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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방송계의 혁명과도 같았던 케이블TV는 시간이 지나며 등장한 여러 미디어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오랜 공생관계인 홈쇼핑사와도 수수료 갈등이 심화하는 실정이다. 케이블TV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편집자 주
흥망성쇠(興亡盛衰). 나라나 집안이 융성했다가 망하고 다시 흥한다는 뜻이다. 요즘 케이블TV 업계 상황을 가만히 바라보면 흥망성쇠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방송업계에 혜성처럼 등장해 10여 년간 활황기를 누렸지만, 경쟁력 하락 등으로 사세가 쪼그라든 모습이 ‘흥’과 ‘망’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는 것 같다.
물론 케이블TV 업계에 선뜻 ‘망했다’는 표현을 쓰기에는 이르다. 하지만 가입자가 점점 줄어들고, 든든한 수익을 가져다주던 홈쇼핑사와의 갈등을 겪고, 넷플릭스 등 OTT의 공습으로 악재가 끊임없이 이어지며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핫’한 등장, ‘흥’한 수익
케이블TV의 흥과 망을 얘기하기 위해서는 2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케이블TV는 지난 1995년, ‘뉴미디어’로 불리며 혜성같이 등장했다. 당시 고작 지상파 4개(KBS, MBC, SBS, EBS) 채널만 나오던 구닥다리 TV 시대를 끝내고, 24시간 동안 30개에 가까운 채널을 제공하며 국민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케이블TV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유명 호텔에서는 축하쇼가 열렸고, 당시 대통령이던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은 “종합유선방송(SO, System Operator)의 출범을 계기로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다채널 시대에 진입하게 됐다”며 “이에 따라 국민들은 보다 높은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축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당시 케이블TV의 등장이 얼마나 ‘핫’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케이블TV는 출범 이후 10여 년 동안 승승가도를 달렸다. 당시 증권가에서는 손만 대면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라는 별칭을 붙일 정도였다. 채널 선택권이 넓어진 데다 24시간 동안 TV를 볼 수 있게 되면서 소비자들은 너도나도 케이블TV를 설치했다. 출범 당시 20만 명 정도였던 가입자는 2004년 말 1,290만 명, 2009년에는 1,529만 명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물론 케이블TV는 소비자에게 받는 가입료, 광고, 채널 수수료까지 다방면에서 수익을 얻었다. 케이블TV의 ‘흥’ 시대였던 셈이다.
IPTV의 등장으로 시작된 케이블TV의 위기
그러나 경쟁자가 등장하면서, 케이블TV에는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우게 된다. 케이블TV의 첫 번째 경쟁자는 IPTV로 불리는 인터넷TV였다. 2009년 첫 등장한 IPTV는 통신사라는 든든한 대기업을 등에 업고 단말기와 유선인터넷을 결합해 할인 마케팅을 펼치며 세를 넓혔다. 그동안 돈을 내고 케이블TV를 이용하던 사람들은 사실상 무료에 가까워진 IPTV로 슬그머니 자리를 옮겼다. 당시 케이블TV 요금은 월 1만 5,000원대로 형성돼 있었는데, IPTV의 등장으로 가격경쟁이 심해지면서 월 1만 원 이하의 상품이 우후죽순처럼 나왔다.
