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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는 건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하는 일상적인 일이다. 과연 그럴까? 한겨레 사회부 이슈팀은 기획 취재를 통해 이 질문에 다른 답이 있음을 세상에 알렸다. 누군가에게는 씻는 것이 그 어떤 일보다 어렵고 절실하다는 사실을 그들의 취재기를 통해 확인해본다. 편집자 주
‘올해는 어떤 기획 아이템을 발제해야 할까.’
해마다 폭염이나 혹한이 찾아오면 언론사 사회부 기자들은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1년 전 여름·겨울에 내놨던 기획 아이템과는 다른, 타 언론사와 차별된 뭔가 색다른 아이템은 없을까. 지난 여름 폭염을 앞두고 한겨레 사회부 이슈팀원들도 여느 기자들처럼 기획 아이템 선정으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박수지 이슈팀장이 같은 팀 곽진산 기자가 1년 전쯤 ‘노숙인과 청결’이라는 주제로 기획 기사 아이템을 발제했던 걸 기억해 냈고, 노숙인을 포함해 노인·장애인·노동자 등 층위를 넓혀 ‘씻을 권리’라는 관점에서 기획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한겨레에서 권리 중심의 기사를 많이 다루지만, 씻는다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 한 번도 비장애인 관점에서 권리로 체감하지 못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씻는 문제가 보다 절실해지는 한여름 폭염 시기에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은 씻을 권리를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취재하면 할수록 누군가에게 씻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씻을 공간부터 깨끗하고 적당한 온도의 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신체까지. 씻는 행위는 신체·경제·사회적 약자는 온전히 누릴 수 없는 권리임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개인의 위생과 청결 문제가 단순히 건강권과 직결된다는 점을 넘어서, 씻을 권리가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유지하고 사회 구성원으로 환대받을 수 있는 최소 요건을 부여하는 요소임을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당연한 질문을 던지다
“씻을 공간은 있나요?”
“씻지 못하면 어떤 고충을 겪게 되나요?”
많은 이들이 자연스레 누리지만 누군가에게는 멀기만 한 <씻을 권리> 기획1)을 진행하면서, 지금까지 제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며 취재원에게 물어야 했습니다. 일하면서 혹은 집에 머물며 제대로 씻을 공간이 있는지, 씻기 위해선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씻지 못해 어떤 고충을 겪는지…. 물 나오는 곳은 정수기밖에 없는 휴게 공간에서 물티슈로 겨우 땀을 닦아내는 청소 노동자, 누군가의 도움 없인 화장실을 찾기조차 버거운 중증장애인, 샤워는커녕 용변 보는 일도 버거운 건설 현장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씻을 수 있냐’는 물음은 당연한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씻을 권리> 기획을 하며 만났던 많은 이들은 지금까지 누가 물어주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도중에 끼어들기 힘들 정도로 제대로 씻지 못하며 겪은 어려움과 서러움, 분노를 절절하게 토해냈습니다.
‘당연하지 않다’는 제 깨달음을 기사에 고스란히 드러내고 독자들도 공감해주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청소 노동자들이 씻지 못해 겪는 고충과 열악한 노동 환경을 매우 디테일하게 취재하려고 신경 썼습니다. 작업복에 스며든 땀 냄새와 음식물 쓰레기 악취를 얼마나 생생하게 전할 수 있을지, 중증장애인이 10분간의 간단한 샤워를 하기 위해 화장실까지 기어가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누군가에겐 당연한 과정들이 이들에겐 하루하루 견뎌내야 하는 고군분투라는 사실을 기사에 고스란히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기사에 담지 못했지만 마음 아픈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해가 뜨기도 전인 이른 새벽 용산구의 음식물 쓰레기 청소 노동자들을 만나 현장 취재를 진행했는데, 이날 저는 5톤짜리 쓰레기 수거 트럭에 함께 타면서 그들의 업무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트럭에서 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도중, 한 분이 “종종 술에 취한 시민들로부터 ‘악취 난다’, ‘저리 가라, 너도 쓰레기다’ 같은 말을 들으면 상처받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난 뒤에도 계속 그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아 한동안 마음이 아팠습니다.
