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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제작기] 경향신문 < 이토록 XY한 대법원 > 취재기
취재기제작기 | 등록일 : 2023-12-29

우리나라에 첫 여성 대법관이 탄생한 지 20년. 현재 여성 대법관은 몇 명일까. 경향신문의 <이토록 XY한 대법원> 기획 시리즈는 남성 중심적인 대법원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젠더 이슈를 넘어 취재진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지 취재 후기를 통해 확인해 본다. 편집자 주

 

<이토록 XY한 대법원> 기획 시리즈1)의 출발점은 조재연·박정화 대법관 퇴임을 앞둔 2023년 6월이었다.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임으로 특정 후보를 제청할 경우 대통령실이 임명을 보류할지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대통령실이 임명 보류 대상으로 간접 지목한 두 명의 후보는 공교롭게도 모두 여성이었다. 논란 끝에 남성들이 대법관으로 제청·임명됐고, 대법관 13명 중 4명까지 늘었던 여성 대법관 수는 다시 3명으로 줄었다. 2024년 1월 1일 임기가 끝나는 민유숙 대법관 후임에 여성이 제청·임명되지 않으면 여성 대법관 수는 2명까지 줄어들 수 있는 갈림길이었다.

 

여성 대법관 한 명 늘어나기란 왜 이렇게 힘든가. 대법원은 법적 다툼에 대해 최종적 판단을 하고 사회의 규범적 가치와 기준을 제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대법원을 구성하는 대법관의 다수는 언제나 남성이었다. ‘이번엔 여성 대법관이 나올까’ 대법관 인선 때마다 여성 법조인들은 전전긍긍했다.

 

다양한 특성의 대법관이 필요하다는 보도를 그간 해 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경향신문은 대법관 다양화에 대한 내용을 지속적으로 보도했다. 대법원장의 서열 중심 관행과 ‘쪽지 제청’ 문제2), 대법관 천거 명단과 후보추천위원회 구성의 획일화 등이다. 그런데 왜 대법관 다양화가 필요한지, 다양화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심층적으로 파고든 적은 별로 없었다.

 

법조인들을 만나 대법관 다양화에 대해 물으면 흔히 ‘여성을 대법관 시키고 싶어도 할 사람이 없다’, ‘다양성보다는 실력이 우선이지 않느냐’는 식의 말이 돌아왔다. 정말 그럴까. 정말 대법관을 할 여성이 부족한가, 과연 다양성과 실력은 배치되는 개념일까. 우리는 궁금해졌고, 취재해 보기로 했다. 마침 2023년은 한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관인 김영란 대법관이 취임한 지 20년이 된 해였다.


시민의 관점에서 법조 보도를 생각하다

 

기획 시리즈 취재에 참여한 3명의 기자(이혜리·김희진·김혜리)는 모두 사회부 법조팀 소속이다. 여러 해 법조 분야를 취재하면서 느낀 점이 하나 있었다. 한국 언론이 생산하는 법조 기사는 그동안 다소 획일화됐었다는 점이다. 보도 주제로는 고위공직자 부패 사건, 보도 시기로는 검찰 수사 단계에 집중돼 있었다. 보도 형식으로는 스트레이트 기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정치적으로 부딪히는 사건들이 최근 몇 년간 법조에서 다뤄지면서 법조기자들은 시민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런 비판은 법조 기사가 누구를 위한 것이어야 하는지 돌아보는 계기로 작용했다. 우리가 대법관 다양화를 취재하게 된 것은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았다. ‘법원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라는 주제를, 법관의 관점이 아니라 ‘시민의 관점’에서, 단편적이지 않고 심층적으로 파헤쳐 보면 대안적 법조 보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취재 소재의 포착, 취재 방향과 방법의 설정, 기사 작성까지 젠더적 관점이 반영됐다. 3명의 기자가 모두 여성인 것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미투(#MeToo·나는 고발한다) 운동, 텔레그램 N번방 사건 등 법원·검찰과 관련한 젠더 이슈가 언론에서 주요하게 다뤄졌지만 이는 특정 사건 발생 시의 일시적인 주목일 뿐 일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대법관 다양화를 젠더라는 키워드로 풀어내고, 나아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법원의 역할을 젠더적 관점에서 분석해 보고자 했다. 현재(2023년 12월) 경향신문 법조팀은 법조반장 이하 현장기자 5명이 모두 여성이다. 법조팀에서 젠더 이슈를 거리낌 없이 꺼내 들 수 있었던 배경엔 이런 구성이 있었다.

