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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언론과 언론인의 현주소] 증가하는 언론인 대상 괴롭힘, 기자가 말하다
커버스토리 | 등록일 : 2023-12-29

언론에 대한 신뢰가 곤두박질치며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괴롭힘 또한 날로 증가하고 있다. 그 양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실시한 제16회 언론인 의식조사와 포커스 그룹 인터뷰 결과를 통해 확인해 본다. 편집자 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제16회 언론인조사(이하 조사)를 실시한 결과1), 전체 응답자 2,011명 중 절반에 가까운 45.5%가 언론인 대상 괴롭힘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응답자의 29.7%가 취재 및 보도로 인해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는데, 이 수치는 남성 기자(28.3%)에 비해 여성 기자(32.8%) 사이에서 더 높았다. 

 

이 결과는 정상적이지 않다. 취재와 보도는 언론인의 직무다. 직업상 맡은 일을 하다 괴롭힘당했다는 사람이 전체의 3분의 1에 가깝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괴롭힘의 양과 그 잠재적 악영향은 보이는 것보다 더 많고 심각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총 8명의 기자와 두 차례에 걸쳐 진행한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 Focus Group Interview) 결과는 이를 잘 드러낸다.

 

언론인 대상 괴롭힘의 양상

 

기자들은 주로 온라인상에서 괴롭힘을 경험하고 있다. 저널리즘이 디지털화하면서 매체 유형을 가리지 않고 모든 기자의 직무가 온라인상에서 수행될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 실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괴롭힘 유형 중에서 이메일·전화·문자·메신저 등을 통한 괴롭힘(79.1%)이 가장 높은 비율로 나타났고, 웹사이트 악성 댓글(51.2%), 악의적인 고소와 고발(23.7%), SNS에서의 집단적 괴롭힘(17.1%), 개인정보 공개 등 사생활 침해(11.5%) 등이 뒤를 이었다. 

 

포커스 그룹 인터뷰(이하 인터뷰) 참여 기자들은 악성 댓글과 이메일을 직무의 ‘공기(空氣)’처럼 여기고 있었다. 특히 악성 댓글은 기사에 ‘디폴트’처럼 으레 달라붙는 것으로서 괴롭힘으로 분류하기엔 매우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기자들이 다수였다. 다수의 온라인 이용자가 특정 기자의 신상 정보를 털어 공개하는 사이버 공격행위인 집단적 신상 털기(multiple-doxing)를 경험한 기자도 있었다. 이때 가해자들은 “기사 자체가 아니라 기자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자 개인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고” 대상이 된 기자가 “이전에 쓴 기사까지 다 검색해서 짜깁기하여 공격거리”로 삼는 등 전형적인 온라인 인격 살인 패턴을 보였다. 

 

정치부 기자나 법조기자가 특히 이런 유형의 공격을 더 자주, 심하게 경험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정치적 양극단의 강경파 지지자들로 구성된 소위 ‘정치인 팬덤’의 타깃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비슷한 맥락에서 연예부 기자도 연예인 팬덤의 타깃이 되곤 했는데, 어떤 팬덤은 회사 전화를 마비시킬 정도로 조직적으로 기사에 반응하기도 했다. 부서와 무관하게 젠더 및 사회적 소수자 관련 기사를 작성하면 온라인 괴롭힘이 증가한다고 말한 기자들도 다수였다. 여성 기자들은 기자이기 때문에 당하는 괴롭힘에 더해 외모 품평과 강간 협박 등 여성 혐오 기반 언어폭력에도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었다.


