저 단체방에 이런 보고가 올라왔다. 입장문에는 신월동 살해·방화는 층간 누수 갈등에서 비롯된 사건이 아니라는 유족의 반박이 담겨 있었다. “층간 누수로 인한 갈등이 범행 동기라는 취지로 보도가 되었으나, 실제로 피해자와 피고인이 층간 누수로 직접적인 갈등을 겪었던 사실은 없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사건을 보도한 대부분의 매체에 배포된 입장문이었다.


대다수 언론은 왜 입장문 보도하지 않았나

 

이 사건은 30대 남성 정모 씨가 지난 6월 신월동에 있는 3층 다세대주택에서 아래층 거주자인 70대 여성을 살해한 후 불을 지른 강력 범죄였다. 대다수 언론은 이를 ‘층간 누수 갈등’에서 비롯된 사건이라고 보도해왔다. 왜 그랬을까? 정 씨가 경찰 조사에서 “층간 누수 문제로 피해자와 다투었다”고 진술했고 이 내용이 언론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반면 피해자는 이미 숨을 거둔 터라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층간 누수 갈등에서 비롯된 살인 사건’은 사실상 가해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었다. 이럴 경우 피해자도 갈등의 당사자로서 사건 발생에 어느 정도 원인을 제공했다는 인식을 독자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 유족 측이 뒤늦게나마 ‘반박 입장문’을 낸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과 독자의 관심은 이미 식은 상태였다. 유족 측은 사건 발생 50여 일이 지난 후 입장문을 냈는데, 신림역 사건을 기점으로 흉기 난동 사건이 전국으로 확산해 살해·방화 사건은 묻히고 있었다. 배포 직후 해당 입장문을 보도한 매체를 찾기 어려웠던 배경이다.

 

안타깝게도 강력 사건 피해자는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한다. 신월동 살해·방화 사건처럼 강력 사건의 범행 동기가 가해자의 진술에 근거해 결론 나기도 한다. 사건기자들은 보통 경찰을 취재해 강력 사건을 보도하는데, 이 과정에서 가해자의 진술만 기사에 반영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관행적으로 이렇게 보도한다고 해도 아주 틀리지 않을 것이다.

 

피해자는 말이 없는데 가해자가 계속 말을 하면 어떨까? 그리고 언론이 가해자의 발언만 비중 있게 보도한다면 어떻게 될까? 사건의 본질이 왜곡될 수 있다.


가해자의 주장, 어디까지 보도할까

 

지난 8월 25일 성폭행 살인 사건 피의자 최윤종이 서울 관악경찰서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되던 그는 경찰서 정문 앞에 진을 치던 취재진에게 “우발적인 범행이었다”고 말했다. ‘계획 범죄’를 부인한 것이다. 최 씨는 지난 8월 17일 오전 11시 40분쯤 신림동 한 등산로에서 30대 여성에게 성폭행과 폭력을 행사해 숨지게 했다.

 

강력 범죄 가해자들은 최 씨처럼 계획 살인 혐의를 부인하고 우발적 범행을 주장하곤 한다. 2019년 5월,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 훼손과 은닉까지 한 혐의를 받는 고유정이 대표적이다. 형법 제250조는 살인을 저지르는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는데 계획 살인이냐 우발적 살인이냐에 따라 형량이 달라진다. 우발적인 살인으로 인정되면 처벌 수위가 낮아져 아주 드물긴 하지만 집행유예를 받기도 한다. 반면 계획 살인임이 입증되면 형이 가중될 수 있다.

 

최윤종은 사건 발생 4개월 전 범행 도구인 너클을 구입했다. 범행 장소 또한 사전에 여러 차례 방문했다. 경찰이 최 씨의 휴대폰과 컴퓨터를 포렌식한 결과 그는 ‘너클’, ‘성폭행’, ‘살인’, ‘살인 예고’ 관련 기사를 열람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범행 이틀 전엔 “용기 있는 자가 미녀를 차지한다”, “인간은 기회를 잡아야 한다” 등 범행을 다짐하는 메모를 작성했던 것으로 이후 검찰 조사에서 확인됐다.

 

이런 정황을 종합하면 그가 계획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크다. 중요한 것은 최 씨의 발언을 어떻게 기사화하느냐다. 최 씨가 검찰 송치 직전 “계획범행이 아니었다”고 한 발언을 어떤 식으로 처리할지가 이 사건 보도의 관건이었다.

