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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독 강력 사건이 잇따랐다. 언론은 연일 이에 대해 보도했고, 국민은 불안에 떨었다. 우리 언론의 범죄 보도를 들여다보면 공통된 특이사항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범죄 보도 양상을 살펴보고 그 배경을 분석해본다. 편집자 주
2023년 7월 말 어느 날, 범죄자 조선이 서울 신림역 근처에서 무차별 흉기 난동을 벌였다. 그 후 한 달 반이 넘는 기간 동안 한국 사회는 극심한 모방 범죄와 그로 인한 패닉(집단 공포)에 가까운 혼란을 겪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이를 보도하는 한국 언론의 자세는 매우 모호해 시민들로부터 불신과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에 한국 사회의 범죄와 범죄 보도에 대한 실태를 파악해보는 것이 이 시기 혼란에 대한 작은 위안일 수 있다는 생각에, 관련 보도 양상을 개괄적으로 살펴보며 언론의 범죄 보도 내용에 대해 분석해보려 한다. 아울러 사회 변화에 따른 범죄 양상의 변화, 그에 따른 언론의 범죄 보도 내용과 그 문제점에 대해서도 살펴보겠다.
한국 사회의 범죄 보도는 크게 몇 가지 특징을 가진다. 일단 지나치게 수사(사법)기관에 친화적인데, 심지어는 대부분 수사(사법)기관의 (수사 결과) 보도자료를 카피하는 수준이다. 그러기에 해당 범죄에서 무엇이 핵심인지 쟁점이 형성되지 않는 가십 수준의 보도가 대부분이다. 더 큰 문제는 매체 모방(심지어 1인 미디어에 대한 매체 모방)이 다반사로 일어나, 보도가 지면 채우기 수준인 경우도 많다.
또 지나치게 가해자 중심의 과잉 서사가 무분별하게 활용되고, 여기에 편승해 실제 사건에는 없거나 있더라도 작은 요소를 왜곡하거나 논픽션에 픽션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시사적인 보도를 예능적인 서사로 만들기도 한다. 더 나아가 보도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후속 취재가 부재하거나 이에 대한 계획조차 고려하지 않은 흥미 위주의 단발성 기사가 주를 이룬다는 특징이 있다.
살인>성범죄?
관행으로 경중 재는 범죄 보도
그렇다면 이런 특징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과거에도 그랬을까? 적절한 답변은 다음 질문을 이해해야 가능하다. 한국 언론의 범죄 보도는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범죄들을 얼마나 대표했으며, 또 대표하고 있을까? 아쉽게도 한국의 범죄 통계는 그리 객관적이지 못하다. 공급자(수사기관) 중심으로 이른바 ‘발생 원부’만이 발표될 뿐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은 범죄 피해자 중심 조사와 수사기관 중심 조사를 병행해 사용하고 있다. 말하자면 한국 언론의 범죄 보도는 한국 사회 범죄 현실과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작동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즉 한국의 범죄 통계와 범죄 보도의 대표성 사이의 관계는 수치가 아니라 (상대적인) 가치로 답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가치는 권위주의 정권 혹은 과점적인 언론 권력의 입맛에 맞는 것일 경우 아니면 관행적인 보도 태도로 유지되어온 것이라고 보면 된다.
범죄의 가치를 재는 대표적인 사례로 살인자와 성범죄자를 두고 어떤 범죄자가 더 악한지를 판가름하는 보도 태도가 있다. 작년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김근식이라는 아동 연쇄 강간범을 기억할 것이다. 2006년 교도소 출소 전에 범죄를 작정하고 출소 후 한 달여 동안 9~16세의 여아 10여 명을 연쇄 강간한 범죄자로 징역 15년 형을 받았다. 사람 한 명을 살해한 경우 최소 10년에서 최대 무기징역을 받는 살인죄의 형량과 비교하면, 우리 사회는 성범죄보다는 살인범죄를 더 무겁게 처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실제 현실을 살펴보면 살인죄보다 성범죄의 발생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고, 피해자의 충격 또한 살인 못지않게 크다.
그럼에도 과거나 지금이나 성범죄보다는 살인을 우선 보도하는 경향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그것이 일종의 관행이라면 그 관행이 현재도 유지된다고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사기 사건은 다단계거나 사이비종교와 연결된 경우 등 특이한 사례를 제외하고는 거의 보도되지 않는다. 이는 절도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절도 대상물이 특이하거나 피해자가 유명 인사인 경우를 제외하고 절도 사건이 보도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사기나 절도로 인해 발생하는 심각한 심리·경제적 타격을 고려하는 보도도 거의 없다.
