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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탐사보도네트워크(GIJN)가 주관하는 2023 글로벌 탐사보도 콘퍼런스가 지난 9월 19~22일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렸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 130개국에서 온 탐사보도기자 2,100여 명이 모여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던 이번 행사 참가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한국언론진흥재단
스웨덴으로 떠나기 전, 콘퍼런스 관련 자료를 훑어보며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보낼 방법을 고민했다. 콘퍼런스를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이 ‘실제로 보도에 참고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취재 방법’이었기에 실제 보도 사례와 취재 기법들을 전하는 세션을 찜해두고 비행기에 올랐다.

전쟁부터 스마트폰 해킹까지
위험한 취재 현실
콘퍼런스는 생각보다 무거운 분위기로 시작됐다. 콘퍼런스를 주최한 글로벌탐사보도네트워크(GIJN, Global Investigative Journalism Network)의 데이비드 캐플런(David E. Kaplan) 대표는 행사의 공식적인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 무대에서 전 세계 탐사보도 언론인들이 겪고 있는 위협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개회사에서 키르기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언론인들이 목숨의 위협을 느끼며 취재 중인 현실을 언급했다. 특히 그는 러시아 기자들이 이번 콘퍼런스 참석을 앞두고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다고 밝혔다.
캐플런 대표는 “두 명의 러시아 출신 기자들이 이 행사에 참석하려 했다가 당국의 위협을 받았다”며 익명의 메시지에 러시아 기자들의 비행기 좌석 번호와 그들이 머물게 될 호텔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전했다. 메시지를 보낸 이들은 러시아 기자들에게 “예테보리에 오면 살해하겠다”라고 협박했다.
한국의 사례도 언급됐다. 캐플란 대표는 뉴스타파 압수수색 사례를 전하며 한국과 같이 검증된 시민사회를 가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언론보도에 대한 감시와 경계가 이뤄지고 있다고 첨언했다.
이런 분위기에 걸맞게 콘퍼런스 기조연설의 주제도 언론인에 대한 스마트폰 해킹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기조연설을 맡은 론 드버트(Ron Deibert) 토론토대 시민연구소(Citizen Lab) 소장은 ‘페가수스’ 같은 스파이웨어가 어떻게 언론인들의 스마트기기에 침투해 행동을 감시하는지 설명했다. 그는 세계가 온라인망으로 촘촘히 연결되면서 감시와 억제가 강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콘퍼런스가 열린 스벤스카 매산(Svenska Massan) 컨벤션센터의 경호도 강화됐다. 컨벤션센터 입구에 무장 경찰이 차량과 함께 대기했으며 입장 전 반드시 짐 검사를 받아야 했다. 또 주최 측에서 배부한 이름표와 팔찌를 착용하지 않으면 행사장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포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기자들
그러나 기자들은 위협에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콘퍼런스 셋째 날인 9월 21일 오전,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전쟁 범죄를 다룬 기사들을 소개하는 세션이 있었다. 세션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청중석에서 발표를 맡은 기자들을 향해 “러시아의 정보 활동에 위협을 느끼지는 않는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마이크를 건네받은 발레리야 에고시나(Valeriya Egoshyna) 자유유럽방송(RFE/RL) 기자는 “오늘, 바로 이날 밤에도 키이우에서 또 다른 폭격이 있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편안한 상태는 아니다”라면서도 “우리는 이미 지난 1년 반 동안 러시아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정말 중요한 것은 여러분 덕분에 우리가 우크라이나에서 계속해 취재하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에고시나 기자의 여유 있는 대답에 청중들로부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또 콘퍼런스 중 프랑스에서 국방 기밀 누출 혐의로 구금된 아리안 라브릴유(Ariane Lavrilleux) 기자에 대한 연대의 목소리도 나왔다. 라브릴유 기자는 이집트 정부가 리비아에서 자국으로 넘어오는 이슬람 무장 세력에 폭격을 감행한 사건에 대해 폭격으로 사망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민간인이었고 이와 관련된 정보 출처가 프랑스 정보 당국이었다고 보도했다.