괴롭힘의 영향

회의감 유발과 사기 저하

 

일상적 댓글이나 이메일이든 조직화한 공격이든, 기자 대상 괴롭힘은 어떤 식으로든 기자의 삶과 일에 흔적을 남긴다. 한 인터뷰 참여자는 젠더 이슈에 관심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젠더 아이템을 자기 검열하고 있었다. 그는 젠더 기사를 쓸 때마다 쏟아지는 악플과 이메일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더 심층적인 기사를 작성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공격은 기사 품질과는 무관했다. 경험을 거듭하면서 그는 좀 더 “무난한 것만 써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무엇을 쓰더라도 괴롭힘 당하는 상황은 기자의 역할과 언론 그 자체의 기능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인터뷰에 참여한 한 정치부 기자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기사를 쓰지 않으면 비아냥거리거나 불만을 표출하는 취재원과 공격적인 독자들이 최근 몇 년간 동시에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것을 쓰면 저쪽 진영에서 공정하지 않다고 하고, 저것을 쓰면 이쪽 진영으로부터 변절자 소리를 듣는다면서, 그는 “이제는 뭘 써도… 안 믿을 분들은 믿지 않는 상황”이 됐기 때문에 “사실에 근거해 객관적으로 보도하고자 노력하는 게 더는 의미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직무에 대한 회의감은 노동 동기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인터뷰 참여자 중 경력이 상대적으로 짧은 기자들은 사회가 자기 직업을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이러한 인식은 “불특정 다수에게 내 직업을 편하게 밝힐 수 없다”,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면 기자라는 걸 숨긴다”, “쟤네(기자)는 전문직도 아니고, 그냥 진짜 베껴서 쓰는 애들인데…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더라. 그래서 나는 (내가 기자라고) 말하지 않은 적이 많다”라는 식으로 표현됐다. 몇 년 새 공채 시험 고사장 크기는 줄고 이직자 수는 늘어난 자사 상황을 두고 직무 회의감과 노동 동기 저하가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것 같다고 진단한 기자도 있었다.


괴롭힘에 대응하는 방식?

회피하거나 빌미를 주지 않거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취재 및 보도로 괴롭힘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기자들의 과반(62.5%)이 무시 혹은 무대응하고 있었다. 인터뷰 참여자 중에서도 댓글을 읽지 않는다고 말한 이들이 다수였는데, 특히 경력이 상대적으로 긴 기자들이 그런 편이었다. 한 기자는 댓글에 일희일비하다 보면 일하는 게 불가능하다면서 아예 읽지도 않고, 행여나 읽게 되더라도 “타격감이 없다”고 말했다. 

 

조사에서 괴롭힘에 대응한다고 응답한 기자들은 조직적·공식적이기보다는 개인적·비공식적 차원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동료, 선배와 상의”(32.1%)한다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인터뷰 참여자들도 친한 동료, 특히 이 문제를 이해해 줄 것 같다고 여겨지는 선배에게 하소연함으로써 감정적 고통을 상쇄하고 있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개인적인 대처 방식은 △회피와 △완벽주의 추구로 세분된다. 우선 회피는 공격 및 괴롭힘이 예상되는 환경으로부터 최대한 벗어나기 위해 사용되는 방어 기제다. 이는 앞서 언급한 자기 검열을 포함하는데, 젠더 및 사회적 소수자 아이템을 피하는 게 대표적이다. 정치부나 법조팀을 회피하거나, 비취재부서나 내근직을 선호하는 기자들도 더러 있었다. 예컨대 사회부와 뉴미디어팀에서 젠더 관련 기사를 많이 쓰곤 했다는 한 인터뷰 참여 기자는 지속적·일상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다가 무력감을 느낀 이래 산업부와 국제부처럼 좀 더 “무난하게 읽힐 수 있는 기사(를 쓸 수 있는) 부서”로 자원해 갔다.

 

두 번째는 괴롭힐 빌미를 잡히지 않기 위해 일과 삶을 최대한 엄격하게 통제하는 완벽주의 추구 유형이다. 기사 작성 시 용어와 문장 하나하나의 뉘앙스를 검토하고 재검토하는 기자, 온라인상의 신상 정보를 완전히 지우는 기자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한 인터뷰 참여자는 커리어 초기에 비해 이제는 칼럼을 안 쓰려고 한다면서, 기사를 쓸 때도 “어투나 단어 선택을 조심하면서 내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어갈 것 같은 곳에는 관계자들이나 전문가들의 멘트”를 넣는 식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사 품질 상승은 완벽주의 전략의 부수적 효과다. 하지만 매일 기사를 작성해야 하는 기자가 온라인 괴롭힘을 당하지 않기 위해 모든 취재와 보도에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강박관념과 그에 따른 자기 검열로 이어지기 십상이고, 심리적·정신적인 소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궁극적으로 회피와 완벽주의 추구와 같은 개인적 차원의 대응 전략은 일종의 미봉책으로서 기자 직무의 근본인 취재와 보도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특정 부서 회피 등으로 인해 기자 개인의 커리어 개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결국 언론사 조직이 바뀌어야

