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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수선충당금은 공동주택에서 주요 시설을 교체하거나 보수할 때를 대비해 미리 적립해 놓는 비용을 말한다. 문제는 이 돈이 투명하게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것. 이 점을 발견하고 국내는 물론 해외 취재까지 진행해 장기수선충당금에 대해 파헤친 OBS 취재팀의 취재 후기를 따라가본다. 편집자 주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의 한 아파트에 산 지 4년째입니다.
“OO마트 사거리를 경계로 R아파트, L아파트, X아파트 장충금이 왜 이렇게 차이가 나?”
“이렇게 들쭉날쭉한 게 이상하지 않냐? 그래도 기준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기자들 다 뭐하는 거야, 이런 걸 제대로 파봐야지!”
마당발 아내의 푸념 섞인 잔소리가 계기가 됐습니다. 의외로 그동안 관련 기사가 없었다는 데 또 한 번 놀랐습니다. 한국부동산원이 운영하는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이하 K-아파트)에 들어가 살펴보니 과연 장기수선충당금(이하 장충금)이 큰 차이가 났습니다. 관악대로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과 또 그 건너편 장충금이 다 다르고, 사용 내역과 남은 액수도 뭔가 이상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수리하고, 외벽을 칠하고, 관로를 설치하는 기준도 있을 텐데… 점점 찜찜해졌습니다. 당장 관리사무소와 시청 그리고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에까지 문의했지만, 시원한 답변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전국 아파트 관리비 정보를 관리하는 K-아파트와 개별적으로 확인한 아파트의 장충금 정보가 다른 곳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업데이트를 안 했거나 아예 무관심해서 올리지 않은 곳이 너무 많았습니다. 바로 팩트체크와 빅데이터 분석에 나섰습니다.
전세도 서러운데, 장충금까지 내라고?
최초 제보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의외의 루트를 통해 전달됐습니다. 지난 2월 초 본사 백소민 기자가 수원 지역 아파트 현장으로 갔습니다. “다만 보안 방범 기능 향상을 위해서는 거주 입주자 과반 동의를 받으면 관리비를 대체할 수 있다”는 공동주택관리법 시행규칙 문구가 화근이 됐습니다. 바꿔 말하면 아파트 CCTV를 바꿀 때 장충금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입주자가 돈을 내야 한다는 겁니다. 10명 중 4명 이상이 입주 세입자인 상황에서 무조건 돈을 내도록 법을 바꾸겠다는 게 민심을 자극했습니다. 순식간에 120만 명이 기사를 읽었고 이례적으로 3,000개 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댓글에 또 댓글이 수십 개씩 달리는 과열 양상까지 보였습니다. 댓글만 취합해도 기사 한 꼭지가 나올 정도로 꽤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글들이 즐비했습니다.
입주자 대표 회의와 관리사무소 그리고 부녀회까지, 관리비와 장충금 산정에 관련된 모든 조직이 거론됐습니다. 해당 아파트 주민들의 불만도 쏟아져 나왔습니다. 당시 난방비가 많이 올라 민심이 들끓고 있던 상황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습니다. 국토부 측은 검토해 보겠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세입자들에게 피해가 있을 수 없는 구조라며 오히려 보도가 너무 우려에만 치중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국토부 입장과는 별개로 추가 취재를 진행하면서 더 자신감을 얻게 됐습니다.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린 곳이 많아도 너무 많았던 겁니다.
데이터로 들여다 본 장충금 현황과 실제
올 2월 장충금 관련 단독 보도는 오래지 않아 바로 뚜렷한 결과를 도출했습니다. 결국 국토부는 문제가 된 시행규칙을 슬그머니 철회했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 CCTV 등 영상 정보 처리기기를 공동주택 장기수선계획에서 선택적으로 제외할 수 있도록” 하는 단서 조항을 최종적으로 삭제한 겁니다. CCTV 등 장충금으로 고쳐야 할 시설을 엉뚱한 전월세 세입자에게 떠넘길 수 없도록 안전장치가 마련된 셈입다. 아니나 다를까 실제 인천 송도의 한 아파트는 CCTV 공사 입찰을 진행하던 중 OBS 보도를 본 입주자 민원으로 결국 계획을 접고 페널티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장충금은 기준에 따라 세부내역과 금액이 달라질 수 있는 돈이기에 철저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이건 아니다 싶어 국토부가 운영 중인 K-아파트 조기경보시스템을 들여다봤습니다.
