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사 상세
[집중점검1: 전쟁보도와 언론] 위험 지역 취재, 보호받지 못하는 언론인
집중점검 | 등록일 : 2023-12-29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민간인 중에는 언론인도 포함되어 있다. 언론인들은 어떠한 안전장치도 갖추지 못한 채 가자지구에 사실상 고립된 상태다. 취재를 넘어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는 가자지구 언론인들의 현황을 확인해 본다. 편집자 주

 

여태껏 이렇게 험악한 취재 지역은 없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이야기다. 우선 희생 언론인 숫자가 이를 잘 말해준다. 2023년 1월부터 전 세계적으로 45명의 언론인이 취재 현장에서 숨졌는데, 이 가운데 13명이 지난해 10월 7일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취재하던 언론인이었다. 1985년 언론 자유 증진을 위해 프랑스 파리에서 창설된 국제비정부기구인 국경없는기자회(RSF)가 지난해 12월 14일 발표한 보고서의 내용이다. 최일선에서 취재 도중 목숨을 잃은 경우만 따진 숫자다.


언론인·미디어 종사자 사망자 최소 64명 

 

1981년 미국 뉴욕시에서 설립된 독립·비영리·비정부기구인 언론인보호위원회(CPJ, The Committee to Protect Journalists)가 2023년 12월 17일 내놓은 데이터는 이보다 더 포괄적이다. CPJ의 예비 조사에 따르면 지금까지 64명의 언론인과 미디어 종사자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관련해 목숨을 잃었다. 언론인과 미디어 지원 인력을 막론하고, 취재 도중에 숨진 것은 물론 집이나 사무실에 머물다 폭격 등으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를 모두 포함한 숫자다. 64명 가운데 57명이 팔레스타인인, 4명이 이스라엘인, 3명이 레바논인이었다. 그 외에도 13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3명은 실종됐고, 19명은 구금됐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당일에만 6명의 언론인이, 2023년 11월 18일에는 5명의 언론인이 각각 숨져 최악의 날로 기록됐다. CPJ는 1992년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기 시작한 이래 현재 언론인의 안전이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고 평가했다. 

 

CPJ의 메나(MENA, 중동 및 북아프리카) 프로그램 조정관인 셰리프 만수르(Sherif Mansour)는 “언론인은 위기 상황에서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민간인”이라며 “분쟁 당사자들의 공격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러한 당위성과 현실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장악하고 있는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수많은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연일 폭격하면서 지상 작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민간인 전체를 보면 가자지구에서 1만 8,000명, 이스라엘에서 1,200명이 목숨을 잃었다. 민간인 피해에서 언론인도 예외가 아니다. 

 

이스라엘군은 2023년 11월 27일 AFP와 로이터 통신에 “언론인들은 폭격의 목표물이 아니다”라면서도 “가자지구에서 활동하는 언론인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가자지구에선 취재 자체가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인 셈이다. 

 

가자지구 현지에 남은 외부 언론사 소속 언론인이나 프리랜서 언론인, 관련 종사자들은 폭격과 교전으로 인한 신변 위험과 함께 열악한 취재 환경에 고통받고 있다. 미디어 종사자의 근무 시설과 가족의 집이 수시로 폭격받아 실제로 숨지거나 부상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각 언론사는 현장 취재를 하는 언론인에게 ‘프레스(Press, 언론)’라고 커다랗게 적힌 안전모와 방탄복을 지급하고 있지만 미사일, 폭탄, 로켓, 야포가 날아오는 상황에선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나마 준비하지 않아 피할 수 있던 파편에 손상을 입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미사일 공격으로 건물이 무너지고, 탈출한 인질이 지상군의 오인 사격으로 숨지는 등의 극한상황에서 언론인만의 안전 확보 방안 마련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열악한 취재 환경을 넘어 생존이 과제

 

미국의 공영 라디오인 내셔널퍼블릭라디오(NPR, National Public Radio)는 지난해 11월 11일 가자지구 취재의 어려움을 보도했다. CPJ의 셰리프 만수르 조정관은 “가자지구의 언론인이 취재 시 가장 어려운 점은 안전과 함께 취재의 기본인 전기와 인터넷 확보”라고 지적했다. 만수르 조정관은 “이스라엘이 통신탑을 폭격해 뉴스 송수신이 두절되는 일이 여러 차례 발생했다”며 “해외 본사에서 가자지구의 자사 기자나 프리랜서 통신원과 연결이 두절된 경우도 세 차례 이상이나 발생했다”고 밝혔다. 가자지구 봉쇄가 장기화하면서 생존을 위한 물과 식료품을 구하는 일도 매일의 과제가 되고 있다.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 가족이나 친척, 이웃이 죽어가고 고통 받는 것을 매일같이 지켜봐야 하는 현지 인력은 아무래도 어느 정도 오차나 편견을 갖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를 막으려면 수시 교대와 순환 근무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가자지구는 그런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언론에 호의적이지 않은 취재 환경도 문제다. 220만 명이 거주하는 가자지구에 대한 외부 세계의 접근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이스라엘에 주재하는 언론인은 당국이 제공하는 간단한 현장 방문 취재 목적 외에는 가자지구에 들어갈 수 없다. 들어갈 수 있다고 해도 누구도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 

 

이스라엘이 사실상 점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등에서는 13명의 언론인이 구금됐다. 만수르 조정관은 “이스라엘 법에 따르면 국민 사기에 악영향을 주는 사람은 최고 1년간 감옥에 보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하마스도 언론인을 반기지 않는다. 하마스는 가자지구 내에서 검열을 강화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자체 검열의 우려도 있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이스라엘 언론인 4명이 남부 이스라엘에서 숨졌는데, 이는 이스라엘 미디어 종사자가 하마스에 살해된 첫 사례다. 