사실 범죄를 이렇게 보도하는 데는 범죄에 대한 인식이 큰 역할을 한다. 범죄는 예외적이고 운이 나빠 당하는 우발적인 것이어서 보통의 사람들과는 무관하다는 인식이다. 따라서 범죄 보도는 특이하고 우연히 발생하는 비일상적인 것을 보도하는, 가치가 적은 행위로 인식한다. 그렇지만 범죄는 인간의 삶 속에서 상수이자 구조적인 사회적 사실이다. 단 누구도 가까이하기 싫어하므로 그러한 인식에 편승한 언론이 범죄를 피해야 할 어떤 것으로 만든 것뿐이다.
범죄를 가볍게 다루는 시사 예능
사회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범죄가 생기거나 강조되는 범죄가 변화되며 범죄 보도 양상에도 변화가 생긴다. 예를 들어 사이버공간 확대에 따라 이른바 N번방 성착취 범죄의 보도량이 늘어나거나 스토킹이 새롭게 범죄 유형의 하나로 추가되어 비범죄 보도에서 범죄 보도로 바뀌었다거나 문화면에서 다루던 가정 내의 갈등이 가정폭력 범죄로서 보도되는 등의 변화다. 또 다른 변화로 2018년 미투(Me Too) 현상을 전후해 범죄 보도에서의 성인지 감수성 또는 피해자 감수성이 화두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미투의 사회적 파장에 비해 보도 내용 면에서의 질적 전환이 이뤄졌는지는 의문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종편과 보도 채널을 통해 사건·사고를 예능화한 이른바 시사 예능이 등장한 것도 중요한 변화다. 즉, 사건·사고라는 소재를 보도하면서 예능으로 서사를 부여하는 방식이 일상화된 것이다. 기존의 기준에서 범죄 보도는 크게 사건 기사와 탐사분석 기사로 나눌 수 있었다. 사건 기사는 이른바 ‘사스마와리(수습이나 막내 기자가 경찰서를 돌며 취재하는 것)’로 수습기자들을 훈련하던 시대의 결과물이라고 보면 될 것이고, 탐사분석 기사는 탐사 시리즈물로서 팀을 꾸려 기사를 만들어내거나 탐사 프로그램에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시사 예능은 범용으로 쓰이는 언변 좋고 마스크 좋은 변호사나 전직 정치인, 시사평론가, 전직 경찰, 경찰 관련학과 교수 등의 타이틀을 가진 유사 전문가를 3~5명의 패널로 구성, 상식화된 수다를 떠는 방식으로 사건 사고를 소구한다. 이런 시사 예능의 출현은 범죄에 대한 독자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반면 전문적 분석을 방해해 범죄에 대한 다양하고 유의미한 사회적 대안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아닌, 즉자적인 포퓰리즘에 경도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또, 이른바 셀럽들이 전문가인 양 범죄 보도에 역으로 간섭하는 방식이 일상화하게 됐다. 여기에 유튜브 같은 매체의 등장은 검증되지 않았거나 더 나아가 특정한 의도를 가진 혐오 주장이나 범죄 기사들이 무차별하게 퍼질 기회를 만들고 있다.
언론과 수사기관의 공생
이런 사회 변화의 맥락을 포함하여 한국에서 언론이 범죄를 다루는 양상의 특징 중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바로 지나치게 수사기관의 언어와 의도에 치우친 보도를 한다는 점이다. 최근 마약 범죄에 대한 보도를 보자. 지난 9월 11일 MBC 아침뉴스의 한 꼭지다.
“압수된 양만 18.7kg, 62만 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고 시가 623억 원에 달합니다.”
앞뒤 사실관계를 포함, 경찰의 수사 결과 보도자료를 거의 그대로 옮겼다고 할 수 있다. 수사 결과 발표 이후 약간의 질의응답 내용을 요약하거나 백브리핑을 추가하는 정도를 넘어서지 않는다. 최근에는 앞서 언급한 시사 예능의 셀럽이자 친매체 혹은 친수사기관 성향 유사 전문가들의 의견을 인용한 보도(따옴표 저널리즘)가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그런 유사 전문가들은 전문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두루뭉술하고 비전문적인 견해를 내놓고, 결과적으로 특정한 쟁점을 형성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이는 아무래도 쟁점을 형성하고 싶지 않은 기자 혹은 언론사의 의사가 반영되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도대체 어떤 의도와 방향으로 작성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한 기사가 완성된다. 범죄의 본질과 맥락에 대한 치열하고 전문적인 분석 없는 기사가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겠는가? 물론 여기에는 역사적으로 해결하지 못했고 지금도 치열한 하나의 논쟁과 연결고리가 있다. 과거 사건·사고를 다루는 기사의 경우 단순 가십성 기사를 넘어서기 힘들다는 한계가 있었다. 최근에는 각 수사기관들이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언론 환경 조성을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는데, 수사기관은 재판에서의 승소를 위해 물적 증거 등을 확보하는 것만큼이나 여론을 이용하려고 애쓰기도 한다. 경찰 역시 보도자료를 통해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거나 수사의 방향성을 제공하고, 언론이 이를 그대로 받아 적어 수사의 편의를 확보하거나 그 결실로 승진이나 고과에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지도록 ‘언플(언론 플레이)’을 유도한다. 결과적으로 언론은 수사기관이 제공한 재료와 포맷으로 입맛에 맞는 기사를 써주고 수사기관은 그것을 이용해 범죄와 관련된 사회 환경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공생하는 것이다.
