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언론사에 처음 입사하면 기본 수습 교육을 마친 뒤 사내 전체 부서를 일정 기간 돌며 부서 교육을 받는다. 어떤 출입처를 다루는지, 어떤 식의 기사를 쓰고 어느 취재원을 만나는지 파악하는 일종의 맛보기 시간이다.
수습 교육을 받은 지 몇 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잊을 수 없는 건 정치부, 그중에서도 국회에 갔던 날이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사람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누가 무슨 말을 하면 무조건 노트북부터 폈다.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되면 회의실 밖 복도에서 하염없이 뻗치다가, 백브리핑할 땐 다시 그 말을 받아쳐서 일진 선배에게 실시간으로 넘겼다.
정신없이 몰아치던 그 몇 시간보다 더 힘든 건 취재한 내용으로 연습 기사를 쓸 때였다. 발언의 전후 사정이나 맥락을 모르니 어려움이 더 컸겠지만, ‘어쩌라고’라는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모 의원이 어떤 자리에서 뭐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뭐를 해야 한다며 뭐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누구는 뭐라고 반박했다.” 근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어쩔티비’ 권법으로 쓴 기사는 당연히 엉망진창이었을 테다. 선배에게 호되게 혼났다. 그 뒤 선배가 진심 어린 피드백과 함께 해줬던 말이 이거였다.
“우리 기사는 물론이고 통신사 기사를 많이 보고 따라 써봐. 정치 기사가 뭔지 감이 잡힐 거야.”
‘따옴표 기사’ 유통 배경엔 포털이 있다
그 뒤로 정치부에서 일한 적은 없다. 그럴 기회가 없기도 했지만, 스스로 정치 기사를 ‘알맹이 없이 남의 말만 받아치는 기사’라고 (오만하게) 얕봤던 것도 같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언론이 취재원, 특히 유력 정치인의 발언을 있는 그대로 전하기만 하고, 그 발언의 의미를 묻거나 검증하지 않는다”는 이나연 교수의 주장은 일견 공감이 간다.
받아쓰기 저널리즘이 한국 언론의 큰 병폐 중 하나로 지적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사실 기자 대부분은 이런 지적에 원칙적으로 동의할 터다. 단순히 정치인이 뭐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포털사이트에 실시간 주요 기사로 내걸리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끼는 기자들이 결코 적지 않다. 문제는 현실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점이다. 권력의 한가운데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기자들조차 그 핵을 취재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라서다.
대통령실에 출입하는 A 기자는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가 일단 국민적인 관심 사안이니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전달하는 기사를 통해 실제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면서도 “대통령은 잘 보지도 못하고 김건희 여사 동정, 대변인실 발언 자료 기사만 쓰다 보면 ‘내가 지금 뭐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건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은 지난해 11월 실시 반년 만에 중단되면서 국가 최고 권력자에게 주요 현안에 관해 직접 물을 길이 사라졌다.
국회도 사정은 비슷하다. 최근엔 정치인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까지 실시간 기사로 중계되면서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핵심 인물에게 얘기를 들을 방법이 페이스북 게시물밖에 없다면 어떨까.
정당을 2년여 간 출입한 B 기자는 “기자라고 다 같지 않다. 기자들 전화를 절대 안 받는 의원이 있는데, 정당에 오래 출입한 선배 전화만 딱 받더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안에 대한 입장을 표명해야 할 의원은 전화를 가려 받고, 보좌진은 자기는 모른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SNS 게시물이 올라오면 당연히 기사에 반영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고마울 때도 있다”고 말했다. 하루에 기자 한 명이 소화해야 할 기사량이 많은 건 물론 외곽 취재도 쉽지 않기에 말 한마디, 글 한 줄이 발제와 보고 거리가 되는 상황이다. 의원들 역시 이런 상황을 이용할 때가 많다. 수백 명의 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전화할 때, 일일이 대응하지 않아도 ‘페이스북에 다 나온다’는 말 한마디면 정리된다.
기자들도 그게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걸 안다. 취재원에게 1:1로 질문을 던져 직접 들은 얘기와 만인에게 공개된 곳에 올라온 포스팅의 무게가 다르다는 것도 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말에 어떤 해석도 추가 설명도 없이, 발언에 대해 사실 검증도 하지 않고 따옴표로만 기사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이런 기사가 여전히 많이 유통되는 배경엔 포털이 있다. 종합일간지에서 일하는 C 기자는 “정치인 발언의 사실 여부를 검증하는 기사, 해설식 기사가 없는 게 아니다. 그저 독자에게 가닿지 않을 뿐”이라고 털어놨다. 속보를 처리하는 통신사와 달리, 신문사나 방송사는 발언이 지닌 의미를 상세히 분석하고 해설하는 기사를 이미 많이 쓰고 있다. 하지만 포털에서 실시간으로 기사를 확인하는 독자들 눈엔 자극적인 일부 워딩 기사만 보인다는 것이다.
C 기자는 “아무리 열심히 취재해서 남들과 다른 심층 기획 기사를 써도 워딩으로만 쓴 기사보다 훨씬 조회수(PV, Page View)가 적을 때는 허탈함과 무력감이 밀려온다”고 전했다.