 

기자들이 회피나 완벽주의 전략을 써가면서 개인적으로 이 이슈에 대응하는 이유는 다름아닌 조직 때문이다. 조사 결과 41.8%의 응답자가 소속 언론사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말해, 도움을 받았다는 응답자(29.1%)보다 훨씬 많았다. 조사 참여 기자들의 70.7%가 취재 및 보도로 인한 언론인 괴롭힘에 대응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봤는데(매우 그렇다 20%, 그렇다 50.7%), 이들이 꼽은 대응책은 법률 서비스 지원(43.4%), 언론사 내부 제도적 지원 기구 운영(22.4%), 언론사 내부의 인식 제고와 높은 관심(13.3%), 언론 괴롭힘 대응 매뉴얼 제작과 교육(10.5%), 심리상담 프로그램 연결 및 비용 지원(6.4%) 등으로 대부분 조직 체계와 문화 수준에서 변화가 필요한 것들이었다. 

 

인터뷰 참여자들의 증언은 조직의 규모와 문화에 따라 조직적 조력 여부는 물론 그 실효성과 적극성 정도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내 변호사나 제휴 변호사가 존재하는 큰 규모의 언론사 소속 기자는 법률적 절차를 상대적으로 편하게 밟는 편이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사에서 기자들은 가욋일로 스스로 소송을 준비해야 해서 시간적·정신적 소모가 클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인터뷰 참여자들은 경영난 등으로 소속 언론사의 변화가 요원한 만큼 노조나 협회 등 언론단체에서라도 괴롭힘 관련 소송을 진행하는 기자라면 누구든 이용할 수 있는 법률 서비스를 마련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인터뷰에서는 법률적 지원 이외에도 매뉴얼과 가이드라인 제작 및 배포, 사내 괴롭힘 문제 전문 담당관 제도 도입 등 다양한 조직적 대응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조직원들에게 가해지는 언어폭력에 대응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 둔 언론사는 한겨레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온라인 이용자들이 기자에게 메일 등으로 언어폭력을 가하기 전에 자신의 행위를 재고할 수 있게 할 기술적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는 제안, 각 언론사가 소속 기자들에게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보다 포괄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었다. 

 

인터뷰에 참여한 일부 기자는 시스템도 시스템이지만 조직 문화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한국의 대다수 언론사에는 ‘괴롭힘 정도의 문제는 기자 개인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식으로 강인함을 강조하는 조직 문화가 존재하는데, 이 문화는 언론인 스스로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의 공론화를 꺼리게 만들 수 있다. 괴롭힘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는 기자는 ‘능력 없는 기자’, ‘멘탈(정신력)이 약한 기자’ 취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 참여자들은 이 문화에 익숙한 기자일수록 괴롭힘을 사소하고 정상적인 것 혹은 직무의 일부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 동의했다. 상대적으로 경력이 긴 한 인터뷰 참여자는 자신은 괴롭힘 문제에 대해 조직과 기자직에 적응하며 어느 정도 무뎌졌지만, “모든 기자가 나처럼 무뎌질 수 있을지, 무뎌져야 하는지 의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면에서 현재의 남성중심주의적 언론계 조직문화는 언론인 대상 괴롭힘에 언론인 스스로 무뎌지기를 요구하며, 그렇게 되지 않은, 그렇게 되길 거부하는 기자들을 주변화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1) <2023 한국의 언론인>, 한국언론진흥재단,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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