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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마약 관련 보도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없는 상황. 심각한 것은 마약이 10대 청소년의 일상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소년 마약 문제의 현주소를 조명한 연합뉴스의 기획 취재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로 잘 알려진 프랑스 여성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Françoise Sagan)이 1995년 코카인 소지 혐의로 체포됐을 때 남긴 말입니다. 이 유명한 변론 덕분이었을지 몰라도, 사강은 두 차례 기소에서 모두 선고유예 처분을 받았습니다.
지난 4월부터 약 석 달간 청소년 마약을 주제로 취재를 이어가던 내내 떠오르던 것은 사강의 이 말이었습니다. 온라인을 통한 마약 거래가 쉬워지고 의료용 마약류 처방이 늘면서 마약 청정국이라는 한국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는 지금입니다. 마약 투약으로 경찰 포토라인에 선 유명인을 보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됐습니다. 학생들이 몰린 학원가에서는 집중력 강화·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마약이 오갑니다. 마약이 일부 계층의 일탈이 아닌 미래 세대를 중심으로 일상 깊숙이 파고든 것이죠.
초봄부터 한여름까지 서울과 경남 김해, 충남 공주, 충북 제천 등 국내 곳곳을 누비면서 15건,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샌디에이고, 멕시코 멕시코시티 등 국외를 돌면서 12건 등 총 27건의 기사를 썼습니다.
주제가 주제인지라 이 과정에서 마주친 취재원들은 한 명 한 명 모두 다 특별하고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번 기획 기사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청소년과 이들의 새 출발을 위해 힘쓰는 교육·치료기관 관계자 등 인물을 중심으로 취재 과정을 정리해 봤습니다.
살고 싶어 손댔다, 살고 싶어 끊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근처에 있는 LA나눔선교회에서는 한인 120여 명이 마약중독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 7월 23일 만난 에릭 유와 데이비드 박도 마약으로 인해 인생의 밑바닥을 찍고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찾는 중이었습니다.
에릭은 가족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세상에 혼자라는 생각이 들어 약에 손을 댔다고 했습니다. 밀려오는 우울감을 견디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손목과 팔뚝 곳곳에는 자해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데이비드는 친한 친구가 세상을 떠난 뒤 정신적으로 불안해졌고, 마약에 의존하게 됐다고 털어놨습니다. 목숨이 위험한 순간에 내몰려서야, 살고 싶어 이곳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내가 누구보다 삶을 갈망하는구나’라는 걸 깨달았다면서요.

지금 가장 원하는 게 뭐냐고 물었더니 “단약(斷藥)에 성공해 학교에 다니고, 취업도 하고 저축해서 평범한 일상을 다시 꾸리고 싶다. 친구도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한국에 잘 알려진 마약중독자 치료공동체인 다르크(DARC)에서 만난 청년들도 비슷했습니다. 평소 우울증을 앓아 약물에 손댔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할 정도로 상태는 더욱 나빠졌습니다. 마약과 멀어지고 싶었지만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내 깨닫고 약물 자조 모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과거의 선택을 후회한다고 합니다. 언젠가 마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꿈이랍니다.

치유를 돕는 사람들
이 일을 시작한 이유를 들어봤다
이들을 보살피는 임상현 경기도 다르크 센터장은 약물 중독 청소년들에게 “혼자 이겨내려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도 17살 때부터 마약을 시작해 아홉 번이나 감옥을 다녀왔던 이력이 있습니다. 그동안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던 아내가 곁을 지킨 덕분에 40년 만에 단약에 성공했습니다. 그는 만약 치료 공동체에서 조금만 더 일찍 치료받았다면 단약까지 걸린 기간도 줄었을 거라고 아쉬워했습니다. “아이들은 나처럼 되지 말라”라는 생각으로 다르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LA나눔선교회를 이끄는 한영호 목사도 22년간 마약에 빠진 채 갱단의 중간 보스로 대량 마약 거래를 하며 어두운 삶을 살았습니다. 서른 번 넘게 감옥을 들락날락했다고 합니다. 당시 아무도 그의 곁에 없었고, 그게 한스러웠다고 합니다. “누군가 홀로 고통받게 두지 말자”는 의미에서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마약중독자를 돕는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마약중독자를 처벌이 아닌 재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과 혼자 두지 않는 것. 마지막으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교육.
이는 멕시코에서 만난 교육기관과 치료시설 관계자들의 가치관과도 거의 일치합니다. 멕시코에 마약 예방과 치료를 위해 설립된 비영리단체인 청소년 통합 중독예방 센터(CIJ, Centros de Integración Juvenil)를 책임지는 앙헬 프라도 가르시아(Ángel Prado García) 총괄은 “약물에 빠진 청소년들은 잘못이 없다”고 인터뷰 내내 강조했습니다.
마약을 제조·판매하는 일당은 잡아서 엄벌에 처해야 하나, 단순 투약자는 다르다는 겁니다. 이들의 건강을 우선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죠.
마약을 둘러싼 기사는 현재진행형
권리에도 책임이 따릅니다. 사강의 말은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회자될 정도로 매력적이었지만, 현실에서 ‘나를 파괴할 권리’를 행사하면 제약과 비난을 받습니다. 마약을 상습 투약한 혐의를 받는 배우 유아인은 최근 구속 전 영장 심사를 받고 법정에서 나오다 돈다발을 맞기도 했습니다.
청소년 마약을 취재하기 전만 해도 저는 ‘중독자란 방탕하고, 의지가 부족한 존재들’이라고 여겼습니다. 그게 사실인 이도 있겠죠. 그러나 상당수는 호기심이나 우울감을 못 이겨 손을 댔다 중독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지난해 서울에서 검거된 마약류 사범 2,590명 가운데 초범이 75.8%(1,962명)에 달했다는 통계는 마약의 세계에 처음 발을 내딛는 평범한 이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방증일 겁니다.

취재기를 마무리하는 와중에 경기 다르크가 주변 주민들로부터 혐오시설로 받아들여진 데다, 예산 부족 문제까지 겹치며 문 닫을 위기에 놓였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약물 중독자를 치료하는 재활 병원은 심각한 경영난에 몰렸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텔레그램 마약상은 여전히 운영을 이어가고 있고, 마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사고 기사는 쏟아집니다.
이번 기획 한 번으로 마약으로부터 청소년이 보호받고 투약자가 재기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진 않을 겁니다. 그러나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하고, 단약을 위해 힘쓰는 이들에게 비난 대신 격려를 보내는 사회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