신문사 디지털 부서에서 온라인 편집을 하는 D 기자는 “오전에 국회 정례브리핑이나 최고의원회의가 끝날 때 모든 매체에서 ‘멘트 기사’가 쏟아진다. 내용이 분석적이건 아니건, 센 멘트가 제목에 들어가면 일단 PV가 치솟는다”며 “우리만 안 쓰면 그만큼 독자 유입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포털사이트에서 제목 한 줄만 보고 기사를 클릭할지 고민하는 독자들이 <안철수 “대접해줬더니 오만방자”…이준석 “아픈 사람 상대 안해”>1), <최강욱 “깐죽거리지 말라” 한동훈 “국회의원이 갑질하는 자리냐”>2) 같은 흥미진진한 내용을 그냥 지나치기란 어려운 일이다.
D 기자는 “뉴스 대부분이 포털 사이트에서 유통되는 구조에선 PV가 잘 나오는 게 이득이라 이런 걸 주요 기사로 배치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번엔 무슨 헛소리를 했나’ 하는 독자의 마음을 대변하는 기사가 잘 읽힌다. 홍준표 대구시장,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처럼 ‘센 멘트’가 보장된 사람들의 기사가 특히 그렇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우리가 매일 보는 정치 기사, 수습 때 선배가 내게 참고하라고 일러 줬던 기사들은 이렇게 독자의 구미를 당기는 워딩 위주로 쓰인다.
힘 있는 쪽의 일방적 대변 벗어나야
매일 저마다의 현장에서 분투하는 동료 언론인이 많다는 걸 안다. ‘이런 기사는 잘못, 저런 기자도 문제’라고 싸잡아 욕하는 건 그 현장에 없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 한가한 지적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럼에도 받아쓰기 저널리즘을 이제는 제발 지양하자고 말하고 싶은 이유는 지금의 언론 지형이 ‘힘 있는 쪽’의 일방적인 목소리만 대변한다는 확신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연초 대통령이 언급한 ‘건폭(건설 현장 폭력)’이다. 대통령은 지난 2월 국무회의에서 “강성 기득권 노조가 금품 요구, 채용 강요, 공사 방해와 같은 불법행위를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다”며 “건폭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엄정하게 단속해 법치를 확고히 세우라”고 말했다. 건설노동자들이 모인 노조에서 조직적 차원의 비리 행위가 없었는데도 일부 노동자 사례를 앞세워 노동 혐오를 유발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은 대통령의 발언을 논평하는 대신 건폭이라는 말을 아예 기사 제목에 넣어버렸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의 신문·방송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국무회의 당일과 다음날인 2월 21~22일 지상파 3사와 종합편성채널 4사, 보도전문채널 2사, 6개 종합일간지와 2개 경제일간지에서 나온 관련 기사는 36.5건(단신 0.5건 처리)이었는데, 건폭 표현에 문제가 있다고 서술한 건 방송 1건, 신문 3건뿐이었다. 기사 대부분은 회의 내용을 전달하며 정부가 추진하는 노조 처벌 방침을 소개했다.
이에 대해 민언련은 “언론의 역할은 윤 대통령의 일방적 노조 때리기에 그치지 않고 건설노동자들의 입장을 취재하는 것인데, 비판은커녕 노조 관계자 반론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대통령실 주장 받아쓰기’ 보도로 일관했다”고 지적했다. 이로부터 두 달여 만인 5월 1일, 관련 수사를 받던 건설노동자 양회동 씨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분신했다가 이튿날 사망했다.
이런 현실에 대해 발언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보도했으니 언론은 제 역할을 다했다며 넘어갈 수 있을까. 권력자의 얘기를 단순히 중계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따져보지 않는 언론은 유튜브 라이브 방송과 뭐가 다를까. 사회 구성원을 선한 쪽과 악한 쪽으로 갈라치기 하려는 권력을 비판하는 건 이 시대 언론이 해야 할 가장 큰 역할이다.
최근 영국에선 공영방송 BBC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자국 정부 방침에 반대해 논란이 일었다. BBC는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 정부와 영국군을 ‘우리 정부’, ‘우리 군’으로 부르지 않아 마거릿 대처 총리와 대립한 언론이다.
존 심프슨(John Simpson) BBC 국제뉴스 에디터는 홈페이지에 입장문을 올려 “누구를 지지하고 비난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건 BBC의 몫이 아니다”라며 “우리 목소리로 직접 말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고, 시청자에게 사실을 제시하고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 일”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일방적인 주장을 그대로 쓰지 않고 그 말이 옳은지를 다방면에 걸쳐 따져봐야 결국 언론의 객관성을 담보하고 전 세계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 한국 언론에 꼭 필요한 원칙도 바로 이런 것이다.
1) 김치연, <안철수 "대접해줬더니 오만방자"…이준석 "아픈사람 상대안해">, 연합뉴스, 2023.10.16,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4265983?sid=100
2) 차지연, <최강욱 “깐죽거리지 말라” 한동훈 “국회의원이 갑질하는 자리냐”>, 연합뉴스, 2023.8.21,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4143083?sid=1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