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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23일 KBS 1TV에서 방영된 <시사기획 창-고장난 심장, 북극의 경고>(이하 <고장난 심장, 북극의 경고>)는 2022년 중부권 폭우와 이로 인한 강남역 침수 사건, 같은 시기 전남·경남의 폭염 특보를 번갈아 보여준다. 이후, 산불·태풍·모래 폭풍·가뭄 발생이 더 잦아지고 극단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프로그램의 취재를 맡았던 신방실 기자는 최근 《되돌릴 수 없는 미래》라는 책을 출간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른 다큐멘터리와 달리 최근 잦아지는 전 지구적 이상 기후로 <고장난 심장, 북극의 경고>의 포문을 연 것이 치열한 고민 끝에 나온 결과임을 밝혔다. 최근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최신 연구와 담론을 잘 알기에 나올 수 있었던 기상 전문기자다운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명확해진 지구온난화의 책임 소재
유엔 산하 기구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가 발간하는 평가 보고서의 주요 결론에는 지구온난화를 바라보는 과학자 집단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90년 8월에 발간된 제1차 평가 보고서의 주요 결론에서는 인간 활동으로 인해 이산화탄소, 메탄, 염화불화탄소(CFCs) 및 질소산화물 같은 온실가스의 대기 농도가 상당히 증가하고 있지만, 이것이 지구온난화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기보다는 지구온난화를 강화할 수 있는 원인 중 하나라고 기술하고 있다. 즉 지구온난화의 발생 원인이 인간에 의한 것인지에 대한 결론은 유보했다고 볼 수 있다.
1995년 세계기상기구(WMO, 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가 개최한 마드리드 회의에서 초안이 마련된 2차 평가 보고서는 최근의 기후변화가 인류에 의한 것인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몇몇 증거들을 찾았으나, 아직까지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전적으로 인류에 있다고 보기에는 과학적 증거가 부족하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1차 보고서에서 주요 온실가스로 언급된 CFCs는 성공적인 감축 노력과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더 이상 주요 온실가스가 아님을 인증 받았다. 또한 우리가 겪을 기후변화의 일부는 비가역적일 수 있음을 명시했다. 예를 들어 영구동토층에 얼어 있던 여러 가스와 바이러스 등이 영구동토층이 녹은 이후 대기 중으로 방출되면 지구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더라도 돌이킬 수 없다. 지금은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지구온난화의 위험성이 20년도 더 된 과거부터 경고된 것이다.
IPCC 3차 보고서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인류의 책임을 좀 더 부각하고 있지만, 1, 2차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지구온난화의 발생 원인이 인류가 배출하는 인위적인 온실가스 증가 때문인지에 대한 명확한 답은 내놓지 않았다.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인류에 있음을 최초로 적시한 것은 2007년 발간된 IPCC 4차 보고서다. 20세기 중반 이후 관측된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은 인간 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농도 증가 때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언급하며, 전 지구 온도 상승뿐 아니라 지난 50년 동안 각 대륙에서 일어난 온난화 역시 인간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 증가 때문일 확률이 높다고 언급하고 있다. 노벨위원회는 이 공로를 인정해 앨 고어(Al Gore) 전 미국 부통령과 IPCC를 2007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당시 노벨위원회는 “1980년대 온난화 문제는 ‘흥미 있는 가설’로 보였지만 최근 인류 평화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며 “고어와 IPCC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 촉구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이후 5, 6차 보고서와 1.5도 특별 보고서를 통해 IPCC는 지구온난화의 책임 소재를 더욱 분명히 했고, 이와 같은 노력으로 이제는 과학 저널의 99.9%가 인간이 기후변화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지지한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지구온난화에 대해 과학계에서는 집단 지성을 통한 의미 있는 합의에 도달한 것이다.
사실과 과학적 담론 전달에
언론의 역할이 있다
그렇다면 일반인의 인식 변화는 어떠했을까? 2017년에 이뤄진 한 조사에 따르면 인간 활동으로 지구온난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미국 국민의 비율은 61%밖에 되지 않았다. 일반인들의 지구온난화에 대한 인식은 과학계의 그것과 많이 동떨어져 있었으며, 이는 과학이 경제적 이득, 정치적 성향과 결부되면서 발생한 문제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화석연료 산업계는 기후변화 회의론을 생산하고 동시에 공화당 정치인을 후원하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의심을 대중에 퍼뜨렸다. 과학자들에게 사이비 과학 취급받는 회의론이 언론과 대중의 과도한 관심을 받는 모순적 상황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지구온난화는 인류에 의한 온실가스의 증가 때문이라는 이제는 정설에 가까운 사실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지구온난화가 단순히 온도 상승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비가역적이며 극적인 변화를 유발한다는 최신의 과학적 담론까지 충실히 담아내왔다. 《되돌릴 수 없는 미래》에 자세히 기술된 것처럼,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을 통해 <고장난 심장, 북극의 경고>는 일반인들에게는 어쩌면 생소하고, 전문가들에게는 숫자로만 보였던 북극의 온난화를 화면으로 강렬하게 보여줌으로써 지구온난화가 이제 더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저자는 취재기를 통해 스발바르(Svalbard)는 더 이상 빙하와 얼음, 눈으로 덮인 곳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준다. 빙하가 녹고 눈이 아닌 비가 내리면서 북극해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더 이상 흰색이 아닌 흙색이다.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지면은 매트리스처럼 말랑말랑해지고, 이 위에 지어진 건물들은 뒤틀려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북극 생태계도 이에 따라 급격히 변하고 있다. 보이지 않던 모기가 창궐하며, 북극곰은 입에도 대지 않던 순록을 사냥하고, 먹어도 간에 기별도 안 갈 것 같은 새 알을 훔쳐 먹는다. 북극 주변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변화를 취재팀은 2주가 채 안 되는 제한된 시간 안에 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2000년대 중후반만 하더라도 지구온난화 하면 가장 먼저 지구가 불길에 휩싸이거나, 북극곰이 작아진 해빙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장면이 떠올랐다. 10년이 조금 지난 지금, 이제 지구온난화는 전방위적으로 기후 현상을 더욱 극단적으로 바꾸고 있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필자는 전 지구 일평균 강수량을 통해 지구온난화 정도를 탐지하는 딥러닝 모델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지구온난화로 나타나는 가장 뚜렷한 강수 변화는 극한 호우가 잦아짐과 동시에 비가 오지 않는 날도 늘어나는 현상임을 밝혔다. 반면 지구온난화는 평균적인 강수량을 증가시킬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까지의 데이터에 기반했을 때 그 증가량은 미미해, 이것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것인지 여부는 확실히 탐지되지 않는다.