현장 취재를 마친 뒤 제가 만난 용산구 청소 노동자들 이외에 다른 지역 청소 노동자의 노동 현실은 어떨지 궁금했습니다. 용산구 청소 노동자들은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로 화장실과 샤워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을 거라고 언질을 줬고, 다른 지역 청소 노동자들의 노동 현장도 기사에 담으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 기획을 준비했던 곽진산 기자와 청소 노동자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2주간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를 보면, 씻지 못해 고충을 겪었던 청소 노동자는 10명 중 7명에 달했습니다. 씻지 못한 탓에 타인에게 냄새가 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노동자도 절반을 넘었고(59.5%), 심지어 피부 질환을 겪는 이들도 상당수(35.7%)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피한다’(41.7%)거나 ‘스스로 자존감이 떨어진 적이 있다’(32.1%)는 이들도 10명 중에 3~4명이었습니다. ‘왜 씻지 않느냐’는 폭언에 가까운 말을 들었던 노동자분들도 있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열악한 현실에 안타까웠던 한편, ‘설문조사 진행하길 참 잘했다’는 안도감도 들었습니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깨달은 것들
열 번 듣는 것보다 단 한 번의 경험을 통해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다는 걸 중증장애인의 씻을 권리를 취재하면서 깨달았습니다. 경남 김해시에 사는 중증장애인을 인터뷰하러 간 당일, 저는 일일 활동지원사가 돼 장애인들의 열악한 씻을 권리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팔, 다리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은 물론 장애인의 샤워 활동을 지원하는 활동지원사도 마찬가지로 씻거나 씻기는 행위에 엄청난 체력이 필요하고, 미끄럽고 비좁은 화장실 여건상 자칫 크게 다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두 팔과 다리 거동이 불편한 중증장애인 취재원이 고개를 숙인 채 팔 힘으로 바닥을 짚고 버티는 사이 재빨리 샴푸질을 했습니다. 혹여나 취재원의 팔 힘이 풀려 미끄러질까 조바심을 내며 서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머리 감기가 끝나고 젖은 옷을 갈아입을 때도 상당한 힘이 필요했습니다.
그날 저는 몸 전체 샤워가 아닌 머리 감기에만 1시간가량 활동지원을 했습니다. 머리 말리기까지 모두 마치고 나서야 제 티셔츠가 땀으로 흥건해졌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취재원도 저도 온몸이 다시 땀으로 범벅이 된 겁니다. “샤워를 해도 다시 땀을 한 바가지 흘리니 욕창과 땀띠가 사라지질 않는다”는 장애인들의 말이 과장이 아님을, 그날 저는 몸소 깨닫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영상으로 독자에게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씻는 행위가 고군분투 그 자체인 중증장애인들의 일상을 글과 함께 영상으로 드러낸다면 더욱 생생하게 기사 취지가 전달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습니다. 홀로 카메라 삼각대를 놓고 정신없이 촬영하느라 영상의 질이 많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상당수 독자분께서 잘 봐주신 것 같아 찍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2)
더러움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이번 기획 기사를 취재하며 가장 고민되고, 힘들었던 지점이었습니다. 씻는다는 건 지극히 개인의 사생활 영역으로 자신의 더러움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래서 실명 보도가 우선인 한겨레 보도 준칙을 지키기 어려웠습니다. 또한 씻지 못하는 이들이 느끼는 부끄러움을 언론이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고민도 있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질문을 하나하나 던질 때마다 취재원들에게 혹여 상처를 주진 않을까 말투나 표정을 신경 쓰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번 <씻을 권리> 기획 기사 취재에 응해주신 취재원분들께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것까지 말하는 게 참 민망하네요”, “기자님 듣기에 거북하실 수 있겠지만…”이라며 민망함을 무릅쓰고 솔직하고 담담하게 제대로 씻지 못하는 현실과 그로 인한 고통을 자세히 전달해 준 취재원들. 씻는 행위 과정을 처음 만난 기자에게 몸소 보여준 취재원들의 모습에 겸허해진 순간이 참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기사가 그렇겠지만, 특히 이번 기획은 취재원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내밀하고 타인에게 드러내기 싫은 부분까지 담담히 기자들에게 설명해 준 취재원들의 용기에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1) https://www.hani.co.kr/arti/SERIES/1869/
2) https://www.youtube.com/watch?v=pWlAn9bUSJ0&t=103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