 

이처럼 예고 없이 기습적으로 벌어지는 전투 상황에서는 어떠한 안전 가이드라인도 별 소용이 없다. 언론인은 민간인으로서 국제법에 따라 보호받아야 한다는 원칙은 실제 분쟁이라는 냉혹한 현실 아래서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이야기다. 

 

만수르 조정관은 “그래도 세계는 언론인들이 제공하는 분별 있고 적시 전달되는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렇지 않으면 부정확한 뉴스나 정치적 의도가 담긴 가짜뉴스의 홍수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정확한 정보와 가짜뉴스는 분쟁과 증오를 더욱 확산할 수 있다.


봉쇄된 가자지구

언론인 교대·철수는 없다

 

가자지구에서 활동하는 언론인과 미디어 종사자들은 이스라엘의 폭격과 지상 작전, 물자 부족, 정전 등 다층 위협에 노출돼 있다. 가장 큰 것이 지리적 한계다. 한국의 거제도만 한 면적 365㎢에 220만 명이 거주하는 가자지구는 이스라엘과 이집트, 그리고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자유롭게 외부로 이동할 방법이 없어 사실상 봉쇄됐다.

 

육상은 물론 해상이나 공중으로도 외부로 이동할 수 없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에 대한 무기 공급 방지를 명분으로 가자지구를 사실상 봉쇄하고 있다. 북부 가자 시티에 있는 가자 항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1993년 체결한 오슬로Ⅰ과 1995년 맺은 오슬로Ⅱ 조약에 따라 확장 공사까지 예정됐다. 하지만 공사는 2000~2005년 제2차 팔레스타인 인티파다(intifada, 봉기)로 중단됐다. 가자 항구는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가자지구 다수를 차지하면서 이스라엘과 이집트 양측에 의해 아예 봉쇄됐다. 국제 인권 단체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에 따르면 가자 항구 봉쇄로 주민의 외부 출입과 물자 이동이 완전히 제한되고 있다. 2009~2011년, 2015~2016년 서구 민간단체들이 선박에 구호품과 활동가를 싣고 가자 기항을 시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공중도 마찬가지다. 1995년 오슬로II 조약 이후 가자지구 서남단, 라파흐 검문소 인근에 PLO 의장의 이름을 딴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 국제공항이 1998년 11월 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인티파다 직후인 2000년 10월 이스라엘에 의해 폐쇄됐다. 

 

2001년에는 폭격으로 레이더와 통제시설이, 2002년 활주로가 불도저로 제거돼 지금은 잔해만 남았다. 가자지구 중부도시 칸유니스(Khan Yunis)의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사업기구(UNRWA) 난민캠프 바로 옆에 건설됐던 800m 활주로의 구시 카티프(Gush Katif) 공항도 2004년 폐쇄됐다. 이로써 가자지구에는 공항이 완전히 사라졌다. 

 

가자지구가 폐쇄 상태다 보니 외국 언론사의 현지 파견 언론인이나 현지 고용 언론인은 일시 휴식하거나 철수할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최악의 상황에서 다른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폭격이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자사 카메라맨을 잃은 카타르의 알자지라 방송이 법무팀에 이 사건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할 것을 지시했다는 보도도 나온다. ICC가 현실적으로 어떤 해결책을 낼 수 있을지는 모호한 상태다. 하지만 글로벌 언론사들의 적극적인 대응은 이스라엘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을 것이다. 교전 세력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는 과도한 공격으로 언론인까지 희생되는 상황은 이스라엘에 전투는 이기고 전쟁은 지는 결과를 불러올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인 보호 위해 

구체적 외교 압박 절실한 때

 

이스라엘은 ‘중동 유일의 민주주의·인권·자유 국가’임을 자랑해 왔다. 하지만 가자지구에 대한 과도한 공격은 이런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면서 언론인의 취재를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 되는 위험 활동으로 만들어 결과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와 같은 상황에선 국제적인 여론 압박으로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줄이는 것이 언론인의 피해를 줄이는 유일한 방법으로 보인다. 민간인의 피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언론인의 피해만 따로 줄이는 방법은 찾기 힘들다.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자 수가 1만 8,000명에 이른 것은 아무리 하마스가 선공을 가했다고 해도 이스라엘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게 돌아가는 원인을 제공한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도 2023년 12월 14일 가자지구 교전에서 이스라엘에 민간인 보호에 더욱 힘쓸 것을 촉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12월 12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무차별 폭격으로 국제적인 지지를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사실상 힘에 의한 하마스 문제 해결을 추구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벤야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총리에 대한 압박이다.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하고 무분별한 공습을 줄이는 것이 ‘민간인인 언론인’의 생명을 보호하고, 취재 환경을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하는 길일 것이다. 유엔총회에서 가자지구에서 민간인 보호를 촉구하는 결의안과 함께 가자지구 언론인의 안전과 취재 자유 보장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추진할 수도 있다. 유엔총회 결의가 아무리 선언적이라고 해도 민주주의 국가를 지향하는 이스라엘이라면 어느 정도 누그러질 수밖에 없다. 군사작전을 펼치더라도 민간인에 대한 부수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저강도 작전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은 이러한 구체적인 외교적 압박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궁극적으로는 중동 평화를 위한 글로벌 노력만이 언론인이 겪는 비극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물론, 현실적인 가능성은 별개지만 말이다.

 

저자의 다른 미디어
  • 필자 : 채인택
  • 소속 :
  • 직함 :
  • 발행 : 2023-12-29
  • 조회수 : 4
  • 키워드 :
블로그 공유 트위터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