문제는 케이블TV 업계에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유료방송 1위 사업자라는 지위에 안주해 진입 반대, 규제 강화 등만 소심하게 외쳤을 뿐, 변화를 꾀하지 않았다. 그렇게 IPTV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사람들의 삶 속으로 스며들었다. 실제 방송통신위원회의 <2015년도 방송시장경쟁상황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IPTV의 매출은 출범 첫해인 2009년 2,200억 원에 불과했으나, 2014년 약 1조 5,000억 원으로 7배 가까이 성장했다. 같은 기간 가입자 수도 1,085만 명까지 증가했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케이블TV는 가격을 내리며 경쟁에 뛰어든다. 하지만 이 같은 ‘저가 경쟁’은 추후 케이블TV의 경쟁력을 더 잃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지난 2015년 발간된 《케이블TV 20년사》에서는 “전국 규모 거대 통신사업자의 진입으로 케이블 사업자들은 힘겨운 경쟁에 직면하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기술하고 있다. 가입자가 줄어드는 마당에 가격 출혈로 인해 운영은 더 어려워지며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OTT에 밀리며 가입자 감소
두 번째 경쟁자는 바로 넷플릭스로 대변되는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다. 사실 OTT는 케이블TV 업계뿐 아니라 모든 유료방송의 터전을 위협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국내에 2016년 처음 상륙했다. 사실 당시만 해도 OTT는 케이블TV 업계의 경쟁자가 아닌 IPTV에 대적할 동업자로 인식됐다. 케이블TV는 가입자를 끌어 모을 요량으로 OTT와 손을 잡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OTT는 방송업계 거대 공룡으로 성장했다. OTT는 이용자들이 더 이상 광고를 시청하지 않고도 고퀄리티의 영상을 볼 수 있게 해줬다. 특히 코로나19 시기를 겪으면서 집안에서 시간을 많이 소비했던 사람들은 OTT에 열광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IPTV·케이블TV·위성방송 등 유료방송 가입자는 3,624만 8,397명으로 상반기 대비 0.67%(24만 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1) 가입자 증가율이 1%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집계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반면 국내 OTT 앱 사용자는 3,000만 명을 넘어서며 급성장을 보이고 있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증가율이 112.3%, 48.3%, 26.8%, 7.5%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2) OTT의 위협은 현재진행형이다.
케이블TV 업계 관계자는 “고령층과 일부 지방을 제외하면 가입자가 꾸준히 줄고 있는 상황”이라며 “IPTV도 OTT와의 경쟁에서 고전하는 가운데 자본력이 부족한 케이블TV는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홈쇼핑과의 수수료 갈등까지... 악재 겹쳐
쟁쟁한 경쟁자 등장 외에 공생관계를 유지하던 홈쇼핑사와의 갈등도 악재가 됐다. 케이블TV의 매출을 유지케 해주던 홈쇼핑사와 수수료에 대한 의견 차이로 관계가 틀어지면서 골치를 썩이고 있는 것이다.
케이블TV 산업은 LG헬로비전, 딜라이브 등의 망사업자(SO)와 티비엔(tvN), 씨제이이앤엠(CJ ENM) 같은 프로그램사업자(PP)로 구분된다. 망사업자는 가입자들로부터 수신료를 받고, 프로그램 제공자는 망사업자로부터 프로그램을 제공한 대가를 받는다. 프로그램 제공자 중 독특하게 망사업자에게 돈을 내는 사업자는 TV홈쇼핑이다. TV홈쇼핑은 협상을 통해 방송 매출의 일부를 망사업자에게 송출 수수료로 제공한다.
수수료 계약은 1년마다 진행되고 산정 근거로는 홈쇼핑 상품 판매 매출 증감과 유료방송 가입자 수 증감 등이 적용된다. 특히 지상파에 가까운 앞번호일수록 시청률이 높다. 홈쇼핑 업체들은 대부분 지상파 근처에 채널 번호를 쓰고 있어 수수료가 높은 편이다.
그런데 문제는 최근 TV홈쇼핑의 매출이 줄면서 발생했다. 코로나19 초반 날개 돋친 듯 팔리던 상품들이 엔데믹으로 접어들며 판매가 점점 감소하면서 홈쇼핑사도 먹고살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홈쇼핑의 방송 매출액은 2018년 3조 1,047억 원에서 2022년 2조 8,998억 원으로 6.5% 줄었다. 반면 송출 수수료는 1조 4,304억 원에서 1조 9,065억 원으로 33% 늘었다. 매출은 줄었는데 수수료는 늘다 보니 방송 매출액 대비 송출 수수료 비중은 65.7%까지 높아졌다.3) 홈쇼핑사 입장에선 1만 원 짜리 물건을 팔아서 6,500원을 임대료로 내는 셈이다.
사실 그동안 홈쇼핑사들의 불만은 계속 있었지만, 특히 올해는 갈등이 크게 일었다. 홈쇼핑사들은 수수료를 낮춰주지 않는다면 케이블TV에 방송을 송출하지 않는 블랙아웃까지 감행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놨다. 올해 이 같은 갈등을 겪은 사례만 해도 롯데홈쇼핑과 딜라이브, CJ온스타일·현대홈쇼핑과 LG헬로비전, NS홈쇼핑과 LG유플러스, 현대홈쇼핑과 KT스카이라이프 등 5개나 된다.