모방 부추기고 가해자에 집중하는 범죄 보도
다음으로 한국 사회 범죄 보도 양상의 문제는 모방이다. 매체의 폭발적인 확대(매체 수, 종류)로 기사의 생산 및 배포 과정이 짧아짐에 따라 다양한 방식의 매체 모방이 이어진다. 다른 매체의 기사를 그대로 받아쓰다 보니 양이 질을 규정하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태를 만들기도 한다. 보다 자극적인 내용의 첨가 혹은 픽션 부가가 이뤄지기도 하며 가짜뉴스도 생산된다. 특히 SNS, 유튜브 등의 플랫폼이 이런 모방의 징검다리 구실을 하는데, 현재 국민의 상당수가 SNS나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이용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초래된다. 더구나 허위 정보나 조작 정보는 그 소구력으로 인해 확산 속도가 빠르고 파급력이 커 쉽게 모방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언급한 문제들이 형식 혹은 그 의도와 관련된 것이라면 다음 사항은 범죄 보도와 관련된 본질적인 문제 제기다. 그것은 바로 범죄에 대한 모방을 간과한다는 점이다. 자살 보도에 대한 베르테르 효과는 익히 알려져 있다. 유명 연예인이 자살한 직후 기존 대비 자살자가 급증하는 것이다.
매체를 통한 간접 학습은 그 대상이 행위에 대해 가지는 피암시성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청각과 시각을 통한 간접 학습 외에 대중의 심리적 공포(패닉)에 의한 영향도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SNS를 통한 범행이나 사건 방법의 공유도 유사한 과정을 거친다. 특히 디시인사이드 같은 커뮤니티의 각종 갤러리가 피암시성이 큰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곤 한다.
같은 맥락에서 사회에 공포감을 조성하는 모방도 존재한다. 지난 7월 말에 발생한 신림역 칼부림 사건을 시작으로 서현역에서 최원종 사건과 다시 신림동 둘레길에서 최윤종 사건 등이 연이어 발생했다. 이 사건들에서 한국의 언론이 저지른 위험한 보도 행태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이른바 ‘**역’ 칼부림 사건이라는 네이밍은 뒤이어지는 서현역이나 동대구역, 송파역, 오리역 등의 칼부림 사건 등에 필요 이상의 자극을 제공했다. 범죄 네이밍에 있어서 구체적인 지역명이나 특정한 구조물에 대한 묘사는 특히 위험성이 높은 범죄예비군에게 모방의 자극제가 되곤 한다.
이후 발생한 각종 칼부림 예고에 대한 보도는 또한 유사한 모방 범죄가 일어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즉 여과 없는 보도가 문제인데, 대다수 매체가 범죄의 수법, 동기, 과정 등을 지나치게 상세히 보여주는 것이 반사회적이고 피암시성이 높은 예비 범죄자에게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범죄 보도는 지나치게 가해자 중심적인 서사를 무분별하게 사용하기도 한다. 일반론으로서 가해자 서사의 과잉을 경계하라는 원칙은 두 가지 차원의 의미가 있다. 하나는 가해자에 대한 온정적인 감정이입을 유발할 수 있다는 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가해자를 이른바 악마로 묘사해 보통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사건을 가해자 중심으로 설명하고 피해자를 해당 사건에서 배제할 수 있다는 차원이다. 더욱이 언론의 무분별한 서사 남발은 사건을 순수하게 개인화시키고 범죄의 사회성을 가려 범죄에 대한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인식을 증발시킨다. 결과적으로 언론의 그런 범죄 보도는 (의도와 상관없이) 끔찍한 범죄자가 우리와 전혀 다른 사람일 것이라는 대중 혹은 수사기관의 잘못된 안도감에 기여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