이에 GIJN 여성네트워킹 세션에 참석한 언론인들이 라브릴유 기자와의 연대를 표현하는 차원에서 ‘저널리즘은 죄가 아니다(journalism is not a crime)’라는 해시태그(#)를 내보이는 단체행동을 했다. 이렇게 위협에 당당히 맞서고, 탄압받는 동료 기자에게 연대를 보내는 언론인들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자본·인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기자들은 악화되는 언론 환경과 취재 제약에도 포기하지 않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었다. 자본과 인력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국경을 넘어선 협력 체계를 만들고 새로운 기술을 취재 도구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협력의 한 사례로 북유럽 4개국(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공영방송 소속 기자들이 공동 취재를 통해 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러시아 출신 스파이들의 활동을 규명한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기자들은 자국의 정보기관으로부터 스파이로 활동하고 있는 러시아 국적 외교관 명단을 입수했고 지난한 현장 취재를 통해 실제 인물들과 명단을 대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러시아 스파이 21명의 신원을 확인했고 그중 13명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음을 포착했다.
새로운 기술과 취재 방식의 도입은 인력과 자본의 부족에 시달려야 하는 소규모, 비영리 탐사보도 언론사에게는 기본적인 소양이 된 것으로 느껴졌다. 발표되는 취재 사례의 대부분에 데이터 분석 등의 기술이 활용됐고 IT, 데이터, 인공지능 등 다양한 기술적 주제를 다룬 세션들도 연이어 열렸다.
이런 세션들의 상당수는 단순히 기술을 활용한 보도 사례 소개를 넘어 실제 기술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보는 식의 실습형으로 진행됐다. 기자들은 동료 언론인들에게 직접 코딩의 기본 원리를 배우거나 프로그램 언어를 사용해 데이터를 분석하는 법을 익혔다.
기존 언론이 흔히 시도하지 못했던 기술을 활용한 보도 사례도 있었다. 독일 공영방송 NDR의 취재진은 동위원소 분석을 통해 자국 내 유명 스포츠 브랜드들이 강제노동 의혹을 받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재배된 면화를 사용한 사실을 밝혀냈다. 또 노르웨이 트롬쇠의 지역 언론인 아이트롬쇠(iTromsø)의 루네 이트레베리(Rune Ytreberg) 대표는 낮은 수준의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뉴스를 수집·분석·요약·정리하는 툴을 만들어 20여 명의 적은 인원으로도 뉴스룸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진실과 신뢰, 탐사보도의 시대가 왔다
위기 속에서도 당당하게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기자들에게 오랫동안 탐사보도 업계에 몸담아 온 한 원로 언론인은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GIJN의 공동 창립자이자 미국 일리노이대 겸임교수인 브랜트 휴스턴(Brant Houston)은 탐사보도 업계가 처한 위기에 대해 탐사보도가 죽어가고 있다는 이야기에 동의할 수 없으며 취재 보도 기술과 능력이 꾸준히 향상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탐사보도를 하려는 젊은이들이 크게 늘고 있다”며 “대중은 진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찾고자 하는 열망이 크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시대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위기와 위협 속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기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3박 4일의 콘퍼런스 기간 동안 부끄러움과 부러움을 함께 느꼈다. 먼저 부끄러움은 정말 위험한 현장에서 목숨을 내놓고 취재하고 있는 동료 기자들에 비해 한국에서 ‘너무 편하게 기자 생활을 하고 있다’는 데 대한 반성이었다. 또 작은 단서에서도 진실을 찾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취재하는 기자들의 모습을 보며 과거 작성했던 기사
들에 정말 최선을 다했는지 자문하게 됐다.
이어 부러움은 국제적인 관심을 받는 주제를 거침없이 취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분쟁 지역 취재의 경우 한국 언론은 엄격한 국내법 때문에 취재에 여러 제한을 받고 있다. 현지 취재를 위해서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인원이나 취재 기간, 지역도 한정된다. 콘퍼런스에 참석한 기자들은 소규모 언론사에 속해있거나 프리랜서로 일하면서도 분쟁지역에서 현장감을 살린 놀라운 보도를 해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콘퍼런스에서 배웠던 점과 느꼈던 것을 다시 복기해 보면서 실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취재 아이템으로 활용해 보려고 시도하고 있다. 사실 가장 큰 성과는 앞서 말한 부끄러움과 부러움의 감정을 잔뜩 짊어지고 온 것이었다. 덕분에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게 됐고, 더 나은 취재를 위한 동력을 얻게 됐다. 부디 이 배움이 오래 지속되길 바라본다.
*콘퍼런스의 주요 세션은 GIJN의 유튜브 계정(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rCLZiCvKYvp3c9VQIBba9K4N-RZlpwW)을
통해 영상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현장의 분위기를 완전히 경험할 수는 없지만 내용을 확인하고 싶은 기자들에게 시청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