해당 연구 결과는 2023년 8월 네이처에 발표됐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지구온난화가 극한 강수의 빈도를 늘린다는 것은 이미 여러 기사에서 무수히 많이 다뤘던 내용인데, 전 세계 과학 트렌드를 리드한다는 네이처에 이런 연구 결과가 2023년에 발표된다니? 필자의 연구 결과를 보도한 기사들의 댓글을 살펴봤을 때, 일반인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여기에 기후변화와 관련해 기자와 일반인들의 커다란 오해가 있다. 언론 기사는 그 특성상 확대 재생산이 자주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기사가 다수 매체에서 보도되면 실제 중요도보다 훨씬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과학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불확실성에 대한 부분은 문장이 복잡해지고, 이는 독자들의 이해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 생략돼 관련이 있다/없다의 결론만 부각된다.
극한 호우는 지구온난화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현상이다. 즉, 극한 호우의 발생 여부 및 빈도는 지구온난화와 관련 없이 어떤 해에는 적거나 많을 수 있다. 극한 호우의 발생 빈도는 자연적으로도 변동한다. 따라서 최근 극한 호우 발생 빈도가 증가했다 하더라도 이것이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자연 변동으로 인해 나타나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즉, 극한 강수의 발생 빈도가 최근에 증가했다 하더라도 지구온난화와 극한 강수 간의 관련성에는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불확실성을 수치적으로 정의하고, 불확실성을 넘어서는 정도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인지가 밝혀져야 비로소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기자와 일반인들의 지구온난화에 대한 인식은 과학자들을 ‘앞서가고’ 있다. 과거에 보지 못했다고 생각되는 (실제로 과거에 봤으나 잊어버린 경우도 많다) 모든 현상의 원인을 지구온난화 때문으로 치부한다.
지구온난화는 장거리 마라톤
지치지 않고 새로운 그림을 찾아야
혹자는 약간 과장될지라도 그로 인해 지구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면 좋은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필자는 이는 단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반인이 느끼는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기사에 대한 피로감은 생각보다 크다. 첫째로, 비슷한 내용의 기사들을 반복적으로 접하면서 쌓이는 피로감이 있을 것이다. 둘째로, 지구온난화 관련 기사들은 궁극적으로 책임 소재가 인류에게 있으며, 때문에 개인들은 당장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방식으로 행동 양식을 바꿔야 함을 은연중에 요구하기 때문에 생기는 피로감이 있다. 당장의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면 2년 연속 이어진 여름철 한반도 폭우를 매년 겪을 것이며, 겨울철 한파는 앞으로 더 자주 발생할 것이고, 영구동토층과 해양의 산성화가 진행되어 전 세계 생태계를 괴멸시킬 것이라고 한다. 내가 행동하지 않으면 지구는 전방위적인 위험에 이르는 것이다. 이에 수긍하고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려는 독자들도 있지만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드는 독자들도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지구온난화를 잘 알고 굉장히 오랫동안 이 문제에 시달린 것 같지만, 정작 우리가 이를 통해 바꾼 것은 무엇인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개인·기업·정부의 노력은 아직 어느 부분에서도 가시적이지 않다. 팬데믹으로 인한 2020년을 제외하면 전 지구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매년 늘고 있다. 배출량 자체가 늘고 있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 폭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슬프지만, 우리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지구온난화가 인류에 의한 것임을 알지만 이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한 해결 방안은 아직까지 구체적이지 않다. 더 많은 논의가 이뤄져야 하며, 더 많은 기술이 개발돼야 하고, 더 많은 과학적 연구 결과들이 뒷받침돼야 한다. 지구온난화는 장거리 마라톤을 하는 마음으로 지치지 않고 직시해야 하는 현실인데, ‘이게 다 지구온난화 때문이다’라는 성급한 일반화를 담고 있는 기사들의 확대 재생산 속에 개인과 기업 모두 오버 페이스로 너무 빨리 지쳐버리는 게 아닐까 두렵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중의 꾸준한 관심을 위해 과학자와 기자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그림’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