 

결국 뉴스1은 “우발적 범행이었다”는 발언을 담되 계획 범죄 정황들을 기사에 함께 실었다. 최 씨의 주장이 일방적이고 허위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보도 후 찜찜함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가해자의 주장은 어디까지 보도해야 하는가? 숙제 같은 물음이 남아 있다.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마라?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자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됐던 것도 사건 본질이 왜곡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다. 현실적으로 잘 지켜지지 않지만, 이는 범죄 보도의 원칙처럼 여겨진다. 가해자의 서사란 쉽게 말해 범인의 사연을 의미한다. ‘범인은 은둔형 외톨이였다’, ‘신경정신질환이 있었다’, ‘어린 시절 모범생이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가 대표적이다.

 

가해자에게 서사를 과도하게 부여했을 경우 범행이 정당화되거나 범죄의 심각성이 희석될 수 있다. 피해자를 2차 가해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많다. 그런데 최근 언론계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두드러진다. 최윤종 사건을 취재했던 뉴스1 사건팀 A기자는 말했다. “가해자의 서사를 배제하면 사회구조적인 문제도 은폐되지 않을까요?”

 

 


 

 

가해자의 진술을 토대로 범죄에 이른 과정을 퍼즐처럼 맞추다 보면 ‘범죄 사각지대’라는 사회 구조의 허점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지난 5월 ‘정유정 사건’을 비롯해 올해 7~8월 잇달아 흉기 난동 살인을 저지른 조선, 최원종, 최윤종의 공통점은 은둔형 외톨이라는 점이다. 주요 언론들은 이 점을 앞세워 보도했는데, 이 역시 넓은 의미에서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보도들은 과연 어떤 결과로 이어졌을까?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최근 사회적 고립 청년에게 특화된 사회 복귀 지원 체계를 마련하라고 보건복지부에 권고했다. 구체적인 권고 내용은 사회적 고립 청년을 법적으로 정의하는 한편 지원 대상과 기준을 법률에 규정하라는 것이다. 인권위는 또 고립 청년 관찰·관리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사례 연구조사를 주기적으로 실시하도록 보건복지부에 요청했다.

 

올해 국민적 우려를 산 강력 범죄 가해자가 고립 청년이었던 사실을 고려해 인권위가 이같이 조처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권에서도 입법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제주시을)은 지난 8월 은둔형 외톨이 청소년을 지원하는 ‘청소년복지 지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경기도의회도 국중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출한 ‘경기도 은둔형 청소년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다.

 

가해자의 서사 혹은 발언을 전하는 보도가 강력 범죄 예방책으로 이어진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2000년대 유영철이나 강호순 같은 연쇄살인범들은 검거된 후 여성 혐오 또는 여성 편력을 과시하는 끔찍한 발언을 했는데, 이는 안전 대책의 일환으로 전국에 폐쇄회로(CC)TV를 확대 설치하는 계기가 됐다. 최근 몇 년간 연쇄살인이 발생하지 않은 것도 CCTV 효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범인의 도주 경로 등 행적을 CCTV로 분석한 경찰이 연쇄살인으로 치닫기 전 범인을 검거했다는 것이다.


‘무엇을’ 보다 ‘어떻게’ 쓰느냐

기자의 치밀한 판단이 중요

 

문제는 가해자의 서사와 발언을 전하는 보도가 아니다. 어떤 서사를 담고 어떤 입장을 쓰느냐다. 무엇을 쓰고, 무엇을 쓰지 않을 것인지 솎아내는 것이 강력 사건 보도의 핵심이다. 

 

제도와 현상 등 사회구조의 허점을 해결하거나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공적인 역할을 외면한 채 언론이 가해자의 서사를 선정적으로 다루는 보도 방식이 문제인 것이다. 특히 강력 범죄의 잔혹성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사회구조적 문제가 은폐될 수 있다. 예컨대 가해자의 사이코패스 성향만 집중 보도하면 사이코패스를 방치한 사각지대가 가려질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2차 피해와 모방 범죄 등 보도의 악기능까지 꼼꼼히 따져 심층적으로 보도하는 풍토가 마련돼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속보에 익숙해진 언론 환경이 단기간에 바뀌기 어렵다. 

 

따라서 보도의 이면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문화가 뉴스룸에 먼저 정착돼야 한다. 기자들은 가해자의 발언과 서사 중 무엇을 쓰고, 무엇을 쓰지 말고, 무엇을 키우고, 무엇을 축소하고, 어떤 내용을 함께 다룰지, 치밀하고 꼼꼼하게 판단해야 한다. 지난해 12월 사건팀장이 된 후 가장 힘들었던 것도 이 같은 ‘판단’을 내려야 할 때였다. 나는, 그리고 우리 기자들은 앞으로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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