케이블TV 업계도 물러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경쟁자 등장으로 가입자가 점차 줄어드는 상황에서 매출의 40% 가까이 차지하는 홈쇼핑 송출 수수료까지 낮추기에는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일부 사례는 협상이 완료됐지만, 일부는 정부에 수수료 산정을 위한 중재를 요청하는 등 서로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홈쇼핑도 물건을 팔아야 하는 케이블TV 채널이 절실히 필요하고 케이블TV는 홈쇼핑 송출 수수료 없이는 경영활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블랙아웃까지는 가지 않을 테지만, 수수료 분쟁은 매년 연말마다 반복되는 고질적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케이블TV의 위기, 미국도 마찬가지
케이블TV의 위기가 한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미국 케이블TV 사업자들도 가입자가 감소하고 사업자 간 수수료 갈등을 빚는 등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실제 미국 케이블TV 가입자는 빠르게 줄고 있다.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독립 리서치 기관인 모펫 나단슨(Moffett Nathanson)에 따르면 매년 500만 명 이상의 미국인이 케이블TV 구독을 종료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OTT 이용이 확대되면서 케이블TV 가입자 감소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미국 TV 시청률 조사업체 닐슨에 따르면 지난 7월 스트리밍 플랫폼의 시청 시간이 전체 시청률의 34.8%를 차지해 케이블TV 시청 점유율(34.4%)을 0.4%P 차이로 앞질렀다. 전문가들은 2027년까지 미국 가정의 케이블TV 보급률은 30%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최근엔 미국 2위 케이블TV 사업자인 차터 커뮤니케이션(CHTR)과 디즈니 사이 갈등도 있었다. 디즈니는 차터에 ESPN을 포함한 디즈니 채널을 제공하고 수수료를 받고 있는데, 최근 수수료를 대폭 인상하려 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 갈등으로 약 10일의 블랙아웃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사실 차터가 디즈니가 케이블TV 등 유료방송을 위한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에 힘을 쓰지 않고 디즈니플러스에만 투자하는 것을 불만으로 생각한다고 본다. 그만큼 미국의 케이블TV도 가입자들을 끌어 모으기 힘들어졌다는 소리다.
그나마 미국의 케이블TV 상황이 한국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미국 케이블TV사는 현재 OTT와의 협업이라든지 인터넷망 확대와 같은 대안이 있다는 것이다. 국내 케이블TV 업계는 그간 인터넷망 투자도 미비한데다, 낮은 가입료로 인해 수익도 적다 보니 OTT에 투자할 여력도 없었다.
한정훈 다이렉트미디어랩 대표는 “미국과 국내 케이블TV를 보면 등식으로는 맞지 않지만 전통적인 유료방송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일맥상통한다고 본다”며 “다만 미국의 경우 OTT와 번들 상품을 만들거나 방송사업 외에 인터넷 속도를 올리는 등의 작업을 하며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케이블TV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양한 수익원 확보와 콘텐츠 개발 등이 절실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국내 케이블TV는 지역 방송의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관련 콘텐츠를 만들고 수익원도 다양하게 확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케이블TV 업계는 협업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정부에 규제를 풀어달라는 요구 등을 하고 있다.
사실 흥망성쇠의 속뜻은 ‘순환하는 세상의 이치’를 의미한다. 흥망이 있다면 성쇠를 이루는 시간도 온다는 것이다. 흥망을 지나고 있는 케이블TV 업계가 앞으로 ‘성쇠’를 이뤄 다시 빛을 내는 시대를 맞을 수 있을지 주목해야 할 시간이다.
1) <하반기 유료방송사업 가입자 수 및 시장점유율>,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022
2) <2023년 OTT앱 시장 동향 분석>, 와이즈앱, 2023.5.17, https://www.wiseapp.co.kr/insight/detail/425
3) 한국TV홈쇼핑협회, http://www.kota.re.kr/introduce/indicator_p6.ph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