 

일각에선 여성 기자들이 젠더 이슈를 다룰 때 편향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편향적인지도 모르겠지만, 오히려 여성 기자가 젠더 이슈를 다룰 때 그만큼 많이 고민하게 되는 측면도 있다. 젠더 이슈를 다룬 기사가 어설픈 주장이나 구호로만 남지 않고 독자들을 두루 설득하며 사회의 진지한 논의의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는 차원에서는 젠더 이슈를 다룰 때 일상적인 취재·보도 때보다 더 많은 자기 성찰과 자기 검열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번 기획 시리즈 취재·보도에서도 그랬다. 관념적이고 추상적· 당위적인 논의에서 벗어나 대법관 다양화가 왜 필요한지를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것에 초점을 뒀다. 논리와 근거를 최대한 명확하게 제시하고, 반론의 가능성까지 고려하면서 기사 내용을 구성하려고 했다.

 

 


 

“자료가 없으면 우리가 만든다” 

일일이 찾은 숫자에 덧붙인 생생함

 

대법관 다양화가 오랫동안 언론을 통해 언급됐지만 정작 국내 연구자료를 찾아보니 자료가 거의 없었다. ‘자료가 없으면 우리가 만들자’고 했다. 그게 독자들에게 새로운 정보이고 단독 기사였다.

 

‘숫자로 보여주자’는 게 우리의 1차 목표였다. 전체 법관 중 여성 법관의 비율이 얼마인지, 각급 법원에 여성 법관 몇 명이 배치돼 있는지에 대해서는 어렵지 않게 자료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재판받는 당사자인 일반 시민으로서는 전체 법원에 여성 법관이 얼마나 있는지보다 내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에 여성 법관이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에 따라 각각의 재판부에 여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봤다. 전국 6개 고등법원과 서울지역 8개 법원의 재판부 현황을 전수 분석한 결과 고등법원 118개 재판부 중 여성 법관이 1명도 없는 재판부가 절반이 넘는다(50.8%)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달에 걸쳐 법원이 공개하는 재판부 구성표를 토대로 일일이 판사 한 명, 한 명의 성별을 조사한 끝에 찾아낸 숫자였다.

 

여성 대법관의 판결이 하급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숫자로 정리해보고 싶었다. 여성 대법관 주심의 젠더 판례가 하급심 판결에서 인용된 횟수를 세어봤다. 언론에는 권순일 대법관 주심의 ‘성인지 감수성’ 판결이 많이 알려졌지만 성인지 감수성을 형사판결에 처음 적용한 판결의 주심은 박정화 대법관이었다. 이 판결이 5년 동안 하급심 판결에서 총 3,697회 인용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여성 대법관이 한 판결의 파급효과가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는 숫자였다.

 

 

 

그 밖에도 새로운 정보와 숫자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한국 법원 특유의 관료제 분위기 속에서는 법원장, 수석부장판사와 같은 사법 행정 라인이 여전히 큰 힘을 가진다. 하지만 2004년 1호 여성 법원장 취임 후 2023년에도 여성 법원장은 1명이라는 점, 대법원장 손발 역할을 하는 법원행정처 차장 이하 법관 14명이 전부 남성이라는 점을 짚어냈다.

 

이런 ‘숫자’들에 현직 판사들의 생생한 말로 살을 붙였다. 법원은 보수적인 분위기가 심하고, 판사들은 개인적인 생각을 기자 같은 외부인에게 드러내는 것을 껄끄러워하기에 인터뷰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느 대목에서는 판사들의 입에서 말이 술술 나올 때도 있었다. 그만큼 성평등 정책의 필요성에 대한 법원 내부의 문제의식이 쌓여있고 기회만 있다면 충분히 꺼내놓고 논의할 수준에 이르렀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리천장이 아니라 강철천장이 있다’는 한 판사의 말에는 출산·육아·가사 노동이 여성 법관을 옭아매는 굴레로 작동하는 법원의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국 법원의 젠더 구성이 강간 판결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를 한 학자 인터뷰는 취재하면서도 매우 흥미로웠다. 미국에서는 여성 법관의 존재만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만 관료제 분위기가 있는 한국에서는 존재만으로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대신 여성 법관이 연차가 높고 주심일 때 형량이 다소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였다. 우리가 자체적으로 뽑아낸 숫자들과 발굴한 자료들, 일선 판사들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엮어내면서 대법관 다양화를 깊이 있게 조명한 발군의 기획 시리즈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기획 시리즈의 처음과 마지막 기사에서는 주제 의식을 확장했다. 젠더를 이야기하는 것은 여성의 권리뿐 아니라 여러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전 세계 각국의 최고법원 구성을 조사해 보니 단순히 성별 비율만 따지는 게 아니라 다양한 가치관은 물론이고 인종과 성적 지향 등을 지닌 소수자 대법관이 배치되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대법관 다양화의 범주를 여성에서 나아가 나이·출신 학교·지역·장애·경력·성적 취향·가치관 등으로 넓혀야 한다고 썼다. 그렇게 18개의 기사가 끝났다. 

 

 

 

 

 

 

 

1) https://m.khan.co.kr/series/articles/as378

2) 대법원장이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 추천자 명단이 적힌 ‘쪽지’를 내려 보내는 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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