조재수 중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와 빅데이터 전문기업 다컴즈의 분석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분석플랫폼을 돌려보니 전국 장충금 규모는 7조 원 넘는 막대한 규모였습니다. 서울과 경기, 인천 등에 80% 이상이 몰렸고 시도별, 지역별로 유의미한 결과 차이가 많았습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와 인천 외곽의 아파트 비교 결과 같은 평수인데도 인천 지역 아파트가 더 많은 장충금을 부담했습니다. 서울 은마아파트처럼 재건축 이슈가 있는 아파트를 빼도 황당한 결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인천 계양구와 화성 향남이 달랐고, 평택과 관악구가 또 달랐습니다. 데이터에만 의존할 수 없는 만큼 관리사무소 수백 곳에 일일이 전화해 확인했습니다.
큰 공사 아닌데도 장충금 확 올랐다면‘일단 의심’
연속보도 이후 살고 있는 아파트 승강기 내부에 못 보던 관리비 세부 내역서가 붙었습니다. 보통 관리사무소 앞에 게시하거나 혹은 보여 달라고 요청해야 공개하던 장충금 내역. 하지만 보도 이후 선제적으로 공개하는 곳이 늘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장충금의 사전적 의미는 “아파트 공용시설을 고치기 위해 오랜 기간 미리 쌓아 놓는 돈”입니다. 그래서 장충금은 매달 차곡차곡 쌓여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를 대비할 수 있습니다.
이번 보도로 장충금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분명한 해법은 있지만 ‘역린’처럼 건드리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짙게 들었습니다. 장충금은 명확한 적립금입니다. 비상시 혹은 주민 주거 복지를 위해 반드시 쌓아놔야 하는 돈인데요. 서울과 화성시 그리고 인천, 안양 등의 사례를 통해 폐해를 짚었습니다. 집값이 떨어진다고 그저 쉬쉬해선 안 됩니다. 고정적인 비율에 따라 집을 소유한 사람이 미래를 위해 적립하고, 아파트 측은 그저 원칙과 수선 계획을 따르면 됩니다. 큰 공사는 무조건 장충금, 그러니까 첫 입주부터 내고 쌓아놨던 돈으로 하는 겁니다. 이게 불변의 대원칙입니다.
장충금 문제, 한국의 주거 문화 탓인가?
장충금 관련 기사가 의외로 적다는 말로 서두를 열었는데요. 특히 구조적인 문제와 개선점에 대해선 그동안 잘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OBS 장충금 기획팀 역시 막막했습니다. 다행히 조재수 교수와 다컴즈 빅데이터 분석이 워낙 광범위하고 촘촘해 연속 보도가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대책과 해법을 던져주는 역할까지 하며 마무리하고 싶었습니다. 공공주택 관련 전문가와 교수들을 만나도 ‘한국만의 독특한 주거 문화’ 때문이란 말이 쏟아졌습니다. 전세 제도와 마찬가지로 장충금 등 한국의 아파트 관리비 문제 역시 우리들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저뿐만 아니라 팀원들 역시 문제를 지적하고 국내에서 제안되고 있는 해법을 살펴보는 것으로만 끝나선 안 된다고 뜻을 모았습니다.
그럼 어디로 누구를 보내야 하는 걸까? 답은 의외로 가까운 데서 찾았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싱가포르 주택 정책을 벤치마킹하려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싱가포르를 1순위로 올려두고 검토를 시작했습니다. 다음은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을 후보군에 포함했습니다. 다만 일본의 경우 아파트(맨션) 문화가 우리에 비해 덜 보편적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하지만 한국처럼 아파트로만 구성된 신도시가 있는 건 아니어도 분명 공공 주거 형태는 존재했습니다. 특히 관리 차원에서 100년 장기 계획을 세웠다는 점에서 장기수선계획과 맞물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중화권 국가도 염두에 뒀습니다. 베이징의 경우 사회주의 시스템으로 주거 정책의 틀이 잡혀졌기 때문에 타이베이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기획취재 지원사업 공모에 선정돼 일본과 대만, 싱가포르에서 장충금이 어떻게 관리·사용되는지 해외 모범 사례를 현지 취재를 통해 면밀하게 점검했습니다.
100년 역사를 바라보는 일본의 장충금, 국가 주도로 치밀하게 관리되는 싱가포르 장충금, 그리고 건설사 주도로 장충금이 관리되는 대만 사례까지 모든 게 부러웠습니다. 심지어 ‘영끌’로 대출받아 큰돈을 들여 마련한 아파트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면 너무 억울한 일 아닐까요. 수선금의 형태와 방식은 국가별로 다를 수 있지만, 핵심은 정기적으로 걷어 쌓아놓은 돈이 주거 복지를 위해 제대로 쓰이는가일 겁니다.
실태 지적은 빙산의 일각, 끝까지 파헤쳐야
매월 관리비와 함께 장충금을 내고 큰 금액이 쌓여가지만, 관리 사각지대에 있는 장충금에 대해 사회적인 의제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낍니다. 그동안 아파트 관리비를 다룬 기사는 여럿 있었지만 금액이 8조 원 가까이 되면서도 쌈짓돈으로 운영되는 장충금에 집중한 기획은 OBS가 처음입니다. 취재진은 국내 장충금 운영의 문제점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해외에 직접 나가 다양한 취재원과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며 생생한 현지 르포를 전하고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
OBS는 완전한 해결과 대책 마련을 목표로 추가 취재를 진행 중입니다. 빅데이터를 통한 정확한 분석을 통해 취재하는 만큼 좀더 의미 있는 결과를 기대해 봅니다. 아파트 관련 취재는 대단히 음성적으로 이뤄집니다. 취재 대상이 매우 꺼리는 취재이기도 합니다. 집값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민들이 항의하면 관리사무소장은 일자리를 잃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제일 확실한 방법은 일일이 전화해 직접 확인해 보는 것입니다. 2개월 혹은 3개월 치 자료를 입력
하지 않으면 과태료 500만 원이 부과되지만, 아직 실제로 부과된 적은 없어 보입니다. 그만큼 국토부 K-아파트 데이터도 허점이 많습니다.
빅데이터 분석의 핵심은 정확도지만 원데이터가 잘못되면 전체가 어그러집니다. 이런 전체적인 상황을 관리·감독하는 기관이 해당 시·군청입니다. 하지만 놀라운 건 이런 광범위한 업무를 공무원 한 명이 담당한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아파트 등 공공주택 전문가가 아니라 대부분 감사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맡습니다. 아파트 수십만 채가 일목요연하게 모니터링될 리 만무합니다. 장충금 비리에 대해 지자체가 부과할 수 있는 벌금은 최대 2,000만 원입니다. 보통 아파트 관리자 측 내분이 있을 때 제보와 민원으로 들통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듯 곪을 대로 곪았을 때 비로소 민원을 통해 문제가 제기되기 때문에 선제적 예방은 그야말로 헛구호입니다.
K-아파트 적발 경보 시스템에서 잡아낸 사례를 국토부에 공개해달라 요청했지만 “그러한 사례가 있지만 구체적인 사례를 말해줄 순 없다”며 애매한 입장만 되풀이했습니다.
어찌 보면 금단의 영역인 개인 자산, 아파트 관리비 중 장충금을 건드린 게 누군가에겐 아플 겁니다. 국토부 역시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설명하려면 피곤할 겁니다. 하지만 싱가포르와 대만 사례에서 보듯 정부가 나서면 확 바뀝니다. 장충금은 아파트 적립금이기 전에 주거 복지의 상징 같은 존재입니다. 8조 원 가까운 돈을 공동 펀딩해서 3년 차 아파트 외벽을 공동도색하고, 10년 차 아파트 엘리베이터 공사를 경쟁을 붙여 효율적으로 진행한다면 장점이 훨씬 많지 않을까요? 쉬쉬하고만 있기엔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아래는 보도 이후 국토부가 개선하겠다고 밝힌 내용입니다.
- 장기수선계획 수립과 장충금 집행의 적정성 모니터링
- 장기수선계획 실무 가이드라인 현행화
- 장기수선계획 실무 가이드라인 현행화
- 장기수선계획 수립 기준 개선 검토
- 중앙공동주택관리지원센터를 통한 민원 상담
- K-아파트 조기경보시스템을 통한 장충금 부적정 집행 등 이상징후 적발
- 관리 주체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중앙공동주택관리지원센터 업무 강화
- 공동주택 단지의 수선 계획 수립·조정 지원과 현장 상담 서비스
- 공동주택관리 교육(온·오프라인 병행) 확대
OBS는 장충금이 ‘장기적으로 주민들이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적립금’이 되도록 샅샅이 살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